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 경기도 안산강서고 교사와 학생들이 본인들이 만든 팟캐스트 ‘반면교사’의 지난 방송 내용에 대한 평가를 하고 있다.
청소년 문제 다룬 영상 제작기
‘저는 21살입니다. 학창시절부터 게임중독에 빠져 있습니다. 결국, 대학도 못 가고 군대도 안 가고 사회의 낙오자로 지내고 있습니다. 스스로 게임을 끊어보려고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제발 저 좀 구해주세요.’
차두옥 동신대 방송연예학과 교수는 인터넷 공간에 올라온 이 글을 우연히 읽었다. “그 학생의 간절한 글을 보고 청소년들의 게임중독이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걸 계기로 상업용이 아닌 교육을 목적으로 한 영화를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풀 과제 많은 교육 분야
영상 익숙한 청소년에 맞춤해
다양한 매체 통해 의제 던져
학생·교사 직접 제작 참여
내 사연·생각 털어놓고 치유 경험도
학교수업으로 못한 새로운 공부 그는 맥지청소년사회교육원(이하 맥지)을 통해 게임중독에 빠진 청소년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탄생한 영화가 <잃어버린 이름>이다. 이 영화는 현실과 게임 속 가상현실을 구분하지 못한 채 일상생활에서 어려움을 겪는 한 청소년의 이야기다. 세월호 참사로 불거진 우리나라 교육 문제, 게임중독·가출 등 청소년 관련 사회 이슈가 끊이지 않는다. 흔히 청소년은 불평불만만 늘어놓고 정치·사회 문제는 어른들의 몫으로 제쳐놓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본인들의 고민을 영상 속에 담아 들여다보고 치유하는 학생들과 교육 이슈를 놓고 툭 터놓고 얘기해보자는 교사들도 있다. 어른들은 잘 모르거나 무관심한 청소년 관련 이슈를 영화로 이야기하거나 팟캐스트를 만들어 교육 문제 해결에 나선 이들을 만나봤다. 자기 사례 녹여 영화 만든 위기 청소년들 광주광역시 동구에 위치한 맥지청소년사회교육원은 5·18민주화항쟁 당시 만든 ‘맥지회’가 모토가 돼 꾸려진 단체다. 비인가 대안학교인 ‘도시속참사람학교’와 중장기 청소년 쉼터인 ‘광주광역시중장기여자청소년쉼터’를 운영하고 있다. 차 교수는 4년 전부터 이곳에서 만난 학생들과 함께 영화를 만들고 있다. 가출·성매매·게임중독 등 위기 청소년들이 겪는 상황과 어려움을 실제 영상에 녹여내고 있다. <잃어버린 이름> 속 주인공인 민규는 학교생활은 뒷전이고 엄마와 다투다 키보드가 망가지자 피시방 ‘죽돌이’가 된다. 그는 찌질한 ‘현실의 자신’보다 싸움 잘하고 인정받는 게임 속 아이디인 ‘방랑늑대’ 캐릭터를 더 좋아한다. 실제 현실에서도 ‘방랑늑대’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게임 속에서처럼 자신을 괴롭히는 친구들을 향해 손가락으로 총 모양을 만들어 쏘기도 한다. 이 영화에는 실제 게임중독에 빠지거나 방황했던 청소년들이 시나리오 작업 과정에서 스토리를 만들고 단역이나 스태프로 참여했다. 세상에 대해 자신감이 없던 친구들은 이 과정을 통해 다른 이에게 도움이 되는 영상을 만든다는 생각에 성취감을 얻고, 영화 속 인물을 보며 자신을 객관화하는 기회도 가질 수 있었다. 맥지에서 이러한 작업을 하는 이유는 ‘영상테라피’ 기법을 이용해 청소년들을 치유해주고 싶어서다. 영상테라피는 치유 대상자가 직접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자신을 뒤돌아보며 문제를 해결하거나 상처를 극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영화 제작 과정에서 보다 적극적인 태도로 공동작업에 참여하며 소속감이나 협동심도 기를 수 있다.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중인 김아무개양. 그는 어릴 적부터 고아원에서 지내다 반항심에 가득 찼던 17살 때 일탈행동을 저질러 쫓겨났다. 이후 맥지가 운영하는 쉼터에서 지내다 우연히 영화 제작에 참여하게 됐다. 자신이 직접 경험했던 청소년 성매매 이야기를 다룬 <하얀 물고기>라는 작품이었다. 김양은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해 스토리를 짰다. 영화를 만드는 데 기여한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싫건 좋건 내 인생의 한부분이라는 생각에 그때 기억을 담담히 떠올렸다”며 “당시에는 죄의식을 갖거나 문제라는 생각을 안 했는데 영화를 보며 돌이켜보니 지금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그런 행동을 안 하고 더 열심히 살 거 같다”고 말했다. 이런 영화는 청소년이 스스로를 돌아보고 치유하는 계기와 함께 어른들에게는 청소년 문제를 환기시켜 사회적으로 공론화하는 구실도 한다. <잃어버린 이름>에서 주인공 역을 맡은 장도영(28)씨는 “학생 때 게임을 하긴 했지만 영화 속 주인공처럼 빠지진 않았다”며 “막상 연기를 하다 보니 현실이 더 심각하다는 걸 느꼈다. 그만큼 영화가 청소년들이 게임중독에 왜 빠지는지, 어느 정도로 게임을 하는지 등을 잘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주인공 민규는 부모가 이혼한 뒤 엄마와 함께 살고 있다. 엄마가 보험설계사로 일하는 탓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보살핌을 받기 힘들어 학교생활에도 지장이 생겼다. 결국, 영화는 아이만 탓할 게 아니라 우리 사회 구조가 아이들을 게임중독에 빠뜨린다는 점도 말해주고 있다. 재능 기부로 영화 제작을 돕는 차 교수는 “요즘 음악, 미술 치료도 활발히 이뤄지지만 영상세대인 청소년들에게 가장 흡인력 있는 장르는 영화”라며 “학생들의 관심사나 고민, 어른들이 생각해볼 만한 청소년 문제를 영화로 만들어 알리고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치유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숲 속에서 나무로 지낼 때는 모르다 숲 밖으로 나와 멀찍이 바라보면 전체 숲의 모양이나 아름다움을 안다. 학생들은 직접 게임을 즐길 때는 문제점을 못 느끼다가 영화 속 자신을 닮은 인물이나 상황을 통해 자신의 중독이나 일탈행동이 심각하다는 걸 깨닫는다.” 맥지는 이렇게 제작한 영화를 디브이디(DVD)로 제작해 각 학교나 청소년 단체, 쉼터 등에 교육용으로 활용하도록 무료 배포하고 있다.
정치·교육 주제로 학생·교사 토크시간 마련
교사와 학생들이 힘을 모아 ‘정치·교육 융합토크’를 표방하고 나선 팟캐스트 방송도 있다. 경기도 안산강서고 교사와 33명의 학생은 팟캐스트 방송반 ‘반면교사’를 만들었다. 사실, 팟캐스트를 시작하게 된 것은 대입 스펙을 위한 학교의 조처였다. 학교생활기록부의 내용을 채우기 위해 허울뿐이었던 ‘고3 동아리’ 활동이 살아난 것이다.
반면교사는 가면을 쓰고 진행해 얼굴의 절반을 가린다는 의미와 (정부의 잘못된 정책 등에) 반대한다는 중의적인 뜻을 담고 있다. 모든 제작과정은 교사와 학생이 함께한다. 류상준 교사는 주제를 던진 뒤 학생들과 브레인스토밍 방식으로 아이템 회의를 한다. 학생들은 마인드맵을 그리면서 그 주제와 관련해 주요하게 떠오르는 생각이 무엇인지, 어떤 걸 연상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갈지 함께 의논한다.
김종희 수학교사가 피디와 엔지니어를, 윤리 과목을 가르치는 류 교사가 주로 진행을 맡는다. 류 교사는 “지난해 말 몇몇 교사들과 세월호를 주제로 힐링음악회를 기획했는데 막판에 무산됐다”며 “이후 꼭 대규모 행사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한자리에서 교육과 정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방송의 목적은 아이들이 ‘가만히 지시만 따르지 않고 말하고 싶은 걸 터놓고 얘기하게 하는 것’이다. 평소 학생들의 고민이나 어려워서 이해하지 못했던 주제 등을 다루면서 회의는 자연스레 토론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방송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하고 싶은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최대한 자유롭게 펼치는 동시에 무거운 주제도 쉽고 지루하지 않게 접근할 수 있다.
이들은 <생활과 윤리> 교과서를 활용해 주제를 정하기도 한다. ‘성과 윤리’ 단원에 나온 성소수자 내용을 미국의 동성결혼 합헌 소식과 연관지어 이야기 나눴다. 메르스가 한창 논란일 때는 ‘교육과 메르스’를 주제로 정하기도 했다.
류 교사는 “사실 ‘교육’이 그 자체로 올바로 설 수 있다면 교육 이야기만 하고 싶다. 하지만 현실은 교육이 자꾸 정치에 휘둘리기 때문에 정치 분야에까지 관심을 갖게 만든다”고 말했다.
“학생들도 청년 취업이 어려운 이유가 본인들만의 잘못이 아니라 사회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걸 조금은 인식하게 됐다. 벌써부터 패배주의적인 모습을 보이거나 교육시스템 안에 순화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알아서 걸러내는 걸 보면 안타깝다. 방송을 통해서라도 본인들의 의견을 당당하게 드러내고 나중에 사회에 나가서 구성원으로서 제구실을 하길 바란다.”
박상윤군은 “이전까지 정치 분야에 대한 내용은 거의 몰랐다. 수업시간에 다루지 않는 주제를 다뤄서 어려울 때도 있었지만 정치도 내 삶과 모두 관련돼 있다는 걸 알았다”며 “서로 자유롭게 이야기하며 그동안 내가 보지 못했던 다른 시각도 발견하고 선생님들이 서로 ‘디스’(상대방의 허물을 공개적으로 공격해 망신을 주는 행위) 하는 걸 보면서 그들의 새로운 면도 알게 돼 재밌다”고 했다.
지난달 14일 공식적으로 진행한 첫 녹음에는 세월호 참사에서 희생된 단원고 김도언 학생의 어머니와 생존 학생인 박수빈양, 졸업생 장동건군 등이 출연했다. 이들은 세월호 이후의 교육 문제와 ‘수능폐지론’을 주제로 열띤 대화를 주고받았다. 이 방송은 스마트폰에서 ‘팟캐스트’ 애플리케이션을 내려받기 한 뒤 ‘반면교사’를 검색해 들을 수 있다. 9월초 업로드 할 예정이다.
글·사진 최화진 기자 lotus57@hanedui.com
영상 익숙한 청소년에 맞춤해
다양한 매체 통해 의제 던져
학생·교사 직접 제작 참여
내 사연·생각 털어놓고 치유 경험도
학교수업으로 못한 새로운 공부 그는 맥지청소년사회교육원(이하 맥지)을 통해 게임중독에 빠진 청소년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탄생한 영화가 <잃어버린 이름>이다. 이 영화는 현실과 게임 속 가상현실을 구분하지 못한 채 일상생활에서 어려움을 겪는 한 청소년의 이야기다. 세월호 참사로 불거진 우리나라 교육 문제, 게임중독·가출 등 청소년 관련 사회 이슈가 끊이지 않는다. 흔히 청소년은 불평불만만 늘어놓고 정치·사회 문제는 어른들의 몫으로 제쳐놓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본인들의 고민을 영상 속에 담아 들여다보고 치유하는 학생들과 교육 이슈를 놓고 툭 터놓고 얘기해보자는 교사들도 있다. 어른들은 잘 모르거나 무관심한 청소년 관련 이슈를 영화로 이야기하거나 팟캐스트를 만들어 교육 문제 해결에 나선 이들을 만나봤다. 자기 사례 녹여 영화 만든 위기 청소년들 광주광역시 동구에 위치한 맥지청소년사회교육원은 5·18민주화항쟁 당시 만든 ‘맥지회’가 모토가 돼 꾸려진 단체다. 비인가 대안학교인 ‘도시속참사람학교’와 중장기 청소년 쉼터인 ‘광주광역시중장기여자청소년쉼터’를 운영하고 있다. 차 교수는 4년 전부터 이곳에서 만난 학생들과 함께 영화를 만들고 있다. 가출·성매매·게임중독 등 위기 청소년들이 겪는 상황과 어려움을 실제 영상에 녹여내고 있다. <잃어버린 이름> 속 주인공인 민규는 학교생활은 뒷전이고 엄마와 다투다 키보드가 망가지자 피시방 ‘죽돌이’가 된다. 그는 찌질한 ‘현실의 자신’보다 싸움 잘하고 인정받는 게임 속 아이디인 ‘방랑늑대’ 캐릭터를 더 좋아한다. 실제 현실에서도 ‘방랑늑대’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게임 속에서처럼 자신을 괴롭히는 친구들을 향해 손가락으로 총 모양을 만들어 쏘기도 한다. 이 영화에는 실제 게임중독에 빠지거나 방황했던 청소년들이 시나리오 작업 과정에서 스토리를 만들고 단역이나 스태프로 참여했다. 세상에 대해 자신감이 없던 친구들은 이 과정을 통해 다른 이에게 도움이 되는 영상을 만든다는 생각에 성취감을 얻고, 영화 속 인물을 보며 자신을 객관화하는 기회도 가질 수 있었다. 맥지에서 이러한 작업을 하는 이유는 ‘영상테라피’ 기법을 이용해 청소년들을 치유해주고 싶어서다. 영상테라피는 치유 대상자가 직접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자신을 뒤돌아보며 문제를 해결하거나 상처를 극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영화 제작 과정에서 보다 적극적인 태도로 공동작업에 참여하며 소속감이나 협동심도 기를 수 있다.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중인 김아무개양. 그는 어릴 적부터 고아원에서 지내다 반항심에 가득 찼던 17살 때 일탈행동을 저질러 쫓겨났다. 이후 맥지가 운영하는 쉼터에서 지내다 우연히 영화 제작에 참여하게 됐다. 자신이 직접 경험했던 청소년 성매매 이야기를 다룬 <하얀 물고기>라는 작품이었다. 김양은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해 스토리를 짰다. 영화를 만드는 데 기여한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싫건 좋건 내 인생의 한부분이라는 생각에 그때 기억을 담담히 떠올렸다”며 “당시에는 죄의식을 갖거나 문제라는 생각을 안 했는데 영화를 보며 돌이켜보니 지금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그런 행동을 안 하고 더 열심히 살 거 같다”고 말했다. 이런 영화는 청소년이 스스로를 돌아보고 치유하는 계기와 함께 어른들에게는 청소년 문제를 환기시켜 사회적으로 공론화하는 구실도 한다. <잃어버린 이름>에서 주인공 역을 맡은 장도영(28)씨는 “학생 때 게임을 하긴 했지만 영화 속 주인공처럼 빠지진 않았다”며 “막상 연기를 하다 보니 현실이 더 심각하다는 걸 느꼈다. 그만큼 영화가 청소년들이 게임중독에 왜 빠지는지, 어느 정도로 게임을 하는지 등을 잘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주인공 민규는 부모가 이혼한 뒤 엄마와 함께 살고 있다. 엄마가 보험설계사로 일하는 탓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보살핌을 받기 힘들어 학교생활에도 지장이 생겼다. 결국, 영화는 아이만 탓할 게 아니라 우리 사회 구조가 아이들을 게임중독에 빠뜨린다는 점도 말해주고 있다. 재능 기부로 영화 제작을 돕는 차 교수는 “요즘 음악, 미술 치료도 활발히 이뤄지지만 영상세대인 청소년들에게 가장 흡인력 있는 장르는 영화”라며 “학생들의 관심사나 고민, 어른들이 생각해볼 만한 청소년 문제를 영화로 만들어 알리고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치유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숲 속에서 나무로 지낼 때는 모르다 숲 밖으로 나와 멀찍이 바라보면 전체 숲의 모양이나 아름다움을 안다. 학생들은 직접 게임을 즐길 때는 문제점을 못 느끼다가 영화 속 자신을 닮은 인물이나 상황을 통해 자신의 중독이나 일탈행동이 심각하다는 걸 깨닫는다.” 맥지는 이렇게 제작한 영화를 디브이디(DVD)로 제작해 각 학교나 청소년 단체, 쉼터 등에 교육용으로 활용하도록 무료 배포하고 있다.
지난달 2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예인홀에서 열린 ‘맥지청소년 테라피 영화 상영축제’에서 관객들이 영화를 관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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