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간 갈등은 자연스러운 성장의 한 과정이다. 싸우는 과정을 통해 서로를 알아가고 사회성을 키워간다. 양동일씨는 ’토요가족식탁’을 정해 매주 토요일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양동일씨 제공
중2 다혜와 초6 윤아 두 자매를 키우는 정명화씨는 아이들이 눈앞에서 싸우더라도 더 이상 놀라지 않는다. 달려가서 떼놓지도 않는다. 다 싸우고 스스로 해결할 때까지 최대한 모른 척한다. 하지만 정씨도 처음부터 자녀들 싸움에 이렇듯 여유로웠던 건 아니다.
첫째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던 해 아이에게 조금 일찍 사춘기가 찾아왔다. “내 책상에 이거 놓지 마”라는 말부터 시작해 작은 물건을 놓고도 동생과 사사건건 안 부딪히는 게 없던 나날들. 사소한 시비가 격해지면 자매끼리 물건을 던지고 발로 차는 등 거친 행동까지 이어졌다. 부모는 고민 끝에 부모교육을 듣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먼저 해결책을 던져주지 않는 태도가 문제 해결의 열쇠였다.
1년 정도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나니 변화가 찾아왔다. 3년이 지난 지금. 두 딸 모두 한창 사춘기를 지나고 있음에도 전보다 싸움 빈도가 줄고 강도도 약해졌다. 동생이 힘들 때 언니가 먼저 “~때문에 많이 힘들겠구나” 등 위로해주는 모습을 보여주면 부모로서 흐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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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함부로 먼저 판단해선 안 돼
자녀가 둘 이상 있는 집의 가장 골칫거리는 아이들끼리의 다툼이다. 아이들 간 성별이 같거나 다르다고 해서 별반 다르지 않다. 전문가들은 “섣불리 싸움을 말리려고 잘잘못을 가려 억지로 화해시키면 오히려 억울함이 남아 사이가 더 나빠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아이들 사이 갈등을 줄이는 최선의 방법은 ‘부모가 최대한 개입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려면 먼저 형제간 갈등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는 게 우선이다. 갈등은 아이들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방법을 배우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법을 터득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정씨는 “아이들이 한참 싸울 당시에는 집안 시끄러운 것도 싫고 싸우는 것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다. 오히려 안 싸우고 지내는 게 이상하다고 마음먹으니 여유가 생겼다”고 했다.
아이들 싸움에서 부모의 역할은 ‘권투 시합의 심판’과 같다. 정해진 룰을 따르지 않을 때(폭력이나 욕설 등)만 개입하는 게 좋다. 한국지역사회교육연구원 조무아 연구교수는 “부모가 개입할수록 아이들끼리 자율적으로 해결할 기회를 뺏는 것”이라 했다. “얘들아, 계속 싸울 거면 방에 들어가서 다 싸우고 나올래?”라고 하거나 부모가 다른 방으로 들어가는 식으로 공간을 분리해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도 방법이다.
물론 처음부터 아이들에게만 맡겨두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순차적으로 시도하면 된다. 아이들을 떼어놓고 부모가 각자 입장을 충분히 들어주는 ‘경청’이 첫 단추다. 조 교수는 “아이 입장에서 들어주고 공감하려는 태도가 중요하다”며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중간에 끼어들기, 잔소리는 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유치원생과 초등·중학생 3명의 자녀를 둔 경기도 군포시 한 학부모는 ‘가족 서클’을 추천했다. 이 가정에는 아이들끼리 싸움이 벌어져 감정이 격해지면 일단 모든 상황을 중단하고, 3남매와 부모가 그 자리에 둥그렇게 빙 둘러앉는 규칙이 있다. 가족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한 채 돌아가며 각자 입장을 이야기한다. 그는 “부모가 공감하며 들어주기만 해도 아이들이 말을 하는 과정에서 분노의 감정이 누그러진다. 자신이 어떤 부분에서 화가 났고, 현재 어떤 감정인지를 스스로 깨닫는다”고 했다.
형제간 싸움에도 반드시 이유가 있다. 부모는 싸움이 일어난 과정을 내밀하게 모를 수 있다. 예를 들어 “동생이 먼저 약을 올렸다”는 등 아이 나름의 이유를 얘기했을 때는 믿어준다. 진심 어린 눈빛과 말투로 반응해줘야 마음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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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비교하는 말 조심해야
많은 전문가들은 “형제간 싸움은 부모의 태도로부터 기인한다”고 입을 모았다. 표면적으로는 사소해 보이지만 그 근본 원인으로 들어가면 부모의 ‘편애’로 인한 ‘비교’가 이유인 경우가 많다. ‘평소 내가 아이를 어떻게 대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명화씨도 이른바 ‘에프엠’으로 통하는 모범적인 둘째 아이와 비교해 첫째는 뭘 해도 성에 차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아이에게 강압적으로 지시하고, 은연중에 동생 앞에서 큰아이를 혼내거나 “윤아는 다 했는데 다혜는 아직 안 했니?” 등 비교하는 말을 많이 했다. 첫째 맘속의 분노가 동생을 미워하는 마음으로 옮겨가고, 동생 역시 매번 엄마에게 혼나는 언니를 은근히 무시해서 서로 다투곤 했던 것.
그래서 정씨는 큰아이의 위신을 세워주려 노력했다. 자녀 간 차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화날 때는 엄마의 감정을 솔직하게 전달했다. 작은아이에게는 “언니는 너와 다를 뿐이고, 언니도 잘하는 게 많다”는 걸 설명해줬다. 지금도 둘째가 훨씬 잘하는 부분이 많지만 큰애 앞에서 언급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다.
한국아동상담센터 김성은 부소장은 “형제간 갈등은 부모의 사랑을 더 얻기 위한 싸움”이라고 설명했다. 사춘기 청소년이라고 다르지 않다. 그는 “부모는 자녀를 똑같이 사랑한다 생각하지만 형제 서열에 따라, 부모가 원하는 기질을 가졌다는 이유로 더 좋아하게 되는 아이가 있다”며 “첫째에게 큰아이의 의무와 부담만을 주지는 않았는지, 작은아이에게 큰아이에 대한 양보만을 강요하지는 않았는지를 짚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부모가 자녀에게 거는 학습적 기대감이 커져 이로 인한 갈등이 커지는 추세다. 김 부소장은 “예전에는 잘하는 자녀에 대한 기대가 컸다면, 지금은 못하는 자녀를 야단치고 다그쳐 갈등을 더 키운다”고 했다. ‘아동청소년상담센터 맑음’의 송미림 상담연구원은 “‘○○처럼 100점 맞아야지’, ‘○○는 숙제 벌써 다 했는데’ 등 부모는 본보기로 잘 보고 따라오라고 하는 말이 아이의 자존감을 떨어뜨리고 경쟁구도를 만들기 쉽다”고 설명했다.
‘누가 먼저’, ‘누가 더 잘하나’보다 함께할 수 있는 팀워크 과제를 주는 것도 방법이다. 또 “갈등이 일어나기 전 아이들이 좋은 상호작용을 하고 있을 때 칭찬 요소가 있으면 놓치지 않고 칭찬해주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평소 서로의 이야기를 동등하게 들어주면 아이의 상태와 불만을 파악할 수 있다. 초등생 남매를 둔 양동일씨는 아이들의 생각을 알아보고 대화의 물꼬를 열기 위해 ‘하브루타’ 교육을 활용하고 있다. 하브루타란, 질문-대화로 이루어진 유대인들의 토론법을 말한다. 평소 자녀와 신뢰관계가 쌓여야 갈등이나 문제가 발생했을 때 풀어가기가 훨씬 수월하기 때문이다. 양씨는 “부부간 갈등의 모습을 보인 경우, 아이들 앞에서 잘 화해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은애 <함께하는 교육> 기자
dmsdo@hanedu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