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지역 와이더블유시에이(YWCA) 회원들이 2016년 11월14일 오후 세계 최대 원전 밀집지대인 울산 울주군 서생면 신암리 고리원전 신고리 핵발전소 5, 6호기 예정 부지 앞에서 ‘신고리 5, 6호기 백지화’를 요구하는 바람개비 행진을 하던 모습. 울산/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김기태 호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한겨레 사설] 신고리 원전 시민배심원단 ‘숙의 민주주의’ 보여주길
정부가 울산 울주군의 신고리 5, 6호기 핵발전소 건설공사를 잠정 중단하도록 했다. 공사를 재개할지 백지화할지는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하고, 일정 규모의 시민배심원단을 선정해 공론조사 방식으로 결정하기로 했다.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갈등 사안을 합리적으로 매듭지을 수 있는 좋은 의사결정 방식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9일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앞으로 더는 원전을 새로 짓지 않고, 기존 원전은 설계수명이 끝나면 가동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탈핵’의 길을 추구하겠다는 뜻이다. 지난해 6월 이미 공사를 시작한 신고리 5, 6호기도 대선 후보 시절엔 건설 중단을 공약했다. 하지만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건설 계속을 요구하는 이해관계자가 적지 않은 만큼 좀 더 신중히 결정하자는 뜻이었다고 본다. 그런데 사업 주체인 한국수력원자력은 공사 속도를 오히려 높였다. ‘매몰비용’을 키워 공사 중단을 어렵게 하자는 계산에서 한 일 같아 씁쓸하다. 결국 정부가 공사를 일시 중단하고 3개월 안에 최종결론을 내기로 했다.
신고리 5, 6호기를 계획대로 지으면, 탈핵을 추진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 핵발전소가 모두 가동을 멈추게 되는 시기가 상당히 늦어진다. 신고리 6호기는 2022년 10월에 준공할 예정이고, 설계수명이 60년이나 된다. 더는 원전을 짓지 않더라도 2082년까지는 우리나라에서 핵발전소가 하나라도 가동되는 셈이다. 탈핵의 방향으로 가는 게 맞는다면, 탈핵 시기도 가능한 한 앞당기는 방안을 모색해야 마땅하다.
정부는 이해관계자나 에너지 분야 관계자가 아닌 사람으로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하고, 불특정 국민 가운데 시민배심원단을 뽑아 의사결정을 맡기겠다고 한다. 원전 정책은 에너지 생산의 경제성뿐 아니라 국가 안보와 국민의 안전, 환경에 미치는 영향 등을 두루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 경제적 이해관계가 얽힌 강력한 소수의 사람들에게 정책이 휘둘리지 않게 해야 한다. 이번 결정 과정에는 이해관계자의 참가를 배제해야 한다. 시민배심원단이 각계의 전문가와 이해 당사자들의 의견을 두루 충분히 듣고 토론하여 결정하면, 국민의 폭넓은 공감 속에 결정이 이행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일을 ‘숙의 민주주의’의 모범 사례로 남겨야 한다.
[중앙일보 사설] 탈원전 대안 찾기에 “저의 의심스럽다”니…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비판 분위기에 대해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28일 ‘저의(底意)가 의심된다’고 응수했다. 신고리 5, 6호기 건설을 석 달간 잠정중단하고 그 존폐를 ‘시민배심원단’에 맡기겠다는 정부 입장에 대한 비판 여론을 겨냥한 것이다. 학계·업계와 현지 주민, 그리고 언론 반응도 대체로 회의적이었다. 그는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들에게 “이 문제(탈원전)에 과도한 불안감을 조성하는 건 오히려 다른 저의를 의심케 한다”고 말했다. 이어 “미리부터 전력이 부족할 것이다, 자꾸 지적하는 건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원을 찾으려는 전 세계적인 노력, 한국 사회의 고뇌를 ‘공론의 장’에 올리지 않으려는 뜻 아니냐”고도 했다. 원전 건설 중단을 앞두고 문 대통령이 깊이 ‘고뇌’했다는 말도 반복했다.
청와대 핵심인사의 이런 속내에 비추어 볼 때 탈원전에 대한 상당수 국민의 비판과 대안 찾기 노력이 이 정권 주요 인사들의 눈엔 ‘적폐 세력의 음모’쯤으로 보이는 듯하다. 해명이라기보다 공세에 가까운 발언을 접하니 탈원전 과속질주에 대한 많은 국민의 스트레스와 ‘고뇌’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원전 건설 중단 조치에 절차적 문제가 많다는 세간의 우려를 당국이 의식하는지도 궁금해진다. ‘중립적’ 시민배심원단이 사회적 합의를 하겠다는 것이 일견 민주적·합리적 절차처럼 보인다. 하지만 숱한 전문가 집단이 참여하고 부지선정, 정부 승인, 원자력안전위원회 심사 등 겹겹의 과정을 거친 대역사를 원전에 대한 ‘공론 조사’ 명목으로 석 달간 중단시키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원전을 밀어준 전 정부가 싫다 해도 정부 정책의 연속성과 무게를 스스로 허문 꼴이다. 일부 학자들은 “정해 놓은 탈원전 루트를 밀어붙이려는 요식행위”라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신고리 5, 6호기 건설 중단으로 인한 매몰비용은 정부 공식 집계에 따르더라도 이미 집행한 1조6000억원 공사비, 보상비용 1조원을 더해 총 2조6000억원에 달한다. 다른 원전의 건설 및 수명연장 중단으로 인해 기술 생태계와 납품 공급망 붕괴가 가속화할 것이 우려된다. 수출 유망업종이자 미래 먹거리로 발돋움하던 원전산업이 타격을 받을 것이다. 원자력·석탄 발전 억제 정책으로 전력요금 부담이 크게 늘어나는 것도 숙제다.
원전 생태계는 한번 무너지면 회복하기 힘든 국가적 자산이다. 탈원전은 5년 단임 정권 아래서 속도전처럼 밀어붙일 게 아니라 시간과 소통이 필요하다. 대선 공약을 하루빨리 이행하겠다는 조급증부터 버려야 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그렇다면 대의제 민주주의의 광장인 국회에서 청문회라도 열어 원전 찬반 진영과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 그래도 안 된다면 국민투표에 부쳐야 한다. 대통령의 고뇌에 찬 결단, 그리고 비전문가 집단인 시민배심원단의 판단에 맡기기엔 ‘에너지 믹스’는 너무도 무거운 국가대사다.
[추천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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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보는 사설] 세계 각국의 원전 정책 세계 각국의 원자력 정책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기점으로 크게 변하고 있다. 사고 이전에는 세계 각국의 원자력에너지를 지구온난화에 대한 대안에너지로서 석유에 비해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에너지원으로 여겼다. 원자력을 이미 이용하고 있던 나라는 원전 확대 정책을, 아직 원자력에너지가 없는 나라는 원전 건설 정책을 추진했다. 그러다가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탈원전 혹은 원전 축소 정책이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특히 강하게 표출됐다. 그러나 사고 후 2~3년이 지나자 원자력에너지에 대한 신뢰가 조금씩 회복되면서 원자력을 다시 추진하려는 국가들과 여전히 탈원전 정책을 주장하는 국가들로 나뉘기 시작했다. 현재 기존 원전 운영국 31개 나라 중 축소 또는 폐지를 기본 원전 정책으로 채택한 국가는 독일, 스위스, 벨기에 등 3곳이고 대만이 보류 그리고 한국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탈원전 정책을 표방하고 있다. 한편, 베네수엘라는 새로 원전 도입을 검토했다가 이를 취소했다. 원자력 정책은 경제적인 효용성과 환경적인 위험성이 서로 극명하게 갈등하면서 공존하는 매우 복잡하고 미묘한 성격의 국가적 과제이다. 따라서 국가마다 신규 도입하는 단계에서부터 유지하는 과정 내내 축소, 폐지, 확대 등 정책적 방향 설정을 놓고 치열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 우리나라도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선거 공약으로 내세우고 이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추가 건설 중인 원전의 한시적 공사 중단을 선언하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에서 찬반 양쪽으로 나뉘어 논란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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