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민중총궐기 투쟁본부 주최로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시민 촛불' 집회가 열리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안광복(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한겨레 사설] 제한 없는 ‘대통령 대면조사’로 의혹 낱낱이 추궁해야
박근혜 대통령이 4일 검찰과 특검 수사에 응하겠다고 밝힘에 따라 현직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곧 이뤄지게 됐다. 헌정사의 유례없는 참극인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규명하려면 의혹의 중심인 박 대통령 수사는 지극히 당연하다. 이제는 한 점 남김없이 의혹을 철저히 밝혀내야 한다.
현직 대통령이니 최소한의 예우는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시늉뿐인 조사는 안 된다. 헌법재판소 판시대로 대통령의 형사상 특권은 재직 중 형사소추를 받지 않는 것에 그칠 뿐 일반 국민과 다른 그 이상의 특권을 부여받은 것은 아니다. 원칙적으로 대통령도 검찰청에 나와 조사를 받는 것이 옳다. 현실적인 사정 때문에 소환조사가 어렵다면 최소한 직접 얼굴을 맞대고 조사하는 방문조사는 이뤄져야 한다. 서면조사는 대리 답변을 막지 못하고 사실 규명에 한계가 많다. 사건을 마무리하는 핑계로나 쓰였던 서면조사에 그쳤다가는 되레 더 큰 비난을 받게 된다.
방문조사를 하더라도 제한은 일체 없어야 한다. 제기된 의혹은 물론 조사 과정에서 추가로 드러나는 의문점까지 빠짐없이 규명할 수 있도록 조사 시간과 횟수를 최대한 보장받아야 한다. 필요하면 대질조사도 마다하지 말아야 한다. 대통령이 수사를 받겠다고 나선 마당이니 제대로 못 한 청와대 압수수색도 다시 할 필요가 있다.
이번 사태에서 박 대통령은 피해자가 아니라 피의자다. 대통령의 지시 없이 대통령 연설문과 국무회의 자료는 물론 군사·외교·경제 기밀이 담긴 온갖 청와대 문건이 최순실씨에게 유출될 순 없었을 것이다. 공무상 기밀누설죄,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등 혐의가 분명하다. 최씨가 정부와 공공기관 등의 인사·정책·사업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이를 청와대 참모진과 정부 관리들이 도왔다면, 이 역시 대통령 지시나 비호 없이는 설명할 수 없다. 미르·케이스포츠 재단이 강제로 돈을 모으는 과정, 최씨 회사 지원으로 귀결된 재단의 사업 추진 과정에도 박 대통령의 적극적인 관여가 있었던 것으로 속속 드러나고 있다. 뇌물, 직권남용, 횡령 등의 공범이나 교사범이 될 수 있다. ‘몰랐다’거나 ‘선의’ 따위 변명으로는 덮을 수 없는 범죄다.
검찰은 더는 수사 가이드라인이 뭔지 두리번거리지 말아야 한다. 여기서 또 머뭇대다간 검찰은 물론 국가에 대한 신뢰마저 영영 잃게 된다.
[중앙일보 사설] 검찰, 왜 정당성 잃은 대통령 눈치를 보는가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4일 대국민 담화에서 “필요하다면 검찰 조사에 성실하게 임할 각오”라고 밝혔지만 과연 진상 규명이 이뤄질 수 있을지 의구심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그간 대통령과 청와대 눈치 보기에 바빴던 검찰이 이번엔 얼마나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검찰은 말로는 ‘최순실 국정 농단’ 의혹의 진상을 명명백백하게 밝히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전개된 상황을 보면 ‘뒷북 수사’라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지난 9월 29일 최씨 사건 고발이 접수되자 해당 사건을 특수부가 아닌 형사부에 배당했다. 지난달 20일 박 대통령이 재단 자금유용 등에 대한 엄벌 의지를 밝힌 뒤 검사 2명을 추가로 투입했다. 같은 달 25일 박 대통령이 문건 유출 등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한 직후엔 대대적인 압수수색과 함께 특별수사본부를 구성했다. 수사팀을 몇 번씩이나 확대한 것이다. 대통령의 언급이 나올 때마다 마지못해 한발씩 나아갔다. 결과적으로 증거를 인멸하고 진술을 짜맞출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준 셈이다.
특히 최씨와 안종범 전 수석에게 제3자 뇌물 혐의가 아닌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한 것을 두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대통령이 빠져나갈 수 있는 퇴로를 열어놓은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앞서 지난달 30일에는 최씨 입국 즉시 신병 확보에 나서지 않음으로써 최씨가 31시간 동안 은행 창구에서 거액을 인출하고 변호인 등과 수사 대응 방안을 논의할 시간을 줬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최근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CJ그룹을 상대로 이미경 부회장의 경영 일선 퇴진 등을 압박한 녹취록까지 나왔는데 검찰은 조사 계획을 밝히지 않고 있다. 검찰 내부에서조차 대통령과 직결된 중대한 범죄 혐의인 만큼 조 전 수석을 즉각 조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손을 놓고 있다. 대통령이 언급한 의혹과 직접 관련된 인사들을 최대한 빨리 구속시키는 데만 주력하는 인상이다. 국기를 뒤흔든 국정 농단 사건을 단순한 측근 비리 정도로 축소하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최씨가 검찰에서 먹은 곰탕은 외부로 보내는 신호”라거나 “최씨가 대역(代役)으로 바꿔치기 됐다”는 음모론이 퍼진 것은 시민들의 검찰 불신이 위험수위를 넘었음을 보여준다. “검찰도 특검 수사의 대상”이란 지적이 얼마나 무섭고 심각한지 검찰 조직은 체감하지 못하는 듯하다. 만약 검찰이 도덕적 권위와 정당성을 완전히 상실한 박 대통령과 청와대의 ‘가이드라인’을 뒤따라가는 행태를 지금처럼 반복한다면 결국 국민적 분노와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추천 도서]
[추천 도서]
연재사설 속으로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