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서울 신촌 씨지브이(CGV) 아트레온에서 학부모 이윤아씨(왼쪽부터), 박준현군, 조현성양, 학부모 조정래씨가 인권영화 <4등>을 보고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김청연 기자
부모-자녀 영화 <4등>을 보다
재능이 있음에도 4등을 벗어나지 못하는 수영선수 준호가 있다. 준호의 매니저가 되어 뒷바라지에 총력을 다하는 엄마의 소원은 아들이 1등을 하는 것. “난 준호 맞는 것보다 4등 하는 게 더 무서워.” 이렇게 말하던 엄마는 과거 촉망받던 비운의 수영 천재 광수한테 아들의 코치를 해달라고 제안한다. 1등을 호언장담했던 광수의 수업 덕인지 준호는 0.02초 차이로 2등을 한다. “정말 맞고 하니까 잘한 거야? 예전에는 안 맞아서 4등 했던 거야, 형?” 하지만 준호 동생 기호의 이런 돌발 발언이 가족들을 얼어붙게 한다.
지난 13일 개봉한 영화 <4등>(기획·제작 국가인권위원회, 제작 정지우필름·위 포스터)은 ‘스포츠 폭력’을 소재로 하는 인권영화다. 우리나라 학부모들과 학생들 마음속에 있는 ‘1등 강박’ ‘경쟁에 대한 불안심리’ 등을 거울처럼 비춰 ’아빠, 엄마가 꼭 봐야 할 영화’라는 평도 듣고 있다.
16일 서울 종로구에 사는 아빠 조정래(48)씨와 그의 딸 현성(상명대부속여중 2년)양, 서울 송파구에 사는 이윤아(45)씨와 그의 아들 박준현(신천중 1년)군이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눴다.
내 자식 앞 이기심 보이는 아빠도
‘매니저 엄마’도 모두 현실에 있어
아이들 앞에 놓인 수많은 대화
즐거운 마음만 갖고 잘 하기 힘들어
그래도 체벌은 좋지 않은 방법
수영장 레일 닮은 획일화된 평가 없이
여러 분야서 자유롭게 헤엄치게 했으면 영화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하다. 이윤아 엄마 캐릭터에 공감이 갔다. 작년까지는 큰아들한테 온 신경을 쏟았는데 대학 가고 나서는 작은아들인 준현이한테 에너지를 쏟는다. 학원을 가건 안 가건 큰 신경 안 썼는데 갑자기 과제는 했는지, 학원에서 어느 정도 따라가는지 등을 체크하니까 아이가 부담을 느끼는 것 같다. 이렇게 해야 학교 진학을 할 때도 좋을 거라는 생각에 옆에서 체크를 해주는 건데 ‘엄마가 왜 저러지?’ 한다. 큰아들도 “엄마가 그렇게 안 했어도 나는 잘했을 거”라고 하는데 내 딴에는 서운함도 있다.(웃음) 박준현 준호가 수영 안 한다고 하자 엄마의 관심이 동생 기호한테 가는데 그 장면이 기억난다. 기호가 “형이 다시 수영했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는데 내 얘기 같았다.(웃음)
조정래 감추고 싶은 현실도 잘 보여줬고, 억지스러운 캐릭터가 없었다. 엄마가 절에 가서 기도하고 내려올 때 둘째 아들한테 “엄마는 꿈이 없다”고 말한다. 아빠 건강하고, 큰아들 금메달 따고, 둘째는 좋은 대학 보내는 게 엄마 꿈이다. 실제로 부모세대들은 자녀가 공부 과정에서 무조건 노력하고, 결과적으로는 1등 해서 사회에서 좋다는 자리로 안착하는 걸 성공이라고 보는 일종의 학습된 생각들이 있는 것 같다.
조현성 준호한테 공감이 갔다. 준호처럼 맞으며 공부하는 아이가 많진 않겠지만 대부분이 그에 못지않은 압박감을 받고 공부한다.
코치가 준호를 때리면서 가르치자 성적이 오른다. ‘맞아서라도 1등만 하면 다 된 건가?’라는 의문이 든다.
조현성 나는 외부에서 어느 정도 자극을 받을 때 ‘좀 더 잘해야겠다’ 생각하는 스타일이다. 생활태도부터 공부 등 어느 정도 누군가 얘기를 해줬으면 하는 쪽이다. 하지만 맞아서 하는 게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도 싶다. 준호가 코치한테 맞은 이후로 아주 작은 일로 동생 기호를 때리는 장면도 기억난다.
체벌도 학습이 되고 또다른 폭력이 된다는 뜻으로 이해했나?
조현성 그렇다. 맞건 안 맞건 1등을 하는 게 해피엔딩일까 생각해보면 그것도 아니다. 우리 앞에 수많은 대회가 있는데 즐거운 마음만으로 뭔가를 해서 살아남기란 현실적으로 힘드니까.
박준현 어떤 경우라도 체벌은 안 된다. 그리고 옆에서 심하게 압박을 해도 결국 스스로 진심으로 하고자 해서 하는 게 아니면 오래 못 간다. 그럼 의미가 없는 거 아닌가. 체벌 대신 스스로 이룰 수 있을 수준의 목표를 정하고, 그걸 이루고 난 뒤 또 그다음 목표를 정하고, 그렇게 하면 체벌이 없어도 원하는 걸 이룰 수 있을 거 같다.
부모 처지에서는 어떻게 보나? 엄마는 아들이 맞은 걸 알고도 묵인했고, 직업이 ‘기자’인 아빠는 문제를 알았을 때 순간 화를 냈지만 문제를 덮어버리려 했다.
조정래 영화 속 아빠는 아내가 아이들에게 시시콜콜 간섭하는 걸 보면서 자신은 편하게 결과만 보고받는 캐릭터다. 과거에는 ‘기자정신’ 같은 게 있었겠지만 내 자식 앞에서는 이기심이 발동한다. 현실에서 볼 수 있는 캐릭터다. 내 경우라면 ‘안 맞고 1등까지 하기에는 우리 아이가 불성실한 면이 있었을까?’라고 생각하며 아이가 부족한 점을 먼저 찾았을 것 같기도 하다.
이윤아 영화 속 ‘체벌’이라는 게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쓸 수 있는 모든 부정적인 방법의 ‘상징’ 같다. 학교 공부로 치면 ‘비교과 영역에서 자기소개서나 소논문을 대필해준다’는 정도가 되지 않을까. 엄마들은 잘못된 걸 알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어떻게든 교내 수상을 하게 돕는다. 하지만 체벌이라는 방법은 절대 안 된다고 본다. 나라면 수영은 계속 시키되 코치를 바꿨을 거다.
‘재능’이라고 하면 여러 분야의 재능이 있을 텐데 우리나라에선 유독 공부를 기준에 두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박준현 우리나라에 있는 직업 가운데 공부 관련한 게 많아서 그런 것 같다.
조정래 선진국가 교육모델에서는 학교 교육과정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며 공부만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아이들 각자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찾게 해준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나마 최근 자유학기제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많이 바꾸려는 것 같다.
1등에 목매게 만든 사회구조의 문제도 있을 텐데?
이윤아 준호가 엄마한테 ‘나도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어’라고 할 때 눈물이 났다. 나도, 아이도 열심히 하고 있는 거 안다. 엄마 처지에서 성과가 날 때까지 기다려주고 싶다. 하지만 사회 전체 분위기가 불안과 경쟁을 부추긴다. 당장 결과가 있어야 상급학교 진학하고, 메달 색깔로 학교가 결정된다. 누가 이 엄마를 무조건 나쁘다고만 할 수 있겠나. 1등 할 정도로 노력하면 겨우 2등을, 2등할 정도로 노력하면 겨우 3등을 하는 세상이다. 뭐든지 ‘더 넘치게 해야’ 그다음 순위라도 겨우 얻는 게 우리 사회다.
그런데 이 사회에서 1등을 하면 정말 행복한가?
이윤아 그렇지도 않다. 다 어렵다고 하잖나. 게다가 누구나 내 아이가 1등 하길 바라지만 다른 집 1등 한 아이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주진 않는다.
조정래 부모세대 때 주변 아이가 좋은 대학에 가면 동네에서 현수막 걸어주고 진심으로 축하했다. 지금은 다르다. ‘참 수고했네’라며 진심 어린 축하를 해주는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자꾸 흠결을 찾으려 한다.
준호가 일자로 쭉 뻗은 수영장 레일을 무시하고 자유롭게 사방으로 헤엄치는 장면이 나온다. 감독 인터뷰를 보니 북유럽에는 별 모양으로 된 수영장도 있다고 한다.
조정래 이 장면을 학교나 사회에 적용해보면 어떨까 싶다. 어느 정도 자유로운 것들을 인정해주면서 ‘재능이 있고, 열정이 있다면 너 혼자서 마음껏 노력해봐’라고 말해주라는 메시지 같다. 일자로 쭉 뻗은 레일 위에서 공부하고 경쟁해온 부모세대한테는 낯설 수도 있지만 말이다.
이윤아 요즘 그나마 다양한 기회를 주고 스스로 해보라고 권하는 게 많아졌다. 하지만 평가는 그렇게 안 한다. 자유롭게 헤엄치게 했다가 갑자기 일자 레일 깔고 순위 매기는 경쟁을 시킨다. 혁신학교가 생겨서 아이들을 자유롭게 뛰어놀게 하고, 다양한 가능성을 발견해준다고 좋아하는 분이 많다. 하지만 혁신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이 입시가 중요해지는 중고교에 가서는 적응하기 힘들다고들 한다.
‘1등만 기억하는 잔인한 세상’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학교에서 4등은 정말 취급도 안 하나?
박준현 대회 같은 것도 2, 3등은 여럿인데 공동 1등은 없다. 1등은 오직 한 명인 대회가 많다. 2, 3등도 자기 결과를 아쉬워하며 1등만 바라본다.
조현성 영화 제목이 ‘4등’이다. 주인공이 아무리 수영을 좋아해서 얻은 4등이어도 세상 기준에서는 4등부터는 쓸모가 없다고 말하기 때문에 붙인 제목이 아닐까 싶다.
김청연 <함께하는 교육> 기자 carax3@hanedui.com
즐거운 마음만 갖고 잘 하기 힘들어
그래도 체벌은 좋지 않은 방법
수영장 레일 닮은 획일화된 평가 없이
여러 분야서 자유롭게 헤엄치게 했으면 영화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하다. 이윤아 엄마 캐릭터에 공감이 갔다. 작년까지는 큰아들한테 온 신경을 쏟았는데 대학 가고 나서는 작은아들인 준현이한테 에너지를 쏟는다. 학원을 가건 안 가건 큰 신경 안 썼는데 갑자기 과제는 했는지, 학원에서 어느 정도 따라가는지 등을 체크하니까 아이가 부담을 느끼는 것 같다. 이렇게 해야 학교 진학을 할 때도 좋을 거라는 생각에 옆에서 체크를 해주는 건데 ‘엄마가 왜 저러지?’ 한다. 큰아들도 “엄마가 그렇게 안 했어도 나는 잘했을 거”라고 하는데 내 딴에는 서운함도 있다.(웃음) 박준현 준호가 수영 안 한다고 하자 엄마의 관심이 동생 기호한테 가는데 그 장면이 기억난다. 기호가 “형이 다시 수영했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는데 내 얘기 같았다.(웃음)
자녀영화 4등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