지난 22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결과에 대한 대통령 입장을 박수현 대변인이 발표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안광복(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한겨레 사설] “원전 축소 말라”는 야당·보수언론의 공론조사 왜곡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의 결론은 명쾌했다. 신고리 5·6호기 건설은 재개하되, 앞으로 원자력 발전을 축소하라는 것이다. 또 공사를 재개할 경우 안전기준을 강화하라고 주문했다. 국민을 대표한 시민참여단의 결론은 이처럼 다른 해석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분명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2일 입장문을 내어 “정부는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조속히 재개하겠다”며 ‘공사 중단’ 지지자들에게 대승적 수용을 부탁했다. 정부 의지와 다른 결과가 나왔지만 국민의 뜻인 만큼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또 “탈원전을 비롯한 에너지 전환 정책을 차질없이 추진하겠다”며 “다음 정부가 탈원전의 기조를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천연가스와 신재생에너지 확대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말했다. 이 또한 공론조사를 통해 확인된 국민의 뜻이다.
그러나 야당과 보수언론은 “국민이 탈원전 정책에 제동을 걸었다”며 아전인수식 주장을 한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는 대대적으로 부각하는 반면, ‘원전 축소 권고’는 무시한다. 또 공론화위의 원전 축소 권고와 관련해 “월권을 했다”고 비난한다. 공론화위의 건설 재개 결론을 떠받들면서 공론화위 활동 자체는 폄훼하는 것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 태도다. 한마디로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의견만 골라 먹겠다는 심산이다.
특히 야당은 ‘대통령 사과’ 등 정치공세까지 펴고 있다. 강효상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문재인 정부는 직권남용에 대해 관련자 문책과 함께, 모든 법적·정치적·행정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행자 국민의당 대변인은 “공약을 지키지 못한 데 대한 비난을 공론화위로 떠넘기며 책임을 회피한 문재인 대통령은 사과부터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국민의 삶과 직결된 중요 정책에 대해 국민 의견을 묻지 않고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하라고 주장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공론화위 활동이 찬반이 첨예하게 갈리는 현안을 민주적으로 해결하는 바람직한 모델을 제시했다는 평가와 동떨어진 주장이다.
이번에 시민참여단은 학습과 토론을 통해 반대 의견까지 포용하는 상생의 해답을 내놨다. 또 자신의 의견과 다르더라도 결과에 기꺼이 승복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줬다. ‘숙의 민주주의’의 모범을 우리 사회에 제시한 것이다. 정치권부터 먼저 배워야 할 자세다.
[중앙일보 사설] 신고리 재개 청와대 입장 표명, 내용·형식 모두 실망스럽다
공론화위원회의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 권고에 대한 입장을 문재인 대통령이 이틀 만인 22일 내놓았다. 해당 원전의 건설을 조속히 재개하되, 신규 원전을 짓지 않고 기존 원전도 수명 연장을 하지 않는 등 탈원전 정책은 변함없이 이어간다고 천명했다. 약속한 대로 위원회 권고를 존중해 지지층에 대승적 수용을 촉구한 점은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입장 발표의 형식이나 내용 면에서 국민의 기대치에 크게 못 미치는 듯해 유감스럽다.
우선 비현실적인 대선 공약을 내세웠다가 파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된 점과 공사 중단으로 예산 낭비를 초래한 과오 등에 대해 유감 표명 한마디 없었다. 새 정부의 무리한 5·6호기 공사 중단 조치로 협력사 피해액이 1000억원에 달하고, 공론화위가 석 달간 쓴 활동비도 46억원에 이른다. 업계와 학계, 환경단체와 지역주민이 싸우며 유발한 사회적 갈등 비용은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공론화위가 20%포인트 가까운 큰 격차로 공사 재개 쪽 손을 들어준 건 짓고 있는 신고리 원전 폐기에 무리하게 나선 새 정부 독선에 대한 국민적 제동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이런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언급이 전혀 없었다.
메시지의 형식도 실망스러웠다. 소통을 강조해온 대통령인 만큼 국민 앞에 나와 솔직한 입장을 밝힐 것을 기대했다. 문 대통령은 대신 1800자 분량의 ‘서면 입장’을 청와대 기자단 사이트인 ‘e춘추관’에 게재했다. 같은 날 열린 이북 도민 체육대회까지 다녀간 대통령이 이토록 중차대한 국가 대사에 왜 모습을 보이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가장 우려스러운 건 국민이 사실상 레드카드를 꺼낸 탈원전에 대해 공론화위의 ‘원전 축소’ 권고를 명분 삼아 계속 밀어붙이려는 정부 태도다. 원래 공론화위의 역할은 5·6호기 건설 재개 여부의 판단이었지 원전 정책의 장기적 향배 결정은 아니었다. 이에 대해 심도 있는 숙의를 거쳤는지도 의문이다. ‘원전 축소’가 53%의 찬성을 얻었다지만 ‘원전 유지·확대’가 45%에 달한 점 역시 유념해야 한다.
아울러 문 대통령이 이날 가동 중단 대상으로 언급한 월성 1호기는 재판 계류 중인 사안이라 성급한 느낌이다. 2015년 원자력안전위원회 결정으로 설계수명을 늘려 운전기간을 2022년 11월로 연장하자 시민단체가 취소 소송을 내놓고 있다. 자칫 정부가 재판에 영향을 미치려 한다는 의심을 살 수 있다.
정부는 “탈원전이 세계적 흐름”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번 공론화 과정이나 언론 보도 등을 통해 그렇지 않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한 걸음 물러나 그런 경향이 어느 정도인지는 공론에 부치더라도 ‘에너지 섬’인 우리나라의 경우 원자력과 신재생이 상당 기간 함께 가야 한다는 점은 자명하다. 국내 원전은 2023년 고리 2호기를 시작으로 2029년 월성 4호기까지 10기의 설계수명이 끝난다. 탈원전을 전투하듯 밀어붙일 것이 아니라 경제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수십 년 기약할 에너지 전환 정책이 무엇인지 고민이 필요하다.
[추천 도서]
[추천 도서]
[키워드로 보는 사설] 공론화위원회와 숙의 민주주의 지난 20일, 공론화위원회는 신고리 5·6호기에 대해서는 건설 재개, 정부의 에너지 정책에 있어서 ‘원전 축소’ 의견을 정부에 최종 권고안으로 제출했다. 이는 시민참여단 471명이 석 달에 걸친 긴 숙고 과정을 통해 내놓은 결론이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의 결정은 우리 사회에 ‘숙의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갈등 해결 방안을 내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숙의 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란 정치나 정책의 현안들을 시민들 사이의 공정하고 이성적인 토론으로 풀어가는 과정을 일컫는다. 민주주의에서 ‘다수가 곧 정의’라는 말은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사회적으로 큰 손해를 가져올 정책들도 표를 많이 얻은 쪽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실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숙의 민주주의는 이해관계의 조정이 아닌 ‘공익’의 관점에서 정책을 바라보고 평가한다. 이를 위해서는 논의하는 과정에서 정보가 충실하게 주어져야 하고, 대립하는 주장들을 균형 있게 들어야 하며, 참여자들이 사회 전체를 대표할 만큼 다양해야 하고, 평등한 분위기에서 토론이 이루어져야 한다. 나아가, 결론은 내세워진 주장이 설득력이 있는지에 따라 가려져야 한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는 긴 논의 끝에 건설 재개 59.5%, 중단 40.5%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일반인 여론조사에서는 건설 재개와 중단의 비율이 오차 범위 안에 머물 정도로 근소한 차이만 보였다. 진지한 학습과 많은 토론 기회, 충분한 숙의 기간을 거치면 ‘민의’(民意)도 바뀔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그러나 공론조사가 곧 정답은 아니라며 경계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연재사설 속으로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