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균 교수가 지난 4일 강원대 교수 연구실에서 교육 게이미피케이션을 설명하고 있다. 최화진 기자
“교수들의 강의는 재미가 없고, 소통도 부족하고 내용 전달도 안 된다. 수업도 게임처럼 즐거웠으면 좋겠다.”
김상균 강원대 교수(시스템경영공학과)가 학생들에게 들었던 얘기다. 이 말은 그가 ‘교육 게이미피케이션’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됐다. 흔히 게임에 대해 중독, 폐인 등 부정적 선입견을 가진 이들이 많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프로그램인 <런닝맨>이나 <무한도전>을 보면 출연자들이 물리적 공간에서 움직이면서 미션을 해결하는 ‘빅게임’을 펼친다. 아이들은 이런 체험을 할 기회가 없어 주로 티브이나 피시 게임으로 대리체험을 한다. 이 때문에 김 교수는 빅게임을 중심으로 교육 게이미피케이션을 적용한 수업을 하기 시작했다.
게이미피케이션이란 ‘게임’에 ‘픽션’(fiction)을 붙여 만든 말로, 우리말로는 ‘게임화’라고 부른다. 흔히 ‘기능성 게임’ ‘게임기반 학습’(G-러닝)으로 불려왔다. 과거 교육 게이미피케이션은 소프트웨어게임 위주였는데 최근에는 수업 중간중간 게임적 요소를 접목하는 것까지 포함하는 개념이 됐다. 가령, 수업을 들을 때 발표나 피드백을 잘하면 마치 게임에서 하는 것처럼 학생의 아바타에 점수를 준다. 그 포인트로 학생은 과제와 관련한 조언이나 시험 힌트를 얻는다.
강원대 학생들이 게임 요소를 접목한 강의 시간에 미션을 해결하는 모둠 활동을 하고 있다. 김상균 교수 제공
김 교수는 경제학의 ‘이자율’을 배울 때 청소년이 이해할 만한 수준의 보드게임을 만들어보라는 과제를 냈다. 개념을 깊게 이해하지 못하면 해내기 힘든 과제였다. 실제 피드백을 받아보니 학생들은 ‘게임 규칙을 만들면서 세부 내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다’고 했다.
교육 게이미피케이션은 보통 ‘이론 학습-사례 분석-플레이 체험-개발 실습’ 4단계로 수업에 적용한다. 프랑스 식품 기업 ‘뉴트리셋’에서 아프리카 시장 진입을 위해 실제 했던 방식을 보자. 먼저, 필요한 이론을 습득한 뒤 롤플레잉 게임으로 사례 분석을 했다. 그 과정에서 현지 제품 가격이나 규제가 복잡하다는 것을 파악하고 직원 11명이 정부 관계자, 학부모 등 이해 당사자가 돼 역할극을 했다.
아이디어를 뽑아내기 위해 ‘퀘스트’(구체적인 목표가 있고 그에 따른 보상이 제공되는 게임상의 과제를 의미)를 제시하고, 완수하면 추가 정보를 주거나 혜택을 줬다. 여기서 나온 결과를 토너먼트 형식의 투표 게임을 통해 다듬어 실제 좋은 결과물을 개발해냈다.
대학에서 기업가 정신을 가르칠 때도 김 교수는 이 방법을 적용했다. 학생들은 기업 활동 경험이 없어 자료를 읽고 해석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가상으로 회사를 만들어 운영해보고 다른 회사와 거래해보고, 일부러 갈등 상황을 만들어 해결하는 게임을 진행했다. 게임에서 매 단계 미션을 해결해가는 것과 비슷한 형태다.
그는 “학생들이 대기업, 중소기업, 비정규직 노동자 사이의 불합리하고 비윤리적인 상황을 체험하며 단톡방에 대기업의 횡포를 비난하고 중소기업의 고충을 털어놨다. 실제처럼 생생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기업가 정신도 기르고, 시장이 돌아가는 구조나 상황을 이해했다”고 했다.
온라인에서 이 과정을 경험해볼 수 있는 창구도 있다. 창조경제타운 누리집(www.creativekorea.or.kr)에는 가상으로 ‘아이디어 컴퍼니’를 만들어 운영해보고 기업 가치가 어떻게 변동하는지 알아가는 게임을 제공하고 있다.
학생들이 원하는 ‘재미있게 소통하면서, 남는 게 있는 수업’을 하자 자연스레 결석률이 줄고 딴짓하는 학생도 줄었다. 사실 교육 게이미피케이션을 하면 활동이 많아 진도를 빨리 나갈 수 없다. 이는 프로젝트 수업이나 협동학습을 하는 교사들의 고민이기도 하다. 게다가 공대는 교재가 1000페이지 정도로 두껍다 보니 한 학기에 500페이지 진도 나가기도 힘들었다. 가르치는 양이 많은 강의가 미덕이라고 생각해 교수들이 ‘책떼기’ 내기를 할 정도였다.
김 교수는 게임을 적용하면 배우는 양은 절반 정도로 줄지만 1000페이지를 배워서 100페이지 남는 것과 200~300페이지 배워서 100페이지가 남는 것과 결과는 비슷할 거라 판단했다. 본인이 몰입해 뭔가를 스스로 배우는 게 오히려 더 깊이 기억에 남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강원대 학생들이 게임 요소를 접목한 강의 시간에 미션을 해결하는 모둠 활동을 하고 있다. 김상균 교수 제공
모든 학생이 게임을 즐기지는 않으며 게임을 하면 지나친 경쟁이 생길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김 교수는 이에 대해 게이미피케이션 전공 수업을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여는 대신, 학교에 상대평가를 풀어달라고 부탁했던 사례를 들려줬다. 50여개 학과 250명의 학생이 신청할 정도로 많이 모였다. 이들은 혼자 좋은 점수를 얻기보다 다 함께 문제를 해결해나가려고 했다. 게임포인트를 많이 얻은 학생이 시험 힌트를 다 사서 오픈 채팅방을 열어 모두에게 나눠줬다.
“경쟁적으로 할 때는 친구들에게 안 주고 혼자서 얻으려던 학생들이 정보를 공유했다. 외국에서는 게임에 차근차근 도전해보게 해서 결국엔 모두가 성공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우리는 30% 정도 학생만 목표를 달성하고 나머지는 ‘이번 학기 망했다’고 말하는 시스템이다. 상대평가로 바꾸면 배움과 협동이 자연스레 일어난다.”
실제 학생들은 새로운 도전 과제에 부딪히고 이를 해결하면서 재미를 느꼈다. 팀 단위로 주어지는 미션을 풀기 위해 뒤처지는 팀원을 끌어주면서 멘토-멘티 관계도 자연스레 생겨났다. 김 교수는 40개가 넘는 게임을 개발했으며, <교육, 게임처럼 즐겨라>란 책도 펴냈다. 학교나 집에서 쉽게 적용할 수 있게 게이미피케이션을 다룬 전반적인 이론과 사례를 담았다.
현재 교육 게이미피케이션 관련 자료는 많지 않다. 한국과학창의재단의 ‘사이언스 레벨업’(sciencelevelup.kofac.re.kr)에는 초등·중학 과정의 수학·과학 게임 자료가 있다. 내진 설계를 통한 지진 실험이나 증강현실을 이용한 빛 굴절 실험 등을 해볼 수 있는 소프트웨어게임을 제공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다음달 누리집(gamification.kr)을 열어 교육 게이미피케이션에 도움될 만한 행사나 교구, 게임 등을 소개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교사와 학부모 대상 연수도 진행한다. 게임리터러시 교육을 통해 학습에 게임을 어떻게 접목할 것인지 등을 배우는 과정이다.
가끔 김 교수에게 게임 아이디어를 들고 찾아와 조언을 구하는 교사들도 있다. 그들은 사비를 들여 투자게임을 직접 만들거나 아예 게임 자체를 만드는 캠프를 진행하고 싶어 했다. 김 교수가 교육 게이미피케이션에 관심 있는 교사에게 늘 하는 말이 있다.
“처음 게임을 돌려보면 학생 반응도 애매하고 생각처럼 안 된다. 그럴 때 상처받아 바로 포기하지 마라. 게임이 잘 안 풀려도 학생에게 물어보면 ‘이상했지만 재밌었다, 열심히 하려고 하는 (교수의) 진정성을 느꼈다’고 한다. 꾸준히 피드백을 받으며 보완해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완성도 높은 게임을 즐기게 될 것이다.”
최화진 <함께하는 교육> 기자
lotus57@hanedu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