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일 오후(현지시각) 독일 베를린의 옛 시청 베어홀에서 쾨르버 재단 초청으로 한반도 평화구축과 남북관계, 통일 등을 주제로 연설하고 있다. 베를린/연합뉴스
권희정(상명대부속여고 교사, 숭실대 철학과 겸임교수)
[한겨레 사설] 문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 남북대화로 결실 맺기를
문재인 대통령이 6일 독일 베를린 쾨르버재단 초청 연설을 통해 새 정부의 한반도 평화 구상을 밝혔다. 문 대통령은 ‘항구적 평화 정착’을 위해 △6·15 공동선언, 10·4 정상선언 이행 △북한 체제 보장하는 비핵화 추구 △남북 평화체제 △한반도 ‘신경제지도’ 본격화 △비정치적 분야 교류협력 확대 등을 5대 정책과제로 내세웠다. 또 북한의 붕괴를 바라지도, 흡수통일을 추진하지도, 인위적 통일을 추구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이른바 ‘대북 4노(No) 원칙’을 재확인하며, 북한 정권을 안심시키려 애썼다.
불과 이틀 전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실험을 했음에도 문 대통령은 “(오히려) 대화의 필요성이 과거 어느 때보다 절실해졌다”고 강조하며 “언제 어디서든 김정은 위원장과 만날 용의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날 문 대통령의 연설은 대북정책에 대한 장기적 목표와 방향성에 주안점을 뒀지만, 아울러 당장 실천할 5대 정책과제도 동시에 제안했다. △10월4일 이산가족 상봉 및 성묘 △북한의 평창겨울올림픽 참가 △군사분계선의 적대행위 중단 △남북대화 재개 △비정치적 교류협력 사업은 정치·군사적 상황과 분리 등이다.
문 대통령은 핵 포기를 거듭 종용하면서도, 북한이 요구한 6·15 공동선언과 10·4 정상선언 이행 의지를 약속했다. 이젠 북한이 화답할 차례다.
이들 제안 가운데 남북관계를 풀어나갈 실마리는 ‘이산가족 상봉’에서 찾을 수 있으리라 본다. 이전에도 이산가족 상봉은 교착상태에 있던 남북관계를 푸는 역할을 한 사례가 많다. 미사일 발사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수위가 높아지고 있지만, 이산가족 상봉은 이와 무관하게 추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오히려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사안이다. 이를 떠나 상봉을 신청한 이산가족의 평균 연령이 81살이다. 가족과 떨어져 60~70년 얼굴 한 번 못 본 이들의 마지막 소원을 풀어줄 수 있는 날이 이제 얼마 안 남았다. 북한도 다른 요구를 더 하기 전에 이산가족 상봉은 정치·군사적 상황과 무관하게 진행하기를 바란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을 이야기하면서 “부산과 목포에서 출발한 열차가 평양과 북경으로, 러시아와 유럽으로 달릴 것”이라고 말했다. 분단 이후 한반도는 대륙에 속해 있으면서도 남북 모두 섬나라가 되었다. 우리의 시야는 그만큼 좁아졌다. 남북의 교류와 소통은 한반도가 대륙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함과 동시에, 남북한뿐 아니라 동북아 평화와 교류, 발전에도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창이 된다. 문 대통령이 내민 손을 북한이 마주 잡고 함께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길 거듭 당부한다.
2000년 3월 김대중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은 3개월 뒤 제1차 남북정상회담으로 이어진 바 있다. 이번 문재인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도 또다른 남북 화해의 장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중앙일보 사설] 뜻깊은 남북 정상회담 제안 … 실현 가능성이 문제다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을 제안했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차 독일을 방문 중인 문 대통령은 6일 베를린의 쾨르버 재단 초청 연설에서 “언제 어디서든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과 만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최근 북한의 도발을 의식해 “여건이 갖춰지고 한반도의 긴장과 대치국면을 전화시킬 계기가 된다면”이라는 전제 조건을 달았지만, 문 대통령이 직접 자신의 육성을 통해 정상회담을 제안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문 대통령은 또 “핵 문제와 평화협정을 포함해 남북한의 모든 관심사를 대화 테이블에 올려놓고 논의하자”며 북핵 해결과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대화 의지를 밝혔다. 이번 제안은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로 한반도 긴장이 최고조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으로 과연 남북관계의 돌파구로 작용할 수 있을지 관심을 모은다.
문 대통령의 발언은 한반도의 운명을 남북이 주도권을 갖고 풀자는 게 핵심이다. 평화체제 달성을 위한 네 가지 제안도 눈에 띈다. 추석 성묘 등 이산가족 상봉,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 7월 27일 휴전협정 64주년에 맞춰 군사분계선에서의 적대행위 중단, 남북 간 대화 재개 등 비교적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문 대통령은 또한 북한 붕괴를 바라지 않고, 흡수통일도 추진하지 않으며, 인위적 통일도 추구하지 않는다는 ‘3대 불가 원칙’도 밝혔다. 이번 제안이 2000년 남북 화해·협력의 기틀을 마련한 김대중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에 비견할 수 있는 ‘신(新) 베를린 선언’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그러나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 문 대통령의 제안이 북한의 호응을 이끌어내 구체적 결실을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김정은 위원장은 “북한에 대한 적대시 정책과 핵 위협이 사라지지 않는 한 협상 테이블에 나가지 않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또 국제적인 대북 압박 분위기 속에 나온 문 대통령의 요구가 한국의 일방적이고도 낭만적인 바람을 담은 게 아니냐며 평가절하될 우려도 있다. 이 제안이 자칫 허공 속 메아리가 될지 모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한편 이에 앞서 열린 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간의 첫 한·중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북한의 미사일 도발을 용납할 수 없으며 북한이 추가 도발을 못하도록 더 강력한 제재와 압박을 가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그러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한반도 배치를 둘러싼 이견을 노정하는 한계를 보였다. 시 주석은 “한국은 중국의 정당한 우려를 중시하고, 중·한 관계 발전을 위해 장애를 제거하라”고 말해 사드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상견례 이상의 큰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다만 예정보다 긴 시간 동안의 허심탄회한 대화, 상호 초청과 양국 동반자 관계의 격상 합의를 통해 이번 한·중 회담은 첫 단추는 무난히 끼웠다고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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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보는 사설] ‘오직 평화’ 남북정상회담 베를린 구상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핵 문제와 평화협정을 포함해 남북한의 모든 관심사를 대화 테이블에 올려놓고 논의하자”며 “오직 평화”라고 강조하였다. 그동안 북한은 미국의 위협 앞에서 자신들은 북핵을 통해 자구 수단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자세로 일관했다. 대화를 하고 싶으면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중단하고 주한미군부터 철수하라는 입장이다. 핵 보유국의 지위를 인정받으면서 동시에 평화협정 체결을 노리는 북한에 대해 남한은 우선 핵부터 폐기해야 경제적 지원과 대화가 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이에 대해 미국의 버락 오바마 정부는 ‘전략적 인내’를 내걸고 북한과 대화하지 않는 노선을 취해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실험을 보고받고 ‘감내할 수 없는 강력한 제재’를 천명했다. 반면 중국의 기본 원칙은 북 핵·미사일 실험 동결과 한·미 연합군사훈련의 중지를 동시에 시행하라는 ‘쌍잠정’(쌍중단)의 입장이다. 신뢰가 깨진 상황에서는 남북한 모두가 만족스럽지 않은 대안들이다. 이 상황에서 문 대통령은 단계적 접근을 제시했다. 한-미 정상회담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북핵 동결은 대화의 입구, 출구는 완전 핵 폐기”라며 대화를 위한 우선적인 과제를 핵 동결에 두었다. 베를린 구상에서 ‘오직 평화’를 강조하기 위해 약속한 것이 바로 ‘북한 체제의 안전을 보장하는 비핵화’이다. 그리고 ‘북한 붕괴를 바라지 않으며, 흡수통일도 추진하지 않으며, 인위적인 통일을 추구하지도 않겠다’고도 하였다. 북한이 두려워하는 지점을 콕 집어 대응한 말이다. 한반도는 세계 4대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고 대화의 직접 파트너는 고립노선을 걷는 북한이다. 한반도의 평화와 운명을 위해 주도권을 갖고 ‘운전석에 앉겠다’는 문 대통령의 의지가 실현되려면 주변국과 북한의 호응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주변국의 지지를 얻어낸 것처럼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의 협력을 반드시 이끌어내길 바란다.
연재사설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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