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방송(KBS)에서 열린 두번째 대선 티브이 토론에 앞서 정의당 심상정(왼쪽부터), 자유한국당 홍준표, 바른정당 유승민,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포즈를 잡고 있다. 이번 대선 토론은 사상 첫 스탠딩 토론으로 진행됐다. 국회사진기자단
김보일 배문고 국어교사
[한겨레 사설] 퇴행적 ‘주적 논란’에 빛바랜 TV토론
‘사상 검증’을 방불케 한 19일 밤 두번째 대통령후보 텔레비전 토론은 내용이나 형식에서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홍준표, 유승민 후보는 대북송금 문제를 물고 늘어지거나 ‘주적 논란’을 제기하며 철 지난 색깔 공세를 폈다. 이 와중에 한반도를 둘러싼 엄중한 안보·외교 현안은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 경제·사회 분야 토론도 핵심과 본질에 다가서지 못한 채 피상적 말싸움을 하다 말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유승민 후보가 앞장서 제기한 ‘주적 논란’은 사실관계부터 다르다. 유 후보는 문재인 후보에게 “북한이 우리 주적이냐”고 물으며 “국방백서에 주적 개념이 들어 있다”고 했다. 2016년 국방백서엔 ‘북한 정권과 북한 군은 우리의 적’이라고만 표현돼 있다. 북한 주민과 군·정권을 분리해 규정한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조차 대외적으로 ‘주적’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북한과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지만, 평화와 통일을 위해 대화하고 접촉해야 할 대상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색깔론이 아니라 본질론”이라며 호도하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야 그렇다 치자. ‘새로운 보수’를 주창하는 유승민 후보가 사실과 다른 주장을 펴며 시대착오적인 ‘주적 논란’을 불러일으킨 건 유감스럽기 짝이 없다.
여기에 국민의당까지 가세한 건 이해하기 어렵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20일 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서 “지금은 남북대치 국면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주적”이라고 말했다. 보수 표를 의식해서, ‘주적이 누구인지 밝히라’고 몰아붙이는 보수 정당 후보들에 가세한 것으로 보인다. 안 후보가 “북한은 주적이면서 동시에 평화통일을 이루기 위한 대화 상대라는 점에 우리 모두의 고민이 있다”고 덧붙이긴 했다. 하지만 유력 후보의 발언으로선 신중하지 못했다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토론은 형식에서도 문제가 많았다. 5명의 후보가 주어진 9분 안에 질문과 답변을 모두 소화하는 ‘시간 총량제’는 박진감을 높였지만 질문을 많이 받는 후보일수록 자기발언 기회를 봉쇄당하는 문제점을 노출했다. ‘스탠딩 토론’이라지만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없어서 앉아서 하는 방식과 다를 게 없었다. 사회자 개입을 최소화해 논점이 흐려지거나 균형이 무너지는 일도 잦았다. 유권자에게 실질적 선택의 기회를 제공하려면, 지지율 높은 유력 후보들을 심도 있게 검증할 수 있도록 토론 방식의 변화를 모색해볼 필요가 있다.
[중앙일보 사설] 북한군과 북한 정권은 우리의 적(敵)이다
그제 저녁 대선후보 대상 KBS TV토론에서 주적(主敵)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북한은 주적이냐”는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의 질문에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그렇게 규정하는 것은 대통령이 할 일은 아니다”며 즉답을 피했다. 이날 문 후보의 명확하지 않은 답변에 후폭풍이 거세다. “문 후보의 안보관이 불안하다” “지도자로 자격이 없다”는 등 논란까지 일고 있다. 주적이란 우리를 위협하는 주된 적을 뜻한다.
문 후보의 말대로 국방백서에 ‘주적’이라는 용어가 없는 것은 사실이다. 주적은 참여정부 시절인 2004년 국방백서에서 삭제된 뒤 사용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국방백서는 2010년부터 “북한은 대량살상무기 개발과 증강, 천안함 공격, 연평도 포격과 같은 지속적인 무력 도발 등을 통해 우리 안보에 심각한 위협을 가하고 있다”며 “이러한 위협이 지속되는 한 그 수행 주체인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방백서는 동시에 “현존하는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우선적으로 대비한다”고 적고 있다. 따라서 이 두 가지 문장을 합쳐 보면 북한 주민은 통일 후에 함께 살아야 할 대상이지만 북한군과 정권은 우리의 주적이라는 얘기다.
더구나 북한 김정은 정권의 광적인 핵 개발과 미사일 발사는 이제 한반도를 넘어 국제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 북한은 머지않아 핵미사일로 무장하고 한국과 일본은 물론, 미국까지 위협할 태세다. 한반도가 한국전쟁 이후 가장 위험한 상태라는 말도 나온다. 한성렬 북한 외무성 부상은 지난 18일 평양에서 한 외신 인터뷰에서 “핵 선제공격” “전면전” “더 많은 미사일 시험” 등 위협적인 언사를 서슴지 않았다.
그런데도 문 후보가 주적 개념에 모호한 답변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이날 토론에서 “필요할 때 (남북) 정상회담도 필요할 것”이라는 말이 뒷받침한다. 북한 정권이 우리의 직접적인 위협이지만 협상 대상이기도 하다는 의미다. 북한은 우리의 적대 세력이기도 하지만 대화의 대상이기도 한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정부 부처 가운데 국방부는 당연히 북한군의 도발에 대해 대비하고 맞서 싸워야 한다. 그러나 통일부가 북한을 주적으로 삼고 대응하는 것은 맞지 않다.
따라서 대선후보들은 이런 북한의 양면성을 국민에게 설득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이 되려는 후보가 이런 문제에 말을 안 하겠다는 것은 문제다. 아예 입을 닫으려는 태도는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에 당선된 뒤 군의 대비 태세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하지만 다른 후보들이 정치 장사를 위해 무리하게 윽박지르는 것도 문제다. 그런 색깔론은 우리 사회를 분열과 갈등으로 몰아갈 수 있다. 이제 대선 기간이 2주 남짓 남았고 네 차례 TV토론을 앞두고 있다. 대선후보들은 감상적인 대북협상론이나 정치적인 색깔론보다는 북한의 본질을 직시하고 핵 문제를 해결할 정책 대안을 내놔야 한다.
[추천 도서]
[키워드로 보는 사설] 색깔론 노동자들의 권익을 중시하는 생각이 좌파 사상인 것은 맞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권익을 중시하고 자본가의 이익 추구 제한을 주장한다고 해서 공산주의자, 이른바 ‘빨갱이’는 아니다. 더구나 사상의 자유는 엄연히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권이다. 그러나 우리의 역사적 경험에서 볼 때, 근대화 과정에서 노동자의 권익 향상을 위한 움직임을 북한, 곧 적을 이롭게 하는 이적(利敵) 행위로 규정하여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한 사례가 있다. 제도의 비민주성을 개혁하라는 시민들의 요구 역시 같은 취급을 받기도 했다. 이렇게 정당한 정치적 행위나 시민적 요구를 북한이나 사회주의적 사상에 연관 짓는 태도를 색깔론이라 한다. 색깔론은 좌우의 이념 대결에 따른 분단과 전쟁이 남긴 역사적 트라우마라고도 할 수 있다.
연재사설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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