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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언제까지 ‘태정태세문단세’ 외우는 수업 하나

등록 2016-05-16 20:41수정 2016-05-24 16:48

1. 지난 9일 서울시교육청이 주최한 역사교육 대토론회에서 조희연 교육감(오른쪽 셋째)과 역사학계 전문가들이 우리나라 역사교육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1. 지난 9일 서울시교육청이 주최한 역사교육 대토론회에서 조희연 교육감(오른쪽 셋째)과 역사학계 전문가들이 우리나라 역사교육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역사수업, 방향을 고민하다
‘6·25 전쟁은 몇 년도에, 왜 발발했나.’

‘6·25 전쟁 당시 평범한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두 개의 질문. 전자는 전쟁이 일어난 연도와 원인을 아는 데 그친다. 후자는 당시 사람들이 살아온 생활상을 보면서 전쟁이 일어나기 전후 맥락을 아울러 파악할 수 있다.

시대 순서에 따라 특정 사건과 인물을 외우는 역사교육. 조선의 역대 왕 이름의 앞자를 따서 노래로 불렀던 ‘태정태세문단세…’는 여전히 학생들이 기본적으로 암기하는 내용이다.

지난 9일 서울시교육청 주최로 열린 ‘2016 역사교육 대토론회’ 현장에서는 “이런 식으로 역사적 사실을 습관처럼 외우지만 시대별 왕을 아는 게 어떤 도움이 될까, 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학생들의 비판적인 의견이 쏟아졌다. 토론회는 ‘역사교육, 우리도 할 말 있어요!’라는 주제 아래 역사학계 전문가와 학생들이 모여 각자 생각하는 역사수업의 의미와 방향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역사수업 활동형으로 변하고 있지만
‘입시’ 등 장벽 있어 암기식 수업 여전

‘2016 역사교육 대토론회’ 현장서
“지루한 역사수업 바꾸자” 의견 봇물
‘인물 이상형 월드컵’ 등 흥미로운 사례도
정확한 개념 아는 것 중요하지만
자신의 역사인식 만드는 수업 필요

우리나라 역사수업을 둘러싸고는 논란이 많다. 교사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수업을 하려고 애쓰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지식 암기 위주 수업을 할 수밖에 없다. 입시가 있기 때문이다. 교육과정 자체도 문제가 있다. 교과목집중이수제로 역사 과목을 학년을 나눠 두 학기 동안 몰아서 배우다 보니 깊이있게 공부할 기회가 없다. 교과서 순서에 따라 고대사부터 배우기 때문에 뒷부분에 있는 근현대사는 학기말 시간이 없어 못 배우고 넘어가는 일도 생긴다.

2. 토론회에 참석한 학생들이 역사수업에 대한 각자의 의견을 나누고 있다.
2. 토론회에 참석한 학생들이 역사수업에 대한 각자의 의견을 나누고 있다.
토론회 패널로 참석한 권오청 가재울고 역사교사는 자신만의 특별한 역사수업 사례를 소개했다. 권 교사는 단순히 ‘어떤 사건이 있었다’로 역사를 배우는 게 아니라 학생 스스로 자료를 분석하면서 자신만의 해석을 하는 수업을 꾸리고 있다. 그는 학생들에게 역사적 사실을 알려주는 데 급급하기보다 아이들 스스로 지식을 구성하면서 나름대로 해석하도록 한다. 가령 ‘도서관을 활용한 역사수업’을 통해 학생이 직접 세부 주제를 정한 뒤 도서관에서 책을 찾으며 탐구하는 식이다.

6·25 전쟁을 주제로 정한 학생은 교과서에 나오는 단편적 사실 외에 <몽실언니>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라는 문학작품을 찾아 읽으면서 당시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유전자나 생명과학 분야에 관심 있는 학생은 당시 전사자의 유해를 어떻게 발굴했는지, 유전자 확인은 어떻게 했는지 등을 살펴본다. 해시계와 관련한 내용을 배울 때도 해시계로 시간을 볼 수 있는 방법을 과학교과와 연계해 조사한다. 단순히 역사적 개념에만 집중하는 게 아니라 역사 속에 담긴 다른 교과 지식들을 찾아내면서 개인의 관심사에 따라 관점을 넓혀가는 것이다.

권 교사는 학생들과 독립문을 답사한 뒤 3D프린터로 독립문을 만들어보는 수업도 계획 중이다. “아이들과 체험학습을 가면 대충 둘러보고 설명을 하고 끝난다. 자신이 직접 독립문을 만들어본다고 하면 학생들은 좀 더 자세히 관찰할 것이다. 글씨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여 있고, 전체적인 비례는 어떻고, 어떤 무늬가 새겨져 있는지 등등.”

그는 “특정 인물이나 단체의 활동이 벌인 내용에 ‘자신이라면 어땠을까’ 감정이입을 해본다거나 역사인물 ‘이상형 월드컵’을 하면서 아이들이 역사를 좀 더 친근하게 접하고 그들 삶을 통해 자신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방법을 찾도록 여러 시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서는 학생들이 생각하는 역사수업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학생들은 역사수업이 지루한 이유를 “일방적인 강의 형태로 수업한 뒤 내용을 확인하는 수준의 시험을 보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보인고 2학년 정인영군은 “딱딱한 지식이 아니라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들려줬으면 좋겠다. 시험도 단순히 옳고 그름을 따지는 객관식 문제가 아니라 학생이 생각할 수 있게 의견을 묻는 주관식으로 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가)가 왜 (나)의 행동을 했는지 묻고 답하는 식의 수업을 하면서 학생들이 정확한 사실을 아는 동시에 다른 사람의 생각도 접하도록 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야사를 활용해 스토리텔링 식으로 역사적 사실을 알려주거나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학생 개개인이 독자적 사관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또 교사들이 역사수업을 하면서 정치적으로 논란이 되는 이슈들을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들도 오갔다. 국정교과서 등 정치적 이념 대립이 있는 특정 이슈를 다룰 때 자칫 교사가 치우친 시각을 심어주게 될까봐 조심스럽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권 교사도 “학생들은 정답을 찾는 데 익숙해서 교사가 말하면 시험에 나올 거고,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내 의견이 맞다고 그대로 받아들일까봐 내 이야기는 다양한 해석 가운데 하나라고 강조한다”고 했다. 김민선(풍문여고 3)양은 “역사 과목을 정치적 이념과 연결지어 무조건 민감해할 필요는 없다. 사실에 입각하되 우리나라의 입장만 고집하지 말고 다른 나라의 입장도 살펴보고 일반적으로 납득할 수 있게 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심용환 역사&교육연구소장은 “학생들에게 하나의 관점만 강요해서는 안 되지만 역사적 사실에 대한 관점 자체를 배제할 수 없다”며 “역사학 자체가 사실과 해석이 분리될 수 없는 학문이다. 교사나 학생이 역사적 사실에 대해 근거를 가지고 각자의 논리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생각하는 힘도 기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역사수업은 교사가 피피티(PPT)를 잘 만들고 재밌게 정보를 전달하는 게 아니라 학생이 관심 있는 주제를 깊이 공부한 뒤 발표하고 토론하는 형식이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주체적으로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면서 각자의 역사인식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글·사진 최화진 <함께하는 교육> 기자 lotus57@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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