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중계초 1학년 1반 학생들이 불암산 더불어숲에서 ‘정글탈출’
“한 명이라도 떨어지면 안 돼! 이번에는 꼭 미션 성공해보자!”
파란 가을 하늘 아래 펼쳐진 초록빛 참나무숲에서 8살 아이들이 협동 게임을 하고 있다. 크기가 점점 작아지는 나무상자 세 개가 놓인 체험장. 9명씩 두 팀을 이룬 아이들은 “두 발이 땅에 닿지 않은 채 최대한 많은 사람이 상자에 올라가면 통과”라는 지도강사의 규칙 설명을 듣고 “다 같이 방법을 찾아보자”며 한데 모였다.
나무상자 크기가 작아질수록 아이들은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한정된 공간에 최대한 많은 친구들이 올라와야 성공하는 ‘대륙 정복’ 협동 게임. 몇 번의 아슬아슬한 시도 끝에 서로 손을 잡고 끌어올려주며 2단계까지 무사통과했다. 지도강사의 우렁찬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더불어숲’에서 힘 모아 ‘정글탈출’
지난 2일 서울시 노원구에 있는 ‘불암산 더불어숲’(이하 더불어숲) 체험 프로그램에는 중계초등학교 1학년1반 학생 18명이 참여했다. 지난 7월1일 개장한 이곳에서 나무 향기를 맡으며 숲 체험을 해볼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학부모들이 직접 예약·신청해 찾은 것이다.
학부모 윤상미씨는 “지역 특성상 초등학생 시절부터 교육열이 뜨거운 편이다. 평소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지친 아이들에게 자연 속에서 뛰노는 시간을 선물하고 싶어 같은 반 부모들의 의견을 모아 신청하게 됐다”고 했다.
나무를 관찰하고 계곡 물소리를 듣는 등 숲 교육 활동을 하고 있다. 숲사랑소년단 제공
더불어숲에서 아이들은 암흑 미로, 모험 시설, 하강 시설 등 세 개 코스를 체험할 수 있다. 공중에 매달린 굵은 밧줄을 이용해 팀 전원이 이동하는 ‘정글 탈출’ 코스에서 아이들은 자못 진지했다. 헬멧을 쓰고 장갑을 낀 뒤 ‘타잔’처럼 매달려 움직이는 것이 익숙하지만은 않은 탓이다.
이 학교 1학년 안지민양은 “처음에는 긴장했다. 하지만 밧줄을 손으로 잡고 이동한 뒤에 그다음 친구들도 잘 도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뿌듯했다”며 “온통 초록빛 숲속에서 친구들과 뛰어놀고 이야기하는 게 너무 재미있다”고 했다.
중계초 아이들은 이날 정글 탈출, 대륙 정복, 암흑 미로 등 숲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가을 햇볕과 상쾌한 공기가 주는 즐거움을 알게 됐다. 이날 참관한 학부모 이대근씨는 “아이들이 다음 코스에 도전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나누는 모습이 기특했다”며 “숲을 배경으로 나무 이름을 묻고 답하는 등 자연스레 부모와 대화도 가능해 아들과 더 가까워진 기분”이라고 했다.
불암산 더불어숲은 개인 및 단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용 문의는 전화(02-2289-6867~8)로 하면 된다.
제10회 숲사랑소년단 전국대회에 참가한 학생들이 자연 속에서 숲해설가의 설명을 듣고 있다. 숲사랑소년단 제공
실내 벗어나 나무 가득한 자연으로
요즘 어린이, 청소년들이 놀 만한 공간으로 ‘키즈 카페’, ‘방 탈출 카페’ 등을 많이 이야기한다. 한데 조금만 살펴보면 이런 실내 시설이 아닌 야외 활동 시설도 다양하다. 특히 숲에서 진행하는 교육·체험 프로그램은 환경의식은 물론 호연지기도 기를 수 있어 학부모와 아이들 반응이 좋다.
‘숲 교육’이란 숲이 품은 다양한 기능을 체험·탐방·학습하는 것을 말한다. 정서적 안정을 비롯해 스트레스 저항력이 높아지고 환경 감수성도 키울 수 있다. 계절 감각을 뚜렷하게 느낄 수 있어 아이들 호기심을 자극하기에도 좋다. ‘무당거미는 왜 거미줄을 삼단으로 칠까?’부터 ‘단풍이 빨간색과 노란색 등으로 다른 이유는 뭘까?’까지 눈에 보이는 자연현상이 그대로 교재가 된다. 유재흥 숲해설가는 “수업시간에 식물을 한 종류로만 똑같이 그리던 아이들도 숲 교육에 참여한 뒤에는 다양한 모습으로 자연을 그려낸다”고 했다. “소나무와 은행나무, 민들레와 강아지풀 등 잎의 생김새와 색깔이 모두 다른 것을 보고 배울 수 있죠. 들꽃과 나무의 이름은 물론 각기 다른 열매를 맺는다는 것도 알게 되고요. 어릴 때부터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모니터 등 평면을 통해 정보를 얻던 아이들이, 숲으로 나와 걷고 뛰고 자연의 냄새를 맡으면서 몸에 있는 감각을 입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숲 리더’ ‘숲 박사’ 되는 프로그램도
체계적인 숲 교육을 통해 적성과 진로를 찾을 수도 있다. 산림청에서 27년째 운영하고 있는 ‘숲사랑소년단’(Green Ranger·이하 소년단)은 현재 전국 초·중·고생 8000여명이 활동하는 숲 교육 단체다.
소년단은 청소년들이 ‘숲 지킴이’로서 소속감과 자부심을 갖고 활동하도록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숲사랑학교, 어울림 숲속캠프 등 체험학습을 비롯해 어린이 숲 리더, 청소년 그린리더십 아카데미를 열고 있다. 함께 숲을 가꾼 뒤 모은 땔감을 홀몸노인과 저소득층에게 전달하는 ‘사랑의 땔감 나누기’ 등 자원봉사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소년단 활동을 해온 경기 용인시 용동중학교 3학년 김성주양은 이 활동을 통해 꿈을 찾았다. 김양은 “숲속에 사는 민물고기와 다양한 나무들이 친구처럼 느껴진다. 유엔 등 국제기구의 환경전문가를 꿈꾸고 있다”고 했다. “숲속에 사는 그라우어 고릴라의 개체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3년 넘게 숲 교육에 참여하면서, 작게는 개천의 송사리부터 넓게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환경보호의 중요성까지 깨닫게 됐고요.”
경기 구리시 인창고등학교 2학년 허소영양도 소년단에서 활동하며 ‘숲 박사’가 됐다. 허양은 “2011년부터 숲 리더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학업 스트레스가 쌓여도 초록빛 나무들을 보면 ‘힐링’이 된다”고 했다. “글로벌 숲 탐방 원정대에 선발돼 대만의 숲 현황도 경험하고 왔어요. 나라는 달라도 나무는 평등하더라고요. 흙과 바람, 물 등 자연의 중요성도 알게 됐고요. 지금은 구리시 환경지킴이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대륙정복' 코스를 체험하고 있다. 김지윤 기자
야외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진행하는 숲 교육은 특히 청소년 시기에 겪는 우울과 불안 증상을 크게 줄여준다. 지역 보건소와 대학병원 등에서 청소년 및 가족 대상으로 연중 숲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이유다.
김봉석 인제대 의대 교수(상계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는 “우울 증상이 있는 청소년들에게 나무가 우거진 숲길을 주기적으로 걷게 했더니 우울 척도가 12.4점에서 8.7점으로, 불안 척도가 14.9점에서 10.8점으로 낮아지는 등 정상 수준으로 돌아왔다”며 “숲 교육·체험 프로그램은 청소년의 우울감과 불안감을 낮춰주고, 긍정적인 자아상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숲 교육을 통해 자연과 사람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태도를 배울 수 있다. 산림청 산림교육치유과 김지현 주무관은 “아이들 여럿이 팀을 이뤄 개울 속 버들치를 직접 관찰하고 나무를 친구 삼아, 하늘을 운동장 삼아 활동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이타적인 모습을 많이 보이죠. 때로는 벌레에 물리거나 큰 바위를 마주하는 험준한 곳을 지나야 하는 일도 있지만, 이를 통해 위험에 대처해 극복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법도 배우게 됩니다.”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