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호 태풍 차바로 인해 수해를 본 울산시 중구 태화시장에 지난 6일 물에 젖어 버려진 물건들이 산처럼 쌓여 있다. 태화시장은 5일 태풍 차바가 몰고 온 많은 비로 인해 완전히 물에 잠겼다. 울산/연합뉴스
안광복(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한겨레 사설] 언제까지 이런 ‘인재’ 되풀이해야 하나
제18호 태풍 차바가 제주도와 남해안 일대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국민안전처가 집계한 바에 따르면 사망 7명, 실종 3명 등 인명 피해는 물론 주택 500여채와 상가 100여동,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의 침수 등 상당한 재산 피해도 예상되고 있다. 단전·단수에다 도로 유실 등으로 겪는 유무형의 고통도 만만찮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해안을 덮치는 파도와 물에 떠내려가는 자동차 등 피해 상황이 속속 전달되면서 국민이 실감하는 공포감도 컸다. 만조 때와 겹친데다 강도도 셀 것으로 예고된 태풍이었으나 대비는 여전히 허술했고 결국 또 하나의 ‘인재’를 낳고 말았다.
이번 태풍에 앞서 기상청은 4일 차바가 중심 부근 최대풍속이 초속 47m인 매우 강한 중형급 태풍으로 2007년 나리와 유사한 영향이 예상된다고 예보했다. 국민안전처도 같은 날 오후 관련 부처와 각 시도의 부단체장들을 소집해 긴급대책회의를 열었다. “초속 30m 이상의 강풍과 최고 250㎜의 비가 올 것”이라며 해안도로 방파제 출입 통제 등 대비도 주문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실제 태풍이 닥쳐 해일이 방파제를 넘고 댐이 넘치는데도 속수무책이었고 피해 주민들은 발만 동동 굴러야 했다.
울산시 울주군 태화강 상류에선 대암댐 물이 넘치면서 인근 반천현대아파트 길가에서 주민이 숨지고 차량 수백대가 물에 잠기는 동안 대피 안내방송조차 없었다고 한다. 낙동강홍수통제소는 홍수주의보를 발령했다가 50분 만에 수위가 1m 이상 오르자 뒤늦게 경보로 격상했다. 부산 감천항 등 방파제 부실시공 논란도 일고 있다.
이번 태풍으로 물바다가 된 부산 해운대구 마린시티의 경우엔 3.4m 높이의 방수벽을 세우려다 “바다가 보이지 않는다”는 주민들 반발로 1.2m밖에 세우지 못한 탓에 피해가 컸다고 한다. 태풍 속에서도 수업을 강행했다가 침수되는 바람에 2층으로 대피했다는 경남 양산의 한 고등학교와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 일각의 ‘안전 불감증’을 말해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지진 피해 복구가 채 끝나기 전에 다시 태풍 피해를 당한 경북 경주 주민 등이 겪고 있는 고통도 안타깝다. 이번 주말 다시 폭우가 예보되고 있다. 피해 복구와 함께 인재라는 말이 더는 나오지 않도록 정부 당국의 철저한 대비를 촉구한다.
[중앙일보 사설] 환경 변화에 걸맞은 새로운 재해 대책 세워야
제18호 태풍 ‘차바’가 제주도와 남부지방을 강타했다. 안타까운 사망·실종자가 10명이나 발생한 것은 물론 울산 현대자동차를 비롯해 산업시설과 상가·농경지 곳곳에서 강풍과 폭우 피해가 발생했다.
주목되는 점은 차바가 이례적인 가을 태풍이라는 점이다. 최근 15년간 한반도에 영향을 미친 45건의 태풍은 대부분 7~8월 여름에 집중됐으며 10월 태풍은 3건에 불과하다. 차바는 가을 태풍의 무서움을 그대로 보여줬다. 제주도에는 하늘이 뚫린 듯 이틀간 660㎜의 물폭탄이 쏟아졌고 초속 56.5m의 기록적인 강풍이 불었다. 울산은 시간당 100㎜의 집중호우로 태화강이 범람했다.
전문가들은 가을이 되면 대기는 차가워지지만 해수면은 여전히 따뜻하기 때문에 이런 불안정성으로 인해 매서운 태풍이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문제는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이러한 가을 태풍이 앞으로 빈번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태풍은 해수 온도가 높아야 발생하는데 현재 전 세계 해수 온도는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향후 가을 태풍의 빈도와 강도가 높아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는 이유다. 우리가 새롭게 대비해야 할 재난 과제다.
지구온난화가 태풍의 방향에도 영향을 준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된다. 차바는 원래 제주도 먼 남쪽 바다를 지나 일본 규슈 쪽으로 진행할 것으로 예보됐지만 실제로는 제주도를 거쳐 남해안으로 북상했다. 태풍은 북태평양 고기압의 가장자리를 따라 이동하는데 지금쯤 남쪽으로 내려갔어야 할 고기압이 지난여름 이상폭염 등에 따른 온도 상승으로 제주도까지 확장됐기 때문이다.
결국 지구온난화에 따라 태풍의 발생 시기와 이동 경로가 변하고 있는데 기상청이 이를 제대로 간파하지 못하고 있다가 허를 찔린 셈이다. 각 지자체도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 채 재난을 당해야 했다.
정부는 당장 차바의 피해 수습과 함께 가을 태풍에 대한 대비책도 가다듬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이 지구온난화라는 새로운 환경 요인에 걸맞게 진일보한 재난 예보 시스템과 대비책을 마련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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