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의 국립 영유아 예술단체 스타캐처스가 영유아를 대상으로 펼친 공연 풍경. 솔렌 콜렛 제공
기는 아이, 이제 막 앉기 시작한 아이, 걷는 아이, 아빠의 목말을 탄 아이…. 0~24개월밖에 안 된 아이들이 부모와 나란히 앉아 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긴 꼬리를 달고 라쿤 분장을 한 공연자는 아이들 앞을 왔다갔다하고, 아이 옆에서 기어다니기도 한다. 아이들이 신기한 듯 쳐다본다. 두 명의 바이올린 연주자는 마법에 걸린 나무 이야기를 선보인다. 공연 뒤 이어진 통합 놀이 시간에는 자유롭게 움직이며 즐겁게 논다. 아이들의 얼굴엔 웃음꽃이 피고, 부모도 아이와 여유롭고 편안하게 공연을 즐긴다.
지난 9일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서울 중구 페럼타워 페럼홀에서 연 ‘2016 유아 문화예술교육 콘퍼런스’에서는 해외의 우수한 문화예술교육 사례로 스코틀랜드의 영유아 예술활동 경험이 소개됐다. 스코틀랜드 국립 영유아(0~5살) 공연단체이자 문화예술교육 전문기관인 스타캐처스의 대표 로나 매터슨이 참석해 영유아의 창의적 경험을 이끌어내기 위해 이 기관이 펼쳐온 다양한 활동을 소개했다.
2살 미만 아이가 공연을 즐긴다?
유아 문화예술교육 콘퍼런스에서
창의적 경험 위한 활동 소개
모든 문화예술 활동 국가 지원
예술가들이 낙후지역에서 프로젝트
보육기관 부모 영아 만나 소통
공연작품 만들고 학술연구도
인지능력과 사회성 향상되고
아이와 부모 애착관계 강화 확인
“우리 모두 창의적인 존재로 태어나
다양한 예술적 접근에 영감 받아”
공연 관람 연령 대부분 2살 이상
2살 미만 아이가 공연을 즐긴다고? 고작해야 키즈카페를 가거나 문화센터를 가는 한국의 영유아 부모에게 다소 생경하게 느껴질 수 있다. 영유아를 키우는 부모가 아이와 함께 관람할 수 있는 공연이 제한적인데다 그마저도 대상 연령이 24개월 이상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스코틀랜드의 문화예술교육이 더 놀라운 것은 이 모든 문화예술 활동을 국가 차원에서 지원한다는 사실이다. 스코틀랜드 자치정부는 ‘아이가 자라기 가장 좋은 곳으로 만들기’라는 국가 비전을 세우고, 요람에서부터 아이들이 다양한 예술 활동 및 창작 경험 활동을 접할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있었다. 매터슨은 “스코틀랜드 정부는 앞으로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에서는 창의성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며 “정부는 각 교육기관들이 창의적 학습 계획을 세우고, 이 과정에서 0~18살 아이들이 예술문화 경험을 충분히 누릴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매터슨은 특히 모든 아이들의 문화예술 경험에 대한 접근성과 형평성을 강조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 차원에서 아이들에게 문화예술 경험을 골고루 제공해야 아이들 간의 격차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스코틀랜드 정부도 처음부터 영유아를 위한 문화예술 경험을 강조한 것은 아니다. 매터슨에 따르면 2006년까지만 해도 유럽에서는 4~7살 이상을 대상으로 한 연극은 하나의 공연 장르로서 인정됐지만, 3살 이하 아이들을 위한 공연은 전무했다. 2006년 ‘0~3살에게 적합한 연극을 만들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시작된 민간 차원의 파일럿 프로젝트가 바로 스타캐처스였다. 프로젝트 펀딩 방식으로, 예술가들은 에든버러 북부 지역의 낙후된 지역 예술센터를 중심으로 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예술가들 상주하며 자유롭게
예술가들은 그곳에서 보육기관과 영아, 부모들을 만나 소통했고, ‘마이 하우스’라는 영아 대상 첫 공연 작품을 만들었다. 스타캐처스는 또 영유아 대상 예술에 회의적인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학술 연구 지원을 받아 영유아들이 연극과 창의적인 경험들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연구했다. 연구 결과, 연극과 창의적인 경험을 통해 아이들의 인지 능력은 물론 사회성까지 향상된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아이와 부모의 긍정적 상호작용도 늘었고, 애착 관계도 더 강화됐다. 예술가들은 프로젝트를 통해 0~3살 대상 공연이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파일럿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평가받으면서, 스타캐처스 프로그램은 0~18살을 대상으로 공연예술을 지원하는 국가진흥단체인 이매지네이트에 편입됐다. 스타캐처스는 이를 계기로 또 다른 실험에 나선다. 바로 예술가 레지던시(상주) 모델로, 예술가가 1년 동안 지속적으로 어느 한 지역의 아트센터에 상주하면서 영유아, 보육기관, 부모들과 소통하면서 하나의 작품을 창작하도록 지원하는 방식이다. 예술가에게 충분한 시간, 공간, 자원을 제공하면서 자유로운 창작 활동을 보장했다. 단, 1년 동안 하나의 작품을 창작하고, 영유아 및 그 부모들과 소통하라는 두 가지 조건만 내걸었다. 평가도 함께 진행했다.
이 두 프로젝트가 밑거름이 돼 스타캐처스는 2011년 아예 이매지네이트에서 별도로 독립했다. 0~5살만을 대상으로 한 영유아 국립 공연단체가 된 것이다. 스타캐처스는 현재 △영유아 대상 공연 기획 및 관람 제공 △영유아 교육자를 위한 ‘창의적 기술’ 프로그램 개발 △지역 참여 등 세 가지 활동을 통해 양질의 문화예술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현재까지 17만명 이상의 영유아, 아동, 그 부모와 보호자가 예술경험을 했다고 한다.
스코틀랜드 국립 영유아(0~5살) 공연단체이자 문화예술교육 전문기관인 스타캐처스의 대표 로나 매터슨이 지난 9일 서울 중구 페럼타워에서 스코틀랜드의 예술문화활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제공
“한국인 관심 무척 높아 발전 기대”
“워크숍을 진행해보니 영유아의 창의성이나 예술경험에 대한 한국인의 관심이 무척 높은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한국의 보육교사나 영유아 부모들의 마음은 활짝 열려 있어 앞으로 이 분야가 더 발전할 것이라 기대합니다.” 매터슨은 한국의 문화예술교육이 변화하는 과정에 있으며,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보육교사들에게 창의적 기술 증진 프로그램을 운영해온 그에게 창의력을 증진할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 뜻밖에 답은 간단했다.
“우리 모두는 창의적인 존재로 태어납니다. 보육교사나 부모들이 자신들의 창의성에 자신감을 갖는 게 중요해요. 워크숍을 진행해보면 자신의 창의성에 회의적인 분들이 많았거든요. 그런 측면에서 저희가 제공하는 다양한 예술경험은 효과적이었습니다. 보육교사나 부모들은 예술가들이 공유하는 드라마, 시각예술, 음악, 창의적 움직임, 인형극, 스토리텔링 등 다양한 예술 방식을 접하면서 영감을 받고, 자신의 삶에 적용하면서 자신감을 얻었거든요.”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