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국회에서 열린 ‘대한민국청소년건강포럼’에 참가한 학생이 ‘우리의 급식, 지엠오로부터 안전한가?’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아이틴뉴스 제공
“안녕~ 난 대한민국 평균 남학생, 건이야. 치느님을 찬양하고 햄버거, 피자를 사랑하지. 그리고 난 지엠오 같은 건 관심 1도(하나도) 없어. 그런 거 신경 쓰면 대체 뭐 먹고 살아 ㅋㅋ. 근데 내 여사친(여자사람친구의 준말로 애인과 구별하기 위해 생긴 신조어)은 입만 열면 지엠오 얘기라 피곤해 죽겠다.”
“안녕~ 난 대한민국 평균 여학생, 강이야. 건강에 관심이 많은 성격인데, 엄마가 공부 못해도 건강하기만 하라고 해준 덕분인가. 너네도 지엠오에 대해 건이처럼 관심 없겠지? 알고 나면 진심 열 받을 거야.”
최근 전국 초·중고생들이 만든 책자 ‘지엠오Talk-지엠오와 학교급식’(이하 지엠오 책자)에 나온 주인공 건·강이의 대화다. 책자를 보면 학생들이 이해하기 쉽게 평소 아이들이 쓰는 말투의 카톡 대화 형식으로 지엠오 식품의 문제점을 설명했다. 긴 문장으로 나열하지 않고 요즘 유행하는 카드뉴스처럼 그림과 짧은 문장으로 만들어 누구나 흥미를 갖고 읽을 수 있게 했다.
용인외대부고 3학년 김지윤양은 올해 초 고교생의학포럼 참가 준비를 하면서 지엠오(GMO)의 위험성을 느꼈다. 학교급식에도 지엠오 식품이 많이 쓰인다는 걸 알게 됐다.
“우리나라가 세계 최대 지엠오 수입국이라는 것과 연간 한 사람당 45킬로그램의 지엠오를 섭취한다는 자료를 보고 깜짝 놀랐다. 나처럼 기숙학교에 다니는 경우 학생의 선택권과 상관없이 지엠오 식품으로 만든 급식을 하루 세끼 먹는다는 게 슬펐다.”
김양은 평소 활동 중이던 인터넷 매체 ‘아이틴’ 청소년 기자단과 12개 고교연합동아리 ‘블루메드’ 친구들한테 이 내용을 알렸다. 이를 계기로 뭉친 학생들은 올해 1월과 지난달 ‘대한민국청소년건강포럼’(이하 포럼)을 직접 기획해 열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관련 활동을 하는 생물다양성한국협회에 협조를 구하고 후원받을 기관도 직접 찾았다.
지엠오 책자는 이 포럼 발제문을 바탕으로 추가 조사한 내용을 더해 완성한 것이다. 총 70여 페이지로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의 지엠오 실정, 지엠오 농작물과 가공식품, 학교급식 속 지엠오 등을 다루고 있다.
보통 이런 책자의 경우 고교생 위주로 만들지만 이 책자는 포럼에 참여했던 초·중고생 12명이 함께 목차를 짜고 각자 자료 조사를 했다. 학생들은 단순히 지엠오에 대한 이론적 내용만 정리하기보다 자신의 학교급식 실태나 유기농 급식 사례, 외국에서의 지엠오식품 제재 등 실질적인 내용을 담았다. 직접 마트에 가서 가공식품의 성분표시를 확인해 숨은 지엠오를 찾거나 정상적인 지엠오 표시 사례 등을 조사하기도 했다.
이주현(개포고 2)양은 포럼 때 급식에서의 지엠오 식품의 위험성을 알리는 주제발표를 했다. 집 근처 학교 10여곳의 누리집에서 급식 식단표를 뽑은 뒤 지엠오 식품을 사용하는지 직접 확인해 형광펜으로 표시했다. 조사 결과, 대부분의 학교 급식 90% 정도가 지엠오 식품을 사용해 만든 음식이었다.
“포럼 때 한번 발표하고 끝이 아니라 좀 더 많은 이들이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책자를 만들었다. 영어로 된 자료가 많고 전문적인 과학지식을 다룬 내용이라 분석하는 데 오래 걸렸다. 잘못된 사실을 담으면 안 되기 때문에 친구들과 함께 미국이나 다른 나라 누리집, 과학 관련 누리집을 찾아 꼼꼼히 읽었다.”
이 작업은 학생들 스스로 지엠오에 대한 위험성을 깨닫는 동시에 생활 속 식습관을 바꾸는 계기도 됐다. “5학년 2학기 실과 시간에 지엠오에 대해 배웠다. 교과서에는 유전자조작식품의 개념만 나오고 몸에 나쁘다는 건 다루지 않았다.” 백민욱(서울 숭례초 6)군은 자료를 준비하면서 시리얼, 사탕, 비타민C 등 평소 즐겨 먹던 음식에 지엠오가 들어간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자에 수입산 지엠오 감자가 쓰인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지금은 식품을 살 때 성분표시를 꼭 확인한다. 집에서 지엠오 식품인 카놀라유 대신 현미유로 바꾸고 간식도 과자보다 떡이나 감자, 고구마 등을 먹는다”고 말했다.
백군이 사는 성북구는 2010년 ‘논지엠오’(Non-GMO)를 선언하고 친환경 무상급식을 실시 중이다. 성북구 내 학교들은 유기농 쌀과 김치, 무항생제 고기 등 식재료를 공동구매하고, 일부 학교는 지엠오 콩이 들어 있지 않은 전통장 등을 따로 구매해 사용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에 학부모들도 나서 가정에서까지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식재료를 공동구매하기 위한 협동조합을 준비 중이다.
김양은 “지엠오는 안전성 또는 위험성이 명확히 검증이 안 돼 나중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모른다는 게 가장 두렵다. 엄마와 친구들에게 지엠오의 유해한 점을 알려줬더니 식용유 살 때도 원산지를 확인하고 음식 만들 때도 스팸이나 옥수수 통조림 같은 가공식품은 안 쓴다더라”고 했다.
책자의 마지막 부분에는 학생들이 바라는 개선점도 구체적으로 담았다. 식품 성분표시를 할 때 지엠오 식품임을 정확히 밝히는 ‘지엠오 완전표시제’ 제정과 이미 시험재배 중인 지엠오 벼의 상용화 중단, 학교급식에 지엠오 사용 금지 등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이양은 “단순히 ‘이게 나쁘구나’ 알고 마는 게 아니라, 이 문제점을 어떻게 개선해 달라고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야 실제 정책에 반영될 거라 생각했다. 학생들끼리 목소리를 높이는 것보다 이 책자를 본 교사나 학부모도 지엠오 문제 해결에 동참하면 힘이 실릴 것”이라고 했다.
이 책자는 아이틴뉴스(www.iteen.kr)나 블루메드봉사단(www.bluemed.or.kr)에 연락하면 누구나 무료로 받을 수 있다. 최화진 <함께하는 교육> 기자
lotus57@hanedui.com
지엠오, 학생들이 알아둘 것들
■ 지엠오가 뭔데?
유전자조작작물의 약자로, 유전자조작(재조합) 기술을 통해 재배된 작물을 뜻해. 다국적 기업 몬샌토와 노바티스가 지엠오로 개발된 콩과 옥수수를 각각 재배하며 탄생했고 1996년 지엠오를 상업적으로 개발하기 시작했어.
■ 왜 나빠?
우리나라가 지엠오를 수입하기 시작한 90년대 중반부터 자폐증·성인병·비만·성조숙증·당뇨병·소아암·갑상선암·뇌졸중 등 각종 질병률이 급증하기 시작했어. 지엠오가 진짜 무서운 건 부작용이 바로 나타나지 않아서 나중에 어떤 더 큰 피해가 생길지 모른다는 거야.
■ 다른 나라는?
현재 유럽연합(EU) 19개국이 지엠오 재배를 금지하고 있고, 러시아는 2014년 2월 지엠오 금지법을 채택해 지엠오가 포함된 모든 식품의 생산을 중단했어. 지엠오 최대 생산국인 미국도 판매되는 모든 상품에 소비자들이 쉽게 알아볼 수 있게 지엠오를 의무적으로 표시하는 법안을 시행 중이야. 또 일본은 지엠오를 가축 사료용으로만 사용하도록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어.
■ 지엠오 농작물, 어떻게 알아?
우리나라는 옥수수와 콩, 유채와 면화 등 다양한 지엠오 농작물을 수입하고 있어. 지엠오 가공식품은 옥수수의 경우 ‘액상과당, 올리고당, 물엿, 과당, 포도당’, 콩은 ‘기름, 간장, 콩 레시틴(유화제), 대두, 탈지대두’, 면화는 ‘면실유’, 유채는 ‘카놀라유(유채유)’ 등으로 표시돼. 대부분의 가공식품이나 수입산 원재료에 지엠오 식품이 들어간다고 볼 수 있지.
참고: 지엠오 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