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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화나면 욕만 해댔는데 랩 써보니 화 줄던데요”

등록 2017-05-30 08:47수정 2020-02-29 13:23

[함께하는 교육] 예술치유교육 효과

예술치유교육 대가 ‘알바로’ 내한
‘몸의학교’ 소개, 예술 치유 효과 알려

국내서도 음악·무용·미술 ‘치유’ 주목
랩 작사·작곡 통해 마음속 화 풀고
다양한 주제 몸짓으로 표현하며
나와 주변 돌아보는 경험도 해
위기청소년들이 ‘마음톡톡 예술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해 신아름 음악치료사의 수업을 받고 있다.(사진 왼쪽) ’마음톡톡’은 교육부와 이화여대
위기청소년들이 ‘마음톡톡 예술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해 신아름 음악치료사의 수업을 받고 있다.(사진 왼쪽) ’마음톡톡’은 교육부와 이화여대

“영어와 수학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예술교육입니다. 무용 등 신체 움직임과 음악의 선율, 미술작품 보는 안목을 통해 아이들은 치유되고 자신에 대한 존경심을 기를 수 있습니다.”

지난 24일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주관한 ‘세계문화예술교육 주간’ 행사에서 ‘몸의학교’ 설립자 알바로 레스트레포가 한 말이다. 그는 1997년, 고향인 콜롬비아 카르타헤나에 ‘몸의학교’를 세웠다. 30년 넘게 내전에 시달리며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아이들에게 무용을 매개로 예술치유교육을 해보겠다는 결심에서다. 몸의학교에서는 ‘총이 아닌 춤’을 통해 아이들의 상처를 보듬고 자아존중감을 키워준다. 그가 무용을 매개로 예술치유교육을 진행한 지 20년. 지금까지 졸업생 8000여명을 배출했고 그 가운데 전문 안무가, 무용가로 성장한 ‘제자’ 500여명은 전세계에 강의를 다니며 예술치유교육을 전파하고 있다.

예술치유교육은 음악과 무용, 미술 등 예술 매체를 ‘치유의 관점’에서 활용하는 교육을 말한다. 몸을 움직이고 악기를 연주하는 등 비언어적 활동으로 내면의 불안을 건강하게 발산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정현주 이화여대 음악치료학과 교수는 “몸동작과 악기 연주를 통한 예술의 치유적 특성에 주목하는 것이 ‘예술치유교육’”이라며 “‘치료자’의 관점으로 ‘예술치료’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청소년기 특성상 ‘치료’라는 단어가 가진 낙인에 거부감을 가진 경우가 많아 ‘예술치유교육’으로 통칭한다”고 설명했다. “아동·청소년들이 학교와 가정 안팎에서 마주하는 스트레스를 건강하게 풀어내도록 돕는 게 교육 목표입니다. 예술을 활용한 치료적 개입이지만 ‘치유’에 방점을 찍고 진행하면 예술치유교육의 효과는 더욱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처벌’ 아닌 ‘치유’로 감정 들여다보게 해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예술치유교육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학교와 가정에서 환영받지 못해 방황하던 위기청소년들이 예술치유교육을 통해 성장하는 사례도 속속 나온다. 오토바이를 훔쳐 무면허 운전을 하는 등의 이유로 기소유예·보호관찰 처분을 받은 청소년들의 마음을 열기 위한 ‘마음톡톡 음악치유 프로그램’(이하 마음톡톡)도 그 가운데 하나다.

마음톡톡은 교육부와 지에스(GS)칼텍스, 이화여자대학교가 손잡고 5년째 진행 중이다. 국내 유일의 ‘관-산-학 예술치유교육 협력모델’로 지금까지 1만명이 넘는 청소년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했던 마음속 말들을 노래로 표현할 수 있게 됐어요. 집과 학교에서는 매번 ‘공부도 못하는 애’, ‘넌 나쁜 애’라며 혼나기만 했거든요. 지금은 물건 훔쳤던 제 모습을 정말 반성해요.” 마음톡톡에 참여했던 김아무개(16)군의 이야기다.

지난해 3월 광주지검 순천지청은 김군을 비롯해 옷을 훔친 박아무개(17)군에게 ‘처벌’ 대신 ‘음악 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을 조건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재범률이 높은 소년범죄 특성상 무조건 ‘법대로’ 하는 것보다는 예술치유교육을 통해 아이들의 억눌린 감정을 건강하게 발산할 수 있도록 도와주자는 취지였다. 전남 동부권에서는 음악 치유 프로그램을 도입하기 전인 2013년 25.2%였던 청소년 재범률이 2015년 21.9%로 떨어지는 등 예술치유 프로그램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철없던 일탈 행동…“성찰하게 됐어요”

‘내가 어떻게 드럼을 쳐요?’, ‘기타는 손가락이 아파서 하기 싫어요’라며 심드렁했던 아이들도 주 1회, 3시간에 가까운 음악 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서서히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전남 여수 지에스칼텍스 공연시설인 ‘예울마루’에서 매주 화요일에 마음톡톡을 지도하는 신아름 음악치료사는 “실패와 배제의 경험만 있던 아이들이, 함께 악기를 배우고 합주해보면서 ‘나도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자아상을 조금씩 만들어나간다”고 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3월부터 시작한 마음톡톡에는 현재 위기청소년 30명이 6개조를 이뤄 드럼과 기타 연주, 작사·작곡을 한다. 이아무개(16)군은 요즘 유행하는 ‘랩’ 가사를 직접 적어보며 자작곡 만들기에 열중하는 중이다. 중고용품을 사고파는 온라인 누리집에서 돈을 받고 물건을 건네지 않아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이군은 “‘왜 그렇게 철이 없었을까’라며 혼자 후회를 많이 했다. 내 행동이 누군가의 마음을 아프게 할 거라는 생각을 그때는 못했다”고 했다. “화가 나면 욕을 참 많이 했는데 가사를 만들고 쓰면서 그 화가 많이 줄었어요. 속상하셨을 엄마에 대한 미안함이 생겼고 반성을 많이 했습니다.”

신 음악치료사는 “아이들을 만나면 처음에는 한마디도 하지 않다가 ‘너는 어떤 노래를 주로 듣니?’, ‘그 노래를 들으면 어떤 기분이 드니?’, ‘가사로 마음을 표현해볼 수 있겠니?’ 등을 물으면 흥미를 갖기 시작한다”고 했다.

“음악이 치유의 도구가 되는 거죠. 자작곡 등 결과물을 만들어 연말에 공연을 합니다. 기타 연주 코드를 직접 선택하고 드럼 리듬을 함께 느끼면서 서로 발맞춰 나가는 경험을 해보는 거예요. 노래 만들 때 각자 그 리듬을 선택한 이유를 묻고 들으면서 스스로 성찰하는 힘을 길러주는 것입니다.”

전 학년 ‘건강하게 관계 맺는 법’ 배우기도

예술치유교육을 통해 교실 전체가 사회성을 기르고 건강하게 관계 맺는 법을 배우는 경우도 있다. 서울 삼정중학교는 2015년부터 ‘교실힐링’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처음에는 학교부적응 학생 등 위기청소년 대상으로만 진행하다가 미술·연극치유 프로그램 등이 학교 문화에 좋은 영향을 끼치고 아이들 관계 맺기에도 큰 역할을 하자 지난해부터 전 학년 대상으로 확대해 실시하고 있다. 프로그램은 학교 차원에서의 지원 및 타교과 교사들의 협조 속에 안착하고 있다.

가장 반응이 좋은 활동은 ‘종이 피규어 활용 연극’. 2학년 임소민양은 “친구와 사이가 서먹해졌을 때 쉽게 말을 건네기가 참 어려운데, 미술·연극 치유 프로그램을 통해 ‘친구에게 다가가는 법’, ‘건강하게 화해하는 법’ 등을 배울 수 있었다”고 했다.

“각자 피규어를 선택해 내 기분을 나타내는 색깔을 칠하는 거예요. 같은 반 친구들과 함께 ‘우리가 싸웠을 때 내 기분은 우울했어’, ‘같이 이야기 못해서 답답했어’ 같은 말을 피규어를 통해 나누며 ‘다시 관계 맺는 법’을 배운 거 같아요.”

유근영 삼정중 전문상담교사는 “게임, 연예인 이야기만 하던 아이들에게 ‘일상 대화 하는 법’을 자연스레 알려주는 것”이라며 “‘색칠하는 피규어’라는 미술·연극적 요소를 내세워 감정을 표현하게 한다”고 했다.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이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원합니다. 같은 빨간색을 봐도 ‘덥다’고 느끼는 학생들이 있는 반면 ‘무섭다’고 말하는 학생도 있어요. 각자의 다른 생각을 함께 나누면서 ‘공감각’을 키울 수 있는 게 예술치유교육인 거죠.”

“몸의 움직임을 통해 상처 극복해요”

몸을 움직여 감정을 표현하는 무용도 효과가 크다. ‘두뇌활동’만 익숙한 학생들에게 실제 ‘자기 몸’을 움직여 표현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식이다. 조아영 대한무용동작심리치료학회 부회장은 “책상 앞에만 앉아 교과서 읽던 아이들에게 ‘몸’에 집중하는 시간을 마련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조 부회장은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 ‘내가 가족을 생각했을 때 떠오르는 몸짓’, ‘우리 아빠는 집에서 어떤 모습을 하고 있나요?’ 등 다양한 주제를 몸으로 표현하게 한다”며 “머릿속에 어렴풋이 갖던 나와 주변에 대한 이미지를 ‘가시화’하는 것”이라고 했다.

“무용 치유 프로그램에서 아이들에게 ‘버스를 만들어보자’고 제안했어요. 그때 학교폭력 피해 학생이 용기를 내 선두에 섰죠. ‘나는 지금 내 친구들의 안전한 귀가를 돕는 스쿨버스 운전기사입니다!’라고 말하며, 너른 강당을 도로 삼아 책임감 있는 모습으로 ‘운전’하더군요. 자신의 상처를 극복하고 몸을 통해 ‘친구들에게 도움을 주는 나’라는 이미지를 얻고, 그 표현 방법을 익히게 된 겁니다.”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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