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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학생이 공간 디자이너로 변신…엄숙했던 학교에 재미가

등록 2017-05-30 08:33수정 2017-05-30 08:38

[함께하는 교육] ‘배움의 공간’ 프로젝트

교육혁신 활동 투자하는 ‘씨프로그램’
아이들 스스로 공간 인식하고
직접 디자인해보는 프로젝트 진행

계단형 쉼터·접이식 책상 달린 벤치 등
공간 분석해 생활 속 불편함 개선하며
자기주도로 문제점 찾고 해결책 마련

구미 봉곡초 '배움의 공간' 프로젝트 공사 후의 복도 통로 모습. 우주 공간을 형상화할 수 있게 색색의 창이 채광효과를 통해 바닥에 행성처럼 보이도록 했다. 구미 봉곡초 제공
구미 봉곡초 '배움의 공간' 프로젝트 공사 후의 복도 통로 모습. 우주 공간을 형상화할 수 있게 색색의 창이 채광효과를 통해 바닥에 행성처럼 보이도록 했다. 구미 봉곡초 제공
4층 계단을 오르자 교실로 가는 통로 한편에 계단 형태의 휴식 공간이 나타났다. 삼삼오오 모인 여학생들이 평화롭게 눕거나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 뒤 파란 벽면 가득 그려진 별자리와 태양계 행성은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마음껏 꿈을 펼치라는 듯 보였다. 옥상정원과 맞닿은 복도에는 벌집 모양 틀이 있고 그 안에 책상과 의자가 있었다. 아이들은 그곳에서 보드게임을 하거나 책을 읽었다.

지난 18일 찾았던 경북 구미 봉곡초 점심시간 이곳저곳의 풍경이다. 이 학교는 지난해 11월부터 벤처기부펀드 ‘씨프로그램’(C Program)과 함께 ‘배움의 공간’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 프로젝트는 학생들이 공간에 대한 인식을 갖고 학교 공간을 스스로 디자인해보자는 취지로 시작했다. 지금까지 초등학교 두곳, 고교 한곳에서 진행했고, 고교 한곳은 진행 중이다.

사용자 관찰하고 영감 얻으러 서울 방문도

학생들은 ‘공간 관찰’부터 시작했다. 학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학생들이 공간을 어떻게 이용하는지 살펴본 것. “쉬는 시간이나 방과 후에 편히 쉴 공간이 부족하다”, “비밀 이야기를 할 곳이 없어 화장실에서 한다”는 것을 파악하고 이를 디자인에 반영하기로 했다.

이후 서울로 1박2일 ‘인사이트 투어’를 떠났다. 다양한 공간을 관찰하며 영감을 얻고 학교 공간에 적용하고 싶은 부분을 정리하는 활동이었다. 씨프로그램과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한 디자인 컨설팅회사 디아이디어그룹은 사전에 아이들이 가볼 만한 장소 목록을 만들었다. 아이들은 그 가운데 직접 가보고 싶은 곳을 골랐다. 일본 생활용품 쇼핑몰 디앤디파트먼트, 서교예술실험센터, 디아이디어그룹 사무실, 이케아 매장 등 디자인과 인테리어가 독특한 건물을 방문했다.

학교를 좀 더 재밌게 바꾸고 싶어 프로젝트에 참여한 6학년 송유나양은 “커피숍 건물을 가봤는데 지하 공간을 활용해 박물관처럼 오래된 물건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내부 인테리어도 특이했다. 우리가 모였던 사무실에는 계단이 있었는데 이걸 보고 교내에 계단 형식으로 쉼터를 만들어 휴식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면 좋겠다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이주호군은 “학교 벽은 다 하얀색이라 재미없고 지루한 느낌이었다. 파란색으로 칠하고 우주 공간처럼 꾸미는 등 우리들의 아이디어가 들어간 공간이 만들어지니까 신기하고 재밌었다”고 했다. 아이들은 “벽에 실내암벽등반 체험 공간을 설치하자”, “복도에 (인사이트 투어 때 본 만화카페처럼) 2층 침대 형태로 쉴 공간을 만들자”는 의견도 냈는데, 예산 부족과 공간 특성상 설치가 어렵다는 이유로 무산돼 아쉬워했다.

김인철 교사는 “3, 4층에 빈 공간이 있는데 어둡고 칙칙해 애들이 서성이기만 했다. 책상이나 의자라도 몇 개 마련해 모일 장소를 만들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씨프로그램을 만나 가능하게 됐다”고 했다.

씨프로그램의 엄윤미 대표는 “교육혁신 프로젝트에 투자를 하면서 학교 방문할 일이 많다. 텔레비전도 생기고 예전보다 좋아진 면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우리 학교 다닐 때랑 크게 다를 바 없었다”고 말했다. “요즘 사무 공간을 보면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구조거나, 코워킹 스페이스처럼 창의적으로 일할 수 있는 공간으로 진화하는데 학교만 여전히 그대로라고 생각했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전문가 집단도 이런 취지에 공감했다. 사전답사를 통해 학교라는 공간을 이해하고, 교사와 아이들이 일정 기간 학교를 관찰하고 쓴 ‘관찰노트’도 꼼꼼히 살펴봤다. 단순히 기술적으로 되는지 안 되는지만 따지지도 않았다. 아이들을 직접 만나 아이디어를 듣고 바로 일러스트나 디자인 작업을 통해 시각적으로 구현해주거나 함께 모형을 만들기도 했다. ‘황당한 아이디어’라고 무시하기보다 조금 변형을 하더라도 아이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기 위한 작업이었다.

완공 한달여가 된 지금. 아이들은 쉬는 시간마다 교실 밖으로 뛰쳐나와서 새로운 공간을 들여다보고 신기해한다. 친구들과 ‘만남의 장소’로 이용하는 학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교실 분위기·학생자치문화, 활기 더해져

강원도 평창 진부고도 이 프로젝트에 참여해 한 학년 교실과 복도를 변신시켰다. 권보미양(3학년)은 교내 공간과 구성원들을 관찰한 결과, 고등학생이라 늘 휴식과 잠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다. 권양 역시 의자를 여러 개 붙이거나 책상에 엎드려 쪽잠을 청했다. 사물함 위나 오래돼 방치해놓은 교탁에서 자는 학생도 있었다.

권양은 “이런 점을 고려해 교실 뒤편에 휴게 공간을 만들어 학생들이 편히 쉬도록 했다. 애초 그 자리에 있었던 사물함은 책상 옆에 따로 붙였다. 교실 뒤편 남은 공간에는 두꺼운 겨울 외투를 걸 수 있는 행거도 만들었다”고 했다.

“야, 이면지 가져와.” 쉬는 시간에 모르는 수학 문제를 서로 가르쳐줄 때 학생들이 하는 첫마디다. 이런 상황을 자주 겪었던 홍성민군(3학년)은 교실 뒤편과 칠판 옆에 화이트보드와 칠판페인트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실제 설치한 뒤 문제풀이도 자유롭게 하고 낙서하며 수다도 떨다 보니 교실 분위기가 더 활기차졌다.

홍군은 “이과반이라 남학생들이 많은데 평소 의견을 물어도 ‘좋다’, ‘싫다’ 의사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고 물건도 함부로 사용하는 면이 있었다. 지금은 새로 바뀐 공간이나 물품을 소중히 다루고 ‘이 부분은 위험한 거 같다’, ‘이건 편하다’ 등 적극적으로 얘기한다”고 했다.

복도 공간 아이디어도 실생활에서 직접 겪은 불편함에서 나왔다. 평소 학생들은 교무실이나 복도에서 교사에게 모르는 문제를 물어보거나 자기소개서 첨삭을 받았다. 교무실은 너무 트여 있어서 집중이 안됐다. 복도에서는 잠을 쫓을 때 서서 공부하는 키다리책상을 교실에서 가져와 써서 정작 필요한 친구들이 사용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학생들은 인사이트 투어 때 방문한 커피숍에서 벽면을 활용해 붙박이 의자를 설치한 것에 착안해 복도 벽에 벤치를 설치하고 등받이는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책상으로 만들었다.

공간이 바뀌자 단순히 생활이 편리해진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달라진 환경에 맞게 학생들의 인식과 행동에도 변화가 생겼다. 홍군은 “이전에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애들과 소통이 안되는 걸 느꼈다. 소통할 장소가 부족하고 공감대 형성이 안됐기 때문”이라며 “적극적으로 의견을 조율해 최종 결과를 만들어내는 게 쉽지 않았지만 실제로 공간이 바뀌고, 우리가 변화를 위한 시도를 하면 선생님들도 우리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이전까지 학생들은 어떤 문제가 생기면 무조건 해결책부터 찾았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처음 5~7주 동안 또래 학생들을 관찰하며 자료 조사도 하고 그 문제가 ‘왜 문제가 되는지’ 근거를 찾았다. 홍군은 “좀 더 여유를 가지고 문제점을 인식하고 토론이나 조사 등을 통해 차근차근 해결하는 데 익숙해졌다. 지금껏 우물 안 개구리로 과소평가했던 내 자신도 주도적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씨프로그램은 앞으로 1년 동안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학교를 관찰할 생각이다. 공간을 만들어주고 끝나는 게 아니라 학생들이 달라진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그들에게 일어난 변화가 무엇인지 지켜보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최화진 <함께하는 교육> 기자 lotus57@hanedui.com

18일 구미 봉곡초 점심시간에 학생들이 새롭게 만든 공간에서 쉬고 있다. 최화진 기자
18일 구미 봉곡초 점심시간에 학생들이 새롭게 만든 공간에서 쉬고 있다. 최화진 기자

18일 구미 봉곡초 점심시간에 학생들이 새롭게 만든 공간에서 쉬고 있다. 최화진 기자
18일 구미 봉곡초 점심시간에 학생들이 새롭게 만든 공간에서 쉬고 있다. 최화진 기자

18일 구미 봉곡초 점심시간에 학생들이 새롭게 만든 공간에서 쉬고 있다. 최화진 기자
18일 구미 봉곡초 점심시간에 학생들이 새롭게 만든 공간에서 쉬고 있다. 최화진 기자

평창 진부고는 책상과 복도 공간을 바꿨다. 책상 옆에는 개인 사물함, 빈 벽면에 페인트칠판을 각각 설치하고, 복도에는 접이식 책상이 달린 벤치를 만들었다. 씨프로그램 제공
평창 진부고는 책상과 복도 공간을 바꿨다. 책상 옆에는 개인 사물함, 빈 벽면에 페인트칠판을 각각 설치하고, 복도에는 접이식 책상이 달린 벤치를 만들었다. 씨프로그램 제공

평창 진부고는 책상과 복도 공간을 바꿨다. 책상 옆에는 개인 사물함, 빈 벽면에 페인트칠판을 각각 설치하고, 복도에는 접이식 책상이 달린 벤치를 만들었다. 씨프로그램 제공
평창 진부고는 책상과 복도 공간을 바꿨다. 책상 옆에는 개인 사물함, 빈 벽면에 페인트칠판을 각각 설치하고, 복도에는 접이식 책상이 달린 벤치를 만들었다. 씨프로그램 제공

씨프로그램은?

씨프로그램은 ‘사회에 의미 있게 기여한다’는 뜻으로 교육 혁신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벤처기부펀드다. 이재웅(다음)·이해진(네이버)·김범수(카카오)·김정주(넥슨)·김택진(엔씨소프트) 창업자가 개인적으로 출원해 2014년 설립했다. 활동 방식은 벤처 캐피털과 유사하지만 투자 수익을 요구하지 않으며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변화를 창출하는 게 목적이다.

‘배움의 공간’ 프로젝트는 씨프로그램이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로 지난해 8월 배움의 공간에 대해 고민하는 교육과 공간 분야 각각 전문가들을 모아 ‘공간공감포럼’을 네 차례 열었다. 이후 ‘새로운 배움을 담아내는 공간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라는 주제에 관심 있는 교사를 선정해 프로젝트를 했다. 경북 구미 봉곡초, 강원도 평창 진부고도 이 프로젝트에 선정돼 학교 공간을 바꾸는 활동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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