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도림고등학교의 윤자영 교사는 자신이 가르치는 생물 교과 내용을 담아 추리소설 <십자도 시나리오>를 썼다. 학생들은 학교 도서관에서 그 소설을 읽으며 생물 시간에 배운 내용도 복습하고, ‘할 수 있다’는 응원도 받는다.
‘십자도 시나리오’ 펴낸 윤자영 교사
인천 서창고등학교 학생들이 근처의 외딴섬 십자도로 학급 수학여행을 떠났다. 도시에서와는 달리 색다른 수학여행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학생들은 들뜬 마음으로 섬에 발을 디뎠지만 그 설렘은 오래잖아 공포로 바뀌었다. 마을 이장을 시작으로 의문의 죽음이 시작됐다. 학생들도 범인의 표적이 됐다. 한 학생이 사건 해결에 뛰어들고, 범인을 찾기 위해 추리를 시작했다. 추리소설 <십자도 시나리오>(좋은땅·이하 시나리오)의 줄거리다.
섬으로 수학여행 떠난 학생들
의문의 사건 접하고 해결 나선 내용
PTC 용액·혈액응고방지법 등
교과서 속 생물지식 소설에 담아
수업 내용 이해 돕고 호기심 유도
책을 썼다는 사실만으로 아이들에게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응원메시지 “‘생물 공부는 왜 하는 거냐’고 묻는 학생들에게 한 대답이기도 해요.” 인천 도림고 윤자영 교사가 이 소설을 쓰게 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생물 시간에 배운 지식을 활용할 수 있는 상황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아이들이 교과목에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였죠.” 소설에서 살인사건을 풀어나가는 것은 학생 ‘영재’다. 영재는 고등학교 생물 교과에 나오는 내용을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그는 숙소인 폐교에서 찾은 에테르로 범인의 왼쪽 다리를 마비시키기도 하고, 미맹(특수한 물질의 맛을 느끼지 못하는 미각을 가진 사람)을 판별할 수 있는 피티시(PTC) 용액이 살인에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알아내기도 한다. 평소 윤 교사는 ‘이야기’로 학생들을 수업에 끌어들인다. 소설에 쓴 내용은 물론이고 교사의 대학 시절 이야기도 때로는 소재가 된다. ‘스토리텔링’을 활용한 수업을 하는 셈이다. “‘외딴섬으로 수학여행을 간 학생들 가운데 한 명이 아침에 엄청난 복통을 호소했어.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학생이 죽었다고 생각해봐. 근데 어떤 학생이 죽은 학생이 마시던 생수통 안의 물맛을 보고 이 학생이 어떻게 죽었는지 맞혔어. 너희들은 알겠니?’라고 물어보는 식이에요. 미맹 유전을 배울 때 이 이야기로 시작을 하죠. 때로는 아이들이 유치한 얘기를 재미있어 하기도 합니다. 대학 때 맥주를 많이 마셔 화장실에 오래 있었다는 에피소드로 몸속의 수분 배출을 설명하기도 하니까요.” <시나리오>는 지난해 12월 윤 교사가 자비 출판한 첫 소설이다. 처음부터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지인의 소개로 우연히 추리소설 읽기에 맛을 들이게 된 것이 시작이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질풍론도>부터 학교 도서관에 있던 대부분의 추리소설을 읽었다. 다독을 하다 보니 ‘나도 쓸 수 있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3개월간 매일 아침 1시간씩 일찍 일어나 글을 썼다. 윤 교사는 “추리소설의 특징을 활용하면 아이들이 과학수업에 호기심을 갖도록 도울 수 있다”고 말했다. “추리소설의 매력은 ‘지적 유희’에 있습니다. 독자는 소설 속 미스터리한 사건을 등장인물과 함께 풀게 되죠. 사건의 원인을 궁금해하고, 문제의 실마리가 풀릴 때마다 희열을 느낍니다. 추리소설을 읽는 과정은 과학교과학습의 특징과 비슷해요. 과학도 어떤 현상을 두고 그것이 왜 일어나는지, 원인에 따라 어떻게 결과가 달라지는지 분석하는 과목이거든요.” 윤 교사는 책을 펴낸 과정을 통해 학생들에게 ‘도전’의 메시지도 심어주고 싶었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이 이렇게 무기력하진 않았습니다. 무엇이든 시도도 해보지 않고 쉽게 포기하는 경향도 흔히 보이고요. 수업시간에 자는 아이들이 예전보다 많아진 것이 중요한 예입니다. 그 시간을 포기해버리는 것이죠. 그런 모습을 안타까워하다가 학생들에게 ‘무엇이건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직접 보여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생각까지 미치니까 홀린 듯 쓰게 되더라고요.” 윤 교사의 책을 읽은 학생들의 반응은 좋았다. 도림고 3학년 하성우군은 “선생님께서 수업시간에 거의 ‘스포일러’를 하신 거나 다름없어요. 재미있는 상황이나 이야기로 수업을 시작하시는 편이다 보니 책을 읽으면서 수업 내용을 떠올릴 수 있어 좋았어요”라고 말했다. “소설을 읽다가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이 나오면 더 관심을 갖고 보게 됐어요. 자연스럽게 복습하게 됐고요. 생물시간에 혈액의 기능이나 순환을 배우면서 피가 굳는 걸 막는 방법도 같이 배우거든요. ‘혈액 응고를 막는 데 쓰이는 게 헤파린이었지!’ 하고 다시 기억하게 됐죠.” <십자도 시나리오>를 5번은 읽었다는 같은 학년 장병진군은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태도를 갖게 된 것 같아요”라고 덧붙였다. “소설을 써서 책으로 낸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선생님께서 해내셨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어요. ‘진짜 하면 되는구나’ 싶었죠. 자신감도 낮아서 늘 스스로 잘하는 게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덕분에 조금 적극적인 사람이 됐어요. 학교 장기자랑 무대에 나가기도 했고, 성적도 올랐어요.” 지난 7월, 윤 교사는 계간지 <미스터리> 여름호에 또 다른 단편 추리소설 <습작 소설>로 신인상을 받으며 문단에 정식 등단했다. ‘추리소설 쓰는 생물 교사’에서 ‘생물 교사 겸 추리 작가’로 한 단계 오른 셈이다. 글·사진 정유미 기자 ymi.j@hanedui.com
의문의 사건 접하고 해결 나선 내용
PTC 용액·혈액응고방지법 등
교과서 속 생물지식 소설에 담아
수업 내용 이해 돕고 호기심 유도
책을 썼다는 사실만으로 아이들에게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응원메시지 “‘생물 공부는 왜 하는 거냐’고 묻는 학생들에게 한 대답이기도 해요.” 인천 도림고 윤자영 교사가 이 소설을 쓰게 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생물 시간에 배운 지식을 활용할 수 있는 상황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아이들이 교과목에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였죠.” 소설에서 살인사건을 풀어나가는 것은 학생 ‘영재’다. 영재는 고등학교 생물 교과에 나오는 내용을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그는 숙소인 폐교에서 찾은 에테르로 범인의 왼쪽 다리를 마비시키기도 하고, 미맹(특수한 물질의 맛을 느끼지 못하는 미각을 가진 사람)을 판별할 수 있는 피티시(PTC) 용액이 살인에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알아내기도 한다. 평소 윤 교사는 ‘이야기’로 학생들을 수업에 끌어들인다. 소설에 쓴 내용은 물론이고 교사의 대학 시절 이야기도 때로는 소재가 된다. ‘스토리텔링’을 활용한 수업을 하는 셈이다. “‘외딴섬으로 수학여행을 간 학생들 가운데 한 명이 아침에 엄청난 복통을 호소했어.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학생이 죽었다고 생각해봐. 근데 어떤 학생이 죽은 학생이 마시던 생수통 안의 물맛을 보고 이 학생이 어떻게 죽었는지 맞혔어. 너희들은 알겠니?’라고 물어보는 식이에요. 미맹 유전을 배울 때 이 이야기로 시작을 하죠. 때로는 아이들이 유치한 얘기를 재미있어 하기도 합니다. 대학 때 맥주를 많이 마셔 화장실에 오래 있었다는 에피소드로 몸속의 수분 배출을 설명하기도 하니까요.” <시나리오>는 지난해 12월 윤 교사가 자비 출판한 첫 소설이다. 처음부터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지인의 소개로 우연히 추리소설 읽기에 맛을 들이게 된 것이 시작이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질풍론도>부터 학교 도서관에 있던 대부분의 추리소설을 읽었다. 다독을 하다 보니 ‘나도 쓸 수 있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3개월간 매일 아침 1시간씩 일찍 일어나 글을 썼다. 윤 교사는 “추리소설의 특징을 활용하면 아이들이 과학수업에 호기심을 갖도록 도울 수 있다”고 말했다. “추리소설의 매력은 ‘지적 유희’에 있습니다. 독자는 소설 속 미스터리한 사건을 등장인물과 함께 풀게 되죠. 사건의 원인을 궁금해하고, 문제의 실마리가 풀릴 때마다 희열을 느낍니다. 추리소설을 읽는 과정은 과학교과학습의 특징과 비슷해요. 과학도 어떤 현상을 두고 그것이 왜 일어나는지, 원인에 따라 어떻게 결과가 달라지는지 분석하는 과목이거든요.” 윤 교사는 책을 펴낸 과정을 통해 학생들에게 ‘도전’의 메시지도 심어주고 싶었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이 이렇게 무기력하진 않았습니다. 무엇이든 시도도 해보지 않고 쉽게 포기하는 경향도 흔히 보이고요. 수업시간에 자는 아이들이 예전보다 많아진 것이 중요한 예입니다. 그 시간을 포기해버리는 것이죠. 그런 모습을 안타까워하다가 학생들에게 ‘무엇이건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직접 보여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생각까지 미치니까 홀린 듯 쓰게 되더라고요.” 윤 교사의 책을 읽은 학생들의 반응은 좋았다. 도림고 3학년 하성우군은 “선생님께서 수업시간에 거의 ‘스포일러’를 하신 거나 다름없어요. 재미있는 상황이나 이야기로 수업을 시작하시는 편이다 보니 책을 읽으면서 수업 내용을 떠올릴 수 있어 좋았어요”라고 말했다. “소설을 읽다가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이 나오면 더 관심을 갖고 보게 됐어요. 자연스럽게 복습하게 됐고요. 생물시간에 혈액의 기능이나 순환을 배우면서 피가 굳는 걸 막는 방법도 같이 배우거든요. ‘혈액 응고를 막는 데 쓰이는 게 헤파린이었지!’ 하고 다시 기억하게 됐죠.” <십자도 시나리오>를 5번은 읽었다는 같은 학년 장병진군은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태도를 갖게 된 것 같아요”라고 덧붙였다. “소설을 써서 책으로 낸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선생님께서 해내셨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어요. ‘진짜 하면 되는구나’ 싶었죠. 자신감도 낮아서 늘 스스로 잘하는 게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덕분에 조금 적극적인 사람이 됐어요. 학교 장기자랑 무대에 나가기도 했고, 성적도 올랐어요.” 지난 7월, 윤 교사는 계간지 <미스터리> 여름호에 또 다른 단편 추리소설 <습작 소설>로 신인상을 받으며 문단에 정식 등단했다. ‘추리소설 쓰는 생물 교사’에서 ‘생물 교사 겸 추리 작가’로 한 단계 오른 셈이다. 글·사진 정유미 기자 ymi.j@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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