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된 뒤 세번째로 지난 22일 오후 서울 대치동 박영수 특별검사팀 사무실에 소환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권희정(상명대부속여고 교사, 숭실대 철학과 겸임교수)
[한겨레 사설] ‘사상 첫 총수 구속’ 삼성이 직시해야 할 것들
이건희 회장이 2014년 5월 뇌출혈로 쓰러진 뒤 삼성을 사실상 이끌어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7일 뇌물 제공 등 혐의로 구속됐다. 삼성상회 창업으로 시작된 삼성의 79년 역사에서 총수가 구속된 건 처음이다. 삼성은 2015년 59개 계열사 매출액이 271조9천억원에 이르는 국내 최대의 대기업집단이다. 그러나 그림자 또한 매우 짙다. 성장의 밑바탕엔 권력과 깊은 유착이 있었고, 막강한 경제력은 다시 권력을 움직이는 힘이 되었다. 그동안 그에 얽힌 비리가 드러난 게 한두번이 아니지만 ‘재계 순위 1위 삼성’의 총수들만은 구속을 면해왔다. 그런 점에서 이번 이 부회장 구속은 시대의 획을 긋는 사건이라 할 만하다. 그런 비리를 더는 국민이 용납하지 않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삼성은 정경 유착에서도 재계의 리더였다. 1961년 군사쿠데타 세력이 곧바로 ‘부정축재 기업인’들을 구속했을 때, ‘부정축재자 1호’로 지목된 이병철 삼성 창업주는 일본 도쿄에 있었다. 그는 40일 만에 입국해 한국경제인협회 창립을 이끌었다. 그렇게 정경 유착의 고리를 만들어 처벌을 면했다. 그 단체가 얼마 전까지 삼성이 가장 많은 회비를 내서 지탱해온 전국경제인연합회다. 1966년 ‘사카린 밀수 사건’에서도 그는 무사했다.
뒤를 이은 이건희 회장은 전두환·노태우 비자금 제공 사건에서 불구속 재판을 받고 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2007년 말 불거진 ‘삼성 비자금 사건’의 결말도 똑같았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범죄 혐의가 명백한데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요구 촛불시위 현장에 크게 울려 퍼진 “재벌도 공범이다”란 분노의 목소리를 특검과 법원이 외면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 부회장에게 적용된 혐의는 뇌물 공여와 횡령, 재산 국외도피, 국회 청문회 위증 등 5가지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이 부회장이 삼성 경영권 승계에 도움을 받기 위해, 승마 선수 육성을 명분으로 내세워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를 지원한 것에 뇌물죄를 적용했다. 보강수사를 거쳐 특검이 두 번째 영장을 청구하자 법원도 구속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했다.
사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성사시키기 위해 청와대가 국민연금을 무리하게 동원하고, 삼성이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에게 몰래 거액을 지원한 사실이 드러났을 때, 사건의 핵심은 이미 다 밝혀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도 삼성은 ‘권력의 강요에 따른 피해자일 뿐’이라고 강변해왔다. 삼성 쪽은 여전히 “재판에서 진실이 밝혀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한다. 인간의 정리로야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아직 사태를 직시하지 못한 듯하여 안타깝다. 흘러간 옛노래를 부르듯 ‘총수 구속에 따른 경제 악영향’을 설파하다가 마지막엔 또 ‘국가 경제에 기여한 공로’를 들먹이며 선처를 호소할 텐가.
삼성뿐 아니라, 다른 재벌들도 시대의 대전환을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특검이 아직 수사를 못 했을 뿐 롯데, 에스케이 등의 행태도 삼성과 비슷한 범죄 혐의가 짙다. 이제라도 권력과 재벌 간 결탁으로 점철된 낡은 시대의 문을 닫고, 새 시대를 열어야 한다. 정경 유착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전경련을 해체하고, 강요에 밀려서가 아니라 스스로 지배구조를 선진화하고, 부패 고리를 끊기 위한 강력한 내부 통제 장치를 만들기 바란다.
[중앙일보 사설] ‘영장기각=무죄’ 아니듯 ‘구속=유죄’ 아니다
어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이 던지는 의미와 파장은 크다. 삼성은 이병철 창업주, 이건희 회장, 이 부회장으로 이어지는 3대 79년 역사에서 처음 총수 구속 사태를 맞았다. 우리는 그동안 불구속 수사와 유죄가 확정될 때까지 무죄추정의 원칙을 강조해 왔다. 따라서 도주나 증거인멸 가능성이 없는 글로벌 기업 총수를 굳이 구속시킨 것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반면 특검 입장에선 ‘뇌물죄 프레임’에 대해 임시나마 법원의 인가를 받은 셈이 됐다. 최순실과 공모해 삼성에서 433억원을 받은 박근혜 대통령을 뇌물 혐의로 사법처리하기 위한 돌파구도 마련했다.
영장전담 판사가 밝힌 영장 발부 사유는 크게 두 가지다. ‘새롭게 구성된 범죄 혐의가 있고 추가로 수집된 증거 자료가 있다’는 것이었다. 특검은 1차 구속영장 청구 때는 2015년 7월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 청와대가 개입한 사실을 입증하는 데만 주력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경영권 승계작업의 범위를 삼성SDI의 순환출자 고리 해소와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 등 합병 이후까지로 확장했다. 뇌물죄 적용의 틀을 넓힌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특검이 안종범 전 수석의 수첩 39권 등을 추가로 제시하자 법원이 그 증거 가치를 인정해 영장 발부 쪽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지난번 1차 영장 기각이 무죄라는 의미가 아닌 것처럼 이번 구속영장 발부가 곧 유죄인 것도 아니다. 구속영장은 범죄사실에 대한 소명이 있으면 발부된다. 그러나 형사재판에서는 증거법칙에 따라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의 엄격한 증명이 있어야만 유죄 판결이 내려진다. 시시비비는 법원의 정식 재판에서 가려질 수밖에 없다.
이 부회장 구속은 특검이 지난 16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요청한 수사기간 연장의 결정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특검은 연장 사유로 박 대통령 대면조사 필요성과 우병우 전 민정수석 의혹 등 남은 과제들이 적지 않다는 점을 들었다. 박 대통령은 지금 당장 아무런 조건 없이 대면조사에 임하는 게 옳다. 차일피일 미루는 건 국민 기만이요 약속 파기에 다름 아니다. 대통령 대면조사 없이는 국정농단 사건에 마침표를 찍기 어려운 구도다.
야당이 특검수사 기간을 50일 연장하는 내용의 특검법 개정안 상정을 추진 중이지만 여당의 반대로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 장단점이 상존하는 이 문제는 황 권한대행이 법과 논리에 따라 신중하게 결정하는 게 바람직하다.
삼성그룹은 비상이 걸렸다. 그룹 컨트롤타워인 총수가 없으면 추진하기 어려운 일이 많아서다. 지난해 갤럭시 노트7 배터리 발화 사건 당시 삼성전자가 손실을 감수하고 전량 회수와 단종을 결정했던 것도 그룹 총수의 결단이 있어 가능했던 일이라고 한다. 급변하는 경영환경에 대응해 80억 달러(9조2000억원)를 주고 미국 전장업체 하만 인수를 결정한 것도 마찬가지다. 삼성 제품의 대외 이미지와 신뢰도 하락도 문제다. 경영진의 부정한 행위가 입증되면 각종 국제 입찰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한국 경제에도 큰 부담이 된다. 삼성은 이런 충격이 확산되지 않도록 빈틈없는 비상경영체제를 가동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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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보는 사설] 정경유착과 뇌물죄 이재용 삼성 부회장이 받고 있는 핵심 혐의는 뇌물죄이다. 향후 법정에서 다투게 될 중요 쟁점은 대가성 여부이다. 특검은 안종범 전 수석의 수첩에 기록된 자료를 근거로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독대를 갖고 승마 선수 지원과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건을 ‘거래’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삼성 측은 권력의 압력에 눌려 어쩔 수 없이 돈을 낸 것이고 독대 시기보다 나중이기 때문에 통상적인 뇌물과는 다르다는 입장이다. 3번이나 독대를 한 삼성 입장에서는 시급히 진행시키라는 강요로 느꼈을 수 있기에 ‘피해자’의 입장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비판하는 입장에서는 합병 건 성사, 합병 이후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 등 지속적 혜택이 있음을 들어 수혜자라고 강조한다. 또한 인과관계에서도 돈을 먼저 주어야만 뇌물죄가 되는 것이 아니라 지원 계획이나 약속도 포함된다고 주장한다. 일종의 후불제 뇌물, 또는 외상 뇌물인 셈이다. 박 대통령은 삼성뿐 아니라 국내 대기업들과도 연쇄 독대를 하고 최순실 관련 재단에 지원해줄 것을 강조하였다. 롯데, 에스케이, 씨제이 등도 유사한 과정을 거쳐 자금을 내고 면세점 특혜, 경영승계 특혜 등의 이익을 받은 정황이 있다. 전경련은 미르와 케이스포츠 재단에 회원사의 돈을 모금하여 건네기도 했다. 정경유착은 뇌물공여와 불법특혜로 쌓아 올린 집이다. 따라서 주는 쪽과 받는 쪽 모두 처벌받는다. 향후 대가를 증명할 명확한 증거가 제시된다면 정재계 권력에 대한 비판과 개혁 요구가 거세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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