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방과후학교 강사 노동실태 발표와 법 제도 개선방안 마련을 위한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전국방과후강사권익실현센터 제공
“1년 단위로 계약하다 보니 고용이 불안정하다. 그나마 면접시간도 수업시간과 매번 겹쳐 난감하다. 대리강사를 구하기도 하지만 이마저도 허용하지 않은 학교가 있다.”
“지원할 때 이력서나 자기소개서, 학습계획안 외에도 신체검사서·주민등록등본·성범죄경력조회서 등 7~8개의 서류를 요구한다. 합격한 뒤 제출해도 되는 서류인데다 학교마다 요구하는 형식도 제각각이다.”
“학교에서는 3개월 과정 수업료를 사전에 학생들에게 한꺼번에 받는다. 하지만 강사는 매달이 아닌 프로그램이 다 끝난 뒤 강사료를 받거나 이마저도 체불되는 경우가 있다. 한 강사는 자기 반 학생 한명이 돈을 안 내서 전체 강사 임금을 지급 못 한다며 대납을 요구받았다.”
돌봄·특기적성·수준별 보충학습 등
전국 1만6800여곳 방과후학교 개설
1년 단위 계약, 임금 체불·대납 등
강사 처우 열악, 개선 목소리 나와
교육청서 공익재단 설립 추진하거나
학부모지원단 꾸려 프로그램 다양화
강사 채용·관리 등 직접 나서기도
방과후학교 강사들이 직접 겪은 이야기다. 얼마 전 전국 방과후 강사들이 모여 ‘전국방과후강사권익실현센터’(이하 센터)를 만들어 처우개선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강사 채용 시 평가하는 서류 표준화, 고용 안정 보장, 민간위탁 운영 금지 등을 주장하고 있다.
현재 전국 1만6876개 학교(2014년 4월 기준)에서 방과후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방과후 강사들만 해도 13만명에 이른다. 하지만 열악한 교육 환경과 강사 처우, 민간위탁 과정에서의 문제점 등이 불거지고 있다.
방과후학교는 학생, 학부모의 요구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규 교육과정 이외의 학교교육활동을 말한다. 기존의 특기·적성교육, 초등보육, 수준별 보충학습 등으로 쓰던 용어를 2006년부터 ‘방과후학교’로 통합해 사용하고 있다.
경기도 파주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세계문화 체험을 주제로 한 방과후수업을 듣고 있다. 전국방과후강사권익실현센터 제공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방과후학교의 기본적 목표는 ‘학교 교육기능 보완’, ‘사교육비 경감’, ‘교육복지 실현’, ‘학교의 지역사회화’다. 주요 교육 내용을 보면 초등은 방과후 보육과 특기적성, 중·고등은 수준별 교과보충·심화학습과 특기적성, 진로지도를 위주로 이뤄진다.
방과후학교를 운영하는 학교들이 늘다 보니 민간위탁업체도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강사들은 “업체를 통해 수업을 할 경우 일반적으로 40%의 수수료를 떼인다”고 말했다. 김경희 센터 대표는 “지역마다 다르지만 보통 시간당 2만5000원에서 3만원을 받는다. 10년째 가격이 그대로일 뿐 아니라 이 중 절반 가까이 수수료를 떼고 나면 얼마 남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의 제기를 하고 싶어도 불이익을 당할까봐 제대로 말을 못 하는 상황이다. 자칫하면 고용 자체가 불안정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가 조사한 방과후학교 민간위탁업체 현황을 보면 올해 4월 기준으로 전국에 780개 업체가 있다. 서울의 한 방과후학교 운영업체 담당자는 “전직 초등학교 교장이라고 찾아와 사업 제휴를 맺자고 했다. 자신이 분야별로 강사를 많이 보유하고 있으며 회사 이름을 빌려주면, 직접 영업을 하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즉, 후배인 현직 교장한테 얘기를 해서 업체를 선정하는 데 도움을 주고 본인은 수수료를 챙기겠다는 뜻이었다. 일부 강사들도 “실제 업체 선정 과정의 투명성 문제가 불거진 곳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 송파구 문정동에 사는 학부모 정아무개씨는 아이가 수업이 끝난 뒤 따로 학교 밖으로 이동하지 않고 사설학원보다 수업료가 2배 정도 저렴해서 방과후학교 신청을 했다. 얼마 전 교장이 바뀌면서 개인 강사가 하던 컴퓨터 수업을 민간업체에 맡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업체에서 강사료 일부를 수수료 명목으로 뗀다고 들었다. 물론 모든 강사들이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적은 돈을 받으면서 제대로 수업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업체에 맡기면 학교도 강사 관리에 소홀해지고 만일 문제라도 생기면 누가 책임질지 우려도 된다.”
센터 쪽은 얼마 전 국회에서 토론회를 열고 경기도교육청과 면담을 진행하며 이 같은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안 마련을 건의했다. 이에 대해 경기도교육청 북부청사 문예교육과 관계자는 “관련 사항에 대해 어떻게 반영할지 내부적으로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고자 지자체나 학부모가 적극 나서 학교의 부담을 덜고 프로그램을 활성화하려는 시도도 있다. 광주광역시교육청의 경우 ‘방과후학교 공익재단’ 설립과 ‘방과후학교 운영 지원에 관한 조례안’을 함께 추진중이다. 교육청 관계자는 “방과후학교로 공교육이 활성화되면 사교육이 위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방과후학교를 위탁 운영해오던 일부 단체와 지역아동센터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며 “공청회나 토론회를 열어 안팎의 의견을 수렴하고 법률적 검토를 거친 뒤 시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성남 장안초의 경우 학부모들이 주도적으로 방과후학교를 운영한다. 150개가 넘는 프로그램마다 학부모들이 수업 모니터링을 하고 강사 채용 과정에 직접 참여한다. 강사들은 학교 교원들처럼 분야별로 부장교사를 두고 영어·수학·음악·문화예술 등 9개 영역의 학부모전문가단도 꾸렸다. 이들은 수업 내용을 함께 논의하고 평가한다. 송근후 교장은 “수익자 부담으로 운영하는 방과후학교의 주인은 학생과 학부모다. 돈 내고 비싼 과외 시키는 학부모들이 수업 방식이나 내용에 적극 개입하는 것과 똑같다”고 말했다.
“학교는 학부모들의 의견과 활동을 적극 지지한다. 전체 수요조사는 기본으로 하고, 세부 교과나 프로그램을 선정할 때도 학부모가 관여한다. 수준별, 단계별로 맞춤수업을 하기 때문에 만족도가 높다. 전교생은 730명인데 한 학생이 여러 수업을 듣다 보니 전체 방과후학교 참여 인원이 1750명이나 된다.”
학부모 문재인씨는 3년째 학부모지원단 활동을 하고 있다. 5학년 쌍둥이 자녀는 일본어·영어·오케스트라·드럼 등 5개 방과후 프로그램을 듣고 있다. 문씨는 “방과후는 교사들이 따로 관여를 안 하기 때문에 쉬는 시간에 아이들 안전지도도 하고 수업이 원활히 진행되도록 도우미 구실도 한다”고 말했다.
“단순히 강사가 잘하나 못하나 감시하는 게 아니다. 아이들을 잘 가르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주고 강사와 신뢰를 쌓아서 수업의 질을 높이는 것이 목적이다.”
교육부에서는 현재 ‘방과후학교 운영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에 배포한 상태다. 하지만 강사 채용이나 프로그램 운영에 대한 내용은 있지만 강사의 처우나 고용안정에 대한 세부지침은 따로 나와 있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 내용을 바탕으로 각 시·도교육청의 여건에 맞게 수정·보완해 활용하라고 해 지역은 물론 학교마다 운영 형태가 다르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교육부나 교육청에 부당한 내용을 항의하면 ‘교장 재량’이라고 한다. 우리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현재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방과후강사제도 관련 법안을 수정하고 방과후 강사 조례 제정을 요구중”이라고 말했다.
“방과후 강사 권익문제를 얘기하는 데 ‘밥그릇 싸움 아니냐’고 말하는 이도 있다. 단순히 강사들 처우뿐 아니라 큰 틀에서는 ‘교육의 질’ 문제다. 고용을 안정화하고 무분별한 영리 민간업체를 줄여야 아이들도 체계적이고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최화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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