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는 지난 3월 ‘2015 국가 수준의 성교육 표준안’을 발표했다. 그 내용을 두고 “10대의 성에 대해 ‘금욕’만 강조하고 성소수자에 대해서는 편향적으로 다룬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청소년들의 결혼과 임신을 다룬 영화 <제니, 주노>의 한 장면. 쇼이스트 제공
성교육 표준안 논란
지난달 25일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 한국청소년성문화센터협의회가 주관한 ‘성교육 정책 바로 세우기 대토론회’가 열렸다. 1부 행사로 전국의 청소년들이 나와 ‘학교 내 성폭력 현실과 성교육에 대해 말하다’라는 제목의 토크 콘서트를 진행했다. 학생들이 학교 내 교사들의 성추행 사례와 성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갑자기 “그게 성문화냐, 성음란이지”, “학교 허락은 받고 온 거냐”, “학생들이 왜 저런 얘기를 하냐”는 등의 고성이 터져 나왔다. 이후 일부 참가자들은 발제 진행 중에도 큰소리로 자기 주장을 펼치는 등 토론회장은 내내 시끄러웠다.
교육부 내놓은 ‘학교 성교육 표준안’
교사가 ‘야동’, ‘자위’ 등 단어 언급 금지
동성애 등 성소수자 이야기는 빠져
성 관련 매체 노출된 아이들 현실 몰라
비현실적이라는 비판 등 나와 이날 토론회는 최근 불거진 교내 성폭력 사건을 계기로 열렸다. 교육부는 지난 3월 ‘2015 국가수준의 학교 성교육 표준안’(이하 표준안)을 발표한 바 있다. 각 시·도교육청을 통해 전달연수를 실시하면서 그 내용을 두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일부 단체는 “성교육이 절제가 아닌 무조건적인 ‘금욕’을 바탕으로 하고 동성애나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내용을 담는 등 시대착오적”이라고 지적했다. 10대의 성은 무조건 위험하다? 이번 표준안에서 가장 문제로 언급된 사항은 성교육 시간에 ‘야동’, ‘자위’ 등의 단어 사용을 금지하고 아이들이 질문할 경우에만 얘기하도록 한 점이다. 현장에서는 이 내용이 현실과 동떨어졌다고 이야기한다.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으로 성에 대한 정보를 잘 알고 있는 요즘 아이들의 수준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성교육 강사들은 “단어 사용을 못하게 하는 이유가 음란물을 가벼운 느낌으로 미화하거나 이를 몰랐던 아이들이 알게 돼 위험하다는 것”이라며 “하지만 아이들이 이미 알고 있는 단어다. 아이들에게 친화성 있게 다가가면서 야동의 내용이 잘못됐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는 오히려 먼저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건교사 정아무개씨는 평소 성교육을 진행하며 ‘이성교제 예절’이나 ‘성욕 해소와 음란물’에 대해 다룬다. 콘돔을 개인별로 나눠주고 사용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이론은 짧게 하고 활동 위주로 교육한다. 성심리에 대한 본인의 뇌 구조를 그려보게 하거나 이성교제 계획을 세우게 한다”며 “이성교제를 언제 시작할 것인지, 어떤 사람을 만날 것인지, 그 사람과 어떻게 손을 잡을 것인지 등 구체적인 내용을 고민하게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표준안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수업을 진행한다”며 “내용을 일일이 따지기보다 성적 호기심이 충만한 아이들에게 필요한 부분을 알려주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사전에 아이들에게 표준안 내용을 설명하고 좀더 세련된 단어를 쓰자고 했다. 이후 ‘자위’라는 단어는 ‘성욕해소행위’로 바꾼다. 하지만 아이들이 그냥 원래 쓰던 대로 얘기해도 막을 수는 없다.” 지역의 고교에 다니는 이아무개군은 “단어나 내용을 유치하게 빙빙 돌려서 말하면 오히려 효과가 없다. 아이들이 쓰는 단어를 이용해 현실을 반영해서 실질적인 내용을 가르쳐줬으면 좋겠다”며 “친구가 선생님한테 ‘여자들도 성욕을 느끼냐’고 물어봐서 그렇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반복해 설명하는 수업시간과 달리 학생들이 직접 질문해서 새로 알게 된 내용이 더 많다”고 말했다. 다른 보건교사는 “표준안 내용을 보면 아이들을 무성애자로 전제하고 있는 느낌이다. 현재 학생들 의식수준에도 역행한다”고 말했다. 표준안의 내용이 10대의 성을 위험하고 부정적으로 다루는 내용으로 치우쳤다는 지적도 있다. 아하!청소년성문화센터의 박현이 기획부장은 “표준안도 그렇고 우리 사회가 10대의 성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하지만 그들도 성적 충동과 욕구를 지닌 존재다. 올바른 성적 주체로 크기 위해서는 성에 대한 정보, 구체적 사례를 바탕으로 한 성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성적 주체가 된다는 것은 분위기에 휩쓸리거나 돈이나 폭력에 의해 성행위를 강요당했을 때 제대로 대처하고 주체적으로 선택,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걸 말한다. 금욕을 강조하고 임신 등을 부정적으로 다루면 그 상황이 일어났을 때 본인의 인생을 스스로 포기하게 된다. 원치 않은 성적 상황이 벌어졌을 때 본인이 방어할 수 있는 논리와 방법을 알아야 한다.”
강원도의 한 고교에 다니는 정아무개양은 “성교육 시간에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 성추행이나 성폭력 범위 등을 이론적으로 설명해줬다”며 “남자애들은 다 아는 내용이라고 웃고 여자애들은 민망해서 화면을 제대로 안 쳐다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외국은 성교육을 개방적으로 한다고 들었다. 그렇게 해야 미리 조심하거나 책임을 갖고 행동할 것 같다. 자꾸 부정적으로 다루면 학생들이 더 폐쇄적으로 생각하고 잘못된 일이 생겨도 부모한테 알리지 않을 거 같다”고 말했다.
성교육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 아하!성문화센터에서는 데이트 성폭력이나 연애 중 성관계로 인한 갈등 사례를 들어 모둠별 토론을 한다. 이 상황에서 가해자는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 피해자는 어떤 기분일지 내가 목격자라면 어떻게 할지 고민하게 한다.
“일상에서 경험하는 또래 사이 음담패설이나 야한 성행동 묘사, 엉덩이나 가슴, 성기치기 등 문제 상황을 목격했을 때 내가 어떻게 개입하고 행동해야 하는지도 생각해보게 한다. 제 3자 입장에서 그 상황을 객관적으로 따져보면서 잘못됐다는 걸 느끼고 본인이 문제 행동을 안 할 수 있게 성 감수성을 높이는 것이다.” 박 부장의 말이다.
‘성소수자’ 내용 등 빠져 논란
한편, 성소수자 관련 내용도 ‘뜨거운 감자’다. 성소수자 관련 단체를 중심으로 “표준안에 동성애 등 성소수자에 대한 내용을 언급하지 못하게 하거나 한쪽에 치우진 시각으로 다루는 것은 차별적”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표준안을 보면 ‘동성애에 대한 지도를 합법적으로 허용하지 않는다’는 내용과 ‘다양한 성적지향 사용 금지 및 성교육표준안에서 삭제 요구’라고 나와 있다. 성소수자 단체 및 개인 활동가들의 연대체인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은 지난달 24일 열린 표준안 철회를 위한 기자간담회에서 “성교육의 목적은 여성과 남성을 비롯해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몸을 이해하고 다양한 성적 관계에서 주체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어야 한다”며 “현재 표준안은 태어날 때 지정된 성별과 다른 성별 정체성을 고민하는 이들은 ‘건강하지 못하다’고 규정하고 다양한 성적지향과 성별 정체성 자체를 윤리적, 정신적 문제가 있는 것으로 다루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성소수자 관련 사항은 대다수 국민이 반대하며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부분이라 포함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외국은 우리보다 성소수자 학생에 대한 배려나 이해가 높은 편이다. 미국 질병관리센터(CDC) 누리집의 성소수자 페이지를 보면 성소수자 청소년(LGBT Youth) 페이지(www.cdc.gov/lgbthealth/youth.htm)가 따로 나와 있다. 지난 5월 아사히신문 보도에 따르면 일본 문부과학성은 동성애나 성동일성 장애(개인 신체적 성별 특징인 성(sex)과 사회적, 심리적 성별 역할인 성(gender)이 일치하지 않는 것) 등을 포함한 성적 소수자 학생을 배려하라는 문서를 전국 초·중·고에 보냈다. 동성애나 양성애 등으로 학생이 집단 괴롭힘을 당하거나 등교 거부, 자살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취지였다.
문서에는 아이들이 상담하기 쉬운 환경을 만들기 위해 교원이 성적 소수자에 대해 무심한 언동을 삼갈 것, 아이들의 복장이나 머리 모양을 조롱하지 않을 것 등을 명시했다. 또 성동일성 장애를 가진 학생에 대한 배려 사항으로 ‘학생 스스로 인정하는 성별의 교복 착용 인정’, ‘수학여행 시 입욕 시간 겹치지 않게 함’ 등의 내용이 담겼다.
성교육 의무인데 보건은 선택교과
현재 성교육은 1년에 15시간 의무적으로 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성교육을 주로 담당해야 할 보건교과는 선택교과다. 성교육 시간을 의무로 정해놓고 정작 제대로 수업할 시간을 보장하지 않는 것이다.
일선 교사들이 표준안의 내용을 모두 숙지할 시간도 부족할뿐더러 수업시수조차 제대로 보장하지 않는 학교도 있다. 실제 지방의 고교에 근무하는 보건교사는 “성 관련 사회적 이슈가 터질 때마다 성교육을 실시하라는 공문이 내려온다”며 “우리 학교가 전교생과 교사 수까지 합치면 1700여명인데 혼자 모든 성교육을 감당하기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현재 이 교사가 근무하는 학교는 선택교과인 보건 과목을 정규교과로 넣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의무 성교육 시간마저도 외부기관에 맡기거나 생물이나 가정, 체육 등 관련 교과 교사들이 진행하고 있다. 보건교사가 할 경우는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을 활용하는 학교가 많다.
다른 보건교사는 “보건수업을 직접 진행하지만 사실 표준안 내용을 전부 읽을 시간이 없다”며 “교육청에서 표준안 관련 연수를 2시간 받고 학교 동료 교사들에게 1시간 교육 내용을 전달한 게 전부”라고 말했다. 현장에서 교사들이 표준안대로 제대로 수업을 진행하는지 확인할 방법이 현재로썬 거의 없는 상태다.
지방의 외고에 다니는 2학년 이아무개양은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에 성교육을 영상 보는 걸로 대체했는데, 선생님이 그냥 봤다고 하자며 끄고 자습했다”며 “고등학교 와서 한 번도 성교육을 안 받았다. 다른 상위권 학교도 비슷하다고 들었다”고 했다.
표준안 개발 사업을 주관한 경기도교육청 측은 “보건교사든 외부 단체든 제대로 성교육을 할 수 있게 시수를 확보해주는 것이 우선”이라며 “표준안을 계기로 성교육 시간을 자리 잡게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표준안은 성교육 시간은 정해놓고 구체적인 수업 매뉴얼이 없다는 현장의 요청으로 만들게 된 것”이라며 “논란이 되는 동성애 부분은 인권적인 측면에서 다룰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아이들에게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려는 교육적 부분을 더 중요시하기 때문에 불가피한 면이 있다. 앞으로 관련 기관들의 의견을 듣고 교육부와 논의해 수정이 필요한 부분은 보완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화진 기자 lotus57@hanedui.com
교사가 ‘야동’, ‘자위’ 등 단어 언급 금지
동성애 등 성소수자 이야기는 빠져
성 관련 매체 노출된 아이들 현실 몰라
비현실적이라는 비판 등 나와 이날 토론회는 최근 불거진 교내 성폭력 사건을 계기로 열렸다. 교육부는 지난 3월 ‘2015 국가수준의 학교 성교육 표준안’(이하 표준안)을 발표한 바 있다. 각 시·도교육청을 통해 전달연수를 실시하면서 그 내용을 두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일부 단체는 “성교육이 절제가 아닌 무조건적인 ‘금욕’을 바탕으로 하고 동성애나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내용을 담는 등 시대착오적”이라고 지적했다. 10대의 성은 무조건 위험하다? 이번 표준안에서 가장 문제로 언급된 사항은 성교육 시간에 ‘야동’, ‘자위’ 등의 단어 사용을 금지하고 아이들이 질문할 경우에만 얘기하도록 한 점이다. 현장에서는 이 내용이 현실과 동떨어졌다고 이야기한다.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으로 성에 대한 정보를 잘 알고 있는 요즘 아이들의 수준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성교육 강사들은 “단어 사용을 못하게 하는 이유가 음란물을 가벼운 느낌으로 미화하거나 이를 몰랐던 아이들이 알게 돼 위험하다는 것”이라며 “하지만 아이들이 이미 알고 있는 단어다. 아이들에게 친화성 있게 다가가면서 야동의 내용이 잘못됐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는 오히려 먼저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건교사 정아무개씨는 평소 성교육을 진행하며 ‘이성교제 예절’이나 ‘성욕 해소와 음란물’에 대해 다룬다. 콘돔을 개인별로 나눠주고 사용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이론은 짧게 하고 활동 위주로 교육한다. 성심리에 대한 본인의 뇌 구조를 그려보게 하거나 이성교제 계획을 세우게 한다”며 “이성교제를 언제 시작할 것인지, 어떤 사람을 만날 것인지, 그 사람과 어떻게 손을 잡을 것인지 등 구체적인 내용을 고민하게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표준안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수업을 진행한다”며 “내용을 일일이 따지기보다 성적 호기심이 충만한 아이들에게 필요한 부분을 알려주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사전에 아이들에게 표준안 내용을 설명하고 좀더 세련된 단어를 쓰자고 했다. 이후 ‘자위’라는 단어는 ‘성욕해소행위’로 바꾼다. 하지만 아이들이 그냥 원래 쓰던 대로 얘기해도 막을 수는 없다.” 지역의 고교에 다니는 이아무개군은 “단어나 내용을 유치하게 빙빙 돌려서 말하면 오히려 효과가 없다. 아이들이 쓰는 단어를 이용해 현실을 반영해서 실질적인 내용을 가르쳐줬으면 좋겠다”며 “친구가 선생님한테 ‘여자들도 성욕을 느끼냐’고 물어봐서 그렇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반복해 설명하는 수업시간과 달리 학생들이 직접 질문해서 새로 알게 된 내용이 더 많다”고 말했다. 다른 보건교사는 “표준안 내용을 보면 아이들을 무성애자로 전제하고 있는 느낌이다. 현재 학생들 의식수준에도 역행한다”고 말했다. 표준안의 내용이 10대의 성을 위험하고 부정적으로 다루는 내용으로 치우쳤다는 지적도 있다. 아하!청소년성문화센터의 박현이 기획부장은 “표준안도 그렇고 우리 사회가 10대의 성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하지만 그들도 성적 충동과 욕구를 지닌 존재다. 올바른 성적 주체로 크기 위해서는 성에 대한 정보, 구체적 사례를 바탕으로 한 성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성적 주체가 된다는 것은 분위기에 휩쓸리거나 돈이나 폭력에 의해 성행위를 강요당했을 때 제대로 대처하고 주체적으로 선택,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걸 말한다. 금욕을 강조하고 임신 등을 부정적으로 다루면 그 상황이 일어났을 때 본인의 인생을 스스로 포기하게 된다. 원치 않은 성적 상황이 벌어졌을 때 본인이 방어할 수 있는 논리와 방법을 알아야 한다.”
지난달 25일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한국청소년성문화센터협의회가 주관한 ‘성교육 정책 바로 세우기 대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전국의 청소년과 각계 전문가들이 모여 교내 성폭력 사례와 성교육 현황이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청소년성문화센터협의회 제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