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20일부터 22일까지 열린 경기도교육청 주최 에듀픽션 콘퍼런스 ‘쇼미더스쿨’에 참가한 용인 구성고 1학년 여학생들이 독도를 주제로 다양한 공부를 할 수 있는 학교를 기획하고 있다.
“제가 꿈꾸는 학교는 적정기술처럼 과학을 활용해서 기술에서 소외된 사람들에게 사회적 도움을 줄 수 있는 법을 배우는 학교입니다. 캠페인 하는 방법을 함께 배울 수도 있고요. 좋은 변화가 필요한 사회의 면면을 함께 알아보고, 효율적인 해결 방안을 같이 탐구하는 교육과정입니다.”
한 학생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른 학생이 손을 번쩍 들었다.
“닭 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세요? 네, 치킨이 떠오르죠. 치킨은 자주 먹는데, 여러분 닭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아시나요? 잘 모르시죠? 제가 생각한 학교는 우리가 어떻게 생겨났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생각할 수 있는 학교입니다.”
100명의 학생들이 한데 모여 ‘별별’ 학교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매일 다른 테마로 공부하고 즐길 수 있는 ‘뭔데이학교’,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학교’ 등 다양한 의견이 펼쳐졌다.
지난 11월20일부터 22일까지 경기도 고양시의 한 연수원에서는 경기도교육청 마을교육공동체기획단이 주최한 ‘쇼미더스쿨’ 콘퍼런스가 열렸다. 이 콘퍼런스는 학생들이 모여 서로의 상상력을 모아 함께 학교운영계획안을 만들어 보는 식으로 진행됐다. 콘셉트는 ‘소셜픽션’ 개념을 차용해 ‘에듀픽션’으로 정했다. 소셜픽션은 노벨평화상 수상자 무함마드 유누스가 “제약 조건 없는 상상으로 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며 제안한 개념이다. 학생들은 어떤 제약을 두지 않고 직접 만든 학교운영기획안으로 2016년 1월부터 2월까지 ‘쉼표형 꿈의 학교’를 실제 운영하게 된다.
■ 학생이 만든 학교에선 모두가 교사
이동식 창업카페를 운영하며 배우는 ‘포롱포롱포로롱’도 돋보였다.
‘학생들이 학교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어른들의 우려와는 달리 참신한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안산 두원공고 1학년 채문희양은 ‘관계맺기의 달인’을 교육하는 학교를 기획했다. 그는 “사회생활에서는 상황에 따라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등 인간관계를 제대로 배울 수 없다”며 “특히, 상대에 대한 고정관념처럼 진솔한 사회적 관계를 방해하는 요소를 제대로 인지해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만든 학교에는 ‘선생님’이 없었다. 모두가 선생님이었다. 학교의 구성원들이 자신의 진로 탐색 여행계획을 직접 짜고, 여행을 다녀와서 배운 것을 학교 안 ‘아고라’에서 발표하는 ‘드림로드스쿨’팀의 평택 한광고 1학년 이은호군은 “배우는 사람이 학교의 운영주체가 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평소 학교를 다니면서 ‘이런 활동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던 것들을 친구들이랑 함께 현실에서 구현할 수 있게 구체화해봤어요. 책이나 신문, 인터넷처럼 다양한 곳에서 필요한 정보를 구할 수 있다면, 이제는 단순히 아는 것을 넘어 그것을 통해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것이 중요해졌다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니 선생님으로부터 배우는 것보다는 함께 배움을 찾아가는 쪽으로 기울게 되더라고요.”
학생들은 각자가 기획한 학교의 테마에 맞춰 종이 상자 등을 활용해 입학홍보물을 만들기도 했다.
“정해져 있는 가르침의 수혜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어른들이 짠 틀에서 벗어나 나에게 필요하고 소중한 경험들을 알아서 찾아가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아고라’에서 서로의 계획이나 결과 등을 공유하면서 함께 머리를 맞대면 서로 존중하는 법도 배울 수 있고요.” 군포 용호고 1학년 김한별군이 덧붙였다.
컴퓨터 프로그래밍과 소프트웨어 관련한 지식을 학생들끼리 서로 가르치며 배울 수 있는 ‘자유정보학교’팀의 고양 지도중 유아영양도 “우리끼리 서로 모르는 것을 가르쳐 줄 때 더 쉽게 잘 배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단순히 정보 전달을 해주는 사람보다는 함께 고민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동료가 중요하다고 봤다”고 웃었다.
■ 역사·진로 관련 콘셉트 가장 많아
이들 외에도 학생들이 직접 자신들의 진로탐색여정을 기획하는 ‘드림로드스쿨’
국정교과서 파동의 영향인지 역사교육 관련 프로그램을 기획한 학생도 많았다. 용인 구성고 여학생들은 함께 ‘쇼미더독도’라는 이름의 학교를 만들었다. 이 학교는 독도를 주제로 관련 역사, 지구과학 등을 공부할 수 있는 교육과정을 운영한다. 1학년 채민지양은 “독도가 다들 우리 땅이라고 하지만, 왜 우리 땅인지 곧잘 설명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기 어렵다는 생각에 기획했다”고 밝혔다.
“한 번도 왜 독도가 우리 땅인지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더라고요. 그것도 세뇌교육이 아니었을까요? ‘왜?’라는 질문을 계속하고, 전후 상황을 공부하면서 사회적 의미를 알아가는 것이 역사공부인데, 그동안 너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나 생각하게 됐어요.”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은 시기이다 보니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는 학교 아이디어도 많았다. ‘드림로드스쿨’뿐 아니라, 트럭을 개조해 이동식 카페를 운영하며 진로를 고민하는 ‘포롱포롱포로롱’, 자유롭게 멍을 때리거나 자연을 즐기는 시간을 보장해 사색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두드림학교’의 ‘한량체험’ 등이 돋보였다. ‘두드림학교’를 기획한 안양 백영고 1학년 한세희양은 “어른들이 가리키는 대로 간다고 해서 꼭 행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미리 ‘제2의 인생’을 설계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홍보물을 만들었다”며 웃었다.
학교를 직접 운영하는 계획을 세우면서 학생들은 실제 행정절차나 예산 등 평소에는 배울 기회가 없었던 ‘어른들의 세계’에도 발을 들이게 됐다. 학생들에게는 생소하고 어려운 일이었다. 채민지양은 “독도를 간다는 계획을 짜더라도, 단체 버스를 빌리면 얼마가 드는지, 단체 숙박비로는 예산을 얼마를 할당해야 하는지 등의 문제들이 가장 어려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도 학생들에게는 배움의 기회가 되었다. ‘쇼미더독도’팀의 남세영양은 “장래 홍보인이 되는 게 꿈이다. 내가 상상한 학교를 만들고, 홍보하는 전략을 세우면서 자연스럽게 진로에 대한 고민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경기도내 중·고교생 100여명 불러
‘내가 다니고픈 학교’ 계획하게 해
재미·의미 담은 아이디어 쏟아져
‘쉼표형 꿈의 학교’라는 이름으로
내년 1~2월 실제 운영할 예정
계획안 아이디어를 짜고, 마인드맵 등을 활용해 학교를 설명하는 프레젠테이션을 만들고, 종이 상자 등을 활용해 학교를 표현하는 상징물을 완성하는 학생들의 활동은 새벽 3시가 넘게 이어졌다. 학생들이 궁금한 것을 질문할 수 있도록 주최 측 멘토들이 행사장 구석에 차린 ‘토닥토닥 에스오에스(SOS)상담소’도 새벽 3시가 다 되도록 열려 있었다.
주최 측은 행사에 참가할 학생들을 뽑기 위해 지난 11월2일부터 11일까지 지원 학생 각자의 쉼표학교 운영계획서와, 2분 내외의 자기소개 동영상을 받았다. 심사를 거쳐 100명의 참가자를 선발했는데, 좋은 아이디어가 많아 심사도 쉽지는 않았다.
“약 1200명이 지원했습니다. 선발된 학생들 가운데 80%는 3명의 심사위원 모두에게 최고점을 받은 학생들이에요. 자기소개 동영상만 봐도 창의력이 넘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죠. 아이들이 직접 학교를 만들어 가면서 스스로 배움을 설계할 수 있길 바랐습니다.” 첫날 행사를 진행한 삼탄초 홍인기 교사의 말이다.
경기도교육청 꿈의 학교 기획단장을 맡고 있는 박재동 화백은 행사 첫날 참가학생들을 향해 “학생들이 직접 학교를 만드는 걸 보는 것이 나의 오랜 꿈”이라고 말했다.
“왜 어른들이 만든 학교와 교육과정에서 아이들이 공부해야 하나요? 여러분이 원하는 대로 학교를 만들어 보세요. 어른들보다 훨씬 더 잘할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20일 오전 연수원에 도착한 학생들의 일정은 22일 오전 최종 발표회가 되어야 끝이 났다. 인터넷 프로그램을 활용해 사이버 공간에 자신만의 학교를 만든 학생, 종이 상자로 거대한 장승을 만들어 전통을 지키는 학교를 홍보한 학생 등 발표 형식도 가지각색이었다.
고양/글·사진 정유미 '함께하는 교육'기자 ymi.j@hanedu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