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활동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였냐보다는 얼마나 진정성 있게 참여했고, 무엇을 느꼈는지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14년 서울 경희고 학생들이 유니세프한국위원회에서 진행하는 ’아우인형 만들기’에 참여하던 모습. 아우인형은 '내 동생'이라는 뜻의 인형으로 이를 만들거나 입양하면 한 어린이에게 6가지 예방접종을 해줄 수 있는데 완성한 인형을 전시하는 등 행사를 진행하고, 모금을 한 뒤 활동보고서를 작성하는 것도 봉사활동이 될 수 있다.
“봉사활동 많이 했다고 싫어할 평가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3년 동안 100시간 이상 채워주면 좋죠.”
얼마 전, 예비 고1 자녀를 둔 강아무개씨가 한 대입 관련 특강에서 들은 이야기다. 강씨는 특강을 들은 뒤 서점에서 관련 책을 찾아보다가 혼란스러워졌다. 어떤 책은 이 강사의 말처럼 “다다익선! 봉사활동도 최대한 많이 해두면 좋다”고 했고, 어떤 책은 “봉사활동 50시간인 학생은 합격하고, 200시간 이상 한 학생은 불합격했다. 양이 중요하진 않다”고 했다.
■
‘자동봉진’ 항목에서 봉사활동은?
대입 수시에서 학교생활기록부 종합전형(이하 종합전형)이 대세로 떠오르면서 학생들이나 학부모들 귀에 ‘자동봉진’이라는 말이 익숙해졌다. 이는 ‘자율활동’, ‘동아리활동’, ‘봉사활동’, ‘진로활동’의 줄임말로 비교과 영역 가운데 창의적 체험 활동의 네 가지 세부항목을 말한다. 학생들은 방학을 앞두고 개인 봉사활동 할 곳을 찾거나 관련 계획을 짠다. 한데 봉사활동을 하더라도 달라진 입시 경향 등을 이해하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
현재 대입은 봉사활동을 몇 시간 했느냐를 두고 정량평가를 하진 않는다. 봉사활동 최소 시간을 전형요강 등에 명시한 대학은 거의 없다. 종합전형의 전신이라고 하는 입학사정관제 초기 때 ‘봉사만 600시간 이상’ 등 스펙으로 대학에 간 사례들이 있었지만 종합전형은 이와는 다른 방향에서 봉사활동을 바라본다. 이치우 비상교육 입시평가실장은 “봉사활동과 관련해서 시간 개념이 중요한 시대는 지났다”며 “어떤 마음으로, 얼마나 자발적으로 봉사했고, 뭘 느꼈는지가 상당히 중요해졌다”고 했다.
■
봉사활동도 ‘전공적합성’이 열쇳말
대학이 봉사활동을 보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공동체 의식이나 사회적 의무감 등 인성을 보려는 것이지만 최근에는 대입 자체에서 ‘전공적합성’ 등이 매우 중요한 열쇳말이 되면서 봉사활동 역시 전공적합성과 연계된 방향으로 하는 게 대세다. ‘전공과 관련한 봉사활동’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의대를 목표로 한다고 해서 의사 옆에서 직접 의료 보조 봉사활동을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부천 소명여고 오수석 교사는 “일반적으로 병원 봉사를 가면 학생들이 환자 빨래를 걷거나 엘리베이터 층수 누르는 등의 일을 많이 하는데 그럴 경우 의사, 시스템공학자 등의 진로와 연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의사를 꿈꾸는 학생이 환자 빨래를 정리하다가 우연히 병실에서 의사가 환자 눈높이에 맞춰 무릎을 굽히고 얘기하는 걸 봤다고 치자. 그걸 통해 의사에게 필요한 태도에 대해 알게 됐다고 말할 수도 있다. 공학 분야 전공하려는 학생이라면 엘리베이터 층수 버튼을 눌러주는 봉사를 하다가 병원에 감염 문제가 생길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자동센서 연구에 관심을 기울일 수도 있다. 무엇을 몇 시간 했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내 전공 분야를 찾게 됐다거나 그 분야에 맞는 태도나 마음가짐을 갖게 됐다는 등 ‘느낀 점’이 중요하다.”
봉사활동의 ‘꾸준함’에 의미를 두는 이들도 있다. 서울대학교 소비자아동학부 2학년 이선우씨의 미래 꿈은 아동 심리치료 분야에서 일하는 것. 고교 1학년 때부터 2학년 2학기까지 장애위문 봉사, 1학년 2학기부터 3학년 1학기까지 지역아동센터 학생들을 대상으로 오케스트라 보조교사 등 봉사활동을 꽤 꾸준히 해왔다. 특히 오케스트라 보조교사 활동에 대해서는 “정말 오랫동안 아이들을 만나면서 그들이 나를 통해 도움을 받았고, 꿈도 생겼다고 했을 때 뿌듯했다. 나 역시 미래 내가 만날 내담자인 아이들을 미리 만나보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이씨는 “면접 때도 관련 질문을 많이 받았었는데 봉사활동 수가 많았던 건 아니지만 사람과 관련한 봉사를 정말 꾸준하게 했다는 점이 유의미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
강박적으로 교외 봉사 찾을 필요 없어
많은 학생들이 교내 봉사활동은 기본으로 하고, 교외에서 눈에 띄는 봉사활동까지 찾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도 지나친 강박이다. 국민대 박지현 입학사정관은 “요즘은 고교에서 교육과정 짤 때 기본으로 봉사활동에 대한 배치를 잘 해준다”며 “본인이 여유가 있어 하는 거라면 상관없지만 사회복지학과, 의대 또는 학교 건학이념 자체가 나눔·배려 등을 강조하는 쪽이 아닌 다음에야 무리해서 교외 봉사활동까지 수를 늘리려고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했다. 또 “무엇보다 봉사활동 하나가 아니라 다른 항목들과 연계해 종합적으로 평가를 하는 게 종합전형의 핵심이라는 걸 알았으면 한다”고 했다.
숙명여대 한국어문학부 2학년 강혜원씨도 “교외의 크고 유명한 단체에서 봉사활동을 했다고 해도 느낀 점이 없다면 다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내 경우는 교내 봉사활동만 했음에도 진로 찾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한국어 교사를 꿈꾸는 강씨는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진로와 연관된 교내 봉사활동을 꾸준히 했다는 데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강씨가 했던 봉사활동은 교육봉사였다. 또래 멘토링을 비롯해 지역 어린이들, 탈북 어린이들을 교육해왔다. “탈북 어린이 멘토링 때 게임식 수업을 준비했는데 아이들이 생각보다 경쟁심이 강했다. 게임식으로 하면 경쟁을 더 부추기겠다 싶어서 다른 방법을 고민했다. 교육 방법론 등을 설계하려면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는 걸 알았다고 면접 때 말했다. 소소하더라도 내가 체험한 것, 어려움을 극복한 경험 등을 말한 게 도움이 됐다.”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1학년 김진경씨는 사회적 소수자를 돕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 국가인권위원회 활동을 했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서 “법률연맹 봉사활동도 한번 해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찾게 된 법률연맹에서는 법원 사건 모니터링, 주요 언론사 사설 분석, 판결문 분석 등을 하는 봉사활동을 방학 동안 3년 내내 해왔다. 이는 일종의 진로직업 탐색 시간이기도 했다. 김씨는 “중학교 3학년쯤 되면 기록 때문에 봉사활동을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이것저것 정말 다양한 것들을 찾아서 경험해봤으면 좋겠다”며 “봉사도 하고, 이게 내 적성에 맞는지 간접체험도 해볼 수 있으니까 손해 볼 게 하나도 없다”고 했다.
어디서 봉사활동을 하느냐보다 중요한 게 봉사활동 뒤 기록을 잘 남기는 것이다. 동기부터 의미까지 체계적으로 적으면 좋겠지만 그게 어렵다면 나만의 일기 식으로 남겨둘 수도 있다. 김씨는 “법 관련 단체, 복지관 등 총 네 번의 봉사를 했는데 그때마다 한 장씩 나만의 후기를 남겨뒀다”며 “학교생활기록부에는 ‘팩트’만 남아서 막상 입시 치를 때가 되면 그 기억이 구체적으로는 안 나는데 활동 끝날 때마다 나만의 생각 등을 적어두고 면접 때 다시 보고 정리하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봉사활동에 대해 학생들이 참고할 내용도 있다. 물품 및 현금 기부도 봉사활동에 해당하나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은데 단순 기부는 시간으로 환산해 인정할 수 없다. 단, 사전교육-캠페인-물품 및 현금 모금활동-기부-평가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할 경우는 인정할 수 있다. 푸드마켓에 음식물을 기부하거나 정치적 목적의 집회 활동 참여 봉사활동 등은 인정되지 않는다.
글·사진 김청연 <함께하는 교육> 기자
carax3@hanedu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