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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매주 한 끼 반드시 다 같이 먹는 것도 교육이죠

등록 2016-06-20 18:14수정 2016-06-21 16:15

진화하는 밥상머리교육

자녀와 얼굴 볼 시간도 없는 부모들
밥상머리교육 실천 더더욱 어려워

식사예절 중시하던 기존 방식 벗어나
먹거리 고르고 밥상 함께 차려보는 등
포괄적인 식생활 교육으로 진화
부모-자녀 일상 나누는 대화의 장 되기도
지난 10일 오혜경씨가 서울 노원구에 위치한 자택에서 딸 박태인양과 주방에서 함께 저녁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10일 오혜경씨가 서울 노원구에 위치한 자택에서 딸 박태인양과 주방에서 함께 저녁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10일 오후 6시가 조금 넘은 시간. 서울시 노원구 중계로에 위치한 한 아파트. 현관문을 열자 맛있는 냄새가 집안 가득 풍겼다. 주방에서는 저녁 준비가 한창이었다.

“이렇게 썰어요?”

“응, 튀지 않게 조심해.”

멸치볶음에 들어갈 아몬드와 호두를 직접 썰고 있는 박태인(불암초 4)양과 옆에서 재료 손질법을 알려주는 엄마 오혜경(40)씨. “칼로 재료 써는 건 거의 같이 한다. 애가 음식 만드는 걸 좋아해서 자주 도와주고 김치부침개를 직접 만들기도 한다.”

다음 메뉴는 애호박전. 엄마가 먼저 시범을 보이며 호박의 두께를 정해주자 태인양이 따라서 남은 호박을 썰었다. “1학년 때 방과후 프로그램으로 파티시에 체험을 하면서 요리사를 꿈꾸게 됐어요. 티브이에서 굶주리는 아프리카 아이들을 봤는데 그 아이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그사이 갈치조림이 끓고 “취사가 완료됐다”는 밥솥의 알림 음성이 들렸다. 엄마가 “이제 밥 먹자”라고 하자 첫째 태찬(불암초 6)이 숟가락과 젓가락을 챙기고 태인은 “나는 물!”이라면서 컵받침과 컵 네 개를 식탁에 놓았다.

잠시 후 갈치조림, 애호박전, 계란말이, 오이고추된장무침, 새송이버섯파프리카무침, 무생채 등이 한상 차려졌다. 태찬이 젓가락을 들자 태인이 제지하며 “오빠, 아빠가 수저를 들기 전에 먼저 들면 안 돼”라고 말했다. 이후 온 가족이 자리에 앉은 뒤 다 같이 식사를 시작했다.

■ “천천히 꼭꼭 씹어” 잘못된 습관 지적 식사 후에

아이가 제대로 성장하는 데는 부모의 구실이 크다. 하지만 요즘은 맞벌이부부가 많고 바쁜 일상에 치여 자녀와의 대화 시간 자체가 부족하다. 예전부터 밥상머리교육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행동에 옮기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밥상머리교육이란, 가족이 모여 함께 식사하면서 대화를 통해 가족 사랑과 인성을 키우는 것이다. 초기 밥상머리교육은 단순히 식사예절을 알려주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건강한 먹거리를 고르고 밥상을 직접 차린 뒤 정리하는 등 전반적인 식생활 교육으로 진화했다. 부모와 자녀가 일상을 나누는 대화의 장으로도 적극 활용한다.

“제목, 좋아좋아. 좋아좋아/ 좋은 댓글 달면/ 사람을 기쁘게 하지./ 좋아좋아/ 좋은 댓글 달면/ 사람에게 행복을 주지./ 좋아좋아/ 좋은 댓글 달면/ 사람들에게 힘이 되지./ 좋아좋아/ 좋은 댓글 달면/ 너도 좋고 나도 좋지./ 그럼/ 우리 다 같이 달아보자.”

밥을 먹다 말고 태인이 시를 읊었다. ‘좋은 댓글을 달면 좋은 점’이란 주제로 국어시간에 지은 시다. “오늘 국어시간에 시를 지었는데 선생님이 칭찬했다”는 태인의 말에 가족들이 바로 그 자리에서 시낭송을 요청했다. 낯선 식탁 풍경이었다. 시를 들은 가족들은 “진짜 잘 지었네”(아빠), “평소 선생님이 책을 많이 읽으셔서 아이들도 영향을 받는 거 같네”(엄마)라고 한마디씩 거들었다.

“오늘 학교에서 어땠어?” 모든 엄마는 아이의 학교생활이 늘 궁금하다. 두 아이들은 초등학생이라 아직까지는 이야기를 잘하는 편이다. 오씨의 질문에 아이들은 앞다퉈 자기 얘기를 했다. “날이 더운데 과학시간에 햇빛을 모아 종이를 태우는 활동을 해서 땡볕 아래 쪄죽는 줄 알았다”, “블록으로 광선검을 만들어 애들과 싸움놀이를 했다”는 태찬이 말에 엄마 아빠는 번갈아 “오늘 날씨에 진짜 더웠겠다, 종이는 잘 태워졌냐”, “교실에서 싸움놀이 해도 괜찮냐” 등 궁금한 것을 묻고 맞장구도 쳐줬다.

오혜경씨가 딸 박태인양과 주방에서 함께 저녁을 준비하고 있다.
오혜경씨가 딸 박태인양과 주방에서 함께 저녁을 준비하고 있다.
태인이 “국악시간에 배운 노래로 실기평가를 한다는데 잘 못해서 걱정”이라는 말에도 “너 ‘남생아 놀아라’ 잘하잖아”라고 엄마가 거들고 아빠는 “근데 남생이란 파충류에 대해 아느냐”는 말로 꼬리를 물었다. 남생이에 대한 설명이 오가다 태인이 노래를 부르자 태찬이 잘못된 가사를 고쳐주며 함께 불렀다.

아이들의 학교생활을 시작으로 밥 먹는 내내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다. “날이 더워 선풍기를 틀어야겠으니 아빠가 오늘 선풍기를 닦아 달라”는 건의부터 주말에 가족 캠핑을 갔던 얘기 등. 다른 가족들이 밥공기를 절반 정도 비웠을 즈음 태찬이 밥그릇을 뚝딱 비웠다. 아빠 박윤석(44)씨가 말했다. “태찬이는 밥을 너무 빨리 먹는데 소화가 잘 안돼서 좋지 않은 거 같다. 다른 사람은 한 숟갈을 예닐곱 번 정도 씹는데 태찬이는 한두 번만 씹어 대충 넘긴다. 저작운동(씹는 운동)이 필요하다.”

엄마도 “빨리 먹는 게 무조건 좋은 건 아니다. 혼자 다 먹었다고 일어나지 않고 온 가족이 끝까지 함께 식사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화제가 식사습관으로 바뀌자 태인의 자백(?)이 이어졌다. “난 오빠와 반대로 음식을 너무 늦게 먹어요. 반에서 급식 먹는 순서도 늘 꼴찌예요.” 아빠가 “네가 계속 이야기하고 딴짓하면서 먹어서 느린 거냐, 아니면 그냥 밥만 먹는데도 느린 거냐?”라고 하자 태인은 “두 번째…”라고 했다. 가족들은 “예전에 쩝쩝거리며 먹는 버릇을 노력해 고친 것처럼 식사시간에 밥을 먹는 데 집중하는 연습을 해보라”고 조언했다.

박씨는 평소 밥 먹다 아이의 잘못된 습관을 발견해도 바로 지적하지 않는다. 일방적으로 “그럼 안 돼”라고 하기보다 아이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준다. 가령, 전날 태찬이가 밥을 먹다 입안에 있던 음식이 잘못됐는지 앞접시에 뱉었다. 아빠는 밥을 다 먹은 뒤 이야기했다.

“태찬아, 음식물을 식탁 위에 뱉기 전에 생각을 해봐야 하지 않았을까? 다른 가족들은 식사 중이었는데 싱크대나 화장실에 가서 뱉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만약 상대편이 그랬다면 넌 어땠을까, 나중에 좋아하는 여자친구랑 밥 먹을 때 그런 행동을 하면 좋아할지 생각해봐.”

지난 10일 서울 노원구에 위치한 자택에서 박윤석씨와 오혜경씨, 아들 태찬군과 딸 태인양이 이야기를 나누며 저녁을 먹고 있다.
지난 10일 서울 노원구에 위치한 자택에서 박윤석씨와 오혜경씨, 아들 태찬군과 딸 태인양이 이야기를 나누며 저녁을 먹고 있다.

■ ‘먹는 장소와 종류’보다 ‘다 같이 이야기’가 중요

이날 가족의 식탁 대화 내용은 차려진 음식만큼이나 풍성했다. 오씨는 아이들이 싫어하는 공부나 숙제 이야기보다 먼저 아이들 이야기를 듣고 긍정적인 내용으로 대화를 이끌어가려 했다. “평소 아이와 대화를 많이 하려 노력한다. 남편이 주중에 저녁을 함께 먹기 힘들지만 퇴근 후 늦게라도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래야 다 같이 밥 먹을 때 아빠도 아이들과 공감대가 생기기 때문이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로 엄마, 아빠의 일상을 묻지 않아도 먼저 꺼내 알려준다.”

사실 먹거리를 고르는 것부터 음식을 함께 만들고 식사를 하는 과정 모두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친밀하다는 전제 아래 가능하다. 부모가 식사예절을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의 자연스런 대화 속에서 이를 끌어내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밥상머리교육을 하는 푸듀케이터(‘푸드’와 ‘에듀케이터’를 합친 말로 식생활과 관련된 건강, 환경 등을 다루는 바른먹거리 전문가를 뜻함) 주윤경씨는 “밥상머리교육을 자녀와의 소통 기회로 삼는 것은 좋지만 대부분 엄마들은 밥 먹을 때도 혼내는 식으로 행동을 바로잡으려고 하고 대화를 할 때도 무작정 아이한테 질문만 한다”고 했다.

“부모가 먼저 자기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가야 한다. 평소 대화를 안 하다 갑자기 하려고 하면 어렵다. 어릴 때부터 하루 5분이라도 대화하는 습관을 들이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아이가 커서 사춘기가 와도 관계 맺기가 수월하다.”

밥상머리교육이라고 반드시 집에서 할 필요는 없다. 요즘은 맞벌이부부가 많아 저녁상을 준비할 여유도 없고 자칫 엄마한테 부담이 될 수 있다. 주씨는 “외식을 하느냐, 밥을 직접 차려 먹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외식을 하면 아이들이 더 좋아하고 남과 함께 음식을 먹는 장소에서 지켜야 할 예절도 배울 수 있다”고 했다.

“어디서 무엇을 먹는지보다 가족 구성원이 함께 하는지,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가 중요하다. 가령, ‘매주 금요일을 ‘가족의 날’로 정해 온 가족이 모여 외식을 하기로 한다’, ‘주말 한 끼는 반드시 다 같이 밥을 먹는다’ 등 우리 가족만의 약속을 하나 만들어 지키는 게 좋다.”

박씨도 주중에 가끔 일찍 퇴근하는 날이면 온 가족이 집 근처 카페로 나들이를 간다. “카페에 가면 맛있는 것을 먹으니까 아이들이 좋아하고, 가끔 진지한 이야기를 할 때도 받아들이는 태도가 집에서와는 차이가 있다”며 “집에만 있기보다 가끔 커피숍에 나가서 ‘가족 데이트’를 하면 대화 분위기가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기회가 된다면 한번 해보라.”

글·사진 최화진 <함께하는 교육> 기자 lotus57@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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