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미산 어린이집 아이들이 한상직 소장과 함께 색색의 끈을 이용해 거미집을 짓고 거미줄 놀이를 하고 있다. 한상직 소장 제공
혜화여고 3학년 여의주양은 지난해 수학 동아리에서 ‘생태수학’이라는 걸 처음 접했다. 이론 위주로 공부했던 기존의 수학 수업과 달리 자연 속에서 식물이나 곤충 등을 직접 관찰하거나 손으로 교구를 만들며 원리를 깨닫는 게 재미있었다.
“우드락에 이쑤시개를 꽂은 뒤 줄을 이어 거미집을 직접 만들면서 ‘황금비’ 개념에 대해 배웠다. 솔방울을 관찰해 보면 차례로 돌아가며 같은 모양을 이루고 있는데 이것도 황금비랑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공식을 암기해 문제를 푸는 데만 집중해 수학을 어려워했던 친구들도 잘 참여했다. 여양은 “불규칙한 질서로 이루어진 모양들이 반복되다 보면 결국 규칙이 생긴다는 ‘프랙털 이론’도 생태수학으로 배워보고 싶다. 실제 그런 사례를 자연 속에서 찾아보면 이론을 쉽게 깨달을 수 있을 거 같다”고 했다.
‘복잡하고 어려운 수와 숫자’, ‘공식 외우기, 문제풀이 반복’. 보통 학생들이 수학 과목을 떠올렸을 때 드는 생각이다. 그만큼 수학은 학생들에게 쉽지 않은 과목이다. 오죽하면 ‘수포자’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몰라도 사는 데 지장 없는 수학적 계산법까지 굳이 왜 배워야 하나 생각하는 학생들도 많다.
혜화여고 학생들이 했던 활동은 한상직 창의공작소 소장이 진행한 생태수학 수업이었다. 그의 수업은 조금 특별하다. 수열을 배우는데 학생들과 밖에 나가 꽃잎의 개수를 센다. 앤슈리엄(안투리움)은 1개, 달개비꽃은 3개, 복숭아꽃은 5개 등 꽃의 종류에 따라 꽃잎의 개수도 다르다. 꽃잎이 4개로 보이는 개나리는 통꽃이라 사실상 꽃잎이 하나다.
공식 암기·문제풀이 위주 수학 부담스러워하는 학생들 많아
꽃잎 개수나 거미집, 꿀벌 등 식물·곤충 등 관찰, 수학 원리 알아가 자연 속 인과관계·패턴 등 해석하며 생활밀착형 수학공부 할 수 있어
생물 시간도 아닌 수학 시간에 꽃잎 관찰은 왜 할까. 한 소장은 이 과정을 통해 학생들에게 자연스레 ‘피보나치수열’을 설명한다. 이 수열은 앞의 두 수를 합한 게 뒤의 수가 되는 것을 말한다. 가령, 1과 1을 더하면 2가 되고 뒤에 나온 숫자인 1과 2를 더하면 3, 2와 3을 더하면 5, 8, 13… 식으로 수가 배열되는 것이다.
“꽃잎의 개수를 살펴보면 1·3·5·8개로 피보나치수열의 순서에 맞는 꽃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 규칙이 항상 맞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수의 꽃잎은 이 규칙을 따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우리가 꽃잎이라고 알고 있는 것은 사실 꽃잎을 싸고 있는 포엽이 변해서 꽃잎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런 사실도 함께 설명한다.”
그는 “고교 2학년 교과서에 등차수열, 등비수열, 극한 등이 나온다. 이 부분에서 언급되는 피보나치수열을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활동을 통해 쉽게 이해하도록 연계한 내용”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한상직 소장이 진행한 생태수학 프로그램 시간에 혜화여고 수학동아리 학생들이 비눗방울을 이용해 육각형 모양의 꿀벌집을 만들어보고 있다. 한상직 소장 제공
성미산학교 교사이기도 한 한 소장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수학’을 고민하다 5년 전부터 성미산학교와 외부 강의에서 근처 산이나 숲을 활용한 생태수학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생태수학이라는 전공 분야가 따로 있지는 않다. 보통 동물의 성비가 바뀌는 특징이나 표범무늬, 얼룩무늬가 어떻게 생기는지 등 생태계의 패턴을 분석할 때 복잡한 수식이 쓰인다. 이런 생태 분야에서 사용하는 수학은 보통 대학원 석사 과정 이후로 이뤄지는 전문적 연구 분야다. 이와 별개로 수학을 싫어하는 애들한테 쉽게 접근해 수학을 재밌게 알려주고 싶었다.”
학생들은 특정 주제로 진행한 생태수학 수업을 듣고 직접 탐구보고서를 쓰기도 한다. 한 소장은 성미산학교와 외부 강의를 맡은 학교에서 한 학기 내내 꿀벌과 거미를 주제로 수업하기도 했다. 가령, ‘꿀벌 프로젝트’는 학생들의 의문점에서 시작한다. ‘꿀벌이 피보나치수열에 따른 색깔의 꽃잎을 더 좋아하는지(꽃잎의 수를 따져서 꽃을 찾는지)’, ‘특정 색깔의 꽃을 가장 좋아하는지’ 등의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학생들은 국립생물자원연구소와 양봉업체를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그룹을 나눠서 잎의 수가 다른 꽃잎과 다양한 색깔의 꽃을 벌집 앞에 갖다놓고 관찰도 했다.
정확한 상관관계를 밝혀내지는 못했지만 양봉협회 회장에게 궁금한 점을 묻고 스스로 꿀벌 연구로 노벨상을 받은 오스트리아 동물학자 카를 폰 프리슈의 책을 찾아 읽으며 정찰벌이 밀원(벌이 꿀을 빨아 오는 원천)의 위치를 춤으로 알려준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이런 사실을 기초로 프로젝트 과정을 담은 한 편의 보고서도 만들었다.
수업에 참여했던 고1 전이주양(성미산학교)은 “이 수업은 벌이 집 짓는 영상이나 개미굴 영상을 직접 찾아보고 자연 속에서 수학 공식을 익힐 수 있다는 점이 색달랐다.
비눗방울을 이용해 벌집 모양 육각형을 직접 만들어 벌집이 어떤 구조로 이뤄졌는지 알고, 거미집의 전체 크기를 재보고 거미의 크기나 종류를 추정해보는 활동을 하며 탐구심도 길러졌다”고 했다.
“꽃잎을 관찰하며 피보나치수열도 처음 접했다. 교과서보다 생태수학을 통해 공식을 이해하는 게 더 수월하다. 수업 때 문제풀이까지 적용하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거 같다. 생태수학을 하며 평소 관심 없던 자연에까지 관심을 갖게 됐다.”
생태수학을 가르칠 때 ‘MIC’ 수업도 적용할 수 있다. 맥락 기반 수학(MIC: Mathematics in context)은 현실의 맥락 속에서 수학 문제를 풀고 토론하며 수학적 사고를 향상하는 교육체계로 교사가 지식을 전달하는 기존의 수업과 달리 ‘학생-과정-미션 중심’으로 이뤄진다. 교사가 미션을 던져주고 학생 스스로 지식을 찾아 재구성하는 방식이다.
보통 수학은 딱 떨어지는 정답을 요구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연 현상을 관찰하며 스스로 인과관계를 찾고 일정한 규칙이 뭔지 고민할 수도 있다. 한 소장은 MIC 방식을 적용한 생태수학 추론 수업 주제를 직접 정리했다. 정확한 답을 내기보다 그 결과를 어떻게 도출해 냈는지를 중요시하며, 학교는 물론 부모와 자녀가 함께 이야기하며 충분히 다뤄볼 만한 내용이다. 예를 들어, ‘네모난 과일은 왜 없을까?’(원과 구), ‘방사형의 건축물 거미집’(평면의 최적 활용), ‘알을 굴려보자’(대칭과 회귀), ‘해바라기 씨앗의 배열과 황금각’ 등이다. 시작 단계에서는 움직이지 않는 식물이나 채집이 가능한 곤충을 관찰하는 게 좋다. 꽃의 꽃잎을 관찰하더라도 초등 저학년은 꽃잎 개수의 특징을, 중학생은 식물의 성장 과정이나 패턴을, 고등학생은 수열을 배우는 등 학생 수준에 따라 내용을 달리할 수 있다.
한 소장은 “현 교육과정 속 수학은 중학교 1학년 내용을 모르면 2학년 내용을 이해할 수 없다. 이에 반해 생태수학은 사전지식이 적어도 얼마든지 배울 수 있다. 자연에서 수학적 원리를 발견하고 관찰을 통해 패턴과 인과관계도 찾아보며, 생태 환경 감수성까지 키울 수 있다”며 “아이들에게는 입시를 위한 문제풀이보다 삶을 해석하는 수학이 더 필요하다. 당장 집 밖으로 나가서 꽃과 거미집을 찾아 자세히 들여다보라”고 했다.
최화진 <함께하는 교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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