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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시·소설…문학 글쓰기도 ‘정답’ 강요받아요

등록 2015-11-02 20:20수정 2015-11-03 10:01

정답을 강요하는 입시문화는 문학 작품을 쓰고 싶어 문예창작과에 지원하는 청소년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사진은 한 백일장에서 글을 쓰고 있는 청소년들.  연합뉴스
정답을 강요하는 입시문화는 문학 작품을 쓰고 싶어 문예창작과에 지원하는 청소년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사진은 한 백일장에서 글을 쓰고 있는 청소년들. 연합뉴스
청소년 문학도들의 입시
문예창작과나 극작과의 수시 실기전형이 대부분 끝났다. 이제 이런 학과를 지망하는 ‘문학 청소년’들은 수시 결과를 기다리며 수능과 정시 실기를 준비해야 한다. 성적우수자나 문학특기자 전형에서는 실기시험을 보지 않고 입학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실기를 준비한다.

문창과 실기전형도 공식 있어
‘학생이 쓸 법한 글’이어야
‘가족’ 이야기 담긴 글 선호
전문 학원·문인 과외 받기도

어렵게 대학 진학한 뒤엔
‘입시형’ 창작 버릇 버리느라 고생
작사·광고카피 등 주목받으며
여러 장르 가르치는 학과도 있어

‘울며 겨자 먹기’로 준비하는 실기

많은 문학 청소년들이 다양한 의견과 표현방식을 고민하는 반면, 그들이 치러야 할 ‘실기 입시’의 암묵적 규칙은 너무 단순하다. 문예창작과 입학을 위한 실기시험에 ‘공식’이 있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문예창작과 입학을 위해 재수를 준비하고 있는 전인철씨는 “실기를 위해 쓰는 글에는 형식·내용면에서 규칙이 있다”고 말했다.

“시 전공을 지망하는 경우 형식적으로는 일단 길게 쓰는 것이 좋지 않다고 배워요. 심사위원들이 하루에 1000여편의 시를 봐야 하는데, 오래 읽어야 하는 시는 합격률이 떨어진다는 거죠. 시각적으로 편안하게 보이도록 각 연을 3행, 4행, 5행으로 배치하는 것을 추천하기도 해요. 폭력적이라고 생각하지만 글쓰기를 배우러 가고 싶은 마음 때문에 모두들 일단 배운 대로 쓰고 보는 것 같아요.”

소설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입시에는 어른들이 청소년들의 생각에 대해 갖는 편견도 반영된다. 지난 9월 단국대와 동국대 등 문예창작과 수시 실기전형에 응시한 경남 진주 제일여고 3학년 강나은양도 “‘글’이 아니라 ‘학생글’을 강조하다 보니 주제나 서술방식에도 제약이 있다”고 말했다.

“합격을 한 선배들이나, 문창과 입시를 준비하는 아이들이 다니는 학원에서는 ‘학생다운’ 글을 쓰라고 말해요. 감동을 주는 쉬운 글이어야 하고, 가족 이야기가 들어가면 좋고, 이렇게 써야 안전하다는 규칙이 있는 셈이에요.”

가천대학교 한국어문학과 1학년 김동혁씨는 “시인들처럼 시를 쓰면 ‘따라 한다’고 하니까 안 된다. 기본기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되 소재가 너무 흔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명지대 문예창작과 2학년 강예송씨도 “너무 고루하거나 전형적으로 쓰면 합격하기 어렵다. 그러니까 어려운 것 같다. 지킬 규칙도 많고, 조심해야 할 점도 많다”고 말했다.

문학을 사랑하는 청소년들에게 이런 입시 문화는 불편하다. 문예창작과를 지망하는 학생들은 주로 등단을 통해 문인을 꿈꾸거나, 프로 작가가 되지 않더라도 ‘글쓰기’에 애정이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최근 신간을 낸 작가와 작품명을 줄줄 왼다. ‘학생이 쓸 법한’ 글을 쓰라는 편견, 심사위원이 채점하기에 좋은 시를 쓰라는 주문, 아이들에게 중요한 것이 가족 문제일 확률이 높다는 근거 없는 전제는 학생들에게 실망감을 안긴다.

“가끔은 기분이 나빠요. 문예창작과 실기입시를 채점하거나, 입시학원에서 일하시는 분들도 문학을 좋아하시는 분들이거든요. 미래의 선배들인데 이렇게 우리 입장을 몰라주나 싶기도 해요. 문학적 글을 쓰고 싶어하는 청소년 가운데 다양한 주제로 나만의 시도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또 가족이나 학교가 청소년이 보는 사회의 전부는 아니잖아요.” 한 문예창작과 입시생의 말이다.

입시용 글쓰기에는 지원하는 대학의 ‘학풍’도 영향을 미친다. 보통 서울예대나 추계예대 등 ‘예술대학’들은 조금 더 실험적인 글쓰기를 요구하는 편이다. “서울예대의 경우 학교 수업에서도 소설뿐 아니라 장르의 한계를 시험하는 시도들을 많이 해요. 실험적인 시도를 할 수 있는 분위기다 보니 예대 입시는 조금 더 자유롭게 써도 된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1학년 함준형씨의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문예창작과에 입학한 학생들은 입시용 글쓰기를 준비하며 생긴 버릇을 고치느라 애를 쓴다. 강예송씨는 “실기시험의 문제인지 서로의 작품을 읽어주고 의견을 나누는 합평 시간에도 비슷한 형식의 글이 많다”며, “첫 1~2년은 입시 글쓰기를 ‘빼는’ 기간이라고들 말한다. 오히려 이런 부분에서는 실기시험을 치르지 않고 들어온 학생이 상대적으로 편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시·소설 교육도 사교육시장 형성돼

문학적 글쓰기를 좋아하는 학생들도 학원과 과외 등 사교육시장의 고객이다. 문예창작과나 극작과 등 관련 학과에 입학한 대학생들이 하는 과외의 경우 주 2회 기준 월 20만원이 든다. 문학 입시의 경우 자신의 글을 직접 읽고 문제를 짚어줄 사람이 필요하다 보니, 과외 형태로 배우는 학생들이 많다. 등단 작가들도 예외는 아니다. 한 입시생은 “등단 작가들의 경우 대학생들의 약 3배를 받는다”고 말했다.

“작가분들은 50만~70만원은 받더라고요.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 입장에서 놓치고 있는 부분이나, 좋은 표현 같은 걸 제시해 주기도 하세요. 그런 분들은 인기도 좋고, 문예창작과 입시를 위한 학원에서 일하시는 분들 가운데에도 등단 문인들이 많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사단법인 한글문화연구회의 부설단체인 한국문예교육원도 문예창작과 입시를 위한 실기 수업을 진행하는 유료교육기관 가운데 하나다. 대입논술을 지도하는 강사를 제외한 대부분의 강사가 문인이다.

한 문학입시교육기관 강사는 “문학적 글쓰기에는 정답이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문학 입시에는 ‘정답에 가까운 것’이 있습니다. 하루에 많은 양을 읽고 평가해야 하잖아요. 채점자가 기억하기 쉽도록 첫 부분에 이미지 묘사를 넣는다거나, 감동을 주라는 것도 이것 때문이에요”라고 말했다. 대학의 문예창작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강사 이아무개씨는 “문예창작과 입시는 나도 그만하자고 하고 싶다. 합평을 할 때도 학생들이 다른 사람들 눈치를 본다. 강사가 원하는 정답인지 아닌지 살피는 것 같다”며, “등단용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어찌 보면 문학계의 문화가 입시에 반영되어 있다고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문예창작 전공자가 소설가 되는 것 아냐

장르소설, 영화, 광고 카피라이팅, 뮤지컬 등 현대 사회는 다양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활용한다. 웹툰이 영화가 되고, 소설이 연극이 되기도 한다. 이전과는 다른 문화는 대학 문예창작과에도 영향을 미쳤다. 고려대 세종캠퍼스나 경희사이버대 등에 개설되어 있는 미디어문예창작학과는 시·소설·희곡 등 전통적인 문예창작교육뿐 아니라 영화·광고·방송 등 다양한 곳에 문학적 글쓰기를 활용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최근에는 기존 문예창작과에서도 이러한 교육과정을 조금씩 반영하는 추세다. 작사가가 되려는 학생이 문예창작과에 진학하기도 한다.

문예창작과에 입학했다고 해서 모두가 문인이 되는 것도 아니다. 강씨는 “학교에 입학했다고 해서 모두가 문인을 꿈꾸지도 않고, 문인을 꿈꾸는 아이들이 모두 등단하는 것도 아니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모인 학과이지, 등단하는 법을 가르쳐 주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현재 문예창작과가 있는 예술고등학교는 고양·안양 등 2개교, 문예창작과나 극작과가 있는 전국 주요대학의 신입생 모집정원은 수시·정시를 통틀어 총 350여명이다. 하지만 이도 점점 줄고 있다. 동국대의 국어국문학과-문예창작학과 통폐합 등 문예창작학과는 실질적으로 폐과되거나 정원을 줄이고 있는 실정이다.

정유미 기자 ymi.j@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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