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18일 서울 성북구청에서 열린 공간 민들레 심포지엄에서 오디세이학교 학생과 학부모, 교사 등이 모여 그동안의 느낌과 활동 소감을 나누고 있다. 최화진 기자
1기 오디세이학교 평가
‘좌표를 찾지 못하고 흔들거리는 고교 1학년. 이들에게 1년 동안 진로 찾을 시간을 준다?’
지난 5월 문을 연 서울시교육청의 오디세이학교는 이런 콘셉트로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고교 1학년들과 학부모의 귀를 솔깃하게 했다. 기존에 없었던 이 특이한 학교는 2 대 1의 경쟁률 속에 40명의 1기 학생을 선발했다. 7개월간 이들은 스스로 여행을 기획해 멘토를 찾아 떠나거나 밴드 수업을 개설해 악기를 배웠다. 그동안의 생각과 경험을 담아 책자를 만든 친구들도 있었다.
지난 5월 시작한 ‘오디세이학교’
1기 40여명, 참여 소회 털어놔 덴마크 ‘에프테르스콜레’ 모델로
대안교육 기관서 공부하는 프로그램
수업·여행 등 자발적 배움 접하지만
교과공부 등 내신은 스스로 챙겨야
‘부적응아 학교’ 왜곡된 인식도 있어
지난 18일 공간 민들레(이하 민들레)는 ‘경험으로 말한다, 오디세이학교’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임유원 서울시교육청 장학관과 오디세이학교 교사와 1기 학생, 학부모가 모여 그동안의 활동과 느낌을 나누는 자리였다.
이우진양은 평소 학교생활을 착실히 하고 말 잘 듣는 학생이었다. 교과서에 나온 내용이 이해가 안 갈 때도 많았지만 그냥 외워서 시험을 본 적도 있다. “고교에 오니까 성적으로 인한 차별도 심해지고 아이들이 경쟁을 당연히 여겨 충격을 받았다. 학교 밖에서도 배울 수 있는 내용이 있을 텐데 교사나 어른들은 무조건 학교 공부만 공부라고 했다.”
갑갑해하던 우진양은 오디세이학교에 지원했다. 처음 민들레를 찾아 학교밖 아이들을 만나면서 많이 놀랐다. 학교에서 본 아이들은 ‘철저히’ 수행평가나 시험에 의해서만 움직였다. 하지만 민들레 아이들은 점수를 매기거나 진급하는 것도 아닌데 밤새워 과제를 했다. 그 내용도 훌륭했다. “자발적으로 활동을 하고 자기 생각을 서슴없이 말하는 걸 보며 자극을 받았다. 처음엔 얼어붙어 있던 오디세이학교 아이들도 저마다 하고 싶은 걸 찾고 자기 생각을 분명히 말하게 됐다.”
학부모 박은주씨는 “초반에는 판단 기준도 없고 본인이 하는 활동이 잘하는 건지, 맞는 건지 아이가 불안해하니 나도 덩달아 불안했다”고 말했다. “한 학기를 마치고 길잡이교사가 가정방문을 와서 아이 모습이나 교육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는데 학교에 대한 신뢰가 생겼다. 아이를 지지하며 지켜보게 됐다.”
오디세이학교는 일반적인 학교 교육과정에서 벗어나 1년 동안 대안교육과정 속에서 아이들이 깊이 있게 자아를 찾는 기회를 마련해준다는 취지로 만든 학교다. 덴마크 에프테르스콜레(인생설계학교)를 모델 삼아 서울시교육청이 올해부터 고교 1학년을 대상으로 운영 중인 고교자유학년제다. 선발된 학생들은 본래 학교 소속을 유지한 채 오디세이학교 협력기관에서 교육을 받고 2학년 때 원래 학교로 돌아간다. 협력기관인 대안교육 기관은 공간 민들레, 꿈틀학교, 아름다운학교다.
학생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대안교육을 받는다고 짧은 기간 동안 아이들이 갑자기 바뀌기는 힘들다. 1기에 참여한 아이들 대부분 “확실한 진로를 찾거나 내 모습이 눈에 띄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프로젝트 위주 활동을 하면서 스스로 여행이나 수업을 기획하기도 하고 본인의 의견을 다른 친구들과 자유롭게 나누는 경험을 했다. 이 과정을 통해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거나 다양한 관심사가 생긴 경우도 있었다.
김효건군은 오디세이학교에 오기 전까지 게임중독에 놀기만 좋아했다. 이곳에서 활동과 과제를 하며 바쁘게 생활하다 보니 게임도 줄이게 되고 특강을 통해 ‘래퍼’라는 꿈도 꾸게 됐다. “‘트루베르’란 그룹의 멤버 고태관씨로부터 랩 수업을 들었다. 그 뒤로 오디세이 다녔던 경험과 역사수업 중 들었던 위안부 이야기를 바탕으로 랩 가사를 직접 썼다. 남들 앞에서 말하는 걸 진짜 싫어하는데 랩을 통해 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건 좋았다.”
김경민군도 스스로 변한 걸 느꼈다. “여기 오기 전에는 그냥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만 했는데 다양한 활동을 하다 보니 하고 싶은 일이 많아졌다”며 “남의 눈치를 많이 봐서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자치회의나 직접 기획을 하며 사람들 앞에서 내 의견을 말하는 것이 익숙해졌다”고 말했다.
오디세이학교가 개교한다고 했을 때 부모들의 관심은 단연 ‘학력이 뒤처지면 어떻게 하느냐’는 데 모아졌다. 아이들이 각자 학교로 돌아가서 교과학습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할까봐 걱정하는 것이다.
오디세이학교는 대안교과로 ‘패스페일’(Pass/Fail) 방식으로 평가하는 과목이 있고, 영어·수학·한국사 등은 지필고사 형태로 기말고사를 치른다. 방과후 선택프로그램을 통해 부족한 교과수업도 진행한다. 하지만 학생들의 만족도는 엇갈렸다. 그런 불안감 때문에 학부모가 아이에게 오디세이학교를 그만두게 하고 다시 소속 학교로 돌려보내는 경우도 있었다. 한 학생은 “문제풀이보다 수학의 원리를 알아보는 활동 위주로 수업하는데 2학년 때 학교로 돌아가 교과 수업을 잘 따라갈 수 있을지 불안하다”고 했다. 내신은 본인이 알아서 잘 챙겨야 한다는 뜻이다. 또 다른 학부모와 학생들은 “입학 전 사교육을 받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썼지만 조용히 과외를 받는 학생들도 일부 있다”고 털어놨다. 아름다운학교 염병훈 교사는 “성적 산출 방식의 평가는 학생들에게 부담과 스트레스를 주고 오디세이 원래 목적을 반감시킬 수 있다”며 “여유를 갖고 옆을 돌아보는 시간인 만큼 대안교육 진영에 학교 자체를 아예 위탁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아직 일부 일선 학교에서는 오디세이학교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내기도 한다. 한 학생은 “선생님한테 오디세이학교 지원하겠다고 하자 ‘여기서 대학 입시 공부나 하지 거기는 뭐하러 가느냐’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사립학교 학생들의 경우 “오디세이학교 모집 관련한 가정통신문을 받지도 못했다”는 아이들도 있었다. 꿈틀학교 최희선 교사는 “행정절차상 아이 서류를 본적 학교를 거쳐 주고받게 되어 있어서 복잡하다”며 “교사들이 번거롭게 생각하기도 하고 대안학교는 ‘학교부적응자’나 ‘사고 친 아이들이 가는 곳’이라는 선입견이 있어서 지원하겠다는 학생을 만류하는 사례들도 봤다”고 말했다.
현재 오디세이학교를 ‘실험 단계’로 보고 불안해하는 이들도 있다. 이에 대해 염 교사는 “공교육 안에서 오디세이학교를 만든 시도 자체가 성과로 볼 수 있다”며 “아이들이 이곳에서 일 년 보낸 뒤 본인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생활도 더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이라면 성공 가능성은 희박하다. 공교육 안에서든 밖에서든 자기 길을 찾아가는 힘이 더 커졌다는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오디세이는 지속 가능하다”고 말했다. “오디세이 과정 자체가 아이들에게 혼란을 주기 위한 과정이다. 부모나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공부하다가 ‘왜’라는 질문을 던지며 스스로 고민하면서 공부해보게 하는 학교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혼란스러움을 겪고, 흔들리게 됐다면 오디세이학교를 ‘제대로 겪은’ 것이다.”
최화진 '함께하는 교육'기자 lotus57@hanedui.com
1기 40여명, 참여 소회 털어놔 덴마크 ‘에프테르스콜레’ 모델로
대안교육 기관서 공부하는 프로그램
수업·여행 등 자발적 배움 접하지만
교과공부 등 내신은 스스로 챙겨야
‘부적응아 학교’ 왜곡된 인식도 있어
2. 정독도서관 야외 잔디광장에서 진행한 오디세이학교 릴레이특강에서 부부 인디밴드인 ‘복태와 한군’이 ‘내 맘대로 산다는 건’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오디세이학교 제공
3. 학생들은 본인들이 하고 싶은 활동으로 영상제작 프로젝트를 기획해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 등을 맡아 진행했다. 오디세이학교 제공
4. 입학식 뒤 일주일간 경기도 가평으로 여행을 간 학생들은 몸으로 부딪치면서 비전을 채우고 친밀감을 쌓는 활동을 했다. 오디세이학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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