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국민 여론을 무시하고 추진했던 국정 역사교과서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지난 12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정 역사교과서 폐지를 지시한 지 19일 만이다. 하지만 개발 중인 검정 교과서의 적용 시기, 추진 과정에서 쓰인 비용 문제, 역사과 교육과정 개정 여부 등을 두고 앞으로도 논란이 계속될 전망이다. 교육부는 국정과 검정 교과서를 함께 사용하기로 한 중·고교 역사교과서 발행체제를 검정 교과서만 사용하도록 고시(중고교 교과용 도서 국검인정 구분 고시)를 개정해 관보에 게재했다고 31일 밝혔다. 국정교과서 업무를 맡아온 교육부 역사교육정상화추진단도 이날 해체됐다. 교육부가 운영하는 국정교과서 홍보 누리집 ‘올바른 역사교과서’도 잠정 폐쇄됐다.
이로써 국정교과서는 공식적으로 폐지됐지만, 역사과 교육과정과 이에 따른 검정교과서 집필 기준을 다시 만드는 일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검정교과서를 쓸 때 기준이 되는 ‘2015 개정 교육과정’은 1948년 8월15일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아닌 ‘대한민국 수립’으로 기록하고 있다. 1919년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의미를 뺀 표현으로, 뉴라이트 역사학자들이 주장한 것이다. 교육과정을 전면 재검토하지 않으면 그동안 논란이 된 뉴라이트 사관을 곳곳에 담고 있는 교과서가 나올 수밖에 없다는 우려다. 도면회 대전대 교수(역사문화학)는 “박근혜 정부 때 만들어진 2015 개정 교육과정이 워낙 문제의 소지가 많아 교육과정을 제대로 다시 만들려면 2020년으로 늦춰도 시간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현재 5곳의 출판사가 고교 <한국사> 검정교과서를 개발 중인데, 새 검정교과서 적용 시기를 출판사 쪽은 2019년으로 1년만 미루자고 밝히고 있지만 집필자들은 교육과정을 재검토할 시간을 포함해 2020년으로 미루자는 뜻을 내놓고 있다.
국정화 반대 운동 단체들은 국정교과서를 만드는 데 들어간 국민 세금에 대한 추궁도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2015년 10월 국무회의에서 국정교과서 개발을 위한 예비비 44억원을 편성했다. 국회 관계자는 “공식적으로 알려진 예비비 44억 외에도 추가 비용이 더 많이 들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국정화 전반에 들어간 비용에 대해 제대로 밝혀진 것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상권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 위원장은 “국정화 작업 전반은 부정과 불법의 연속이었다. 새 정부가 구성됐으니 즉각 감사원에 박근혜 정부의 국정화 사업 전반에 대한 감사청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역사학계는 장기적으로 역사교육이 정치적으로 독립하기 위해 ‘사회 통합을 위한 역사교육위원회’ 설립을 제안하고 있다. 김태우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은 “교과서 논쟁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계속돼왔다. 2013년 교학사 때부터 오랜 시간 논쟁한 만큼 사회적 기구를 만들어 논의하자”고 말했다.
김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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