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화 상지대 교수가 2014년 9월17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회의실에서 사학 비리 및 비리 재단에 대한 총력투쟁을 선포한 범교수·교육·시민단체들과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성광 기자
우리나라 중학교의 20.52%, 고등학교의 41.50%, 대학의 79.65%, 전문대학의 94.01%가 사립이다. 적지 않은 사립학교들에서 문제가 잇따르면서 2005년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사학 부패를 감시하고 투명한 학교 운영을 하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2년 뒤 법이 개정되면서 취지를 살리기는커녕 비리를 저지른 사학 재단의 복귀를 돕는 ‘누더기법’이 됐다.
최근 정대화 상지대 교수가 <상지대 민주화 투쟁 40년>이라는 책을 냈다. 그를 비롯한 학교 구성원이 김문기 전 총장을 주축으로 한 재단의 사학 비리와 40년을 싸워온 현장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사립학교 개혁과 비리 추방을 위한 국민운동본부(이하 사학개혁국본) 공동대표이기도 한 정 교수를 지난달 24일 만났다.
사학 비리는 공금횡령이나 뇌물수수 등 회계 부정, 입학, 편입학 부정, 인사나 학사 비리 등 불법·부패 행위를 말한다. 상지대는 김 전 총장과 재단의 온갖 부정행위로 ‘비리 사학의 대명사’가 됐다. 지난달 14일 사학분쟁조정위원회(이하 사분위)는 긴급회의를 열어 임시이사 선임 의결을 했다. 교육부 사립대학제도과에서 이에 대한 자격 여부 등을 심의 중이다.
정 교수가 사학재단 문제에 발을 들인 건 97년 재단 사무국장을 맡으면서부터다. 당시 김 전 총장이 사학 비리 등으로 감옥에 갔다 나온 뒤 학교에 복귀하려고 발버둥치는 걸 지켜봤다. 자신이 속한 상지대에 대한 문제의식은 시간이 지나면서 사학 비리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됐다.
이번에 펴낸 책은 사학 비리를 저지른 재단과 벌인 ‘투쟁기’다. 90년대 이후 상지대 내부에서 민주화 백서를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현안에 쫓기다 보니 못 냈다. 2010년 사분위가 정이사를 선임한 뒤 사태가 오히려 악화됐다. 사학 비리의 주범인 김문기씨가 총장이 되면서 그날 바로 정 교수는 징계 대상이 됐다. 이후 파면된 정 교수는 공백 기간에 <프레시안>에 연재한 내용을 정리해 3년 만에 이 책을 출간했다.
정 교수는 “사학 비리가 되풀이되는 이유는 사학과 정부의 잘못된 관계 설정 때문”이라고 했다. 이승만 정부 시절 토지개혁과 이후 산업화를 진행하면서 숙련 노동자를 키우기 위해 별다른 규제 없이 학교 짓는 것을 무조건 장려했다. 당시 사학을 세운 사람들은 종교나 정치, 재벌, 토호, 언론 등과 한몸이 돼 권력화했다. 교육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학교를 운영하면서 생긴 폐해는 고스란히 학생에게 피해로 돌아갔다.
2004년 활동했던 ‘사립학교법 개정을 위한 국민운동본부’를 계승해 2011년 정식 출범한 사학개혁국본은 사분위 폐지 운동은 물론 각 대학에서 일어나는 사학 비리를 함께 해결하는 활동을 진행 중이다. 정 교수는 “사분위는 애초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기구”라고 잘라 말했다. 사분위는 대법원장 5명, 국회의장 3명, 대통령 3명씩 사분위원을 추천해 구성하고, 위원장은 무조건 대법원장이 추천한다. 이 때문에 교육 분야와 관계가 없고 철학도 없는 인물이 들어가는 경우가 생겼다.
이런 가운데 최근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사학법 개정을 국정과제로 제시했다. 사분위 권한을 축소하고 비리를 저지른 사학 임원진의 복귀를 막는 등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정 교수는 “사분위 권한 축소에 대해서는 일단 찬성한다. 국정기획자문위는 일종의 방향을 제시한 것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은 좀더 두고 봐야 한다”고 했다.
끊이지 않는 사학 비리를 막기 위해 정 교수가 제시한 방법은 당연하면서도 간단했다. “학교를 제대로 운영할 수 있게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하되 비리를 저지르는 순간 제재를 가하는 것”이다. 이미 사학이 너무 많고, 인위적으로 없앨 수도 없다. 그렇다면 지금 상황에서 잘 운영하라고 지원하는 것이 방법이라는 의미다. 그는 “정부 지원을 받지 않고 운영하는 사학은 없다. 잘못을 했을 때 평가에 불이익을 주고 재정 지원을 줄이거나 없애면 된다”고 했다.
정 교수에 따르면, 유럽은 아주 특수한 종교적 목적을 제외하곤 사학이 없다. 사학의 발상지인 미국도 40%가 안 된다. 한국, 일본, 대만 등 아시아권 몇몇 나라에서 미국의 영향을 받아 사학이 발전했다. 현재 대만의 경우 사학 비리를 막기 위해 한번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다시 학교에 못 돌아오게 ‘원 스트라이크 아웃제’를 시행하고 있다.
정 교수는 “우리 사립학교법에는 비리란 단어가 없다. 일반적으로 모든 법 뒤에는 벌칙 조항이 있지만 사립학교법은 학교에서 비리가 터져도 이에 따른 벌칙 조항이 거의 없다. 지금의 사립학교법은 ‘비리재단복귀지원법’”이라고 했다.
며칠 전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100대 국정과제’ 가운데 교육 분야를 살펴보면, 30개 사립대에 국고를 지원하는 등 ‘공영형 사립대’를 2019년부터 단계적으로 키워갈 방침을 밝혔다. 이에 대해 정 교수는 “공영형 사립대는 ‘혁신학교’의 대학판”이라고 말했다. 대학도 혁신학교처럼 학내 구성원들의 수평적 의사결정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공영 사학을 할 경우 교수회나 학칙기구를 만들어 구성원의 발언권 보장을 의무화하면 분위기도 많이 변할 것이다. 또한 교육의 질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적극 돕되, 비리를 저지르면 지원을 끊어야 한다.”
그러면서 그는 공영형 사립대 전환 방법으로 사립학교법에 ‘공영형 사학’이란 조문을 집어넣는 방법, 아예 ‘사립대학법’이나 ‘공영형 사립대학법’을 제정하는 것, 기존의 사립학교법 시행령에 넣는 것 등을 제안했다.
“공영 사학을 지정해 대학 예산의 절반 정도를 정부가 지원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비리가 드러나면 인정을 취소하는 것이다. 재정 지원이 끊기면 낮아졌던 등록금이 다시 오를 텐데 학부모와 학생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사학 비리는 대학뿐 아니라 초중등도 해당한다. 비리 재단 가운데 대학과 초중고를 함께 소유한 곳에서는 규모나 양상이 조금씩 다를 뿐 비슷한 문제가 생긴다. 상지대의 상지학원도 고등학교를 함께 소유하고 있고, 조선대나 동덕여대 등은 유치원, 초중고, 전문대학, 대학까지 가지고 있어 비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드러났다. 특히 고등학교는 40% 이상이 사립이라 문제가 연일 터져왔다. 사학개혁국본은 초중등 문제와 관련해서는 주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을 통해 협의한다. 전교조는 조직 내에 사립위원회를 따로 두고 있다.
대학은 교수나 교직원, 학생 조직이 비교적 탄탄한 반면, 초중고는 학내 조직이 거의 없다. 이렇다 보니 문제가 생겨도 구성원들이 조직적으로 나서기보다 개인이 혼자 싸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초중고 사학 비리가 대부분 내부고발자에 의해 알려지는 이유다. 최근에는 ‘내부고발실천운동’이라는 단체도 나왔다. 이 단체는 비단 교육 분야 사학 비리뿐 아니라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징계성 보복 인사 등 내부고발자 관련 법과 제도를 정비해 내부고발자를 보호하는 운동을 벌일 계획이다.
사학개혁국본은 초중등 사학 비리 문제가 터졌을 때 기자회견을 하거나 토론회, 모임을 통해 대책 등을 함께 찾는다. 초중등 교사는 시간 제약도 많고 내부 활동 동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특정 단체에 소속돼 있지 않아도 사학개혁국본에 연락하면 얼마든지 도움을 줄 수 있다. 혼자 끙끙대지 말고 언제든 문을 두드려 달라. 사학 비리는 혼자 할 수도 없고, 학내 구성원들의 공감을 이뤄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최화진 <함께하는 교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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