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당분필’ 교사들이 만든 <김영란법을 알려주마!>의 한 장면. 페이스북 영상 화면 갈무리
누군가 휴대폰에서 ‘영란몬고(GO)’ 앱을 켜고 학교를 돌아다니며 목표물을 찾는다. ‘청렴도 너희를 잡으러 왔다’는 글이 화면에 뜨고, 곧 목표물이 등장한다. ‘남신규’라는 이름의 남자교사. 나이는 25, 주는 대로 받고, 핑계 대기 좋아한다. 학부모들이 내미는 기프티콘, 선물상자, 경조사비 등에 둘러싸이는 상황에 부닥치자 곁에서 두 배우가 나와 ‘설마설마설마~그런 거 받으면 큰일 날 텐데~’라며 김영란법 내용을 소개한다. 영상은 애초 김영란법이 학교에까지 등장한 배경을 살짝 비꼬는 멘트로 끝난다. “대부분의 현장 선생님들은 교사윤리강령에 따라 청렴해요~김영란법이 시행되더라도.”
■ 몽당분필-교육 3주체, 영상으로 소통해요
3분16초짜리 이 영상을 만든 제작사 이름은 ‘몽당분필’. 감독·배우 등 구성원 모두 현직 초등교사다. 김영란법을 소재로 한 이 영상에 대해 몽당분필 쪽은 페이스북(www.facebook.com/MDBFTV)에 “‘어떻게 해야 한다’를 설명하려 만든 영상이라기보다는 ‘윗분들이 얼마나 많이 잡수셨으면 이걸 법으로 만들었을까, 사심 없이 ’선생님. 수고하셨다’고 상담 때 빈손이 민망해서 가져오시는 음료수 한 잔도 눈치 보이겠다’는 생각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몽당분필은 수원 매탄초 김상현 교사, 수원 다솔초 박준호 교사가 지난해 ‘재미와 의미가 있는 일’을 작당하다 만든 교사영상제작단이다. 공동대표가 주변을 수소문해 교사들을 모았더니 2016년 말 모두 17명이 됐다.
영상의 주요 관객은 교사·학생·학부모로 이루어진 교육 3주체. 몽당분필은 단순 정보 나열 및 전달이 아니라 교사의 일상과 고민, 고충, 학부모와 교사의 관계, 학생들 사이의 문화 등 교육주체 간 다양한 이야기를 시트콤, 시사다큐멘터리, 짧은 드라마 등 다양한 형식을 빌려 소개한다. 김 교사는 “모든 관계에서 자신이 이해나 존중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할 때 상처받는다. 교사나 학부모, 학생도 마찬가지다. 교육 3주체가 편하게 소통하고 공감하고, 이해의 길을 틀 만한 계기로서 영상을 만들어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몽당분필이 ‘소통’(교육주체 간의 이야기), ‘공감’(교육현장에서의 오해를 이해로), ‘정보’(교육정보 불균형 해소), ‘재미’(따분한 학교를 유쾌하게 바라보기)를 열쇳말로 삼은 이유다.
모임 슬로건은 ‘교육, 짧게 쓰다!’ 어떤 메시지라도 어깨에 힘 꽉 준 채로 전하는 게 아니라 편하게 생각할 거리 하나 툭 던지는 식으로 부담 없이 손을 내밀어 보겠다는 속내다.
학부모 ‘니즈’를 맞추기 위해 다양한 마실거리를 준비하고, 학부모와 어떻게 자리배치를 하고 앉아야 하나 고민하는 한 남자교사의 이야기를 코믹하게 그린 <나는 오늘 학부모 상담을 했다>는 교사의 일상과 고민, 상담에 대한 부담 등을 보여준다. 아이들이 잘 쓰는 말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보는 <너네말나들이>는 학부모에게도 유용한 정보다. 교사가 생존전문가로 분해 서바이벌 게임을 하듯 연기하는 영상(<지진에서 살아남기> 등)은 폭소를 자아낸다.
소속 교사들은 매주 월요일 모임 때 각자 관심 주제들 가운데 영상에 담고 싶은 것에 대한 얘기를 풀어놓는다. 다른 교사들이 힘을 더해 시사다큐멘터리, 패러디, 드라마 등 각 주제를 가장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을 만한 방법을 함께 고민하고, 실제 영상으로 탄생하도록 돕는다. 박 교사는 “어릴 때부터 텔레비전을 좋아하긴 했는데 영상에 대해선 하나도 몰랐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컴퓨터, 디에스엘알(DSLR), 마이크를 사고, 관련 학원까지 다니고 있었다”며 웃었다.
소재는 주변 동료 교사들을 취재해 나오기도 한다. 최근에 올라온 다큐멘터리 시리즈 <학교 가기가 두려운 교사들-교권 편>은 교권 침해에 대한 교사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담아 관심을 끌었다.
영상 아래 달린 댓글 보는 재미도 있다. <학부모 상담 편> 댓글에는 ‘9시까지 상담하는데 창문 밖이 점점 어두워지게 연출하면 좋겠어요’ 등 적극적으로 모니터링해 의견을 준 이들도 있었다. <지진에서 살아남기>, <김영란법> 등은 각각 계기 교육, 교사 대상 교육 자료로도 활용되고 있다.
안산 매화초 백경민 교사는 “교사라고 하면 획일적인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영상물 만들며 다양한 분들을 만나보니 교육현장에도 참 다양한 사람, 의견이 있다는 걸 나 자신도 배워가고 있다”며 “교육에서 다양성만큼 중요한 것도 없는데 그 다양성을 공유한다는 면에서 의미가 큰 활동”이라고 했다.
몽당분필은 단순히 영상 제작에 그치는 게 아니라 학생, 학부모, 교사가 소통하고 다양한 배움을 접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려고 고민 중이다. 현재는 경기도 청소년방송국 ‘경청’ 청소년들에게 멘토도 해주고 있다. 현장에서 ‘이런 이야기, 영상에 넣어달라’는 제보도 환영이다.
‘뻘짓’ 교사들이 만든 <아이러니스쿨-성과급 전쟁편>. 페이스북 영상 화면 갈무리
■ 뻘짓-교사 생활과 고민, 영상으로 보니 어때요?
신규 교사인 이동민 교사는 학교생활을 시작하고 잔뜩 들떠 있다. 어느 날, ‘성과급’을 주제로 회의한다고 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참석했다. “성과에 대해 보상을 주는 내용을 논의하는 자리라니 마음에 무척 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회의에 들어가서 교사들끼리 심한 다툼이 일어나는 모습을 봤다. 이 교사는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질문을 한다. “학교에서 성과라는 게 뭘까요?”
교사영상제작단 ‘뻘짓’(teachersmovie.com)이 만든 <아이러니스쿨-성과급 전쟁 편> 내용이다. 감독인 수원 화성 동화초 정재성 교사는 “학교 성과급 전쟁은 매년 논란이 되는 주제 가운데 하나인데, 조금 과장된 면이 있을 수 있지만 많은 학교에서 영상 속 교사들처럼 다툼이 일어나는 일이 빈번하다”고 했다. “학교라는 공간이 아이들과 함께하는 편안하고 따뜻하며 민주적인 공간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상황도 있다. 정작 아이들과 함께할 시간은 부족해진다거나 비민주적인 문화를 마주할 때 갑갑하다. 현장의 답답함과 고민을 담아봤다.”
<아이러니스쿨>은 학교 문화 속 비합리적인 상황들을 이야기하며 함께 생각해봐야 할 것들을 화두로 던지는 시리즈다. 뻘짓에는 이밖에도 <뭣이 중헌디!>, <학교생활 안전수칙>, <감동 시리즈> 등 시리즈 콘텐츠가 있다. 모두 교사를 둘러싼 학교현장의 다양한 고민과 논란 등을 담고 있다.
올해 여름에 꾸려져 17명의 교사가 활동하는 뻘짓은 경남 호암초 박대현 교사가 만들었다. 박 교사 버킷리스트(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들을 적은 목록) 가운데 하나가 감독·배우를 다 해보는 것. 감이 잘 안 와 영화교육 전문가인 경남 광려초등학교 차승민 교사에게 조언을 구하면서 연극·영화 제작에 관심 있는 교사들을 모았다. 박 교사는 “‘영화 하고 싶은 교사 모여요~’ 했더니만 여러 지역에서 끼 넘치는 교사들이 모여들었다”고 했다.
화제를 모은 영상 가운데 하나가 <뭣이 중헌디!-수업시간에 걸려온 전화 편>이다. 교사는 아이들과 수업하느라 바쁜데 수업을 위해 켜둔 컴퓨터 화면 속 메신저에 ’국정감사 자료를 달라’는 관리자의 멘트가 반복해 뜬다. 메신저로 지시한 내용에 대해 답이 없자 관리자는 급기야 교실로 전화까지 한다. 화가 난 교사는 이렇게 말한다. ’수업보다 뭣이 더 중헌디!’
배우로 활동하는 광주 송정 중앙초 장윤정 교사는 “뻘짓은 교사에 대한 판에 박힌 상을 깨고 싶어 하는, 끼로 뭉친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라고 소개했다. 또 “사실 교사를 보며 ‘철밥통’ 소리를 많이 하는데 우리만이 느끼는 갑갑함과 어려움도 있다. 때론 갑갑한 구석을 풀어주고, 때론 감동·재미를 주는 영상을 통해 대한민국 교사들이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내년 여름께 뻘짓 제작 옴니버스 영화도 나올 예정이다. 두 제작단 영상은 유튜브, 페이스북 등에서 볼 수 있다.
김청연 <함께하는 교육> 기자
carax3@hanedu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