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정부는 한국사 교과서의 재국정화를 발표하면서, ‘올바른 한국사교과서’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올바른 역사교과서’는 있을 수 없다. 역사교과서는 ‘정설(定說)’, ‘통설(通說)’ 혹은 ‘다수설’에 기초해서 쓰이는 것이지, ‘올바른 설(正說)’에 의해 쓰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전에는 ‘바를 정(正)’자 정설(正說)이라는 단어가 아예 없다.
정설(定說)이란 ‘일정한 결론에 도달하여 이미 확정되거나 인정된 설’을 말하고, 통설이란 ‘세상에 널리 알려지거나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설’을 뜻한다. 그리고 다수설이란 다수가 지지하는 설이다. 역사학계에서는 통설이라는 말을 주로 쓸 뿐, 정설(定說)이라는 말은 잘 쓰지 않는다. 통설도 언제든지 다수설 내지 소수설로 밀려날 수 있다. 때문에 학계에서 ‘올바른 설(正說)’이라는 말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떻게 ‘올바른 설’에 기초한 ‘올바른 교과서’가 있을 수 있겠는가. 정부가 만들려 하는 것은 ‘올바른 역사교과서’가 아니라 ‘단일 국정교과서’일뿐이다.
현행 검인정 제도 아래서 역사교과서는 기본적으로 학계의 통설과, 정부가 제시하는 교육과정 및 집필지침에 따라 쓰인다. 그러나 구체적인 집필과정에서는 필자에 따라 내용에 미세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같은 사건을 서술하면서도 필자에 따라 강조하는 부분이 다를 수 있고, 또 해석에서도 미세한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학계에 통설이 없는 경우에는 다수설을 따를 수도 있고, 다수설이 없을 때에는 여러 설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든지 아니면 여러 설을 같이 소개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검인정 체제 아래서는 다양한 교과서가 나올 수밖에 없다. 다양한 교과서가 나오는 것이야말로 검인정 제도의 장점이다.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원리 가운데 하나가 다원주의이고, 검인정 제도는 그런 다원주의의 전제 위에서 나온 것이다. 국정교과서로의 회귀는 다원주의를 기본원리로 하는 자유민주주의에 배치되는 것이다.
2013년 유엔 총회에 보고된 <역사교과서와 역사교육에 관한 특별조사관의 보고서>는 역사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학생들이 역사란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일”이며,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역사교과서가 나와야 하고, 교사로 하여금 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게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또 이 보고서는 교사가 수업시간의 30% 정도를 교과서 외의 보충교재를 통한 수업과 토론식 수업으로 진행하면서, 학생들이 스스로 역사에 대해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줄 것을 권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정부가 단일한 역사교과서만을 만들어 가르치는 것은 결국 정부 혹은 특정한 정치세력에 의한 역사 기술의 독점과 특정한 역사관 및 이념의 주입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또 이런 역사 기술과 역사관의 독점은 결국 학생들로 하여금 역사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정부가 사상과 역사관을 독점하고, 다른 사상이나 역사관은 모두 ‘그릇된 것’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전제왕조 혹은 독재국가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다. 하나의 사상만이 옳고 나머지는 모두 그르다고 한 하나의 예가 19세기 조선의 ‘위정척사론’이다. ‘위정’이란 바른 것을 지킨다는 것이고, ‘척사’는 사특한 것을 물리친다는 것이다. 위정척사 사상은 천주교만이 아니라 서구의 학문과 제도, 그리고 기술까지 모두 배척했다. 또 당시 조선의 현실을 개혁할 것을 제창한 실학, 동도서기론과 개화론도 모두 배척했다. 그 결과는 무엇이었나. 부패한 정부, 분열된 사회, 가난한 민생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온 것은 외세의 지배였다.
너무 지나친 상상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올바른 역사교과서’ 다음에는 ‘올바른 국어교과서’, ‘올바른 사회교과서’, ‘올바른 영화’, ‘올바른 소설’, ‘올바른 그림’, ‘올바른 노래’라는 말이 나올지도 모른다. 오늘 한국 사회에는 아직도 “나만 올바르다”고 하는 ‘위정척사’의 유령이 배회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