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국정화 강행 ‘자가당착’
“(국정 교과서는) 이전의 교과서보다도 내용이나 형식 등에서 크게 후퇴했으며, 논리의 일관성을 결여하고, 기상천외의 신학설을 처음 선보이는 등 편견과 오류투성이로 국사교육을 중대한 시련기로 몰아넣었다.”
국정 교과서 제작의 주체인 국사편찬위원회(국편)의 과거 공식 저작물에서 국정의 폐단을 신랄하게 비판한 내용이 확인됐다. 정부·여당 보고서 등에서 국정 역사 교과서에 관한 부정적 평가가 잇따라 확인된 가운데, 정부가 명분 없는 국정화를 밀어붙이면서 ‘자가당착에 빠져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사론’에 국정화 고강도 비판논문
“박정희 정권 유신독재 독소 중 하나
식민잔재 바탕한 국가건설이 원죄
교과서 성전화·획일성·졸속제작 등
내용·형식 크게 후퇴…일관성도 없어
국정 철폐가 ‘정치시녀’ 교육 막는 길”
부좌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23일 공개한 ‘21세기의 국사교육의 새로운 모색’(<한국사론> 31권, 2001년 출간) 논문을 보면, 필자인 류승렬 강원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는 박정희 정권이 자행한 유신 독재의 독소 중 하나다. 그리고 그 원죄는 일제 식민지 지배의 잔재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국가 건설에 뿌리를 두고 있다”며 국정 교과서 체제를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이 논문이 실린 <한국사론>은 국편의 공식 간행물로, 1977년부터 2007년까지 모두 45권이 출간됐다. 이 논문은 유신 이후 도입된 국정 교과서 체제의 반역사성과 반교육성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논문에서 저자는 “(1974년) 국정 교과서의 등장은 후세에 이를 근거로 이 시대의 성격을 규정할 것이기 때문에 ‘어떤 두려움마저’ 느낀다고 할 정도의 엄청난 사태로 인식되었다”며 “우여곡절 끝에 나온 국사 교과서는 교과서의 성전화, 획일성, 졸속 제작 등의 측면에서 숱한 문제가 제기됐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획일적인 교과서 때문에 역사 교육이 황폐화되고 민족사에 대한 인식 전반이 불신당하고 버림받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국사 교과서의 국정 발행제를 철폐하는 일은 국사 교육이 정치의 시녀가 되는 것을 막는다는 의미”라고 적었다.
국정화로 인한 ‘주입식 교육’의 폐단도 지적됐다. “(국정화 이후) 교과서는 거의 성경이나 코란과 같은 위상을 갖게 되었다. 교과서에 실린 내용은 언제나 옳은 정답으로 주입과 암기의 대상이 되고, 학생들은 교과서에 적힌 내용만을 되뇌는 정답형의 사고에 갇히게 되었다. 역사 교사는 무조건 암기하는 대상으로서의 교과서를 가르쳐야 하는 수험 안내자나 정부 시책을 홍보하는 말단 관리와 같은 수동적 존재에 불과하게 됐다.”
논문은 또 국정 교과서의 졸속 제작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국정 교과서의 편찬은 극히 졸속으로 이루어진다. 그럼에도 처음 국정 국사 교과서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1973년부터 지금까지 줄곧 편찬 책임자들은 이러한 사실을 절대 부인하고 수많은 학자들의 공동 작품으로 탄생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집필 과정이 짧고 주요 역사학자 대부분이 집필 거부를 선언한 지금의 상황에서 졸속 우려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류 교수는 “국가의 통제를 원천적으로 배제하고 교사와 학생들의 자유로운 학습권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서는 자유발행제가 필수적”이라며 논문을 맺었다. 이와 관련해 부 의원은 “국편이 공식 발행한 자료에서도 국정 교과서 발행체제를 혹독하고 비판하고 있다. 정부는 자가당착에 가까운 국정화를 당장 철회해야 한다”고 말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박정희 정권 유신독재 독소 중 하나
식민잔재 바탕한 국가건설이 원죄
교과서 성전화·획일성·졸속제작 등
내용·형식 크게 후퇴…일관성도 없어
국정 철폐가 ‘정치시녀’ 교육 막는 길”
국정 교과서에 대한 정부기관의 비판적 기술
이슈국정교과서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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