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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땀만 뻘뻘? 머리·가슴 다 쓰는 체육시간

등록 2017-10-16 21:14수정 2017-10-16 21:21

[함께하는 교육] 이색 체육활동 프로그램
지난달 23일 경기도 수원 곡반초에서 진행한 '스재배리' 프로그램 참가 학생들이 티볼 훈련을 하고 심판 시그널의 동작과 구호를 연습하고 있다. 최화진 기자
지난달 23일 경기도 수원 곡반초에서 진행한 '스재배리' 프로그램 참가 학생들이 티볼 훈련을 하고 심판 시그널의 동작과 구호를 연습하고 있다. 최화진 기자

■ 이 주의 교육노트

‘운동으로 심신 단련, 인격 수양, 사회성 형성’
체육 활동의 목적 찾아보면 이런 내용입니다.
한데 우린 ‘몸 단련’ ‘경기 실적’에만 관심 많았죠.
모두 국가대표 할 것도 아닌데 왜 그랬을까요?
친구와 함께 뛰며 몸과 마음으로 대화하는 시간.
아이들과 체육의 정의 다시 써보면 어떨까요?

“주자가 공을 치고 1루로 뛰다 아웃 당했을 때 심판이 시그널을 어떻게 주면 좋을까? 만일 네가 열심히 뛰고 있는데 바로 앞에서 큰 소리로 아웃 시그널을 받으면 기분이 어떨 거 같아?”

강명수 스포츠강사가 시그널 동작을 취하며 “평소에는 ‘아웃’ 시그널을 명확하고 크게 외치되 상황에 따라 상대방의 감정이 상하지 않게 가벼운 손동작으로 판정하는 게 예의”라고 알려줬다.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심판 시그널 동작과 구호를 연습했다.

지난달 23일 오후 경기도 수원 곡반초에 모인 학생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티볼(T자 형의 막대기 위에 공을 놓고 방망이로 치는 종목으로 야구와 비슷한 변형 스포츠) 훈련을 했다. 기본적인 수비나 타격 외에 각 포지션의 역할과 필요한 능력, ‘세이프’와 ‘아웃’ 등 심판 시그널도 함께 배웠다.

‘여학생은 피구, 남학생은 축구, 교사는 스포츠강사가 대신’ 하는 체육시간. 학교 급이 올라갈수록 입시 준비 때문에 제대로 된 체육활동을 하긴 더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단순히 체력 기르는 데만 방점을 찍는 게 아니라 대안적인 체육활동을 하는 사례도 있다.

경기 이기고 지는 데 중점 두기보다
대안적인 체육활동 현장 ’눈길’
지도법·심판법 등 규칙 익히면서
선수·감독에게 필요한 태도 배워
학생·교사·학부모 마라톤 함께 뛰며
끈끈한 관계 맺고 인내심 등 기르기도

지난달 23일 경기도 수원 곡반초에서 진행한 '스재배리' 프로그램 참가 학생들이 티볼 훈련을 하고 심판 시그널의 동작과 구호를 연습하고 있다. 최화진 기자
지난달 23일 경기도 수원 곡반초에서 진행한 '스재배리' 프로그램 참가 학생들이 티볼 훈련을 하고 심판 시그널의 동작과 구호를 연습하고 있다. 최화진 기자

경쟁보다 경기 룰 알고 제대로 즐겨야

이날 진행한 프로그램은 대한스포츠융합교육사회적협동조합에서 개발해 운영하는 ‘스재배리’(스포츠로 재미있게 배우는 리더십)다. 단체는 프로 배구 선수부터 태권도 상비군 출신 등 엘리트체육을 하다 다치거나 중간에 은퇴한 선수들이 모여 만들었다. 올해부터 경기도교육청 ‘꿈의 학교’ 사업으로 스재배리를 진행하고 있다. 꿈의 학교란 다양한 마을교육공동체 주체들이 학교와 연계해 학생 스스로 기획, 운영하고 진로를 탐색하게 하는 학교다. 스재배리의 경우, 무학년제로 초등 4학년부터 고1까지 3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박경훈 이사는 “아이들은 무조건 이기려고 과열된 경기를 하다가 다투거나, 실수하는 친구를 무시하고 타박하기 일쑤다. 스재배리는 기술력을 앞세운 경쟁보다 경기를 제대로 알고 즐기는 데 목적을 둔다”고 설명했다. “보통 감독은 일방적으로 지시만 하고, 권위적인 태도로 선수들을 누르는 경우가 많은데 그게 불합리하다는 것 등을 깨달으며 스포츠 리더십을 배우고 심판, 선수의 역할을 이해하며 경기에 몰입할 수 있다.”

스재배리는 생활체육을 자연스레 배우고 활성화하자는 취지로 기록을 중시하는 엘리트체육 종목을 쉽게 응용 및 변형한 뉴 스포츠 종목(킨볼, 티볼 등)을 주로 다룬다. 학교 체육시간에 아이들은 대부분 게임 룰도 모르고 그냥 무작정 뛰어다니기만 한다. 심판은 교사만 맡는다. 이에 반해 스재배리는 구장을 그리는 법부터 지도법, 심판법을 알려주고 학생이 직접 특정 역할을 맡아 경기를 운영하게 한다.

오두호 이사는 “단순히 공을 치고 받다 끝나는 게 아니라 룰을 알아야 경기에 제대로 임할 수 있다. 선수가 아닌 체육 관련 행정이나 심판에 관심 있는 학생에게는 지도자 교육의 기회도 되는 셈”이라고 했다.

정시후(잠원초 5)군은 “원래 야구를 좋아했는데 룰을 알고 직접 해보니 더 재밌다. 주자의 감정이 상하지 않게 상황에 따라 아웃을 조절해 외쳐야 한다는 것도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서민석(영일초 5)군도 “안전진루권에 대해서도 배우고 심판이 ‘플레이볼’을 외쳐야 경기가 시작된다는 것도 알았다”고 했다.

학교 소속이나 급이 다른 학생들과 어울리면서 협동심이나 배려도 배우게 된다. 부족한 부분은 서로 알려주고 고학년들은 후배들을 챙긴다. 실제 학생들은 쉬는 시간에도 물만 들이켜고 곧장 운동장에 나가 캐치볼을 하거나 타격 연습을 서로 도왔다. 김채림(전산여고 2)양은 “학년은 다르지만 다른 학교 아이들과 어울리게 돼 좋다. 심판을 해보고 싶다. 정확한 판정을 하려면 전반적인 상황을 잘 파악해야 하기 때문에 경기 흐름을 읽는 데 도움이 될 거 같다”고 했다. 스재배리는 1박2일 일정부터 6개월~1년 단위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며 개별 학교도 신청 가능하다.

지난달 23일 경기도 수원 곡반초에서 진행한 '스재배리' 프로그램 참가 학생들이 티볼 훈련을 하고 심판 시그널의 동작과 구호를 연습하고 있다. 최화진 기자
지난달 23일 경기도 수원 곡반초에서 진행한 '스재배리' 프로그램 참가 학생들이 티볼 훈련을 하고 심판 시그널의 동작과 구호를 연습하고 있다. 최화진 기자

마라톤으로 체력 단련부터 나눔 실천까지

충북 청주 오창고는 ‘학생 마라토너’가 많기로 지역에 이름이 난 학교다. 학업이나 진로에 무기력한 아이들에게 뭔가 구심점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학교 차원에서 시작한 마라톤이 올해로 7년째다. 학생들을 독려하기 위해 자체 상도 만들었다. 학교는 1년에 전국 마라톤 대회에 3번 이상 참여한 학생에게 ‘마라톤 그랜드슬램’ 인증서를 준다.

권은심 교사는 “처음 10㎞를 뛰러 갈 때는 잔뜩 긴장하고 겁에 질려 있다. 다음날 끙끙 앓기도 한다. 하지만 꾸준히 달리다 보면 나중에는 소풍 가듯 여유 있어 보인다”며 “중간에 포기하려는 친구를 그냥 두고 혼자만 달려가는 모습도 거의 못 봤다. 살다가 어려운 고비를 만났을 때 다른 이와 함께 극복하는 경험이 큰 자산이 될 것”이라고 했다.

2학년 김현영군은 체력이 안 좋아서 처음 마라톤을 뛴 뒤에는 다리에 알이 배어 집에 드러눕기 일쑤였다. 지금은 마라톤 일주일 전부터 헬스장에서 러닝머신을 하고 경기가 끝난 뒤에 친구들과 바로 놀러 갈 정도가 됐다.

“한번은 내리막길에서 막 뛰다 발을 접질렸는데 기록을 중요시하던 친구가 날 어깨동무하고 같이 뛰었다. 뒤처질 때 친구들이 기다려주거나 서로 자극해주는데 덕분에 관계가 끈끈해졌다. 부모님과 함께 뛰면서 격려와 응원을 받으니 친밀감도 생겼다.”

충북 청주 오창고는 학생, 학부모, 교사가 핑크런 마라톤 대회에 함께 참가했다. 오창고 제공
충북 청주 오창고는 학생, 학부모, 교사가 핑크런 마라톤 대회에 함께 참가했다. 오창고 제공

마라톤은 학생들의 체력 단련, 단합뿐 아니라 ‘나눔과 기부’로 이어졌다. 학생들은 유방암 환우를 지원하는 ‘핑크런 대전 대회’, ‘위안부’ 피해 생존자 할머니를 돕는 ‘유관순평화마라톤’ 등 뜻깊은 취지의 대회에 주로 참여했다. 단순히 달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 있는 일을 한다는 자부심도 생기기 때문이다. ‘청원생명쌀 대청호마라톤대회’에서 받은 상품 쌀 4㎏은 직접 기른 배추로 담근 김장김치와 함께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했다.

학교는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며 마라톤 활동을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재학생은 물론 학부모, 교사, 졸업생이 함께 활동 중이다. 대회 현장에 못 온 학부모는 카페에서 다른 학부모가 찍어 올린 사진을 볼 수 있다. 권 교사는 “마라톤을 시작하면서 학업 중도탈락률이 10%대에서 1%로 줄었다. 여러 요인이 있었지만 꾸준히 밀고 온 마라톤과 카페 활동이 아이들의 변화를 끌어내는 데 굵직한 기둥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전교생 500명 가운데 순수 희망자만 받아 대회마다 평균 100명 안팎 학생이 참여하고 있다. 그저 달렸을 뿐인데, 마라톤은 공부나 학교생활에 관심 없던 아이들을 적극적이고 끈기 있게 만들었다. 2학년 손성부군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달리기를 하면서 체력이 좋아져 시험 기간에도 책상 앞에 좀더 오래 앉아 있을 수 있게 됐다.(웃음) 문제를 풀 때도 마라톤을 할 때처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최화진 <함께하는 교육> 기자 lotus57@hanedui.com

충북 청주 오창고는 학생, 학부모, 교사가 핑크런 마라톤 대회에 함께 참가했다. 오창고 제공
충북 청주 오창고는 학생, 학부모, 교사가 핑크런 마라톤 대회에 함께 참가했다. 오창고 제공

체육활동 운영 노하우

담임교사와 학부모의 협조

단체 활동은 학교 구성원들의 협조가 중요하다. 오창고의 경우, 아이들이 뛰는 걸 보고 담임교사나 학부모도 같은 조끼를 입고 다 같이 뛰었다. 경기에 직접 참여하지 못한 학부모들은 자발적으로 빵과 과일 등 간식을 챙기고 대회 내내 응원단과 사진기자 역할을 맡았다. 지친 아이들은 이들의 뜨거운 응원과 격려 덕분에 무사히 완주할 수 있었다. 담임교사가 직접 함께하거나 학생의 활동을 지지하는 것도 좋다. 이때 활동의 의미나 내용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면 참여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안전은 기본, 날씨는 옵션

단체 활동을 할 때는 늘 변수가 생긴다. 안전을 중요시하지만 순간에 사고가 일어나기도 한다. ‘스재배리’는 처음 2주 동안 응급처치나 심폐소생술 등 안전교육을 진행한다. 경기 중 다치거나 긴급한 상황에서 빠르게 대처할 수 있게 하려는 뜻에서다. 아이들은 밖에서 뛰노는 걸 무조건 좋아해 궂은 날씨쯤이야 상관없어 하지만 부모들은 걱정이 앞선다. 오창고도 대회 참가 일정을 정할 때 미세먼지가 한창인 5, 6월은 피한다. 날씨를 미리 확인한 뒤 외부 활동을 진행하는 게 좋다.

교사의 인내와 융통성

단체로 참가신청을 하다 보면 처리할 게 많고 아이들이라 구비해야 할 서류를 놓치는 일도 다반사다. 이때 활동 프로그램 담당 교사를 정한다면 동료 교사들의 배려도 필수다. 학생이나 학부모를 대상으로 적극적으로 홍보하거나 마라톤 준비체조 등 전문성이 필요한 일은 관련 교과 교사가 해주면 좋다. 여의치 않을 때를 대비해 그 분야에 뛰어난 학생과 평소 친하게 지내두는 것도 팁. 포지션을 정할 때 학생들은 폼 나 보이는(?) 역할만 하길 원한다. 이럴 때는 활동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역할을 번갈아가면서 맡도록 하는 게 좋다.

최화진 <함께하는 교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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