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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전교생 손에 ‘진로 플래너’ 하나씩, 공부·인생 직접 설계해

등록 2016-12-06 14:23수정 2016-12-06 14:26

경안고 ‘플래닝 교육’

내신+비교과 할 일 많은 학생들
나만의 시간관리 더욱 중요해져

경안고 전교생 ’플래닝 교육’ 진행
공부 계획 세워 시험유형 파악하고
친구와 피드백하며 수정 등 해봐
‘사명선언서’ 쓰며 진로가치관 찾게 해

11월19일 경기도 안산 경안고 플래닝 교육 시간에 학생들이 곽충훈 교사와 대학생 멘토인 이선경씨와 함께 각자 쓴 플래너를 놓고 서로 이야기하고 있다.
11월19일 경기도 안산 경안고 플래닝 교육 시간에 학생들이 곽충훈 교사와 대학생 멘토인 이선경씨와 함께 각자 쓴 플래너를 놓고 서로 이야기하고 있다.
“자신의 진로 바인더를 펼쳐놓고 서로 관람하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지난주보다 여러분은 분명 더 성장했을 테니까.”

“평소 한국사 공부를 할 때 노트 정리 위주로 봤어. 근데 요즘에는 흐름이 중요한 거 같아서 교과서 위주로 먼저 보고 노트 필기를 했더니 시험 점수 차이가 크게 나더라. 교과서 정리가 중요한 거 같아.”

“하루에 수학 문제 30개 풀기로 계획했는데 잘 못해서 10~15문제밖에 못 풀었어. 수열만 풀고 로그 부분은 아직 못 나갔어. 문제풀이에만 매달리기보다 시험에 교과서 문제가 많이 나오니까 먼저 개념을 제대로 알고 교과서 위주로 공부해야겠어.”

11월19일 경기도 안산 경안고. 토요일 아침임에도 학생들은 학교에 나와 진지한 대화를 이어나갔다. 각자 만든 플래너를 나눠 보며 상호 피드백하는 시간이다.

이들처럼 실제 플래너를 쓰는 학생들이 많다. 무작정 플래너를 쓴다고 다 공부습관이 길러지고 성적이 오르는 건 아니다. 빡빡하게 계획을 세우면 답답할 거라 생각하는 학생도 있다. 하지만 시간 관리를 체계적으로 하면 효율적으로 공부를 하고 오히려 여유 시간이 생길 수도 있다.

플래너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학습 플래너를 많이 떠올리지만 이 학교 학생들은 꿈 리스트를 적거나 진로 로드맵을 세우는 등 진로 관련한 플래너도 쓰고 있다. 비교과 활동이 늘고 있는 요즘 진로 탐색이나 동아리, 독서 활동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경안고가 학생들에게 이런 ‘플래닝 교육’을 실시한 건 2010년부터다. 플래닝 교육이란, 말 그대로 일상생활에서 계획 세우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다.

이 학교 곽충훈, 최원 교사는 ‘LSP(Life scale planning) 토요학교’(이하 토요학교)라는 이름으로 매주 토요일 오전 플래닝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교사들은 외부에서 플래닝 교육을 받은 뒤 학습과 진로 관련 16개 영역으로 이루어진 진로바인더를 직접 만들었다. 일반적인 플래너와 달리 내용이 구체적이라 훨씬 두껍다. 내용을 마음대로 추가하거나 뺄 수도 있다.

플래너를 쓸 때는 최대한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워야 '해야 할 일'도 자세히 쓸 수 있다. 자아 탐색을 위해 친구들에게 자신의 장단점을 물어볼 수도 있다. 사진은 경안고 학생들이 직접 작성한 플래너.
플래너를 쓸 때는 최대한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워야 '해야 할 일'도 자세히 쓸 수 있다. 자아 탐색을 위해 친구들에게 자신의 장단점을 물어볼 수도 있다. 사진은 경안고 학생들이 직접 작성한 플래너.

플래너를 쓸 때는 최대한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워야 '해야 할 일'도 자세히 쓸 수 있다. 자아 탐색을 위해 친구들에게 자신의 장단점을 물어볼 수도 있다. 사진은 경안고 학생들이 직접 작성한 플래너.
플래너를 쓸 때는 최대한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워야 '해야 할 일'도 자세히 쓸 수 있다. 자아 탐색을 위해 친구들에게 자신의 장단점을 물어볼 수도 있다. 사진은 경안고 학생들이 직접 작성한 플래너.

학습 계획은 구체적으로 수치화해야

박현지양은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플래너를 처음 써봤다. 중학교 때는 관리가 잘 안돼 낭비하는 시간이 많았다. 박양은 “가용 시간을 확인해보니 학교나 학원, 취침 등 ‘고정 시간’을 빼고 야간자율학습, 쉬는 시간, 점심 시간 등 5시간 정도 공부할 수 있었다. 아침에 8시에 와서 한 시간 공부하고 밤에도 계획을 세워 활용하고 있다”고 했다.

학습 플래너는 나의 시간을 들여다보는 일에서부터 시작한다. 일과 중 그냥 흘려보내는 ‘자투리 시간’을 찾는 것이다. 플래너를 쓰는 게 단순히 하루하루 공부할 분량을 정해서 목표를 채우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학생들은 주간 플래닝, 시험 플래닝, 분기 플래닝, 방학 플래닝으로 나눠 학습뿐 아니라 진로 관련 계획도 세운다. 가령, 주간 플래닝은 지난 한 주를 돌아보며 잘한 점과 부족한 점을 분석해 다음주 계획에 반영한다. 방학 플래닝은 학습 목표는 물론 경험 목표, 습관 목표까지 설정한다. 부족한 학업을 보충하는 것뿐 아니라 관심 분야를 탐색하거나 꿈을 이루기 위해 해야 할 일을 적는 것이다.

정두원군은 “목표 범위는 분기에서 월간, 주간으로 좁혀서 잡고 세부 계획을 자세히 짠다. 원래 계획한 양만큼 해내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에 할 일 가운데 우선순위를 정해두고 중요하거나 급한 일부터 차근차근히 해나간다”고 했다.

성적 플랜이나 주간 플랜을 짤 때 보통 과목만 쓰거나 내용을 뭉뚱그려 적는다. 하지만 학습 계획을 세울 때 구체적으로 수치화를 해야 ‘할 일 목록’(투 두 리스트)도 구체적으로 나온다. 경안고를 졸업하고, 토요학교 때 멘토 활동을 하는 이선경(중앙대 영어교육과 4년)씨는 “학생들이 학습 플랜 적은 걸 보면 과목만 쓰여 있고 구체적인 내용은 빠져 있다. 감으로 때려잡아 말하는 게 아니라 시험 유형을 제대로 알고 학습 방법을 수정해야 실질적으로 성과를 올릴 수 있다. 과목별로 공부해야 할 내용을 정리하다 보면 시험 유형도 파악되고 자신의 공부습관도 자연스레 알게 된다”고 했다.

진로는 ‘어떤 직업’보다 ‘어떤 삶’ 고민하게

진로 바인더는 ‘어떤 대학’보다 ‘어떤 삶’에 초점을 두고 있다. 아이들은 직업 탐색은 물론 꿈 리스트를 적거나 60대까지 구체적인 인생 로드맵도 짠다. 두 교사는 “아이들이 맹목적으로 공부만 하다 방황하는 걸 봤다. 스스로 삶의 방향을 찾고 가치관을 뚜렷하게 세우길 바랐다”고 했다.

아이들은 ‘사명선언서’도 쓴다. 특정 직업을 선택한 ‘이유’가 아니라 ‘그 일을 통해 무엇을 하고 싶은가’를 적는 것이다. 사회나 타인을 위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고민하는 것이 목적이다. 최 교사는 “직업에만 포커스를 두면 그 일을 못 했을 때 좌절할 수 있다. 남을 돕고 싶어 의사가 되고 싶은 학생이 성적이 안 된다면 간호사나 사회복지사 등 다른 일을 할 수도 있다. 직업이 아니라 직업관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소정양은 처음 접한 ‘자아정체성’ 항목이 어려웠고 숙제처럼 느껴져 플래너 쓰는 게 싫었다. 옆에 있던 친구가 플래너를 쓰면서 시간 관리가 잘되고 자기 탐색을 하면서 성장하는 게 보였다. 그 모습에 욕심이 생겨 지금은 열심히 쓰고 있다. “이전에는 생각도 어렸고 자존감이 낮아서 항상 우울하고 사람들과 관계 맺는 게 힘들었다. 플래너를 쓰니 친구들과 소통하는 기회도 생기고 좀더 적극적으로 활동을 찾아 나서게 됐다.”

흔히 학생들은 성격유형검사나 직업적성검사를 통해 자아 탐색을 하고 관심 분야를 찾지만, 때로는 주변 친구가 내 강점과 약점을 더 잘 알 수도 있다. 한 학생은 “‘자아정체성 테이블’ 난을 적으면서 나의 장단점을 친구들한테 물어봤다. ‘친화력이 뛰어나고 적극적’이라고 써줬는데 난 그렇게 생각 안 했었다. 몰랐던 약점도 알게 돼 고치려고 노력 중”이라고 했다.

교사들은 플래닝 교육이 제대로 자리잡게 하기 위해 멘토링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교사와 졸업한 대학생 선배, 재학생 선배와 또래가 멘토 역할을 한다. 플래너를 쓰는 방법을 알려주고 실천한 내용에 대해 격려와 함께 피드백을 해주는 것. 6명의 대학생 멘토는 직접 수업도 한다.

강사로 나선 이씨는 플래너를 쓴 게 고등학교 생활이나 대학 입시 때 큰 도움이 됐다. 그는 “자기소개서와 학생부에 쓸 비교과 활동을 하고 동아리 부장을 맡으면서 공부할 시간이 부족했다. 플래너를 쓰면서 학습도 소홀히 하지 않고 비교과 활동과 균형을 이룰 수 있었다. 대입 때 자기소개서에 이런 내용을 쓰면서 생활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강조했다”고 했다. 실제 플래너를 쓰면서 전교 50등 이하였던 성적이 22등까지 오르기도 했다.

4년째 후배들에게 플래닝 교육을 하고 있는 그는 무엇보다 플래너의 본질을 강조했다. “플래너를 예쁘고 꾸미고 완성도 높게 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삶의 지향점이나 사명을 찾고 이를 되새기는 데 집중해야 한다. 나머지는 방법론적인 스킬이다. 플래너 쓰기는 내가 어떤 삶을 살지 스스로 설계하는 것이다.” 글·사진 최화진 <함께하는 교육> 기자 lotus57@hanedui.com


플래너, 빈칸 채우려 쓰는 거 아냐
플래너 쓸 때 알아둘 것들

처음 플래너를 쓰는 학생들은 정해진 틀에 따라 빈칸을 채우는 데 급급하다. 이럴 때 먼저 경험한 선배들의 조언만큼 생생한 정보도 없다. 경안고 교사와 대학생 멘토, 재학생이 말하는 플래너 잘 쓰는 노하우를 소개한다.

플래너는 목표 아닌 수단

‘플래너 쓰니까 성적이 잘 나올 거야.’ 이렇게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성과를 보려면 실제 그만큼 노력을 해야 한다. 계획 세우는 데 몰두해 실제 학습이나 활동을 소홀히 하면 안 된다. 설령 계획대로 다 하지 못했더라도 자책하거나 좌절하지 마라. 플래너는 양이 아니라 질의 문제다. 자신의 미흡한 부분을 알면서 성찰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부분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플래너는 목표가 아닌 수단이어야 한다.

너무 ‘공부’만 다그치지 마라

학생은 ‘공부하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다. 내가 계획한 바를 이루고 싶지만, 인간이기 때문에 간혹 밀릴 때가 있다. 장기적 목표(사명)에 매몰돼 현재의 나를 괴롭혀서 기계적으로 다그치는 걸 경계해라. 원래 계획했던 공부 시간을 빼서 친구나 멘티 상담을 하는 게 당장은 손해처럼 보여도 길게 보면 나 자신을 성장시키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무조건 공부에만 집착해 다른 일은 제쳐놓거나 플래너 자체가 족쇄가 돼선 안 된다. 할 일을 찾고 체계적으로 공부하는 걸 훈련하는 과정에서 플래너는 자연스레 잘 정리된다.

인생엔 빈틈, 플래너엔 ‘빈칸’

인생에도 빈틈이 필요하듯 플래너에는 반드시 ‘빈칸’을 만들어둬야 한다. 아무 계획을 세우지 않는 날을 미리 만들어 놓아라. 하루를 통째로가 아니라 반나절 정도 시간을 비워두란 뜻이다. 그때 미처 달성하지 못한 목표, 갑작스러운 사정으로 다 하지 못한 일을 하면 된다. 밀린 내용이 없다면, 그 시간을 자신에게 상으로 줘라. 게임이나 영화 감상 등 여가를 즐기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친구와 함께 쓰면 효과 두 배!

플래너를 쓰려고 한다면 친한 친구들과 함께 써보자. 나만의 공부법이나 플래너 쓰는 아이디어 등 정보를 공유하고 상대방의 플래너를 보고 피드백을 해주면 좋다. 혼자 끙끙 앓던 고민도 함께 해결하고 서로 자극하는 계기가 되면서 플래너를 충실히 써나갈 수 있다. 진로 플랜을 쓸 때는 친구들에게 나의 장단점을 솔직히 물어보자. 내가 몰랐던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틀에 얽매이지 말고 하루 중 감사했던 일을 적는 ‘감사 일기’나 힘들 때 읽으면 좋을 롤링페이퍼, 친구에게 받은 편지 등 놀이처럼 새로운 양식을 만들어 넣어도 좋다. 최화진 <함께하는 교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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