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희 교사가 동티모르 교사들과 함께 ‘전동기의 모든 것’을 주제로 수업하고 있다. 사랑의 과학나눔터 제공
‘사랑의 과학나눔터’(이하 과학나눔터) 교사들은 2007년부터 동티모르 교사들과 수업나눔 세미나를 진행해오고 있다. 학생들에게 과학수업 봉사를 하다 현지 요청으로 대상이 교사들로 바뀌었다. 처음엔 소규모 세미나로 이뤄지던 행사가 지금은 ‘공식 교사 연수’로 발전했다.
현재까지 총 80여명의 한국 교사들이 참여해 물 분자 모형이나 빛 합성장치 만들기, 물방울 현미경, 전동기 등 80여개의 주제를 다뤘다. 입소문을 타고 ‘인천과학사랑교사모임’, 전남의 ‘화학을 사랑하는 모임’, 부산의 ‘어메니티’ 등 다른 모임 교사들도 합류했다. 한국 교사들이 사전에 세부 수업 주제와 진행 방식을 요약한 연수 자료집을 만들어 보내면 동티모르에서 영어와 테툼어 버전으로 제작했다.
방학 동안 선진국을 방문해 그곳의 교육 시스템을 배우는 교사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자비로 개발도상국을 찾아 수업세미나를 열거나 관련 기관을 통해 현지 교사와 교류를 나누는 교사들도 있다. 우리의 교육이 우월하다고 일방적으로 소개하거나 문화 이해 차원이 아닌 특정 교과나 주제로 사례를 나누며 서로 영감을 받고 더 나은 수업을 함께 고민했다.
이화은 교사(인천대화초)가 베트남 교사들에게 세계시민교육 사례를 발표하고 있다. 월드비전 제공
올해 과학나눔터 교사들은 지난 7월25일부터 2주 동안 바우카우와 푸일로로 두 지역에서 세미나와 학생들을 위한 실험체험부스를 열었다. 동티모르 교사 100명을 대상으로 한 수업 자료를 준비하다 보니 한국 교사들의 짐은 상당했다. 340킬로그램의 짐을 부치고도 초과운임을 덜 내기 위해 교사들이 책을 나눠 들고 비행기에 탔다.
교사들이 특히 신경 쓴 부분은 수업에 쓰이는 실험재료 대부분을 현지에서 쉽게 구할 수 있게 한 것이었다. 동티모르는 실험에 쓰이는 예산이 따로 없어 학교에 실험실도 갖추지 못하고 칠판에 이론을 적어 알려주는 식으로 수업했다. 이런 사정을 안 한국 교사들은 성능 좋은 최신 기구로 완벽한 실험을 보여주기보다 현지 교사들이 수업에서 직접 활용할 수 있는 내용으로 꾸리기로 했다. ‘현란한 수업’보다 ‘지속가능한 수업’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교사들은 현지에 도착하자마자 마을을 돌아다니며 실험재료에 적당한 것을 물색했다. 이선희 교사(서울 인헌중)는 “‘천연지시약 만들기’를 주제로 한 수업에 필요한 재료를 구하다 ‘잔다’라는 꽃을 알게 됐다. 우리의 나팔꽃처럼 주변에 많이 있는 보라색 꽃이다. 시장에서 구한 자색고구마도 실험에 실제 사용했다. 한국에서도 천연지시약 만드는 수업을 진행할 때 보라색 양배추를 쓰기도 한다”고 했다.
나유진 교사(서울 여의도여고)는 과학체험부스를 운영해 현지 중·고등 학생들과 에어로켓을 만들어 날리는 실험을 했다. “한국에서였더라면 큰 모형 에어로켓 구조물을 만들어 준비했을 텐데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찾다 빨대를 떠올렸다.”
한국과 베트남 교사들이 각국의 교육 시스템과 교사의 구실 등을 주제로 한 사례를 공유하고 있다. 월드비전 제공
‘빨대 로켓’ 만드는 법은 간단했다. 빨대 두 개를 연결한 뒤 한쪽 빨대 끝을 고무찰흙으로 막고 나머지 한쪽 끝을 입으로 불어 고무찰흙으로 막은 빨대를 날리는 것이다. 나 교사는 “학생들이 처음에는 힘 있고 길게 빨대를 부는 게 익숙지 않아서 어려워했다. 멀리 날리기, 로켓으로 조준해 목표물 맞히기 등 게임 형식으로 진행했는데 잘하는 친구들이 노하우를 전해주자 처음에는 소극적인 아이들도 재밌어했다”고 말했다.
동티모르 교사들은 전동기 수업 때 썼던 폭이 좀 넓은 생고무밴드를 구하기 어렵다며 자신의 고무 슬리퍼를 벗어 신발 바닥에 전동기를 꽂아 직접 돌리는 아이디어를 내거나 애초 한국 교사들이 진행한 실험 순서를 바꿔 설명하는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나 교사는 “동티모르 교사들은 토론에 익숙했고 실험 주제 하나를 두고 왜 그런지 계속 대화했다. 한국에서도 교재 연구나 실험 설계를 할 때 교사들끼리 좀더 활발한 논의가 오간다면 실험이나 설명 방식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올 거 같다”고 했다.
국제구호개발 엔지오(NGO)인 월드비전은 4년 전부터 초중고 교사들을 대상으로 세계시민교육 사례 공모전을 열고 있다. 교육 현장에서 진행한 세계시민교육 내용과 학생들의 변화 모습 등을 정리해 응모하는 내용이다. 올해 우수 사례로 꼽힌 3명의 교사는 지난달 15일 처음으로 베트남 현지 학교와 월드비전 사업장 등을 방문했다. 두 나라 교사들이 세계시민교육 사례를 공유하고 교사의 구실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베트남 교사들은 무엇보다 학생 참여를 끌어내는 구체적인 수업 방법을 궁금해했다. 하지만 한국 교사들은 “특정 수업 모형만이 정답이 아니기 때문에 정해진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이후 양국 교사의 대화는 아이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각자의 교육 방향을 공유하는 식으로 깊어졌다”고 했다.
정용주 교사(서울 염경초)는 “평소 하브루타나 거꾸로교실, 배움의 공동체 교수법 등을 활용한 프로젝트 수업을 나름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방식보다 중요한 건 내용이었다”고 했다. “베트남 시장에 가니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고기를 그대로 사고팔고 있더라. 현지인들은 더럽다기보다 더 신선한 상태로 고기를 판매하기 위함이라 여겼다. 냉장고를 사용해 전기를 낭비하거나 가축을 마구잡이로 도축하지 않는 그들을 보며 우리보다 지구 환경에 더 기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업 때 이 내용을 알려주며 베트남에서 배워야 한다고 이야기할 계획이다.”
이화은 교사(인천 대화초)도 처음에는 단순히 그들이 우리보다 못할 거라는 선입견을 가졌다. 하지만 곧 경제적인 수준이 낮아도 고민하는 의식 수준은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베트남 교사도 우리처럼 학생들이 지식을 많이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삶 속에 적용하는 역량을 키울 수 있게 노력했다. 아이들에게 실제 살아가는 힘을 알려주기 위해 어떤 방향의 교육이 필요한지 의견을 나누며 두 나라 교사가 함께 고민하는 거 자체가 세계시민교육의 일환이라고 생각했다.”
정 교사는 “세계시민교육을 못사는 나라에 돈을 기부하는 거로만 아는 이들도 있다. 월드비전 사업장을 둘러보니 우리의 ‘마을 만들기’ 사업과도 비슷했다. 지속가능한 자립을 위해 현장의 퍼실리테이터(조력자)를 제대로 양성하는 게 중요하다는 점”이라며 “단편적인 수업 기술을 알고 끝나는 게 아니라 지속해서 교류하며 교사들도 세상 보는 눈을 넓힐 필요가 있다”고 했다.
최화진 <함께하는 교육> 기자
lotus57@hanedu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