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딩 선배들이 말하는 내 전공, 이 책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지음, 김태훈 옮김, 에이트포인트 펴냄, 2011년
최근 위안부 합의를 놓고 ‘한국 정부의 굴욕적 합의’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할머니들의 상처는 돌아보지 않은 채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했기 때문이죠. 누군가는 한국 정부의 빈곤한 외교력을 지적합니다. 외교는 국가간의 협상입니다. 그리고 협상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방법론입니다. 국민이 원하는 것을 얻어다 줘야 할 정부가 얻어야 할 것을 아무것도 얻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적어도 한국 정부처럼 협상을 못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스튜어트 다이아몬드의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는 비즈니스 협상에 관한 책입니다. 비즈니스를 떠나 일상에서 활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협상법과 사례도 풍부하게 실려 있습니다. 제가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게 본 챕터는 ‘표준과 프레이밍에 대하여’입니다. 상대의 표준을 이용하는 방법은 매우 막강한 협상도구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표준은 상대가 스스로 정한 표준입니다. 사람들은 ‘표준’이라고 부르는, 스스로 정한 약속을 어기는 모습을 남에게 보이기 싫어합니다. 그래서 과거에 한 말이나 약속에 대해 물어보면 사람들은 대체로 이를 따르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과거의 말과 다른 행동을 하는 정치인들이 쉽게 비난의 대상이 되는 이유입니다.
프레이밍은 상대에게 정보를 제시하는 방법을 말합니다.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특정한 표현으로 말하는 것이 프레이밍의 핵심이죠. 제품의 특징을 한 줄로 표현한 광고문구와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청년예술인 홍승희씨는 위안부 졸속합의를 지지하는 어버이연합 회원들 앞에서 ‘대한민국효녀연합’의 이름을 내걸고 “애국이란 태극기에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물에 빠진 아이들을 구하는 것입니다”라는 문구를 높이 들었습니다. ‘애국’이라는 표준과 개인의 인권을 하나의 프레임으로 묶어서 제시한 것이죠. 홍씨는 “이날 어버이연합 회원들이 이 문구 앞에서 눈빛이 흔들렸다”고 말했습니다.
저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학보사에서 수습기자로 활동을 시작한 지 한 달이 채 안 됐을 때였습니다. 우리 학교 수의대에 7년째 장학금을 기부하는 동문의 인터뷰를 따오라는 팀장의 지시를 받았습니다. 단과대학 행정실에서 전화번호를 받아 연락을 시도했습니다. 그 동문은 인천에 사는, 60대 수의사였고 부끄러움이 많았습니다. 그는 “그저 형편 어려운 후배들이 편하게 공부하길 바라는 마음에 기부할 뿐이지, 제가 돋보이거나 자랑하려고 하는 게 아니에요. 인터뷰는 하고 싶지 않아요”라고 완고하게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다시 정중히 요청했습니다. “선배님께서 후배들을 사랑하시는 마음은 잘 알겠습니다. 저도 나중에 선배님처럼 성공해서 후배들을 위해 힘쓰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저는 저희 후배들이 선배님에 대한 기사를 읽으면 저희도 나중에 또 다른 후배들을 위해 장학금과 더 많은 혜택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선배님께서 방금 인터뷰를 거절하셔서 참 아쉬웠습니다. 지금이라도 다시 한 번 생각해주시면 안 될까요?” ‘후배 사랑’이라는 표준과 ‘그보다 더 큰 확산 가능성’으로 프레이밍한 것이죠. 그분은 잠시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고, 그날 저녁 저는 전화 인터뷰를 따낼 수 있었습니다.
잘 배운 협상법은 위 사례처럼 정치, 언론뿐만 아니라 모든 전공을 막론하고 생활 곳곳에서 도움이 됩니다. 그 가운데서도 타인을 설득하는 일이 자주 발생하는 경영학과 커뮤니케이션 분야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에게 이 책을 특히 추천합니다.
정상석(대학언론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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