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난 4월11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으러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권희정(상명대부속여고 교사, 숭실대 철학과 겸임교수)
[한겨레 사설] ‘우병우 단죄’ 의지 없는 검찰, 개혁과 수사 대상일 뿐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구속영장이 법원에 의해 또 기각됐다. 서울중앙지법 권순호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12일 “범죄 성립을 다툴 여지가 있고, 증거인멸 및 도망의 염려가 있음이 충분히 소명되지 않”았다고 밝힌 기각 이유는 지난 2월 첫 기각 때와 비슷하다. 보완된 게 별로 없다는 뜻이니 검찰이 그동안 뭘 수사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검찰과 특별검사팀을 거치며 대통령과 삼성그룹 오너까지 구속했지만, 국정 농단을 방조·은폐하는 과정에서 검찰을 수족처럼 부린 ‘검찰 농단’의 주역은 제대로 단죄하지 못하게 된 셈이다. 검찰 수뇌부에 우 전 수석이 꽂은 ‘우병우 라인’이 여전히 건재한 상황에서 검찰 농단을 제대로 파헤칠 수 있겠느냐는 우려는 불행하게도 그대로 적중했다.
수사 초기부터 윤갑근 특별수사팀이 압수수색조차 않는 등 노골적인 소극 수사로 일관하더니 결국 이런 결과를 낳았다. 정윤회 문건 사건 등 청와대의 ‘검찰 농단’에 대해선 아예 손도 대지 않았으니, 대놓고 국민을 우롱한 꼴이다. 이젠 우 전 수석의 불구속 기소를 검토한다는데, 무죄를 받도록 방치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에게 적용한 혐의는 사실 ‘검찰 농단’의 빙산의 일각이다.
스스로 썩은 살을 도려낼 의지가 없는 검찰에 더 기대를 하는 것은 의미없는 일이다. 검찰과 업무상 이해관계로 엮이지 않은 법조인을 특별검사(특검)로 지명해 수사하게 해야 한다. 그래서 현직 검찰총장 등 수뇌부를 포함해 성역을 두지 말고 파헤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청와대 압수수색도 당연히 다시 해야 한다. 형사소송법에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치는 경우가 아니면 거부할 수 없다고 돼 있으니, 저지하면 공무집행 방해로 처벌해야 함은 물론이다.
‘검찰 농단’ 수사 없이는 검찰 개혁도 추진 동력을 잃을 수 있다. 각 당 대통령후보들은 이번 기회에 특별검사와 검찰 개혁 입법을 동시에 추진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기 바란다. 검찰의 치부만 피해 간 수사로 ‘검찰 개혁’ 여론이 높아지고 있으니, 지금이 호기다. 지금 못하면 대선 뒤에는 더 어렵다. 검찰이 대대적인 사정작업에 들어가면 ‘정권의 칼’을 자임하는 검찰의 유혹 속에 다시 개혁의 골든타임을 놓칠 가능성이 크다. 검찰 출신 의원들의 조직적 저항도 걸림돌이 될 것이다. 검찰 개혁 의지와 진정성을 갖춘 후보라면 당장 특검과 검찰 개혁 입법 추진을 선언해야 한다.
[중앙일보 사설] 우병우 영장 또 기각 … 검찰이 자초한 수사 실패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해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청구한 구속영장이 어제 또다시 기각된 책임은 전적으로 검찰에 있다. ‘법리 다툼의 여지가 있고 도주 우려에 대한 소명 부족’이라는 영장 기각 사유에서 보듯 법원조차 수사 미진을 확인한 꼴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국정 농단 사건으로 최순실이 구속되고 박근혜 대통령까지 파면·구속된 마당에 이런 참사를 막았어야 할 핵심 책임자가 거리를 활보하게 된 건 상식에 맞지 않는다. 더욱이 우 전 수석은 역대 민정수석 중 가장 강력한 권력을 휘두르며 검찰 수사에 외압을 행사하고 검찰 인사를 농단했다는 의혹을 받아 오지 않았는가. 국민의 인식과 법적 현실 간에 이렇게 간극이 큰 수사 결과를 누가 납득할지 의문이다.
이번 영장 기각은 검찰과 특검의 수사 행태나 궤적, 의지를 되짚어보면 충분히 예견됐던 일이라는 데 심각성이 있다. 지난해 8월 윤갑근 특별수사팀이 주도한 검찰의 초기 수사는 우병우에 의한, 우병우를 위한 수사였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지난해 7~10월 법무부 검찰국장은 거의 매일, 검찰총장과 서울중앙지검장은 중요한 국면마다 우 전 수석과 통화한 사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가족회사 ‘정강’ 등의 비리 의혹을 파헤쳤지만 수사 결과 발표도 생략한 채 흐지부지 끝냈다.
박영수 특검도 마찬가지였다. 어찌 보면 김기춘 전 비서실장보다 우 전 수석의 혐의가 더 중한데도 별도 수사팀을 꾸리지 않았다. 우 전 수석은 ‘정윤회 문건’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 감찰 방해’ ‘최경환 부정 청탁’ 등의 사건에 개입한 의혹을 받았다. 하지만 특검이 직권남용 등 11가지 혐의로 청구한 영장은 결국 기각됐다. 박 특검과 우 전 수석 간 친분 관계가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증폭됐다. 박 특검이 “구속영장을 재청구하면 100% 발부될 것”이라고 호언했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이번 특수본은 대한체육회 감찰 지시 및 국회 청문회 때 위증 혐의를 새로 찾아냈다고 했으나 사안이 경미했다. 이처럼 우 전 수석에 대한 수사는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 의혹을 벗어나지 못했다.
우리는 우 전 수석을 반드시 구속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그의 검찰 사건 농단, 검찰에 현존하는 이른바 ‘우병우 사단’의 실체에 대한 진상 규명 없이 수사를 끝내서는 안 된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을 이달 17일 이전에 기소하면서 우 전 수석을 불구속 기소하는 방안과 보강 수사를 거쳐 영장을 재청구하는 방안을 놓고 검토 중이라고 한다. 현 상황에서 우 전 수석을 불구속 기소하는 건 면죄부를 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서둘러 마무리지을 이유도 없다. 검찰 수뇌부는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에서 블랙리스트, 이대 입시 비리 등은 모두 공범이 있는데 왜 우 전 수석의 범죄만 공범이 없을까? 그건 바로 공범이 ‘검찰’이기 때문”이라는 비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어느 조직이든 스스로 결단하지 못하면 결국 시대에 떠밀려 혁신 대상으로 전락하고 만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특임검사를 임명해 전면 재수사하는 방안을 포함해 특단의 조치를 강구해야 할 때다.
[추천 도서]
[추천 도서]
[키워드로 보는 사설] 정치검찰과 검찰개혁 한국의 검찰은 수사권, 기소권, 형집행권을 독점하는 ‘무소불위의 비대한 권력과 재량권’을 가진 조직이다. 이 힘을 정의롭게 사용하면 사회를 바로 세우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경우 122명의 인원이 70일간의 수사로도 큰 성과를 보여주었다. 2천여 명의 대한민국 검사 인원을 고려해 볼 때 검찰권이 제대로 행사된다면 부패와 불법이 상당 부분 근절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대다수의 검사들은 성실하게 임무를 다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검찰이 법보다는 정치 및 권력과 가까워질 수 있는 제도적 문제도 있다. 검찰의 구조가 승진을 빌미로 하여 권력 추구 의지를 부추길 수 있다는 점, 상명하복 체제에서는 정치적 압력이 줄을 따라 내려온다는 점, 의식 수준에서는 여전히 힘을 발휘하는 ‘검사동일체’의 원칙과 형사재판에서 보장된 우월적 지위 등은 권력욕을 자극하기가 쉽다. 부패한 정치검찰은 권력의 입맛에 맞게 형사사법권을 휘두르는 한편 정치적 반대파에게는 여론 호도용 기소를 남용하기도 한다. 정권에는 아부를, 시민에게는 재갈을 물리는 검찰이 정치검찰이다. 권한은 매우 강력한데 감시와 견제에서 자유로울 때 검찰은 권력형 부패의 당사자가 되어 자기 사건을 스스로 처리하기 어려워진다. 검찰 개혁이 사회 현안으로 떠오를 때마다 검찰 인사제도 개혁이나 (상설)특별검사 제도,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도입 등이 논의되어 왔다. 그동안 수차례 국회에서 추진되다가 폐기되어온 검찰 개혁 입법이 추진된다면 바로 지금이 적기일 것이다.
연재사설 속으로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