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추석에는 성적 이야기 대신, 책으로 아이들과 추억을 나눠보는 건 어떨까? 사진은 한 가족이 둘러앉아 함께 책을 읽는 모습이다. 김청연 기자
아이들도 명절이면 어김없이 다가오는 공포가 있다.
‘공부는 잘하니?’ ‘서울대 간 사촌 ○○ 반만 닮아봐라.’ ‘수시 원서는 어디 썼니?’
오랜만에 모인 가족·친지 간 대화라곤 성적 얘기, 재테크 얘기뿐이다. 이번 추석만큼은 명절 스트레스-대화 단절 악순환의 고리를 깨고, 책을 통해 소통하고 추억을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독서전문가 3인의 조언을 통해 부모-자녀, 명절에 모인 조부모와 친지들이 부담 없이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눌 만한 책을 정리해봤다.
■ 세대 아우를 만한 그림책 놓고 공감하기 - SP교육연구소장 장선화
“긴 책은 다 같이 읽기 힘들잖아요. 사진 한장을 보면 그 안에 담긴 추억과 이야깃거리가 있듯, 할머니·할아버지와 함께 공감하며 볼 수 있는 그림책들은 각자의 이야기들을 꺼낼 수 있는 추억의 사진 같은 구실을 하죠.”
장 소장은 꼭 추천도서가 아니더라도 아이가 너무 재밌어해 할머니
나 할아버지와 함께 보고 싶어 하는 그림책이 있다면 그걸 함께 읽는 것도 권했다.
그가 추천한 그림책 <아카시아 파마>는 파마 도구가 귀했던 시절 잎을 다 뗀 아카시아 줄기로 머리를 꼬아 마치 파마한 것처럼 머리카락을 구불구불하게 하였던 사연을 담은 책이다.
“한번은 이 책을 읽은 큰애가 책 속 내용처럼 파마가 되는지 궁금해해서 집에서 할 수 있는 젓가락 파마(달군 쇠젓가락에 머리카락을 말아 그 열로 컬을 만드는 것)를 해주기도 했어요. 가느다란 젓가락으로 말았더니 생각보다 컬이 엄청 뽀글뽀글하게 나왔어요. 그 상태로 외갓집에 가게 됐는데, 외할머니가 아이를 보자마자 ‘어머, 너 젓가락 파마 했구나!’ 하고 단박에 알아채셨죠. 그러고는 ‘할머니도 옛날에 엄마 몰래 젓가락으로 파마하다가 여기 목 다 데고 그랬어’ 하며 목 뒤에 일자로 덴 상처 자국을 보여주셨죠.”
장 소장은 “이걸 계기로 아이와 할머니가 한참을 얘기하는 걸 보고, 그림책이 세대를 뛰어넘는 소통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며 “당시 우리 아이는 초등 2학년이었지만, 요즘은 여중생들도 고데기로 머리하고 외모에 관심 많으니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소재라고 본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덧붙였다. “가족이라도 서로 느끼고 통하는 게 있어야 애틋한 마음이 생기는 법이니까요. 이번 명절에는 할아버지·할머니와 가족들의 스토리로 추석을 물들였으면 좋겠어요.”
■ 초등 고학년, 전통문화 책 펼쳐봐도 좋아
- 독서교육전문가 임성미
임씨는 “어떤 시기에 어떤 책을 보느냐가 관심이나 동기를 유발하는 데 중요하다”며 “시기적으로 추석이라는 명절을 계기로 아이들이 명절의 의미를 찾아보고 독서로 관심 분야를 찾아본다면 그만큼 효과 좋은 게 없다”고 했다.
그가 추천한 책은 <주강현의 우리 문화>. 이 책을 추석에 아이와 함께 본다면 명절에 왜 이 책을 읽어야 하는지 이야기부터 나누는 게 좋다. 그다음 표지와 책 제목, 목차에 나온 전통문화들 가운데 내가 알고 있는 게 무엇인지 등을 얘기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예를 들어 ‘제기차기’라면 부모가 어린 시절에 친구들과 제기를 만들고 놀았던 기억을, 아이는 고궁에서 제기차기 체험하며 느꼈던 걸 얘기하면 된다.
마지막으로 작가가 누군지 알아보고, 머리말을 읽어 작가의 의도를 살핀다. 임씨는 “이때 공부시키듯 읽는 게 아니라 궁금한 걸 묻고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자연스럽게 질문을 건네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또한 그는 “비문학 독서는 소설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연결되어 있지 않으므로, 한 번에 다 읽는 것보단 목차를 살피며 흥미가 생기는 분야를 찾아보는 게 좋다”고 했다.
“‘장승’에 관심 간다면 다른 장승 책이나 인터넷에서도 자료를 찾아볼 수 있어요. 책을 읽은 뒤에는 엄마나 주변 사람에게 ‘외국인에게 장승을 소개하기’처럼 말로 설명해보는 기회를 주면 아이는 ‘장승 박사’가 됩니다.”
■ ‘엄마도 그랬었어’…시집으로 마음 다독이기 - 구산중 사서교사 허우정
“이번 추석에는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 대신, 앞으로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것’인지,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근원에 관해 얘기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허 교사가 추석 연휴 추천도서 목록을 건네며 덧붙인 말이다. 보통 추석 연휴는 시기상 중간고사를 앞두고 있다. 우리나라 중·고교생들은 추석이라도 학원수업 때문에 일찍 돌아와야 하거나, 연휴에 하는 특강으로 밀린 공부를 몰아서 해야 한다. 150쪽 안팎의 짧은 분량의 책조차 읽기 힘들 정도로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그는 “오가며 틈틈이 읽을 수 있도록 끊어 읽어도 무리가 없고, 쉽게 읽을 수 있지만 서로 공감이 가능한 책들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청소년기 아이들과 명절에, 그것도 ‘책’을 주제로 이야기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엄마가 책을 언급하는 순간 아이들은 ‘나한테 또 뭘 강요하려고 그러나’라며 의심의 칼날부터 세운다. 허 교사는 “‘우리 책 읽고 함께 토론하자’ 식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시집 <난 빨강>을 추천하며 “‘꼭 그런다’라는 작품에 보면 ’두 시간 공부하고/잠깐 허리 좀 펴려고 침대에 누우면/엄마가 방문 열고 들어온다 (…) 수학 문제 낑낑 풀고 나서/잠깐 머리 식히려고 컴퓨터 켜면/엄마가 방문 열고 들어온다 (…)’는 구절이 나온다. 자신이 재밌게 느낀 표현을 읽어주며 ‘이 부분 너무 웃기지 않니? 나도 어릴 때 엄마가 꼭 이럴 때만 들어왔는데’ 하고 자신의 경험을 먼저 툭 던져주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이은애 <함께하는 교육> 기자
dmsdo@hanedu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