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의 영국도서관 뜰에는 아이작 뉴턴의 동상이 있다. 아이작 뉴턴은 사과처럼 무게를 가진 물체는 떨어지는데 왜 하늘의 별과 달은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지를 궁금하게 여겨 그 호기심을 만유인력의 발견으로 연결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진 플리커
알파고 쇼크는 교육계에 그 강도가 더욱 컸다. 미래를 대비한 교육을 해야 하는데, 인공지능이 발달한 미래에 인간의 어떠한 능력이 중요하고 유용할지에 대한 고민과 답이 없기 때문이다. 미래에 대한 보고서들은 한국의 교육시스템에 근본적인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걸 지적하고 있다.
올해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는 제4차 산업혁명 보고서가 발표돼, 주요 국가에서 자동화와 인공지능으로 말미암아 70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2011년 미국 노동부는 그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학생이 대학을 졸업할 2023년께에는 65%가량이 현재 존재하지 않는 직업을 갖게 될 것이라는 직업의 미래 보고서를 발표했다. 2013년 영국 옥스퍼드대 마틴스쿨의 칼 프레이와 마이클 오즈번 교수는 ‘고용의 미래’ 보고서에서 컴퓨터화로 10~20년 안에 현재 직업의 47%가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4월 방한한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 이스라엘 히브리대학 교수는 “현재 학교교육의 80~90%는 아이들이 40대가 됐을 때 전혀 쓸모없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지난 6월 숨진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도 일찍이 “한국 학생들은 학교와 학원에서 미래에 필요하지도 않은 지식과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 하루에 15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한국의 교육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미래에 필요하지 않을 지식을 위해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한국 교육의 현실은 ‘10대 집중형 학습곡선’에서 잘 나타난다. 국제 문해력 비교 조사인 ‘경제협력개발기구 성인역량조사’(PIAAC)에서 한국 10대는 최고 수준의 성취를 기록했지만, 20대 초반부터 급속히 하락하는 특이한 학습곡선을 보였다. 한국 교육은 대학 입시에 모든 게 집중돼 있어, 그 시기를 지난 뒤부터는 학습 의욕과 동기가 추락하는 걸 보여주는 조사다. 조사에서 한국은 ‘나는 새로운 것을 배우기를 좋아한다’라는 설문에서도 최저점을 기록했다. 이런 한국의 교육 현실은 지식이 빨리 변해서 유효기간이 짧아지는 정보화 시대에 심각한 경고를 던진다. 대학 입시 때문에 10대에는 금세 낡아버릴 지식을 배우느라 가장 힘들게 오랜 시간을 공부하지만, 점수와 경쟁 위주여서 정작 스스로의 내적 동기에 따라 학습을 해야 하는 시기에는 오히려 학습 의욕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토플러는 “미래의 문맹은 글을 읽고 쓸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배우고 또 아는 지식을 활용하고 계속해서 배우는 방법(learning ability)을 모르는 사람이다”라고 말했는데, 한국인의 10대 집중형 학습곡선은 한국 사회의 취약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지식의 반감기가 단축되는 정보화 사회는 지속학습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한 평생학습사회이다.
각 시·도 교육청과 각급 학교, 교사들도 이러한 교육의 위기 상황을 알고, 미래 사회에서 필요한 능력인 창의성과 자기주도적 문제해결능력을 함양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많은 시도들이 대학 입시라는 거대한 벽에 부딪혀 좌절한다. 학교와 교사, 학부모 등 교육주체가 정보화 사회의 본질과 방향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긴 안목의 변화를 제시하고, 학생이 주도적인 학습능력을 지닐 수 있도록 북돋울 수 있어야, 입시 이후에도 유효한 학습능력을 효과적으로 가르칠 수 있다.
그중 핵심적으로 요구되는 교육적 요소는 호기심 기반 학습법이다. 학교에서 배운 지식이 금세 낡아버려 새로운 것을 지속적으로 배워야 하는데, 그 배움을 위한 가장 큰 동력은 성공에 대한 욕망과 호기심이다. 호기심은 항상 학습을 이끄는 핵심 동력의 역할을 해왔지만, 특히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항상 이용할 수 있는 유비쿼터스 환경에서 그 가치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누구나 손안에 인류의 지식 전체를 들고 다니는, 좌뇌와 우뇌만이 아니라 외뇌를 갖고 다니는 세상이다. 가장 강력한 지적 도구와 실행 수단을 누구나 갖고 다니는 셈이다.
이런 막강한 도구를 제대로 다룰 줄 아는 능력을 교육하는 게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기기 활용법이나 프로그램 코딩 능력이 아니다. 스마트폰 등 최신 디지털 도구를 지적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과 오락의 도구로 사용하는 사람의 차이는 지적 호기심을 갖고 있느냐에서 결정된다. 영국 에든버러대학의 심리학자 소피 폰 스툼은 “개인의 성공을 예측하는 변수들 가운데 하나만 꼽으라면 그것은 호기심일 것”이라고 말한다. 누구나 모든 정보에 접근하고 활용할 수 있는 세상에서 개인의 능력과 삶의 질을 가르는 요인은 호기심이라는 점에서 ‘호기심 격차 사회’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는 인공지능 시대를 대비해야 하는 한국의 교육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호기심은 교사가 중요하다고 해서 생겨나는 것도, 진학과 성공에 대한 목표를 세운다고 형성되는 것도 아니다. 학습자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심리상태가 호기심이다. 이를 북돋우기 위해서는 다양한 지적 자극을 경험할 수 있는 자유로운 환경을 제공하고 인지 부조화를 호기심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개인별로 특성화된 학습 지도 전략이 요구된다.
호기심과 학습 능력은 사람에게 무한한 자원이 아니다. 오히려 제한이 있으며 생애 시기별로 다른 특성을 보인다. 토플러가 지적한 한국 교육시스템의 문제는 학습 역량의 핵심인 주의력을 불필요하고 흥미롭지 않은 암기와 경쟁에 지나치게 쓰도록 한다는 점이다.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예측할 수 없는 사회인 인공지능 시대에는 변화적응능력과 평생학습 태도가 중요해진다. 쓸모없어질 정보와 경쟁에 아이들을 내몰지 않으려면, 개인과 학교 차원에서의 대응만으로는 이내 한계에 직면하게 된다. 학교교육과 입시제도 차원의 거대한 변화가 요청되는 이유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에게 사람들이 천재성의 비밀을 물어볼 때마다 아인슈타인은 “나는 별다른 재능이 없다. 다만 호기심이 왕성할 따름이다”라고 말했다. 인공지능 시대는 그 어느 때보다 호기심 위주의 교육을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다.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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