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은 부모와 자녀가 함께 영화를 보며 추억을 만들기 좋은 기회다. 집이나 영화관을 벗어나 야외로 나가 영화를 보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 될 수 있다. 한국영상자료원 찾아가는 영화관 제공
“내가 마치 영화 속에 들어간 것 같았다. 주인공의 감정이 이해되자, 주변 사람들이 달라 보였고 소외된 계층을 비롯해 세상과 삶을 바라보는 태도도 바뀌게 됐다.”
올해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1학년에 입학한 권광민씨의 말이다. 중학교 때 영화 <자전거 도둑>을 시작으로 영화를 보고 처음 진지하게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권씨는 당시 사춘기를 혹독히 겪었다. 그의 아버지 권혁재씨는 그때를 떠올리며 “사춘기 때 아들은 말문을 거의 닫고 지냈지만, 아이가 영화를 보고 쓴 글을 통해 간접적으로 아들의 생각을 알게 됐고, 아이에 대한 믿음이 생겨 기다릴 수 있었다”고 전했다.
여름방학을 맞아 아이와 함께 영화관 나들이나 집에서 영화 감상을 계획하는 부모들이 많다. 특히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들은 영화를 계기로 아이들과 대화의 물꼬를 트고 싶어 한다. 하지만 부모의 목적 위주로 영화에 접근할수록 아이들은 더 부담으로 받아들인다.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영화 보는 시간을 즐겁고 재밌는 시간’으로 느끼는 게 가장 먼저”라고 입을 모았다.
더운 날 극장 나들이 하는 가족 많아 스마트폰 놓지 않는 아이들한테 영화는 가족과 함께할 또다른 놀이
“주인공 어땠지?” 등 질문 나누며 아이 스스로 줄거리 곱씹게 하거나 ‘영화노트’에 감상 한 줄 적게 해봐
■ 입문자는 고전 명작부터 시도해봐
영화는 무엇을 볼지 고르는 게 가장 어렵다. 전문가들도 ‘사실상 영화를 선택하는 데 정답은 없다’고 말한다. 집에서 디브이디(DVD)나 아이피티브이(IPTV)로 고전을 찾아보거나 영화관에서 최신 개봉작을 보는 것 둘 다 좋다.
다만 고전 명작일수록 주인공의 감정선이 복잡하지 않고, 인류보편적인 물음 등을 던지는 작품이 많다. 재미와 감동을 함께 담고 있어 대화를 이어가기 수월하다. 이런 영화를 찾을 때 인터넷 평점을 참고하는 것도 방법이다. <영화를 함께 보면 아이의 숨은 마음이 보인다> 저자인 창원 광려초 차승민 교사는 “‘네이버 영화’에서 전체 영화를 평점순으로 정렬해, 개봉한 지 1년 이상 지나고 300명 이상 평가한 작품 가운데 평점이 9.5점 이상인 작품을 선택하면 고전 입문용 영화로 적합하다”고 추천했다. 이 중 자녀의 연령대에 맞고, 자녀와 부모가 함께 흥미를 느낄 만한 영화를 택한다.
■ 아이가 설명할 때까지 기다려주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게시판 문화에 익숙한 요즘 아이들은 극장 가는 걸 꺼리는 경우가 있다. 영화를 보는 동안 메시지나 댓글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집에서 영화를 볼 때도 마찬가지. 집안일이나 스마트폰같이 방해가 될 만한 주변 환경은 잠시 차단하고 영화를 보는 시간만큼은 말없이 화면에만 집중해보자. 영화는 ‘한번 볼 때 집중해서 한 편을 끝까지 다 보는’ 게 효과적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 대화를 나눌 때 부모들이 흔히 하는 실수가 아이들에게 억지로 영화 속 메시지를 끌어내려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아이를 가르치려 하지 말고, 반대로 아이에게 설명을 들으라’고 조언했다. <영화가 부모에게 답하다> 저자이자 무비 큐레이터로 활동 중인 최하진씨는 “부모가 진짜 몰라서 묻는 것처럼 ‘그때 주인공이 어떻게 했더라?’, ‘왜 그렇게 했지?’ 하며 아이가 신나서 설명해줄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게 방법”이라 소개했다. 차 교사는 “가볍게 뭐가 제일 재밌었는지, 구체적으로 어느 부분이 재밌었는지, 왜 재밌었는지 차례로 질문을 던지면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반응을 유도할 수 있다”고 했다. 영화를 본 직후가 아니더라도 일주일 정도 지난 뒤 메신저나 가족 카톡방에 함께 본 영화를 화제로 꺼내는 것도 좋다.
자녀가 사춘기 청소년이라면 좀더 조심스럽게 다가갈 필요가 있다. <씨네21> 이다혜 기자(<영화가 너의 고민을 들어 줄 거야> 저자)는 “아이들도 별의별 고민을 다 가지고 있다. ‘애들은 공부에만 집중했으면’ 하는 부모의 심리가 아이와의 대화를 막는다”고 말했다. 또 그녀는 “‘어떤 교훈을 주기 위해 어떤 영화를 본다’ 식의 단편적 접근은 감상의 폭을 좁힌다. 처음 연애할 때와 같은 마음으로 아이의 다양한 반응을 존중하라”고 조언했다.
영화를 본 뒤에는 어떤 방식으로든 기록을 남기는 게 도움이 된다. 자녀가 초등 저학년이라면 기억에 남는 장면 그리기, 주인공의 마음 그려보기, 4컷 만화로 표현하기, 광고 만들기, 역할놀이 해보기 등의 활동을 할 수 있다. 최씨는 “감상 활동을 아이에게만 넘기지 말고 부모도 함께 참여하라”며 “흰 도화지에 낙서하듯이 놀이해보라”고 말했다.
초등 고학년 이상이라면 영화노트나 수첩을 하나 만들어 간단히 몇 줄이라도 소감을 적어본다. 이때부터는 주제의식이 뚜렷한 영화를 접해보면 좋다. 최씨는 “아이들의 생각의 폭이 넓어지는 시기이기 때문에, ‘보는 영화’에서 ‘읽는 영화’로 넘어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자전거 도둑>을 예로 들면 자전거를 훔치게 된 아버지 ‘안토니오’와 이를 지켜보는 아들 ‘브루노’의 입장 또는 반대 인물의 입장을 생각해보고 글을 쓸 수 있다.
■ 부모 어린 시절 명화 함께 봐도 좋아
부모가 자녀와 같은 또래였을 때 재밌게 봤던 영화를 함께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미래소년 코난>이든 <인디아나 존스>든 상관없다. 그 자체로 행복했던 부모의 유년 시절 기억을 공유하고 물려주는 것이다. 세대차도 극복하고 서로 공감할 수 있는 대화의 씨앗이 될 수 있다.
다양한 영화 경험은 문화에 대한 안목도 길러준다. 특히 청소년기는 자신만의 취향을 만들어가는 시기이다. 이 기자는 “이때 자기가 좋고 싫은 걸 발견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청소년기의 경험은 미래를 살아가는 창의력의 원천이 된다”고 전했다. 영화를 보는 안목은 자기만의 개성과 차별성을 드러내는 경쟁력으로 나타난다. 요즘 청소년들한테 ‘내 인생의 영화’는 자기소개서나 면접에서도 자신을 잘 표현하는 훌륭한 콘텐츠가 될 수 있다. 이은애 <함께하는 교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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