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승호 교장이 마포구내 중학생들과 게임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아현산업정보학교 제공
방승호 아현산업정보학교 교장은 게임에 빠져 학교생활을 소홀히 하는 학생들을 보고 교내에 게임방을 만들었다. 사양 높은 컴퓨터를 들여와 게임방처럼 마주 보게 배치했다. 벽에는 큰 화면을 설치해 게임 중계방송처럼 진행 상황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게 했다. 아이들이 게임에 왜 빠지는지, 잘못된 방법으로 게임을 하지 않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 전에 아이들이 어떻게 게임을 하는지, 그들을 이해하고 친해지는 게 우선이었다.
초기에는 교내 학생들만 대상으로 하다 지난해 관내 중학교에 공문을 보내 게임 과몰입 상태 학생들을 모집했다. 처음 3회차 수업까지는 주로 게임만 진행했다. 게임해설가와 프로게이머 지도를 받아 진행했다. 토요일 오전임에도 지각한 녀석이 없었다. 아이들의 호기심과 수업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본격 수업을 했다.
방 교장과 수업 커리큘럼을 만들고 함께 진행한 게임해설가이자 이(e)스포츠 관련 프로그램 업체 윤덕진 제이엘팩토리 대표,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수업을 재현해봤다.
1교시-게임, 알고 건전하게 즐기면 재미 두 배!
게임수업 시작. 본격적인 롤(‘리그 오브 레전드’의 약자로 미국에서 개발한 온라인 대전게임. 10명이 5명씩 팀을 이루어 상대 팀과 겨루는 방식)을 하기 전, 게임에 나오는 중학교 수준의 영어 단어 10개를 골라 읽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처음에는 ‘또 영어공부냐?’며 외면하던 아이들도 ‘nickname’(닉네임), ‘damage’(대미지), ‘defense’(디펜스), ‘strike’(스트라이크), ‘revival’(리바이벌) 등 익숙한 단어가 나오자 집중하며 단어를 따라 읽기 시작했다.
이후 해설가와 프로게이머가 아이들 수준을 따져 팀을 나눠 게임을 시작했다. 십분 뒤. 게임에 집중하느라 교실은 적막이 흘렀다. 간혹 함성만 들렸다. 단순히 시간을 때우려 게임을 했던 아이들이 프로게이머의 설명을 듣고 스스로 전략을 세워 게임에 임하자 더욱 진지해졌다.
게임 전 게임 예절도 알려줬다. 상대 팀이나 자기 팀원에게 욕하지 않기, 매너를 지켜 게임하기 등이었다. 이전까지 아이들은 “게임을 하면서 욕과 패드립(‘패륜’과 ‘애드리브’를 합친 신조어로, 자신의 부모나 조상을 비하하는 패륜적 언어 행태. 주로 게임 사이트나 인터넷 게시판에서 사용함)을 배웠다”고 했다.
실제 게임에서 지면 잘 못한 팀원에게 ‘롤충’(게임 ‘롤’과 ‘벌레’를 뜻하는 충을 합친 말로 롤 게임에 심하게 빠진 이들을 뜻하는 말)이라는 비하 발언과 욕설을 한다. 일부 학생은 “‘(롤은) 멘탈을 부숴버리는 게임’이라며, 잘 못하면 정신 건강에 좋지 않다”, “지면 내가 팀에 피해를 준 거 같아 시무룩하고 짜증이 난다. 키보드를 던지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고 말했다.
2교시-배경 접하고 전략 세워 집중해보기
게임이 끝난 뒤 인문학을 접목한 이야기 수업을 병행했다. 방 교장과 윤 대표가 석달 동안 연구해 만든 커리큘럼이었다. 아이들이 게임 자체를 못 하게 막는 건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자신이 하는 게임의 배경이나 캐릭터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알고, 게임에 대한 인식 등을 갖게 하는 게 필요했다.
가령, 게임에 나온 캐릭터 스킬은 ‘하이푼’, ‘사이클론’, ‘허리케인’ 등 태풍 이름이었다. 이를 보고 태풍 위치에 따라 이름이 달라진다는 차이를 알려줬다. ‘노틸러스’라는 캐릭터는 프랑스 작가 쥘 베른이 쓴 <해저 2만리>의 주인공 이름이라는 것과 그 내용, ‘2만리’가 실제 어느 정도의 거리인지도 설명했다. 아이들은 “오오~”라는 감탄사를 내뱉으며 흥미롭게 이야기를 들었다.
현직 프로게이머와 이야기하는 시간도 가졌다. 윤 대표는 “게임에 빠진 아이들 가운데 게이머를 꿈꾸는 이들이 많지만 실력을 보면 턱도 없다. 3기까지 참여한 아이들 20명 중 한명 정도 가능성이 있을까 말까 한다”고 했다. 아이들은 “하루에 14시간 정도 연습한다”, “몸도 상하고 프로게이머로 성공하는 건 어려운 일”이라는 프로게이머의 이야기를 듣고 놀라워했다. 실제 게이머와 함께 전략을 세우고 시간을 정해 게임을 한 뒤 “집중하면서 게임을 하는 게 너무 힘들다”고 말하기도 했다. 제대로, 건전하게 게임을 즐기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3교시-글로 후기 남기고 몸으로 뛰놀기
마지막은 글쓰기 시간이었다. ‘오늘 플레이 한 캐릭터에 대해 느낀 점’, ‘오늘 세운 전략이 어땠는지, 아쉬웠던 점을 표현하라’ 등이 주제였다. 긴 글쓰기를 힘들어하던 아이들이 게임과 관련한 주제를 던져주자 한 페이지를 쉽게 채워나갔다.
총 9회차로 진행한 수업에서 후반부로 갈수록 글쓰기 주제도 넓혀갔다. ‘게임을 하게 된 이유와 게임을 하면 무엇이 좋은지’, ‘롤 게임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 ‘나의 비전이나 꿈, 장래희망’ 등. 교사들은 수업 초반 진행한 인터넷중독 진단 척도 검사 결과와 아이들의 글을 보고 개별 상담을 진행했다.
그 전에 모험놀이상담을 먼저 했다. 방 교장이 직접 만든 ‘금연송’과 ‘게임송’을 들려준 뒤 ‘팔씨름’, ‘발등 밟기’, ‘동전 업다운’ 등 가벼운 신체 활동을 하며 서로 스킨십을 하고 분위기를 누그러뜨렸다. 얼핏 보면 단순한 놀이이지만 몸을 움직여 이완하면서 심리적 긴장도 완화할 수 있는 활동이었다.
게임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이 방승호 교장이 직접 만든 ‘게임송’과 ‘금연송’ 등의 노래를 함께 부르고 있다. 아현산업정보학교 제공
방 교장은 “친밀감을 높인 뒤 상담을 진행하면 아이들이 마음속 얘기를 좀더 편하게 한다”고 했다. “말로만 하는 상담에서 아이들은 쉽게 입을 열지 않는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방어기제다. 딱딱한 분위기에 위축되고, 자신이 이 말을 하면 혼날까 싶어 먼저 방어를 하는 것이다. 모험놀이상담은 설명 불가능한 연금술처럼 이 방어기제를 뚫는다. 스킨십을 하면서 놀이 형식으로 아이의 본능을 찾아준다.” 놀이에 몰입하면서 상담자(교사)와 내담자(학생) 사이에 신뢰와 공감이 생기고 이때부터 아이들이 마음속 벽을 허물고 솔직하게 이야기를 털어놓는다는 설명이다.
2015년 통계청 자료를 보면 청소년들이 여가에 게임을 하는 비율이 78.2%였다. 게임을 하는 이유는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할 게 없어서’,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게임 자체를 스포츠로 생각해 즐기기보다는 다른 여가 활동을 못 찾아서, 교우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게임을 했다.
프로그램이 끝난 뒤 아이들은 “게임을 할 때 상대방과 소통하면서 팀워크가 생기고 협동심도 길러져 좋았다”고 했다. 하지만 대다수가 “게임보다 모험놀이상담이 더 재밌었다”, “머리 아픈 것도 없고, 몸을 움직이면서 게임 하며 쌓인 뻐근함도 다 사라졌다”고 했다. 무엇보다 아이들 입에서 “게임 하는 시간을 줄이고 밖에서 친구들과 뛰놀아야겠다”는 말이 튀어나오는 걸 보고 방 교장도 놀랐다.
“중독은 의존의 가장 극단적 상태다. 게임에 과몰입하는 아이들 대부분 부모와 불안전한 관계를 갖고 있었다. 아이는 부모와의 어긋난 애착 관계에서 심리가 불안해지며 마음 둘 곳 없는 상태로 점차 게임에 의존하게 된다.”
실제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아이들은 “게임에 빠지면서 성적이 떨어졌고, 부모와의 관계가 나빠졌다”고 했다. 하지만 방 교장은 “좀더 살펴보면 게임에 빠져서 나빠진 게 아니라 그 전에 아이를 둘러싼 안 좋은 환경이 게임에 빠지게 한 것이었다. 주변에 게임에 빠진 아이가 있다면, 이 점을 먼저 살펴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화진 <함께하는 교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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