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해 숭문중 학생들이 지구촌 불끄기 행사(어스아워)에서 플래시몹을 하기 전 다른 학교 학생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색 계기교육 사례
‘세계 습지의 날’(2월2일), ‘세계 야생동·식물의 날’(3월3일), ‘종이 안 쓰는 날’(4월4일), ‘세계 오존층 보호의 날’(9월16일), ‘화학조미료 안 먹는 날’(10월16일),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11월26일) 등. 신경준 교사(서울 숭문중)가 건넨 종이에 ‘열두달 환경 여행 팁’이 표로 정리돼 있다. 매달 2~6개의 환경기념일이 적혀 있는데 처음 들어본 것도 꽤 있었다.
환경교과를 담당하는 신 교사는 매달 환경 관련 기념일을 학생들에게 알려주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식으로 계기교육을 한다. ‘지구촌 전등끄기’(어스아워) 행사 때 서울시청 앞에서 플래시몹을 열고 ‘패트병 전구’(물과 베이킹소다를 병에 넣고 섞은 뒤 천장에 매달아 햇빛이 병을 비추며 실내를 밝히는 원리) 사례를 찾아 직접 만들어보기도 했다.
장민성군은 지난해 ‘바다의 날’(5월31일)에 학교 근처 망원동 공부방에 가서 아이들에게 바다의 날에 대해 알려줬다. 바다유리 목걸이도 함께 만들었다. “버려진 물건을 모아 재활용품을 만드는 동네가게 ‘터치포굿’에서 사전교육을 받았다. 깨진 유리가 바닷물에 마모가 되면 시글라스(sea glass)로 변한다. 그걸로 목걸이를 만드니 아이들이 참 좋아했다.”
특정 주제 놓고 수업하는 ‘계기교육’
정해진 과정 따르는 교과서 공부와 달리
실생활 문제 풀어가는 재미 솔솔 환경·여성·채식, 세계적 관심사 놓고
학생 스스로 문제 푸는 활동 진행
특정 기념일·주제 자체가 공부거리 실생활 밀착주제 참여형 공부하는 숭문중
최근 전교조가 ‘기억과 진실을 향한 416 교과서’를 계기교육 자료로 활용하는 것을 교육부가 막아 논란이 일었다. 계기교육이란 교육과정에 제시되지 않았던 특정 주제에 대해 교육할 필요가 있을 때 이뤄지는 교육을 총칭해 사용하는 말이다. ‘초·중등학교 교육과정’에 따르면, 학교에서는 교육과정에 제시되지 않은 사회 현안에 대해 학생들의 올바른 이해를 돕기 위해 계기교육을 실시할 수 있다고 나와 있다. 그런 면에서 사회적 주제인 세월호와 관련해 계기교육을 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신 교사는 실생활에 밀접한 주제를 찾아 학생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활동 위주로 계기교육을 한다. 학생들이 환경의 중요성을 자연스레 깨닫고 더 나아가 지구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게 하려는 뜻에서다. “특별한 계기와 연관 짓긴 하지만 일 년 내내 진행하다 보니 사실 ‘계기교육’이라는 말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만큼 우리가 살아가면서 알아야 할 환경 관련 이슈들이 너무 많다.”
학생들은 올해 자원순환연대에서 진행하는 ‘순환도전’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음식물 재활용, 업사이클링, 쓰레기 무단투기 금지, 폐전자제품 등을 주제로 학생들이 직접 기획해 활동하고 결과를 발표하는 것이다. 엄진욱군은 “제품은 마구 쏟아지는데 그 가운데 쉽게 버려지는 물건이 많다. 재활용 가능한 것들로 새로운 제품을 만들면 환경오염도 막고 경제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 폐기물 재처리 과정이 중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친구들과 다 쓴 학용품과 음료수캔, 과자봉지를 이용해 무엇을 만들 수 있을지 이야기했다. 과자봉지 돗자리, 음료수병 아령 등의 아이디어가 나왔다. 계기교육을 통해 ‘인간은 환경의 일부’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교사가 일방적으로 알려주는 게 아니라 우리끼리 생각하면서 자발적으로 활동하기 때문에 자유롭고 더 좋은 거 같다.”
양재모군은 지난해 파리기후변화협약 때 ‘101개의 목소리’라는 제목의 영상을 총회에 보내는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전국에서 사람들이 각자가 생각하는 환경에 대한 메시지를 담는 내용으로 실제 총회에서 그 영상이 상영됐다. “영상을 통해 ‘원자력에너지에 대한 문제점이 있다면 분명히 밝히고,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착한 에너지를 정확하게 가르쳐 달라’고 이야기했다.”
양군은 이 일을 계기로 재생에너지나 신소재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요즘 각광받는 태양광발전이나 재생에너지, 바이오 사업 등 에너지 관련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신 교사는 계기교육을 “단발성 이슈교육이 아닌 종합교육”이라고 말했다. “계기교육은 ‘감성-지식-사회시스템-사회정의-행동과 실천’으로 이어지게 하는 교육이다. 하나의 이슈를 알고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 혹은 지구 전체 시스템을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하다.”
그는 수업을 하기 위해 먼저 아이들의 감성을 깨우고 주제 관련 지식을 알려주고 사회시스템을 이해시킨다. 사회 구조에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사회정의를 생각하게 한 뒤 자신이 깨달은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고 행동으로 옮기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학생자치로 계기교육 진행하는 산마을고
계기교육에 대해 흔히 교사의 입맛에 따라 이야기하고 싶은 내용만을 가르친다는 일부 선입견도 있다. 이런 우려를 없애기 위해 학생자치활동 차원으로 계기교육을 진행하는 사례도 있다. 인천광역시 강화군에 위치한 산마을고는 매주 월요일 아침 ‘주를 여는 시간’(이하 주여시)라는 이름으로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을 꾸리고 있다. 학생들이 관심 있는 주제를 정해 직접 준비한 자료를 발표하고 토론을 벌이거나 캠페인을 하는 식이다.
김현수군은 얼마 전 ‘세계 여성의 날’(3월8일)을 맞아 주간행사를 열었다. “평소 사용하는 말 가운데 성차별적 의미가 담긴 단어를 제시하고 이를 바꿔 쓰자는 캠페인을 벌였다. 데이트폭력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거나 여성 흡연을 남성 흡연보다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 명절에 왜 여성만 일을 하는지 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포스터도 교내에 붙였다.”
김군은 “현재 한국의 여성들이 살고 있는 사회는 어떤지, 우리가 어떤 수준의 성평등 의식을 가져야 하는지 등을 이야기해보고 싶었다”며 “발표를 준비하면서 성차별이나 폭력적인 언어가 정확히 무엇인지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그와 친구들은 한국성폭력상담소 관계자를 직접 섭외해 ‘한국에서 여성의 삶’이란 주제의 특강도 마련했다.
안성균 교장은 “교사가 정치사회적 이슈로 계기교육을 하다 보면 중립을 지키며 객관적으로 전달하려 해도 자기 관점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며 “학생 누구나 참여해 직접 진행하면 좀 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다양한 의견을 접할 수 있다. 교사는 학생의 관점이 미흡할 때 보완하거나 생각지 못한 의견을 제시하며 다 같이 토론에 참여하는 정도”라고 말했다. 주여시를 진행하다 쟁점에 대한 찬반 논의가 치열해질 경우 학교 구성원 전체가 참여하는 ‘식구총회’를 열어 그 주제를 좀 더 깊이 있게 다루기도 한다.
학생들이 진행하는 계기교육 주제는 어떤 분야도 상관없다. 외부 전문가를 불러 특강을 열 경우 교사한테 미리 얘기해서 수업시간을 조정하면 된다. 김유민양은 지난해 ‘고기 없는 월요일’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마을학교 공동체 상영에서 <잡식가족의 딜레마>라는 다큐영화를 본 게 계기가 됐다. 육식이 늘어 가축을 대량생산·소비하는 구조에서 동물을 생명이 아닌 사람들의 영양분인 ‘고기’로만 보는 시각이 많아졌다. 이에 김양은 평소 좋아하는 비틀스의 폴 매카트니가 제안한 프로젝트이기도 한 ‘고기 없는 월요일’을 학교에서 직접 시도해보자고 생각했다.
그는 채식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2, 3주에 걸쳐 <이비에스>(EBS) 지식채널-e의 ‘배부른 돼지와 닭장’ 등 관련 영상을 보여줬다. 전교생 찬반 의견을 묻는 설문조사를 하고 영양사와 의논도 했다. 일부이지만 이미 채식을 하고 있는 선배들도 있던 터라 야심차게 추진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학생총회까지 열었지만 찬반이 팽팽히 갈렸다. 반대하는 학생들은 채식이 좋고 육식이 안 좋다는 것도 납득을 하지만 그래도 학생들은 성장기이고 이미 학교 급식에서 고기가 별로 없다는 의견을 말했다.”
김양은 현재 주말에만 채식을 한다. 학교에서도 채식을 하는 학생에게는 고기 대신 달걀프라이나 과일샐러드 등으로 대체급식을 해주고 있다. 그는 “교과서에 나온 건 관심 없는 내용도 많아서 공부하는 데 흥미가 떨어질 때가 있다”며 “주여시에서는 자기가 관심 있는 주제를 정해서 발표하니까 내용도 알차게 준비하고 또래가 발표하니까 더 친근하고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채식 프로젝트를 준비하며 많은 걸 느끼고 배웠다. 계기교육은 학생들에게 특정 기념일이나 주제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봤으면 하는, ‘생각의 여지’를 주자는 의미가 담겨 있는 거 같다.”
최화진 <함께하는 교육> 기자 lotus57@hanedui.com
정해진 과정 따르는 교과서 공부와 달리
실생활 문제 풀어가는 재미 솔솔 환경·여성·채식, 세계적 관심사 놓고
학생 스스로 문제 푸는 활동 진행
특정 기념일·주제 자체가 공부거리 실생활 밀착주제 참여형 공부하는 숭문중
2. 숭문중 학생들이 친환경세제인 이엠(EM)배양액을 만들어서 마포구치매지원센터에 전달했다. 신경준 교사 제공
3. 산마을고 김유민양이 학생자치활동으로 진행하는 계기교육 시간에 채식 프로젝트 ‘고기 없는 월요일’을 주제로 전교생 앞에서 발표하고 있다.
4. 산마을고 학생회 학생들이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캠페인을 벌이기 위해 만든 포스터. 산마을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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