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총 조합원들이 지난 1월29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전국단위노조대표자 총력투쟁 결의대회’에서 저성과자 해고, 취업규칙 변경 등 정부 양대 지침을 비판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태형 기자
김보일 배문고 국어교사
[한겨레 사설] 노·정 모두 ‘사회적 대화’ 물꼬부터 터라
‘노동 존중’을 내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다섯달,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선언부터 최저임금 대폭 인상, 양대 지침 폐기까지 우리 사회는 노동문제와 관련해 큰 변화를 맞고 있다. 동시에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문제를 둘러싼 현장 갈등에서 보듯 정부의 일방적 선언이나 정책 하달로는 한계가 있음 또한 분명해지고 있다. 사회적 대화에 대한 요구가 커지는 이유다.
최근 몇가지 움직임은 주목할 만하다. 지난 25일 정부는 그동안 노동계의 거센 반발을 불렀던 양대 지침을 공식 폐기했다. 노동계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조처 가운데 하나다. 다음날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은 사회적 대화 프로세스를 제안하며 1단계로 대통령과 한국노총·민주노총, 대한상의와 경총, 노동부와 기재부, 노사정위원회 대표가 참여하는 ‘8자회의’를 요구했다. 쉬운 의제부터 합의해 신뢰를 확장하는 2단계를 거쳐 3단계로 2019년 4월 한국 사회 대전환을 위한 노사정 공동선언을 하자는 것이다. 반면, 민주노총은 28일 기자회견에서 △상시지속업무 비정규직 직접고용 정규직화 △노조에 대한 손해배상 가압류 철회 △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비준 등 5대 우선요구를 발표하며 ‘사회적 대화에 앞서 정부의 신뢰회복 조처가 먼저’라는 입장을 밝혔다.
유일한 사회적 대화 기구로 불려온 노사정위원회 복귀에 대해선 양대 노총이 모두 부정적이다. 사실 노사정위는 그동안 정부의 들러리 역할을 하며 자본과 기업 쪽 요구를 들어주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선언’ ‘협약’ 같은 결과물에 연연해 공감대를 얻지 못하고 밀어붙이는 방식도 문제가 많았다.
그렇다고 어떤 요구가 해결되어야만 사회적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식이 된다면 여론의 지지를 얻기 힘들다는 점을 노동계는 깊이 인식해야 한다. 그만큼 노동시장 양극화 해소, 노동시간 단축을 포함한 일자리 확대 등 개혁 현안이 절박하기 때문이다. 이날 민주노총은 정부가 5대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올해 전국노동자대회가 ‘대정부 투쟁 선포식’이 될 것이라 했는데, 자칫 노동계가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다 개혁의 동력을 잃었던 참여정부 시절이 반복될까 우려스럽다. 정부 또한 ‘노사정위 복귀’ 같은 형식에 얽매여선 안 된다. 지금은 조건과 형식에 연연하지 않고 대화의 물꼬를 트는 게 중요하다.
[중앙일보 사설] 진보정부일수록 기업보다 노동개혁이 우선이다
문재인 정부는 일자리 경제를 내세운다. 5대 국정 목표의 둘째가 ‘더불어 잘사는 경제’며 그 핵심 과제가 일자리 창출이다. 그렇게 중요한 일자리를 만드는 게 기업이다. 정부도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은 마중물일 뿐이고, 결국 일자리는 시장에서 생긴다고 인정했다. 그런 정부가 일자리 만드는 기업을 사정없이 궁지로 몰아가고 있다.
그제 고용노동부는 노동개혁 양대지침으로 불리는 저성과자 해고 절차를 담은 ‘공정인사 지침’과 호봉제 중심의 임금체계를 성과연봉제나 역할·직무급으로 개편하기 쉽게 하는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에 관한 지침’을 공식 폐기했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했던 노동개혁의 상징이었던 두 지침은 1년8개월 만에 물거품이 됐다. 재계에선 정부의 친노동정책이 본격화하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새 정부 출범 이후 기업 부담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인천국제공항공사를 앞세워 민간기업에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압박했다. 가맹점의 품질관리가 기본인 프랜차이즈의 본질을 무시하고 파리바게뜨에 불법파견 판정을 내렸다. 가계 부담을 줄이겠다는 대선 공약을 관철하기 위해 통신비를 끌어내렸고 최저임금은 대폭 인상됐으며 법인세 부담도 늘어난다. 기업 부담을 늘리는 정책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아무리 써도 재물이 줄지 않는 화수분처럼 기업을 생각하는 것 같다.
기업은 지금 안팎의 칼바람을 맞고 있다. 북핵 사태로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면서 시장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소비 심리도 나빠졌다. 어제 한국은행이 발표한 소비자심리지수는 두 달 연속 하락했다.
정부는 경제운용의 중심을 국가와 기업에서 국민 개인과 가계로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성장의 과실을 골고루 나누기 위해 기업 중심의 정책에서 한발 물러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기업을 이렇게까지 흔들어대는 건 지나치다. 대기업에 골목상권을 떠나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라고 말만 앞세워선 안 된다. 다리에 잔뜩 모래주머니를 채워놓고 달리기 경주에서 어떻게 승리하라는 말인가.
새 정부의 국정과제 38번은 ‘주력산업 경쟁력 제고로 산업경제의 활력 회복’이다. 신산업과 고용창출 효과가 높은 외국인투자·유턴기업을 중점 유치할 수 있도록 내년까지 관련 지원 제도를 개편하겠다고 했다. 해외로 나간 일자리를 되돌리기 위해 세제 혜택만이 능사는 아니다.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
독일의 슈뢰더 개혁까지 갈 것도 없다. 노무현 정부도 2003년 노사관계 로드맵을 만들었다. 이번에 폐기된 양대 지침과 일맥상통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마찬가지로 노동시장 개혁이라는 보수의 어젠다를 진보 정부가 채택했던 것이다. 이처럼 경쟁을 꺼리는 진보의 적폐를 진보정권이 정조준하고, 보수의 적폐는 보수정권이 청산해야 제대로 된 나라다. 참여정부를 계승한다는 문재인 정부는 과거에서 대체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궁금하다.
[추천 도서]
[키워드로 보는 사설] 슈뢰더의 개혁 노동자들의 지지를 얻어 당선된, 독일 사민당 출신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는, 2003년 경제성장률 -0.4%라는 최악의 경제위기에 봉착하자 ‘하르츠 개혁’을 통해 임금 삭감과 노동시장 유연화를 추진했고, 독일 경제를 성장으로 이끌었다. 그의 개혁은 국민들에게 고통을 요구했다. 실제로 10여년간 노동자들의 급여는 많이 오르지 않았고 부의 배분도 불평등했다. 결국 슈뢰더는 지지기반이던 노동계 반발로 총리 자리를 기민당의 앙겔라 메르켈에게 넘겨줘야 했지만 마지막 순간에도 대연정을 성사시켜 개혁의 연속성까지 확보하고 나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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