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 리커창 중국 총리(오른쪽)가 지난 1일 청와대에서 열린 한·중·일 정상회의 공동기자회견이 끝난 뒤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권희정(상명대부속여고 교사, 숭실대 철학과 겸임교수)
[한겨레 사설] 한·중·일 정상회의 복원, 동북아 새 협력 계기로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리커창 중국 총리가 1일 청와대에서 3년 반 만에 한·중·일 정상회담을 했다. 세 나라는 2008년부터 2012년까지 매년 정례적으로 정상회담을 해왔다. 하지만 2012년 9월 중국과 일본 사이에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 영유권을 둘러싼 갈등이 불거지면서 우리나라가 개최국인 2013년부터 회담이 열리지 못해왔다. 중단 위기에 있던 3국 정상회담의 틀을 이번에 우리나라가 주도해 복원한 것은 의미가 크다.
3자회담 재개에는 그간 중국이 일본의 태도를 문제 삼아 강하게 반발해왔으나, 우리나라가 적극 중재에 나선 것이 주효했다. 박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미얀마에서 열린 ‘아세안 플러스 3’ 정상회의에서 처음 공식 제기하고, 올해 9월 중국의 전승절 기념식에 참석해 시진핑 주석과 회담하면서 중국의 참여를 이끌어낸 게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주변국의 갈등 속에서 한국 외교가 주도력과 공간을 잘 활용한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아베 총리와 리커창 총리도 회담 복원에 대한 한국의 노력을 평가하고 이 회담을 새로운 3국 협력의 틀로 발전시켜 나가자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그러나 3국 정상회담의 틀이 복원되었다고 해서 곧바로 세 나라 관계가 3년 반 이전으로 회복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최대 쟁점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아직도 해결의 전망이 보이지 않은 채 남아 있고,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도 영토 문제와 역사 문제, 남중국해 문제 등에 대한 갈등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아베 총리와 리커창 총리가 회담 머리발언에서 각각 “지역·국제 문제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의견을 교환하겠다”, “협력은 타당하게 역사를 비롯한 민감한 문제를 처리하는 토대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라고 가시가 든 발언을 한 것은 상대에 대한 불신의 앙금이 여전함을 보여준다.
우리나라로서는 북한 핵 문제를 포함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 경제 번영을 위해서라도 주변국들이 갈등하지 않고 협력하는 체제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이번 한차례의 3국 정상회담 복원에 만족하지 말고 앞으로도 꾸준히 중국, 일본을 포함한 주변국들이 공통의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협력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노력을 활발하게 펼쳐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남북관계 개선 없이는 이런 국제적 노력도 나라 안팎에서 힘과 지지를 받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중앙일보 사설] 한·중·일 협력 재개 발판 마련한 3국 정상회의
한국·중국·일본 세 나라 정상이 어제 한자리에 모였다. 2012년 5월, 베이징에서 머리를 맞댄 이후 3년 반 만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는 어제 청와대에서 3국 정상회의를 갖고 “이번 회의를 계기로 3국 협력 체제가 완전히 복원됐다”고 선언했다. 무려 56개 항목에 이르는 ‘동북아 평화·협력을 위한 공동선언’도 채택했다. 과거사와 영토 문제로 냉랭했던 3국 협력 프로세스가 정상화하는 전기가 마련된 셈이다.
한·중·일 정상은 ‘역사를 직시하며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는 정신을 바탕으로 3국이 관련 문제를 적절히 처리하고 양자 관계 개선 및 3국 협력 강화를 위해 함께 노력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경제적 상호의존과 정치안보 상의 갈등이 병존하는, 이른바 ‘동북아 패러독스’를 극복해야 한다는 데도 인식을 같이했다. 이미 운영되고 있는 20여 개의 장관급 협의체를 포함해 50여 개의 정부 간 협의체 및 각종 협력사업을 보다 활발히 추진해 나간다는 데도 합의했다. 또 3국 협력기금(TCF) 조성을 통해 3국 간 협력 사업을 더욱 확대·발전시켜 나간다는 데도 합의했다. 아울러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의미 있는 6자회담의 조속한 재개를 위해 공동 노력하기로 했다. 시들했던 3국 간 협력이 다시 제자리를 찾고 본격화하는 발판을 마련한 점이 이번 정상회의의 가장 큰 성과다.
글로벌 저성장 시대를 맞아 3국 간 경제통합에 속도를 내기로 한 점도 눈에 띈다. 높은 수준의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위해 협상을 본격화하고, 중국 주도로 추진되고 있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협상 타결에도 노력하기로 했다. 또 전자상거래에 대한 규제와 장벽을 철폐해 15억 인구의 디지털 단일시장 구축에도 박차를 가하기로 했다.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22.8%(16조9000억 달러), 교역액의 18.6%(6조9000억 달러)를 차지하는 한·중·일 3국의 경제적 협력과 통합은 성장의 한계에 봉착한 글로벌 경제에 새로운 활력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정상회의는 한국의 주도로 성사됐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취하면서도 한·일 관계 복원을 바라는 미국의 요구를 적극 반영한 결과다. 이번 정상회의가 실질적 의미를 갖도록 하기 위해서는 합의 사항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다시 과거사나 영토 문제에 발목이 잡혀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
역사와 영토 문제를 3국 간 협력과 분리하는 투트랙 접근이 필요한 이유다. 이를 위해 역사를 직시하며 미래를 지향한다는 정신에 입각해 실질적 협력을 흔들림 없이 추구하는 구동존이(求同存異)와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자세가 중요하다. 과거사나 영토 문제로 3국 협력 체제가 다시 삐걱댄다면 어제 한자리에 모였던 세 정상은 한·중·일의 15억 국민은 물론이고 국제사회 전체를 기만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추천 도서]
[추천 도서]
[키워드로 보는 사설] 동북아 패러독스와 국제 협력 동북아 패러독스란 국가간 경제협력은 원활히 진행되는 반면 정치적 갈등은 매우 심각한 동북아 정세의 특징을 말한다. 동북아에서 강대국의 각축에도 불구하고 균형이 유지된 것은 초강대국인 미국이 균형자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이제는 미국과 중국의 세계 전략 변화에 따라 동북아의 경쟁도 협력 방식도 모두 다양해졌다. 그 가운데 협력은 3가지로 나뉜다. 우선 ‘동맹지향적 협력’으로서 안보적 이해를 같이 하는 국가들끼리 결합하는 방식이 있다. 한·미·일, 미·일·호 협력 등이 그 예인데, 견제 대상과 목적에 따라 회원국이 다르다. 둘째는 지역에 기반한 응집을 통해 관련국의 이익을 도모하는 ‘지역주의적 협력’이 있다. 이번 한·중·일 정상회담처럼 한·중·일 자유무역협정 및 북핵 공조 등 이익의 공통분모를 극대화하기 위해 긴밀한 협조를 도모한다. 셋째는 실용적 차원에서 제한된 목표를 위해 모이는 ‘기능주의적 협력’이다. 북한의 핵 도발이나 체제 붕괴 등 급작스러운 변화가 발생한다면 한·미·중의 한시적 공조가 요구된다. 따라서, 동북아 패러독스 감소를 위해서는 평화유지와 동반성장을 목표로 한 국제협력을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
연재사설 속으로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