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25일 열린 ‘대학입학보장제’ 설계 연속 토론회에서 김성수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 정책위원이 발언하고 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제공
2017학년도 대학 입시가 마무리됐다. 올해도 ‘깜깜이 입시’, ‘로또 입시’ 등으로 불리며 일부에서는 공정성 논란이 일었다. 사교육 도움이나 출신 고등학교 스펙과 상관없이 대다수 학생이 수긍하면서 대학에 입학할 수는 없을까.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하 사교육걱정)은 그동안 학생부종합전형(이하 학종) 분석, 대학입학전형 실태조사 등 대입제도에 꾸준히 관심을 보여왔다. 지난해 말부터는 ‘대학입학보장제’ 관련 토론회를 열어 입시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구체적인 대안 만드는 작업을 했다. 2월27일 사교육걱정 사무실에서 이 토론회에 참여한 정책대안연구소 김성수 정책위원을 만났다.
대학입학보장제란, 학생들이 어느 정도의 성적 자격 기준을 갖춘 뒤에는 추가 부담 없이 대학에 입학할 수 있게 보장해주자는 것이다. 입시 경쟁을 완화해 대학서열화를 없애는 동시에 대학교육의 질을 높이고 고등교육을 확대하는 것이 목적이다.
김 위원은 “수능 점수 몇 점 차이로 상위권 대학에 가는 것은 능력의 차이가 아니라 측정 오차다. 지금은 비슷한 실력임에도 운이 좋으면 원하는 대학에 가고, 그렇지 않으면 못 가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수능에 내신, 논술과 학종을 위한 비교과 스펙까지 준비해야 하는 학생 입장에서는 사교육 부담도 문제다.
2016년 스위스 경영대학원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와 개발도상국 61곳의 대학교육 경쟁력을 분석한 결과, 한국은 꼴찌에서 일곱째인 55위를 차지했다. 이는 입학 성적이 좋은 학생을 뽑기만 하면 ‘좋은 대학’으로 인정받는 현실도 한몫했다. 항간에서는 요즘 대학은 “영재를 뽑아서 둔재로 가르치는 곳”이라고도 한다. 그만큼 대학이 성적 높은 학생을 데려오려는 선발 과정에만 치우쳐 정작 교육 자체에는 신경을 덜 쓴다는 것이다.
대학이 우수한 학생을 뽑으려는 것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지만 대학입시 경쟁이 과도해진 것은 문제다. 김 위원은 “학생들의 선택이 일부 명문대로만 쏠리면서 어느 순간 학교가 학생을 선택하게 됐다. 학교는 욕먹지 않기 위해 1, 2점 가지고 변별력을 둔다. 이보다는 학생들의 선택을 늘리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사교육걱정이 내놓은 대학입학보장제는 학생이 자신에게 맞는 전공과 선호도를 따져 대학을 폭넓게 선택하도록 대학을 세계적 수준의 학문경쟁력을 갖는 ‘연구중심대학’과 작지만 특색 있는 학과를 중점에 둔 ‘강소 교육혁신대학’으로 나눠 운영할 계획이다. 수능을 9등급 절대평가 체제로 바꾸고 일정 등급 이상을 받은 학생이 이들 대학에 지원할 경우 배정하는 식이다. 이를 위해 입학관리센터를 만들어 학생들이 두 개의 전공을 정해 전공 하나당 6개 대학을 선택하게 한다는 안도 내놨다. 학부제 형태로 운영하되 대학 이름이 아닌 전공을 먼저 선택하면, 일부 대학으로 쏠리는 것을 완화할 수 있다는 것. 학군과 지역 두 개를 나눠 지원하는 경기도 평준화 지역 고교 배정 방식에서 착안한 것이다.
실제 대학입학보장제가 성공한 외국 사례가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고등학교 학생들이 일정 이상 성적을 갖추면 주립대를 골라서 입학할 수 있다. 가령, 유시버클리대처럼 연구중심대학인 유시(UC) 계열 대학은 적격성 지표에 따라 내신과 에스에이티(SAT) 성적이 상위 12.5%, 실무중심대학인 시에스유(CSU) 계열 대학은 상위 33%면 입학 가능하다. 공립 커뮤니티 칼리지는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으며 다른 종류 대학 간 편입도 가능하다.
미국의 모든 대학이 대학입학보장제를 실시하진 않는다. 보통 주립대와 사립대로 나뉘어 경쟁체제 형태로 운영된다. 주립대는 주로 고등교육 확대를, 하버드대 같은 사립대는 수월성 교육을 목표로 한다. 이처럼 대학의 문턱을 낮춘 것은 모든 이들이 교육을 좀 더 쉽게 받을 수 있게 하자는 ‘어퍼머티브 액션’(미국의 소수자 보호정책)의 일환이기도 하다. 김 위원은 “유시버클리의 경우 대학의 국제경쟁력에서 하버드대보다 높다. 어느 정도 학력을 갖춘 아이들이 양질의 교육을 통해 더 나은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했다.
프랑스도 논술형 대입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를 통과하면 어느 지역, 어느 대학에나 지원할 수 있다.(전문지식을 가르치는 특수대학인 그랑제콜은 제외) 바칼로레아는 인문, 사회, 자연과학을 세분해 8개 분야로 나뉘며 공통과목인 프랑스어, 역사와 지리, 수학, 철학, 외국어 외 해당 전공 분야에 따라 추가 과목을 선택해 치르면 된다. 만약 특정 대학에 지원자가 몰리면 무작위 추첨을 한다. 우리도 입학 정원보다 지원자가 더 많으면 추첨을 할 수밖에 없다.
김 위원은 “대학입학보장제도를 자격고사화하려면 초기에는 현재 방식대로 절대평가와 상대평가를 병행하되, 고교 서열화 체제가 개선되고 참여 대학이 늘어나면 고교 내신도 9등급 또는 5등급 절대평가로 전환해야 한다”고 했다. 개정된 2015교육과정에서 요구하는 사고력과 분석력을 끌어내는 협력형 프로젝트 수업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평가 방식도 절대평가로 바꾸고 과정 중심의 평가를 하는 게 맞다는 설명이다.
일부에서는 “수도권 상위권 대학들이 참여하겠냐, 학생들한테 메리트가 없어서 결국 하향평준화될 것”이라는 반론도 나온다. 이 제도의 취지가 대학서열화를 없애는 것인데 그렇다면 결국 수도권 상위권 대학의 참여가 관건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신청하는 대학에 한해 선발하는 방식을 내세운 현재로선 이들 대학을 강제로 참여시킬 방법은 없다.
이 때문에 사교육걱정은 참여 대학에 대한 적극적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대학입학보장제 참여 대학 학생에게는 ‘반값 등록금’ 실현을, 교수는 1인당 학생 수를 현재 평균 27명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 기준인 15명으로 줄이도록 인건비를 지원하겠다는 안을 내놓았다. 교수 1인당 연구 프로젝트 진행 비용 2000만원 지원도 포함하고 있다.
김 위원은 “10만명 기준으로 이렇게 지원할 경우 총합 2조원 정도의 금액이 필요하다. 현재 대학역량강화사업 예산이 1조9000억인데 이 비용으로 충당할 수 있는 규모다. 대학의 자발적인 참여가 중요한 만큼 적극적인 지원을 통해 국립대는 물론 사립대도 참여 유도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국립대 정원은 6만8000명이다. 사교육걱정은 대학입학보장제 초기에 국립거점대학 7만명, 사립대 3만명을 선발해 운영 가능하다는 계획안을 발표했다. 그들은 “2018학년도에 이 내용을 확정하면 대학입시 3년 예고제에 따라 2021학년도에 적용할 수 있다. 그해는 학령기 인구가 줄어 대학 입학 인원이 약 33만명이 되는 때다. 전체 3분의 1인 10만명 정도를 대학입학보장제로 선발하고, 질 높은 교육으로 성과를 보이면 3, 4년 이후에는 참여 대학이 늘 것”이라고 예측했다.
김 위원은 “시험 방식만 바꾸고 대학입시를 그대로 두면 학종과 똑같이 된다. 사교육 유발과 공정성 시비는 여전할 것”이라며 “경쟁 선발이 아닌 자격고사화로 대학입시 체제 자체를 변화시키고 대학 교육의 질도 함께 끌어올리면, 나중에 기업 채용 과정에서 학력을 우선시하는 선발 기준도 자연스레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결국, 대학입학보장제 안착은 대학의 자발적 참여와 학생들의 인식 변화, 정부의 지원이라는 ‘삼박자’가 맞아야 가능해 보인다. 최화진 <함께하는 교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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