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서울 서초구에 있는 토즈 스터디센터의 셀프티칭룸에서 학생들이 문제를 서로 알려주며 공부하고 있다.
“볼링 게임 좀 설명해주세요.”
“네, ‘엑스박스 360’은 몸동작을 인식해 즐기는 게임이에요. 화면이 켜지면 양손을 들어 센서를 확인하고 볼링 종목을 선택한 뒤 화면의 손바닥 표시 부분을 터치해요. 화면에 공이 보이면 잡고 각도에 맞춰 손을 최대한 뒤쪽으로 당겼다가 앞으로 밀듯이 놓아주세요.”
지난달 31일 서울 합정역 근처에 있는 ‘모두다’ 보드게임 카페(이하 모두다)를 찾았다. 게임을 추천하고 규칙을 알려주는 게임 마스터인 ‘게임 대장’ 조준희(32)씨가 약간은 어눌한 말투로 침착하게 시범을 보이며 게임에 대해 설명했다. “보드게임 쪽은 다른 직원에 비해 꽝인 편입니다. 그래서 저는 주로 플레이스테이션과 엑스박스 가이드를 맡고 있어요.”
청소년들은 시간이 나도 딱히 갈 만한 공간이 없다. 게임방이나 코인노래방, 멀티방 정도다. 수행평가를 위한 팀프로젝트나 친구들과 스터디 모임을 하려 해도 마땅한 공간을 찾기 어렵다. 커피숍은 비싸고 신나게 수다 떨기엔 눈치가 보인다.
지난달 31일 서울 마포구 합정역 근처의 ’모두다’ 보드게임 카페에서 손님들이 게임을 즐기고 있다.
보드게임방은 청소년들이 비교적 편하게 자주 찾는 곳 가운데 하나다. 뇌를 좋게 한다는 두뇌게임 ‘시냅스 챌린지’나 현직 교사들이 개발에 참여한 ‘타임라인 한국사’ 등 다양한 게임이 있고 간단한 음료와 먹을거리를 팔기 때문이다. 다른 공간에 비해 비용도 상대적으로 덜 든다.
모두다도 200여개의 보드게임과 플레이스테이션이나 ‘위’ 같은 콘솔게임, 가상현실(VR)을 이용한 게임 등을 갖추고 있다. 이곳이 일반 보드게임 카페와 달리 ‘조금 특별한 점’이 있다면 게임 대장이 발달장애인이라는 점.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는 지적장애 3급 조씨는 모두다의 정규직 직원이다.
청소년 특화 공부·여가 공간 부족
발달장애인 게임마스터 설명 들으며
보드게임 즐길 수 있는 ‘모두다’부터
방탈출·만화카페 등 놀이공간 등장
모임공간 ‘토즈’가 꾸린 이색 독서실은
학습성향 따라 오픈형·독방형 추천해줘
모두다는 놀이 공간을 제공하는 곳으로 발달장애인들이 직원으로 있는 사회적 기업이다. 청소년들이 자주 이용하는데 지난해에는 학교밖 청소년과 특별한 프로그램도 운영했다. 청소년과 장애 직원들이 ‘버디’(게임 친구)를 맺어 서로 게임을 알려주고 즐기는 내용이었다.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한 학생은 “버디가 나보다 게임을 더 잘 이해하는 부분이 있었다. 장애는 하나의 특성일 뿐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했다. 게임을 즐기면서 장애이해교육이 저절로 이뤄진 셈이다. 이들 가운데 2명은 보드게임 지도사 자격을 위한 교육을 수료했다. 따로 자원봉사하러 온 친구도 있었다.
모두다 박비 대표는 “장애인들이 처음부터 잘한 건 아니다. 반복해서 알려주고 기다려주면 게임 마스터는 물론 직접 카드뉴스를 만들어 페이스북에 홍보하는 일까지 척척 해낸다. 고객들도 직원이 장애가 있는지 거의 인지하지 못할 정도”라고 했다.
조씨도 “이전에 교육기업 사내도서관에서 사서 보조로 일했다. 간단한 안내와 책 정리만 했는데 지금은 사람들과 좀 더 마주칠 수 있어서 사교성도 늘고 게임을 직접 하니까 재미도 있다”고 했다. 서울 성동구 서울숲 부근 문화공간인 ‘언더스탠드애비뉴’에도 모두다 카페가 있다.
요즘 학생들 사이에서는 ‘방탈출 카페’도 인기다. 방에 갇힌 뒤 추리를 통해 탈출하는 일종의 놀이 공간이다. 비디오게임 장르 중 탈출 게임을 현실로 재현한 것으로, 이야기 진행에 맞춰 단서를 찾아 탈출해야 한다. 원래 미국이나 유럽 등지에서 이벤트 형식으로 하던 것을 카페 형태로 만들었다. 비용은 1인당 2만원 안팎이며, 일부 카페는 중·고등학생한테는 상시 할인해준다.
만화를 좋아하는 학생이라면 머리를 식히고 싶을 때 만화카페에 가보자. 퀴퀴하고 숨 막히는 만화방은 옛말이다. 요즘에는 실내화를 신고 들어가서 좌식 형태의 마루에 앉거나 다락방처럼 꾸민 공간에 누워 편히 만화를 볼 수 있는 만화카페가 늘고 있다. 이용료도 시간당 대략 2000원에서 종일권 1만5000원까지 큰 부담이 없다.
지난달 31일 서울 서초구에 있는 토즈 스터디센터 소셜스페이스에서 학생들이 컴퓨터로 인강을 듣고 있다.
나만의 맞춤형 공간에서 집중해 공부할 수 있게 만든 곳도 있다. 모임 전문공간 서비스 그룹인 토즈는 ‘프리미엄 독서실’을 표방한 스터디센터를 전국 200곳 이상 운영 중이다. 어른들은 한곳에 진득하게 앉아 공부하라고 하지만 청소년들은 날씨나 학습 내용, 기분 등에 따라 장소를 바꿔 공부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곳의 장점은 자신의 성향이나 그날 컨디션에 따라 장소를 달리해 공부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가령, 독서실 고정석처럼 정해진 좌석에서 공부하다 답답하면 ‘오픈스터디룸’이나 ‘소셜스터디룸’으로 옮길 수 있다. 이정은 매니저는 “오픈스터디룸은 대학교 도서관처럼 칸막이가 낮아서 옆 사람에게 자극을 받으며 공부할 수 있다. 소셜스터디룸은 인강을 듣거나 컴퓨터로 자기소개서 등을 쓸 때 이용하는 공간”이라며 “비교적 자유로운 공간이라 친구와 모르는 문제를 서로 알려주거나 가벼운 간식거리를 먹으며 팀 프로젝트 모임도 할 수 있다”고 했다. 통로에는 졸릴 때 서서 공부할 수 있는 스탠딩석도 있다.
친누나 소개로 이곳에 온 예비고1 안정규군은 “그전에 독서실을 안 다녔는데 고교 올라가니까 공부를 좀 더 해야겠다고 생각해 겨울방학부터 왔다”며 “집은 너무 편해서 늘어지는데 이곳은 조용해서 집중이 잘된다. 시설이 다양하고 좋은 점도 마음에 든다. 그날그날 미리 계획을 세운 뒤 여기서는 주로 문제집을 푼다”고 했다.
특히 이곳은 다중지능이론에 기반한 학습유형 테스트를 해서 5가지 맞춤형 학습 공간을 알려준다. 가령, 테스트에서 ‘언어학습’이나 ‘사회학습’ 성향이 높게 나온 학생한테는 ‘소셜스페이스’와 ‘셀프티칭룸’을 추천한다. 각각 “열린 공간에서 암기가 안 되는 내용을 중얼거리며 외워보라”, “스터디룸에서 칠판에 적어가며 친구에게 설명하거나 혼자 공부한 내용을 말로 해보고 그걸 녹음한 뒤 반복해 들으며 복습하라” 등 공간 활용법도 설명해준다. 이용료는 지역마다 다른데 한 달 20만원 전후. 장기간 등록하면 10~20% 할인한다.
이밖에 일부 지역 청소년 휴카페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서울 중랑구 청소년 휴카페인 ‘1318 상상발전소’ 김구연 매니저는 “청소년 휴카페는 대부분 지자체나 민간단체에서 운영하는데 이에 따라 운영 방식이나 내용은 조금씩 차이가 있다. 대부분 직접 동아리를 꾸려 활동하거나 카페에서 진행하는 직업체험을 할 수 있고, 모임 공간도 제공한다”고 했다. 간단한 간식거리를 마련해놓거나 책이나 보드게임 등을 즐길 수 있는 곳도 있다. 단, 카페에 따라 한정된 게임을 즐기거나 먹거리 이용 때 소액을 받기도 한다.
글·사진 최화진 <함께하는 교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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