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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내가 원하는 강의 여는 ‘열린 학교’가 등장한다

등록 2016-04-25 19:52수정 2016-04-26 09:17

1. 지난해 말 청년자립대학 '아랑곳'을 만들기 위해 지역의 뜻 맞는 청년들이 모여 '인맥부족캠프'를 열었다. 사진 아랑곳 제공
1. 지난해 말 청년자립대학 '아랑곳'을 만들기 위해 지역의 뜻 맞는 청년들이 모여 '인맥부족캠프'를 열었다. 사진 아랑곳 제공
학교 밖 이색 학교
대학 1학년이던 19살. 세상을 알고 싶다는 생각에 책과 다큐를 닥치는 대로 봤다. 9년 동안 3000권의 책과 3000편의 다큐를 섭렵했다. 휴대폰도 끊고 친구도 안 만나고 연애도 하지 않았다. 하루에 책 5권, 다큐를 10편씩 몰아서 보기도 했다. 시간이 모자라 다큐는 2배속으로 보되 인상적인 작품은 여러 번 봤다.

그러는 동안 19권의 책을 썼고 그 가운데 15권을 출간했다. <나이 서른에 책 3000권을 읽어봤더니> <맙소사 아직도 대학이라니> <일자리 전쟁> <365 매일 읽는 한줄 고전> 등 자기계발서·경제경영·인문·고전·교육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이다.

“‘내가 살면서 알게 된 정답을 알려주마’라는 식의 책들이 있다. 인생에 정답은 없는데 사람들은 자꾸 정답을 찾으려 한다. 책이나 저명인사가 ‘정답’이라고 하면 그게 맞다고 여기고 스스로 생각을 안 한다. 나는 사람들에게 ‘이런 길도 있다’고 얘기하며 생각거리를 던져주고 싶었다.”

9년차 전업작가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상민(33)씨의 말이다. 그는 책을 읽을수록 ‘나도 저 정도는 쓸 수 있겠다’는 생각과 함께 뭔가 쏟아내고 싶어졌다. 동시에 세상을 바라보는 자기만의 시선도 자라났다. “고등학교 때 국·영·수 주요 과목 위주로만 공부했다. 대학에 들어가고 보니 세상을 너무나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춘기가 찾아온 듯 혼란스러웠다. 이 경험을 다른 청춘들도 겪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대학 진학 목매는 이들 반대편에
배움 내용 주목해 학교 연 사람들

다큐 공부법, 집짓기, 몸치유 등
일상 밀착한 주제 수업 등 열어
틀에 박힌 책상 앞 공부 벗어나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 만나게 해

옆으로 펼치는 교육 ‘도산학교’

 2. 지난해 말 청년자립대학 '아랑곳'을 만들기 위해 지역의 뜻 맞는 청년들이 모여 '인맥부족캠프'를 열었다. 사진 아랑곳 제공
2. 지난해 말 청년자립대학 '아랑곳'을 만들기 위해 지역의 뜻 맞는 청년들이 모여 '인맥부족캠프'를 열었다. 사진 아랑곳 제공
그는 최근 ‘도산학교’를 열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묵혀두거나 ‘나 이거 안다’고 남 앞에서 뽐내는 게 아니라 그동안 공부한 내용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서 연 학교다. ‘난 이렇게 사는데 넌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니?’란 질문을 해보고 싶어서다. 이씨는 “기존의 학교에서 제시하지 못했던 교육의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만들었다. 한줄세우기식 교육이 아닌 옆으로 펼치는 교육을 지향하며 저마다의 개성과 가능성을 끌어내는 것이 이 학교의 목표”라고 설명했다.

도산학교는 현재 학생을 모집하고 있다. 독서와 토론(하브루타), 글쓰기(책쓰기), 생각법 등을 주제로 강의를 개설했다. ‘생각하는 사람’ ‘자기 인생을 주도하는 사람’을 키우는 것을 목표로 ‘머리 좋은 사람들이 부자가 되지 못하는 이유’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발견하는 법’ ‘진짜 공부에 미친 이상민이 전하는 다큐멘터리 공부법’ 등 색다른 내용의 강의도 있다.

“아카데믹하고 심도 있는 학문보다는 삶에 바로 적용 가능한, 그것을 들은 이가 직접 써먹을 수 있는 내용의 강의를 지향한다. 새로운 삶을 꿈꾸는 이들을 돕기 위한 교육이다.”

이 작가는 책을 통해 접한 다양한 국내외 사례와 자신이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며 깨달은 것을 강의를 통해 이야기할 예정이다.

강의는 누구나 들을 수 있고 수강료는 1~3개월 진행하는 강의 기준으로 25만~45만원이다. 이 작가는 “얼마 전 시범적으로 독서법 특강을 열었는데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왔다. 혼자서 여러 강의를 진행하기 힘들어서 전문가들을 섭외 중”이라고 말했다. 이 작가의 블로그(blog.naver.com/sangmin4892)에 자세한 강의 목록과 신청 방법이 나와 있다.

대부분의 청소년이 대학 진학, 그것도 명문대 진학을 꿈꾼다. 하지만 정작 왜 대학에 가야 하고, 그곳에서 어떤 공부를 하고 싶은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보진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 학교의 틀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것들을 알려주는 ‘학교 밖 이색학교’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틀에 박힌 주제의 공부가 아니라 삶 속에서 몸으로 부딪치면서 만나는 배움을 지향하는 학교들이다.

지난해 문을 연 ‘아랑곳’(cafe.naver.com/drnruniv)은 지역을 기반으로 청년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청년 자립대학이다. 충남 금산에 위치하고 있다. 간디학교가 속한 (사)숲속마을작은학교가 교보생명과 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의 후원을 받아 운영 중이다. 간디학교 박성연 교사와 20대를 주축으로 한 기획단이 강의 기획부터 수업 커리큘럼, 강사 섭외까지 맡고 있다.

지역 밀착 청년자립대학 내세운 ‘아랑곳’

3. 이상민 작가가 기업은행의 취업 멘토링 프로그램에서 대학 4학년들을 대상으로 '취업준비생에게 힘이 되는 이야기' 인문학 강연을 하고 있다. 사진 이상민 작가 제공
3. 이상민 작가가 기업은행의 취업 멘토링 프로그램에서 대학 4학년들을 대상으로 '취업준비생에게 힘이 되는 이야기' 인문학 강연을 하고 있다. 사진 이상민 작가 제공
아랑곳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는 아이들이 그동안 고민했던 삶과 달리 취업 준비에 목매며 20대를 마감하는 것이 안타깝다는 뜻으로 문을 열었다. 대학을 가든 안 가든 지역에서 자립하고자 하는 이들이 필요한 것을 배우고, 기회를 찾을 수 있게 하자는 취지다. 그들이 구체적인 방법을 고민하고 시도할 수 있게 ‘인큐베이팅’ 구실을 하자는 게 이 학교의 설립목적이다.

현재 강의는 소셜커뮤니티·문화예술·청년창업 분과로 나뉜다. 강의는 5일 집중 워크숍이나 캠프 형식부터 15~20강으로 이어 진행하며 수강료는 강의별로 회당 1만원이다. 이 학교의 특징은 청년들이 지역에서 지속가능한 삶을 꾸릴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점이다. 박 교사는 “지역 콘텐츠를 최대한 활용하려고 한다”며 “청년들끼리만 잘 먹고 잘 사는 게 아니라 사회, 나아가 지구에까지 도움을 주는 방향을 고민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령 ‘시골집 고쳐 살기’ 과목은 시골에 버려진 집을 고쳐서 청년들의 주거문제를 해결하고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자는 뜻을 담고 있다. ‘청년창업’ 과목은 지자체의 재래시장 활성화 사업과 연계해 지역 특성을 살린 분야의 창업을 돕고 지역경제에도 보탬이 되게 할 계획이다.

‘시골집 고쳐 살기’를 기획한 장성혜씨는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했지만 당장 사는 데 필요한 공부는 아니라고 생각해 휴학했다. 그는 “시골에서 사는 방법을 고민 중인데 청년들이 시골에 정착하는 데 필요한 것 가운데 하나가 ‘주거’다. 새로 집을 짓는 것보다는 헌 집이나 폐가를 고쳐 사는 게 지구 환경에도 도움이 될 거 같아 강의를 열었다”고 했다.

전문기술을 배우는 강의이기 때문에 생태적 적정기술, 생태건축 정보를 배우고 나누는 ‘흙부대생활기술네트워크’의 김성원씨를 강사로 섭외했다. 수강생들은 이 강의를 통해 미장·단열·지붕공사·전기배선 등의 기술을 익힌다. 올해는 상대적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미장과 구들을 강의할 예정이다. 단순히 집 한 채를 구해서 하나씩 고쳐나가는 게 아니다. 시골 어르신들이 살고 있는 오래된 집을 섭외해 봉사 차원에서 고칠 생각이다. 주민들에게 수리가 필요한 벽체에 대해 접수한 뒤 재료값만 받고 작업을 하는 식이다.

장씨는 “단순히 시골집을 고쳐서 내가 사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기술로 먹고살 수도 있다. 청년들끼리 미장만 전문으로 하는 사업으로 확장하거나 학교나 마을에서 직접 교육을 할 수도 있다”고 했다. 내 삶과 직접적으로 연결 짓는 배움인 동시에 생계 유지도 가능한 셈이다.

고3인 김영위군은 학교 졸업 후 군대를 갔다 와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 계획이다. 그때를 대비해 미리 들어놓으면 좋을 것 같아 ‘시골집 고쳐 살기’ 수업을 신청했다. 그는 “간디학교를 다니며 제도권 교육과 다른 활동을 많이 했지만 아랑곳은 또 다르다”고 했다.

“학교에서는 대부분 책상에 앉아서 정해진 내용을 배운다. 이곳에서는 한 책상에 둘러앉아 다 같이 이야기 나누는 과정에서 타인을 이해하게 된다.” 단순히 시골집을 고치는 기술만 배우는 게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 부딪침을 통해 소통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는 의미다. 그는 아랑곳에서 ‘공부’가 목적인 교과서적인 배움이 아니라 삶에서 필요한 것들을 몸으로 터득해가고 있다.

기획단 이세연(24)씨는 “서울과 수도권에는 청년이 많고 강의도 쉽게 들을 수 있는 데 반해 이곳에서는 쉽지 않다”며 “그래도 최근 들어 뜻이 맞는 청년들이 하나둘 모이고 있다. 청년들이 꾸린 공동체 수준을 따지자면 이론적 수준은 서울이 높지만 실천적 느낌은 우리가 더 강하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이곳에서는 ‘이렇게 사는 게 옳다, 이런 방식이 좋다’는 것을 알고 생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행동으로 옮긴다는 것이다.

도시에 비해 의료서비스가 열악한 지방에서 사는 데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연 ‘몸치유’ 과목도 있다. 무조건 병원에만 의존하지 않고 내 몸의 오장육부를 제대로 알고 병이 일어나는 원인을 찾자는 것이다. 이씨는 “한방사상이나 자연치유 등을 공부하고, 탈이 났을 때 어떻게 치료할 수 있는지 배우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진로교육이 중요시되면서 학생들에게 일찍부터 꿈을 찾으라고 강요한다. 하지만 진로를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직업을 가질까’가 아닌 ‘어떻게 삶을 살 것인가’이다. 이씨나 아랑곳의 청년들은 지금 원하는 일을 이것저것 해보며 각자의 삶을 꾸려나가고 있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말한다.

“평생 한 가지 일만 계속 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라. 자신이 무엇을 할 것인지를 미리부터 결정하는 게 아니라 직접 부딪치며 찾아가야 한다. 하고 싶은 일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배움을 스스로 찾고 만들며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실패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최화진 <함께하는 교육> 기자 lotus57@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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