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 한국사’ 추진 일정
집필시간 1년뿐…졸속·편향 우려
심의위원 구성 싸고도 ‘정치화’ 비판
집필시간 1년뿐…졸속·편향 우려
심의위원 구성 싸고도 ‘정치화’ 비판
정부가 중·고교 역사 교과서의 국정 전환 방침을 행정예고하면서 새 교과서 집필진에게 주어진 기간은 길어야 1년 안팎이다. 역사학계의 집필 거부 등 강경한 반대 여론 속에 추진되는 것이어서 국정 교과서의 이념 편향성은 차치하더라도 함량 미달 교과서가 나올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교육부의 보도자료를 보면, 정부는 20일간의 행정예고 기간이 끝난 뒤인 11월5일 ‘중·고등학교 교과용 도서 국·검·인정 구분’을 고시할 계획이다. 이 기간 동안 교육부는 여론을 수렴할 계획이지만, 국정화 반대 여론이 반영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역사학계의 한 관계자는 “교육부 행정예고가 요식행위라는 걸 다 아는데 소모적인 행정 절차에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교육부의 행정예고와 동시에 학계와 교육계, 시민사회는 보다 강력하고 실질적인 국정화 대응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는 다음달 하순까지는 집필진과 ‘교과용 도서 편찬 심의위원회’ 구성을 마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주류 사학계의 학자들과 교사들 상당수가 국정 교과서 집필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터여서 집필진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검정 교과서 집필에 참여했던 한 역사학자는 “한 달 이내에 집필진과 심의위원 구성을 모두 마치겠다는 것은, 이미 내정된 이들에게 교과서 집필과 심사를 맡기겠다는 계획이 아니겠느냐”며 “정부가 그토록 공정한 교과서를 강조했지만 제작 일정만 봐도 노골적으로 우편향 교과서를 만들겠다는 속내가 뻔하다”고 짚었다.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집필진 구성은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교육부가 집필진 구성을 서두르는 것은 교과서 제작의 빠듯한 일정 때문이다.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따르면 중학교 1학년과 고교 1학년 개정 교육과정 적용 시기는 2018년 3월1일이지만 국정 교과서는 2017년 3월1일부터 적용된다. 늦어도 내년 12월엔 집필을 마친 교과서를 감수하고 현장 적합성 등을 검토해야 한다. 학계에선 반대 여론이 들끓는 가운데 1년이라는 시간 안에 교과서가 완성될지 의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1974년 국정 교과서 도입 당시에도 6개월 만에 제작되면서 교과서 내용이 편향적이고 부실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좋은교사운동은 이날 성명을 내어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다양화라는 시대적 추세를 거스르는 교육과정이자, 개발 과정이 1년도 되지 않는 졸속 교육과정”이라고 주장했다.
교육부가 ‘공정성을 담보하겠다’며 역사학계 원로, 경제학자, 정치학자, 헌법학자 등으로 구성된 심의위원회를 꾸리는 데 대해서도 우려가 나온다. 김육훈 역사교육연구소장은 “역사 책을 만드는데 경제학자와 정치학자가 왜 심의를 하느냐. 이는 객관적 사실에 입각하여 기술하려는 태도가 아니라 역사를 정치화하는 태도이며, 역사학계에 대한 모욕이고 지성에 대한 부정”이라고 말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이슈국정교과서 논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