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가 이승욱씨(사진 왼쪽 둘째)
정신분석가 이승욱씨 ‘육아’ 강연
“요즘 부모들은 아이들을 너무 전략적으로 낳고 키우려고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불안정하긴 합니다. 그런데 부모들이 그런 불안을 너무 과도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아요.”
0~3살 아이들을 위한 육아서 <천 일의 눈맞춤> 저자인 정신분석가 이승욱(52)씨는 26일 서울 홍대앞 미디어카페 ‘후’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이렇게 입을 열었다. 한겨레출판사가 주최한 이 강연회에 초청된 어머니 30여명은 귀를 쫑긋 세웠다.
그는 부모들이 불안과 욕망을 아이들에게 지나치게 투사해 여러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뉴질랜드에서 정신분석학을 공부한 이씨는 서울시 영등포 ‘하자 작업장학교’ 교감을 거쳐, 8년째 정신분석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센터의 상담 사례를 통해, 부모의 지나친 공부 압박으로 아이들이 어떻게 망가지고 있는지 ‘증언’했다.
“상담센터가 바빠지는 특정 시기가 있습니다. 바로 6~8월께입니다. 미국에 유학갔던 아이들이 방학 때 돌아와 찾아오는 사례가 많아요. 대다수가 강남에 살고, 유명 아이비리그 대학에 다니는 아이들이죠. ‘공부하는 기계’로 자란 아이들이 대부분이죠. 그래서 분노·우울·불안감을 심하게 느낍니다.”
그는 ‘공부 기계’ 아이들일수록 스스로 타고 난 가능성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부모나 사회의 간섭과 억압으로 본성을 ‘훼손’ 당해 잠재력의 10~20% 정도밖에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수학이 너무 재밌어 누워서도 수학 생각만 하는 한 학생이 있었다. 아이는 수학과 진학을 원했지만 부모는 반대했다. 결국 학생은 부모 뜻대로 의대에 갔지만 자퇴를 세 번이나 했다. 그래도 부모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아이는 치대에 다시 입학했다. 아이는 경제적 독립을 하게 되면 다시 수학 관련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이처럼 이씨는 부모의 우려와 달리, 아이들은 충분히 스스로 잘 자라고,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설사 아이가 잘 살지 못한다고 해도 그것은 아이 몫이니, 일정 시기가 되면 부모 스스로 아이로부터 분리돼야 한다고 충고했다. “아이를 위해 최선이라는 말도 많은 부모들이 잘못 이해하고 있어요.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아이에게 최대치를 주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을 제공한다는 의미지요.”
이를테면 완전한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해 0~3살 아이 때는 일관되고 예측 가능한 수유·껴안기·눈맞춤이 부모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이다. 물론 그뒤에도 부모가 예측 가능하고 일관성 있는 양육 태도를 지키면 더할 나위 없다.
“부모는 사회의 대리인입니다. 부모의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운 아이로 키우는 것은 사회의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운 아이를 키우는 길이 됩니다. 그러려면 부모들이 삶의 의외성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람, 어지간해서는 안 죽어요. 부모 스스로 불안감을 극복해야 합니다.”
이씨는 “아이들을 제발 꽉 짜인 틀에 가두지 말자”고 당부했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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