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서울 중랑구 동성유치원에서 원묵중 동아리 ‘원묵 히어로' 학생들이 아이들에게 아동범죄 예방 인형극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2일. 서울 중랑구 동성유치원. 5살부터 7살 아이들 45명이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이들 앞에 놀이터가 그려진 종이판과 사람 모양의 인형을 든 중학생 다섯 명이 나타났다. 곧 어린아이와 어른 역을 맡은 ‘언니들의 인형극’이 시작됐다.
“애들이 저기 놀고 있군 . 저 애들을 데려가야겠어 . (아이 인형에게 다가가 ) 애들아 , 사탕 먹으러 갈래 ?”
“네 .”
“안 돼 . 엄마가 모르는 사람 따라가지 말라고 했잖아 .”
“그냥 사탕만 얼른 먹고 오면 되잖아 .”
“(유치원생들을 보며 ) 얘들아 , 너희는 어떻게 생각해 ?”
“(여기저기서 ) 안 돼 ~~~~”
“그럼 , 도움을 받을 수 있게 경찰 아저씨를 불러보자 .”
“(다 같이 ) 경찰 아저씨 ~~~”
지난 2일 서울 중랑구 동성유치원에서 원묵중 동아리 ‘원묵 히어로' 학생들이 아이들에게 아동범죄 예방 인형극을 보여주고 있다.
학생들이 걸그룹 트와이스의 ‘치어업’이란 곡을 개사해 알려주자 아이들은 “안 돼요 싫어요 하지 마세요 아저씨 쉽게 따라가면 안 돼~”라고 하며 곧잘 따라 불렀다. 이날 인형극을 보여준 학생들은 근처 원묵중 ‘원묵 히어로’ 동아리 부원들이다. 아동범죄 예방용 어린이 인형극을 기획해 대본 쓰기, 소품 제작, 유치원 섭외까지 직접 진행했다.
방학을 맞아 학생들의 동아리 활동도 늘고 있다. 예전 교내 활동 위주로 이뤄지던 것이 학교 울타리를 넘어서고 있다. 학생들은 동아리에서 자신의 진로를 찾거나 친구들과 관계 맺기를 배운다. 기억에 남지 않는 그저 그런 동아리 활동이 아닌, ‘내’가 중심이 돼서 지역사회 문제점을 직접 해결하고 나서기도 한다.
방학 맞아 동아리활동 늘어 교내활동서 지역사회로 확장도
안전 소재 인형극으로 유치원 방문 사라지는 해녀 문화 살리고자 물옷·도구 등 업사이클링해 판매
신성여고 학생들이 곶자왈 지키기 활동을 위해 벼룩시장을 열어 직접 만든 향초를 팔고 있다. 신성여고 제공
원묵 히어로는 청소년과 교사를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하는 소셜벤처 ‘어썸스쿨’의 히어로 프로젝트를 통해 탄생한 동아리다. 학생들은 단발성 프로젝트로 끝내지 않고 아예 인형극 동아리를 꾸려 활동을 넓혀가고 있다. 장현빈양은 “아이들을 좋아하고 인형극에 관심 있는 친구들이 모였다. 올해도 범죄 예방은 물론 위안부 문제와 유관순·안중근 등 독립운동가 주제의 인형극을 새롭게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지섭 어썸스쿨 대표는 “이 프로젝트는 ‘난 아무것도 아니다’, ‘세상 속 작은 존재’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주체성을 갖고 직접 행동하며 사회 구성원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존재라는 걸 느끼는 게 핵심”이라며 “경쟁에 매몰돼 자기 자신만 알던 아이들이 활동을 통해 ‘협업’도 자연스레 배운다”고 했다.
한선아양은 “일반 동아리는 교내 활동 위주로 단순히 친구를 사귀거나, 아니면 자기만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한다. 교사가 체험 장소를 예약해주면 그냥 따라가기만 할 때도 많다”며 “이 동아리는 우리가 활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며 다른 사람을 위해, 그동안 해보지 못한 사회 경험까지 한다는 점에서 의미있다”고 했다.
어썸스쿨은 현재 아산나눔재단과 함께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히어로스쿨’을 전국 100여곳에서 진행 중이다. 지역의 경우 학생 참여 프로그램이 부족하기 때문에 지역 학교도 절반 가까이 선정했다.
신성여고 학생들이 해녀들이 버린 물옷을 구해다 주문제작한 가방과 팔찌. 신성여고 제공
신성여고 학생들이 해녀들이 버린 물옷을 구해다 주문제작한 가방과 팔찌. 신성여고 제공
이 가운데 한 곳인 제주시 영평동에 있는 신성여고 경제동아리는 기존 동아리와 조금 다르다. 창업경진대회를 준비하거나 경제 분야 소논문을 쓰기보다 학생들이 직접 몸으로 부딪쳐 경제를 배우고 지역의 특수성을 살려 활동한다. 특히 자신들과 뜻이 맞는 단체를 돕거나 기존 단체 활동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응용하기도 한다.
이세빈(18)양은 “제주도 관광지를 단순히 홍보하기보다 함부로 개발되는 곳을 보호하는 활동을 하기로 했다. 자료를 찾다 ‘곶자왈공유화재단’을 알게 돼 연계 프로젝트를 짰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과학교사에게 향초 만드는 법을 배운 뒤 교내 벼룩시장(플리마켓)을 열어 직접 만든 향초를 팔고 곶자왈 지키기 내용도 홍보했다. 이렇게 마련한 수익금으로, 재단이 자발적 모금을 통해 사유지 곶자왈을 사들이자는 취지로 만든 ‘곶자왈 에코증권’을 샀다.
현재 이들은 ‘해녀 살리기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수가 점점 줄어드는 해녀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그들이 입고 버리는 물옷(물질할 때 입는 잠수복)과 도구를 재활용해 가방과 팔찌를 만들어 파는 것이다. 가방끈은 근처 폐차장에서 안전벨트를 구해다 공방에 주문 제작했다.
수도권 학생에 비해 지역의 학생들은 프로그램 참여 기회가 많지 않다. 꼭 같은 지역에 있지 않더라도 먼저 관심 있는 분야의 기관을 적극 찾아 나서는 것도 방법이다. 신성여고 광고·교육동아리 학생들은 아동학대 관련 활동을 하려고 인터넷을 뒤지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을 알게 됐다. 재단에 먼저 연락해 아동학대 캠페인 활동을 하고 싶다고 하자 재단은 학생들에게 교육을 해주고 아동학대 방지 관련 서명운동을 할 때 사람들에게 나눠줄 기념품도 제공해줬다. 학생들은 이후 에이드 음료를 팔아 마련한 수익금을 아동학대 피해자 치료비에 쓰도록 재단에 기부했다.
이양은 “지역에도 청소년 대상 프로그램이 다양했으면 좋겠다. 히어로스쿨처럼 두 달 동안의 긴 프로젝트를 한 것도 처음이었다. 동아리 시간도 많지 않아 방과후 수업이나 야간자율학습을 빠져야 해서 힘들 때도 있었지만 활동이 끝난 후 오히려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들은 활동 사례로 소셜벤처 경연대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이양은 “자기소개서에 활동 내용을 녹여 쓰거나 학교생활기록부의 동아리 활동 사항에 적을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 프로젝트를 사람들에게 알려서 관심을 이끌어내고 도움을 받고 싶어 대회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조창범 진로진학부장은 “학생부종합전형 비율이 높아지면서 교사들도 이에 대비해 동아리 등 교내 활동을 늘려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 하지만 학생들이 스펙만 보고 의무적으로 활동하면 자신도 손해고 남에게도 피해를 준다. 먼저 이 문제를 왜 고민하고 해결하려고 하는지 등 학생 스스로 활동 자체의 의미를 찾는 게 중요하다. 이걸로 대학 갈 수 있다는 것은 차후의 문제”라고 했다.
어썸스쿨 외에 학생들이 문제점을 포착해 스스로 해결점을 찾아 나가게 하는 아쇼카재단의 ‘체인지메이커’ 프로그램이나 기업가정신을 기반으로 한 창업 교육을 지원하는 ‘오이시’(oec) 등의 기관도 있다. 역사나 환경, 국제 등 관심 분야가 뚜렷한 학생이라면 관련 단체를 찾아 직접 할 수 있는 활동 등에 대해 도움받을 수 있다. 최화진 <함께하는 교육> 기자
lotus57@hanedu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