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학과는 학생의 등록금 부담 완화와 취업난 해소라는 장점이 있지만 대학 진학을 위한 위장취업이나 시간강사만으로 수업이 이뤄져 부실운영 논란도 있었다. 교육부는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최근 ‘계약학과 운영 효율화 방안’을 발표했다. 학생이 산학연계된 기업체에서 일하는 모습으로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가 없음.
수능 성적이 발표됐다. 본격적으로 대학 입학원서를 써야 할 때다. 학과를 선택할 때 본인의 적성은 물론 취업률도 중요한 판단 기준이다. 취업난이 심해지는 만큼 ‘실속형 학과’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계약학과는 대학과 기업이 협약을 맺어 일하면서 학위를 취득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학과다. 기업으로서는 본인들의 요구를 반영한 특별 교육과정을 설치·운영할 수 있다. 채용조건형, 재교육형으로 구분해 운영중이다. 채용조건형은 졸업 후 계약학과와 제휴 맺은 업체에 채용될 수 있는 것을 전제로 입학하는 것이다. 산업체가 학과 운영에 필요한 경비의 50% 이상을 부담해야 한다. 재교육형은 산업체 소속 직원의 직무 향상을 위한 재교육 과정이다. 현재 143개 대학, 636개 계약학과에 1만6000여명이 재학중이다.
기업-대학 제휴 맺은 계약학과
‘졸업후 채용’ 조건으로 학비 지원
재직자 재교육 목적 등으로 운영
일과 공부 병행 가능한 반면
‘졸업장’만 보고 다니는 사례도
상위권대 일부 학과의 경우
일반학과와 전형 차이 없어
특성화고 학생들은 진입 어려워
■ 전공 관계없이 취업하기도
계약학과는 학생의 ‘등록금 부담 완화’와 ‘취업난 해소’라는 장점이 있지만 대학 진학을 위한 위장취업이나 별도 인허가나 전임교원 없이 시간강사만으로 수업이 이뤄지는 등 문제점도 불거진 바 있다.
계약학과를 운영하는 수도권 소재 대학의 한 관계자는 “실제 재직증명서를 위조해 취업을 한 것처럼 꾸민 뒤 대학에 입학시키거나 대학에서 제대로 된 교육시설을 갖추지 않고 허술한 강의를 진행해 적발된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기업과 대학이 서로의 이익을 위해 ‘입시 부정’을 저지르거나 부실 운영을 한 셈이다.
상대적으로 대학 입학이 쉽다 보니 일부에서는 실무능력 향상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대학졸업장’을 따기 위해 다니는 경우도 있다. 특성화고를 졸업한 이아무개씨는 올해 재교육형 계약학과에 입학했다. 1년 조금 넘게 근무한 그는 ‘1년 이상 재직’ 기준에 충족해 지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학에서 배우는 내용은 그가 하는 기계 업무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
“고등학교 선생님이 추천해서 지원했다. 등록금도 정부랑 회사에서 내주고 주말야간대로 운영하는 곳이 여기뿐이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씨는 금요일은 저녁 7시부터 11시까지, 토요일은 정오부터 오후 5시까지 수업을 듣는다. 그에게 대학교 소속 전임강사나 현장 실무자가 각각 어느 정도 강의를 맡는지 묻자 “잘 모른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배우느냐는 질문에도 머뭇거리거나 크게 관심이 없어 보였다.
10명 남짓한 이씨의 학과 동기들도 강의 내용과 상관없는 업체에서 일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는 “방위산업체라 군대 갈 바엔 돈 버는 게 낫고 대학졸업장도 필요할 거 같아서 겸사겸사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학과를 개설했지만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곳도 있다. 의약전문언론 <데일리팜>조사에 따르면 올해 약대 계약학과의 경우 13곳 가운데 1곳 대학에 1명만 지원했다. 약대는 재교육형만 운영중이다. 실제 한 서울 사립대 약학과에 입학 관련 문의를 해봤다. 담당자는 “회사가 어디냐, 우리랑 제휴를 맺은 곳인지 확인해주겠다”며 “우리 과와 제휴를 맺은 업체가 현재 30곳이 넘는다. 아직 제휴를 맺지 않았으면 (우리가 직접) 회사랑 이야기해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대학은 계약학과 학생을 정원외로 선발하기 때문에 등록금을 별도로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학생 유치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
약학과의 모집 인원이 미달인 이유는 회사에서 굳이 돈을 들여 인력을 재교육시키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제약업체에서 현재 충분히 능력을 갖춘 사람을 뽑을 수 있기 때문에 이미 학과를 개설한 대학 쪽도 난감한 상황이다.
앞서 말한 학교의 경우 계약학과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3년 이상 재직 기간과 더불어 해당 산업체로부터 추천을 받아야만 한다. 계약학과는 특정 업체와 대학이 일정 기간 계약을 맺은 형태이기 때문에 중도퇴사의 경우 학적이 저절로 없어진다. 다만 권고사직이나 회사가 문을 닫는 등 불가피한 경우에 한해 학적이 유지될 수도 있다. 계약학과 졸업 후에는 소속 업체에 3~5년 정도 더 다녀야 한다. 다른 학교의 약학대학 계약학과도 이와 비슷하다. 지원자로서는 계약학과가 특별한 ‘메리트’가 없다.
■ 고교생 아닌 재직자에게 유리해
계약학과는 학과에 따라 모집조건이나 지원 금액이 조금씩 차이가 난다. 교육부가 만든 제도지만 중소기업청이나 고용노동부에서 부처 성격과 예산에 맞춰 계약학과를 따로 운영하기 때문이다.
현재 교육부에서 운영중인 계약학과는 채용조건형과 재교육형 모두 수도권 지역이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다. 채용조건형은 전체 55%인 44개 학과가, 재교육형은 전체 54%인 306개 학과가 수도권에 위치해 있다. 학과 분야도 채용조건형의 64%, 재교육형은 41%가 공학계열로 치우쳐 있다.
특히 채용조건형은 일반학과와 뽑는 기준이 같다 보니 상위권 대학 계약학과의 경우 경쟁률이 높다. 교육부 관계자는 “입시요강에 맞춰 수능 성적을 보는 경우 당연히 공부 잘하는 학생이 유리하다”며 “성균관대 반도체시스템공학과의 경우 삼성에서 등록금 전액을 지원하고 졸업 후 채용한다는 조건이 있어서 수능 성적 최상위권 학생들이 지원한다”고 말했다.
한 아이티(IT)계열 특성화고의 상담부장 교사는 “계약학과를 알고는 있지만 채용조건형의 경우 상위권 대학은 최소 내신 2등급 기준이고 수능 성적도 높다. 인문계 아이들과 경쟁하려니 상대적으로 수능 성적이 낮은 우리 학생들은 불리한 면이 있다”며 “차라리 재교육형이나 재직자특별전형을 알아보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계약학과는 얼핏 보면 ‘선 취업 후 진학’ 차원의 제도로 보이지만 재직자특별전형과 일학습병행제처럼 특성화고나 마이스터고 학생만을 대상으로 한 건 아니다. 다만, 재교육형의 경우 재직 기간을 입학 조건으로 내걸었기 때문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보다 재직자에게 유리하다.
일부에선 제도의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계약학과를 개설하는 데 기업 제한을 두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재 기본조항에서는 일반 계약학과와 중소기업 계약학과 모두 학과 개설 요건이 ‘5인 이상 중소기업’이라고 돼 있다. 중견기업의 경우 매출액을 따져 일정 부분을 지원해 주기도 한다. 중소기업 계약학과 강의를 맡은 김진환 교수(한림성신대)는 “내가 근무하는 춘천에는 5인 이하 중소기업이 많다. 이런 업체일수록 고용 안정성이 상대적으로 취약하기 때문에 지원이 더 필요하다. 기업 제한을 유연하게 적용한다면 이 사업의 성과가 지금보다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계약학과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정 규모 이상의 회사여야 한다”고 말했다. “계약학과는 산업체 요구로 대학에 설치할 수 있고 업체에서 학자금도 어느 정도 부담해야 한다. 이 때문에 재정상태가 좋지 않은 업체에서는 부작용도 따를 수 있다. 실제 지난해 한 업체에서 대학 가게 해주는 대신 등록금을 100% 재직자가 부담하게 한 편법도 일어났다.”
교육부는 그동안 지적돼온 계약학과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최근 ‘계약학과 운영 효율화 방안’을 발표했다. 채용조건형의 경우 기존의 대학과 기업이 동일한 광역행정구역이나 100㎞이내 위치해야 했던 것을 전국으로 확대했다. 또 대학교 내 강의를 원칙으로 하고 산업체 소유 건물을 예외적으로 허용했던 데서 나아가 산업체 임차 건물에서도 수업을 허용했다.
재교육형은 계약학과 설치·폐기 시 교육부 장관에게 신고하도록 했다. 그동안은 별도로 신고하지 않아 계약학과 운영 실태를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또 산업체 입사와 동시에 진학할 수 있어 대학 진학을 위한 위장취업 사례가 드러나기도 했다. 이를 막고자 9개월 이상 재직 시 입학 가능하도록 조건을 강화했다. 최소 기간으로 설정한 거라 실제 대학에서는 2~3년의 재직 기간을 요구하는 곳도 있다. 지원 시에는 4대보험 가입증명서만 요구했던 예전과 달리 재직자의 원천징수영수증까지 제출해야 한다.
교육부가 밝힌 계약학과의 목적은 사회에서 요구하는 ‘맞춤형 인력양성’이다. 이에 더해 채용조건형은 학생의 등록금 완화와 취업난 해소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교사나 학생 대부분 “제도의 취지는 좋지만 계약학과 자체가 생소하다. 홍보가 좀더 필요하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대학에 문의해도 “계약학과가 뭐냐”고 반문하거나 해당 학과에서도 잘 몰라서 헤매는 경우가 있었다. 경기도 한 고교에서 진로진학을 담당하는 한 교사는 “사실 이름난 대기업과 제휴한 계약학과에만 눈이 간다”며 “대학에서 다른 학과들도 좀더 홍보를 하고 학생이나 업체 측에 지속적으로 피드백을 받아 제도 개선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 최화진 <함께하는 교육>기자 lotus57@hanedu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